“지금은 술 안 팔아요” 바뀌나?…태국, 53년 만에 규제 해제 논의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3.05 (17:08)
수정 2025.03.0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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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덥다~"…편의점에 맥주 사러 갔는데 안 판다?
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간혹 마트나 편의점에 갔을 때 당황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눈앞에 냉장고를 가득 채운 맥주가 종류별로 진열돼 있는데, 살 수 없는 겁니다.
더운 날씨, 시원한 맥주 한 캔 들이키며 여행의 작은 행복을 느끼려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죠.
'관광 대국' 태국이지만, 주류 판매 규제가 있습니다.
술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입니다.
5대 불교 관련 공휴일엔 24시간 술을 팔지 않습니다. 일부 선거일도 제한됩니다.
마트나 편의점은 물론, 식당과 술집 모두 해당합니다.
이를 어기면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도 최대 1만 바트(약 43만 원)의 벌금형 또는
최고 6개월의 징역형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심지어 대마도 합법인 나라인데 술을 규제하다니.

■ 술 판매 규제는 언제부터?…태국인들의 '술 사랑'
태국의 주류 판매 규제는 1972년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공무원들이 근무시간 술을 마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불교 공휴일 주류 판매 규제는 2007년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게, 태국인들도 술 정말 좋아합니다.
마트나 편의점의 술 판매 코너에는 전 세계 온갖 종류의 술이 모여 있고,
심지어 여러 가지 과일 향의 '짝퉁' 소주들도 인기리에 팔립니다.
식당과 술집은 물론, 골목골목 플라스틱 탁자를 깔아놓고 얼음 채운 맥주를 들이켜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간이 식당도 예외가 아닙니다.
태국 내 경제연구소 중 한 곳인 끄룽수리 리서치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22년 태국 국내에서 팔린 술의 양이 27억 리터였습니다.
태국인 1인 당 한 해 7리터의 술을 마시는 꼴이라는 분석도 내놨는데,
우리 소주 한 병의 양이 360ml이니, 1년에 소주 약 20병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 '술 판매 규제 해제'…속도 내는 태국 정부
태국 정부가, 53년 만에 주류 판매 규제 해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술 판매 금지 시간 중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그리고 불교 관련 공휴일에도 술을 팔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일단 술 판매 금지 시간 조정은 태국의 '음주 및 음료 통제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서
관련 부처들이 개정안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4일, 태국 주류관리위원회는 5대 불교 공휴일의 주류 판매 허용 권고를 내놨습니다.
전면 해제는 아니고, 국제공항과 유흥시설, 호텔, 관광지, 국제 행사장에서의 주류 판매를
허용한다는 내용입니다.
공청회를 거쳐 보건부 장관과 총리의 승인을 받으면 곧바로 시행됩니다.
가장 가까운 불교 공휴일이 있는 5월부터 시행될 거로 예상됩니다.

■ 이유는 단 하나, '관광 활성화'
태국의 주류 판매 규제 해제, 지난달 초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직접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관광 활성화입니다.
지난해 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천5백만 명(태국 관광청)이었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엔 4천만 명이었습니다.
관광 활성화를 통한 경제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는 태국 정부,
그래서 지난해엔 중국 등 여러 나라에 대해 무비자 입국 조치를 확대했고,
아예 올해를 '태국 관광과 스포츠의 해(Amazing Thailand Grand Tourism and Sports Year 2025)'로 선포했습니다.
주류업계에서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술 판매 금지가 "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휴식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주장과 함께 규제를 해제하면 연간 약 6천억 바트(약 25조 6천억 원)의 수익이 창출될 거란 전망도 내놨습니다.

■ 규제 없애면 관광객 늘까?…또 다른 변수들
물론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음주로 인한 국민 건강과 각종 사고에 대한 우려입니다.
지난해 사망 교통사고의 34%가 음주에 의한 것(태국건강증진재단)이었고,
570만 명의 성인이 과음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 공중보건부는 지난해 태국 전체 사망자의 74%가 암과 심혈관 질환 등 비감염성 질환이 원인이었다면서 이런 비감염성 질환을 막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정부의 주류 판매 규제 조치는 이 같은 노력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태국 교육부도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과 식습관 개선 캠페인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외적인 변수들입니다.
올해 초 잇따른 '중국인 납치 실종' 사건 영향으로 지난해 태국에 가장 많이 왔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고 있고, 최근 '위구르족 강제 송환'으로 10년 전과 같은
보복성 테러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태국의 주류 판매 규제 해제 조치, 태국 매체들이 거의 매일 같이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일단 관광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정부와 업계의 입장을 주로 반영하고 있지만,
이후 공청회나 실제 법 개정안 추진 과정에선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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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술 안 팔아요” 바뀌나?…태국, 53년 만에 규제 해제 논의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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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3-05 17:08:45
- 수정2025-03-05 18:41:53

