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의 황제’ 파이프오르간이 조선시대에?

입력 2025.03.1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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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오르간 건반(▲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파이프오르간 건반(▲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

■ '악기의 황제'를 찾아서

'악기의 황제'.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파이프오르간을 이렇게 부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은 전자 음향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그리고 지금도 단일 악기로는 오케스트라를 능가할 정도로 풍성한 음량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악기이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피아노와 같은 건반이 보이고, 실제로 '건반 악기'라고 피아노와 같이 묶여서 분류되기도 하지만, 작동 원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구조로 '현악기'나 '타악기'적인 속성이 강하다면 파이프오르간은 건반을 누르면 공기가 파이프에 주입되어 소리가 나는 '관악기'적인 속성이 강하죠.

수천 개의 파이프가 필요하고 들어가는 장소에 맞춰 설계부터 제작 기간만 몇 년이 걸리기에, 외국에서는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한다'(make)고 하지 않고 '짓는다'(build)고 합니다.

국악기 ‘생황’(▲국립국악원 제공)국악기 ‘생황’(▲국립국악원 제공)

■ "생황과 비슷한 악기" …조선시대에 파이프오르간이?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1765년 조선시대 '을병연행록'에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거문고 명인이었던 담헌 홍대용이 현 중국 북경의 '남천주교당'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처음 봤고, 국악기 '생황'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세종문화회관)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세종문화회관)

■ 한국 최초로 공연장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

우리나라 전문 공연장에 파이프오르간이 처음 들어온 건 1978년 세종문화회관입니다.

그해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하면서 국무총리 지시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게 됐고 독일의 유명한 파이프오르간 제작사인 '칼 슈케' 사가 제작을 맡았습니다.

제작 당시 일본 NHK홀에 설치된 5단, 7,641개의 파이프보다 더 큰 규모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고, 그에 따라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은 파이프는 8,098개, 건반 6단의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투입된 예산은 당시 돈으로 6억 원,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5억 원이 넘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고, 독일인 기사 1,400명을 포함하여 설치 인원만 4천 명이 동원됐습니다.

제작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오르간으로 40여 년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연주됐지만, 지난 2019년 이후로는 수리·보수 문제로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롯데콘서트홀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롯데콘서트홀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

■ 파이프오르간을 품은 국내 공연장, 단 3곳

세종문화회관 이후 공연장에 파이프오르간을 들인 건 2016년 롯데콘서트홀이었습니다.

민간 공연장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들인 건 롯데콘서트홀이 유일하기도 하죠.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오르간은 오스트리아 '리거' 사가 제작한 것으로 제작 기간은 2년이 넘게 걸렸고 25억 원의 비용이 투입됐습니다.

파이프 개수는 5천여 개, 건반은 4단으로 구성됐습니다.

부천아트센터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부천아트센터)부천아트센터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부천아트센터)

그 뒤를 이은 건 지난 2023년 부천의 부천아트센터입니다.

부천아트센터 파이프오르간은 캐나다 '카사방 프레르' 사가 제작했으며 4단 건반, 4,576개의 파이프로 구성됐습니다.

제작 기간은 3년, 들어간 예산은 약 30억 원입니다.

지자체 공연장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들인 첫 사례였고, 올해 개관 예정인 부산콘서트홀이 지자체 공연장으로는 2번째, 국내 공연장으로는 4번째인 파이프오르간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오르가니스트 이베타 압칼나(▲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오르가니스트 이베타 압칼나(▲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

■ 최신 파이프오르간 두 대를 비교해 봤습니다.

다음 달(4월)에는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 이베타 압칼나가 내한해 국내 최신 파이프오르간을 갖춘 롯데콘서트홀과 부천아트센터에서 모두 독주회를 엽니다.

롯데콘서트홀에서는 4월 2일 저녁 7시 30분, 부천아트센터에서는 사흘 뒤인 4월 5일 오후 5시입니다.

이베타 압칼나는 2002년부터 여러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오르가니스트로는 최초로 에코 클래식 올해의 연주자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습니다.

"모든 공연용 오르간은 고유한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오르간은 매우 개성 있고 독특하죠."
- 이베타 압칼나 서면 인터뷰 中

이베타 압칼나가 내한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 말입니다.

"각 오르간의 영혼과 특성을 짧은 시간 안에 열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이고 그래서 "보통 공연 하루 전날에 도착해 적어도 8시간 이상은 이 오르간이 제공하는 색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섞을지, 제 프로그램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 시간을 들인다"는 게 그의 설명.