■ "정말 덥다~"…편의점에 맥주 사러 갔는데 안 판다?
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간혹 마트나 편의점에 갔을 때 당황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눈앞에 냉장고를 가득 채운 맥주가 종류별로 진열돼 있는데, 살 수 없는 겁니다.
더운 날씨, 시원한 맥주 한 캔 들이키며 여행의 작은 행복을 느끼려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죠.
'관광 대국' 태국이지만, 주류 판매 규제가 있습니다.
술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입니다.
5대 불교 관련 공휴일엔 24시간 술을 팔지 않습니다. 일부 선거일도 제한됩니다.
마트나 편의점은 물론, 식당과 술집 모두 해당합니다.
이를 어기면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도 최대 1만 바트(약 43만 원)의 벌금형 또는
최고 6개월의 징역형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심지어 대마도 합법인 나라인데 술을 규제하다니.

■ 술 판매 규제는 언제부터?…태국인들의 '술 사랑'
태국의 주류 판매 규제는 1972년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공무원들이 근무시간 술을 마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불교 공휴일 주류 판매 규제는 2007년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게, 태국인들도 술 정말 좋아합니다.
마트나 편의점의 술 판매 코너에는 전 세계 온갖 종류의 술이 모여 있고,
심지어 여러 가지 과일 향의 '짝퉁' 소주들도 인기리에 팔립니다.
식당과 술집은 물론, 골목골목 플라스틱 탁자를 깔아놓고 얼음 채운 맥주를 들이켜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간이 식당도 예외가 아닙니다.
태국 내 경제연구소 중 한 곳인 끄룽수리 리서치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22년 태국 국내에서 팔린 술의 양이 27억 리터였습니다.
태국인 1인 당 한 해 7리터의 술을 마시는 꼴이라는 분석도 내놨는데,
우리 소주 한 병의 양이 360ml이니, 1년에 소주 약 20병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 '술 판매 규제 해제'…속도 내는 태국 정부
태국 정부가, 53년 만에 주류 판매 규제 해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술 판매 금지 시간 중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그리고 불교 관련 공휴일에도 술을 팔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일단 술 판매 금지 시간 조정은 태국의 '음주 및 음료 통제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서
관련 부처들이 개정안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4일, 태국 주류관리위원회는 5대 불교 공휴일의 주류 판매 허용 권고를 내놨습니다.
전면 해제는 아니고, 국제공항과 유흥시설, 호텔, 관광지, 국제 행사장에서의 주류 판매를
허용한다는 내용입니다.
공청회를 거쳐 보건부 장관과 총리의 승인을 받으면 곧바로 시행됩니다.
가장 가까운 불교 공휴일이 있는 5월부터 시행될 거로 예상됩니다.

■ 이유는 단 하나, '관광 활성화'
태국의 주류 판매 규제 해제, 지난달 초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직접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관광 활성화입니다.
지난해 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천5백만 명(태국 관광청)이었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엔 4천만 명이었습니다.
관광 활성화를 통한 경제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는 태국 정부,
그래서 지난해엔 중국 등 여러 나라에 대해 무비자 입국 조치를 확대했고,
아예 올해를 '태국 관광과 스포츠의 해(Amazing Thailand Grand Tourism and Sports Year 2025)'로 선포했습니다.
주류업계에서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술 판매 금지가 "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휴식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주장과 함께 규제를 해제하면 연간 약 6천억 바트(약 25조 6천억 원)의 수익이 창출될 거란 전망도 내놨습니다.

■ 규제 없애면 관광객 늘까?…또 다른 변수들
물론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음주로 인한 국민 건강과 각종 사고에 대한 우려입니다.
지난해 사망 교통사고의 34%가 음주에 의한 것(태국건강증진재단)이었고,
570만 명의 성인이 과음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 공중보건부는 지난해 태국 전체 사망자의 74%가 암과 심혈관 질환 등 비감염성 질환이 원인이었다면서 이런 비감염성 질환을 막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정부의 주류 판매 규제 조치는 이 같은 노력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태국 교육부도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과 식습관 개선 캠페인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외적인 변수들입니다.
올해 초 잇따른 '중국인 납치 실종' 사건 영향으로 지난해 태국에 가장 많이 왔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고 있고, 최근 '위구르족 강제 송환'으로 10년 전과 같은
보복성 테러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태국의 주류 판매 규제 해제 조치, 태국 매체들이 거의 매일 같이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일단 관광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정부와 업계의 입장을 주로 반영하고 있지만,
이후 공청회나 실제 법 개정안 추진 과정에선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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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섭 기자 bird2777@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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