연주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하는 파이프오르간의 매력, 이번에 두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이베타 압칼나의 연주로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손건반뿐만 아니라 발 건반까지 있어서 전신을 써야 하는 오르간 연주.

백 마디 말보다, 오르간이 주는 깊은 감동을 직접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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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기의 황제’ 파이프오르간이 조선시대에?
    • 입력 2025-03-14 08:07:28
    심층K
파이프오르간 건반(▲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
■ '악기의 황제'를 찾아서

'악기의 황제'.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파이프오르간을 이렇게 부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은 전자 음향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그리고 지금도 단일 악기로는 오케스트라를 능가할 정도로 풍성한 음량을 낼 수 있는 유일한 악기이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피아노와 같은 건반이 보이고, 실제로 '건반 악기'라고 피아노와 같이 묶여서 분류되기도 하지만, 작동 원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구조로 '현악기'나 '타악기'적인 속성이 강하다면 파이프오르간은 건반을 누르면 공기가 파이프에 주입되어 소리가 나는 '관악기'적인 속성이 강하죠.

수천 개의 파이프가 필요하고 들어가는 장소에 맞춰 설계부터 제작 기간만 몇 년이 걸리기에, 외국에서는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한다'(make)고 하지 않고 '짓는다'(build)고 합니다.

국악기 ‘생황’(▲국립국악원 제공)
■ "생황과 비슷한 악기" …조선시대에 파이프오르간이?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1765년 조선시대 '을병연행록'에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거문고 명인이었던 담헌 홍대용이 현 중국 북경의 '남천주교당'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처음 봤고, 국악기 '생황'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세종문화회관)
■ 한국 최초로 공연장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

우리나라 전문 공연장에 파이프오르간이 처음 들어온 건 1978년 세종문화회관입니다.

그해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하면서 국무총리 지시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게 됐고 독일의 유명한 파이프오르간 제작사인 '칼 슈케' 사가 제작을 맡았습니다.

제작 당시 일본 NHK홀에 설치된 5단, 7,641개의 파이프보다 더 큰 규모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고, 그에 따라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은 파이프는 8,098개, 건반 6단의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투입된 예산은 당시 돈으로 6억 원,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5억 원이 넘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고, 독일인 기사 1,400명을 포함하여 설치 인원만 4천 명이 동원됐습니다.

제작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오르간으로 40여 년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연주됐지만, 지난 2019년 이후로는 수리·보수 문제로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롯데콘서트홀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
■ 파이프오르간을 품은 국내 공연장, 단 3곳

세종문화회관 이후 공연장에 파이프오르간을 들인 건 2016년 롯데콘서트홀이었습니다.

민간 공연장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들인 건 롯데콘서트홀이 유일하기도 하죠.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오르간은 오스트리아 '리거' 사가 제작한 것으로 제작 기간은 2년이 넘게 걸렸고 25억 원의 비용이 투입됐습니다.

파이프 개수는 5천여 개, 건반은 4단으로 구성됐습니다.

부천아트센터 파이프오르간(▲사진 제공 : 부천아트센터)
그 뒤를 이은 건 지난 2023년 부천의 부천아트센터입니다.

부천아트센터 파이프오르간은 캐나다 '카사방 프레르' 사가 제작했으며 4단 건반, 4,576개의 파이프로 구성됐습니다.

제작 기간은 3년, 들어간 예산은 약 30억 원입니다.

지자체 공연장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들인 첫 사례였고, 올해 개관 예정인 부산콘서트홀이 지자체 공연장으로는 2번째, 국내 공연장으로는 4번째인 파이프오르간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오르가니스트 이베타 압칼나(▲사진 제공 : 롯데콘서트홀)
■ 최신 파이프오르간 두 대를 비교해 봤습니다.

다음 달(4월)에는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 이베타 압칼나가 내한해 국내 최신 파이프오르간을 갖춘 롯데콘서트홀과 부천아트센터에서 모두 독주회를 엽니다.

롯데콘서트홀에서는 4월 2일 저녁 7시 30분, 부천아트센터에서는 사흘 뒤인 4월 5일 오후 5시입니다.

이베타 압칼나는 2002년부터 여러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오르가니스트로는 최초로 에코 클래식 올해의 연주자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습니다.

"모든 공연용 오르간은 고유한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오르간은 매우 개성 있고 독특하죠."
- 이베타 압칼나 서면 인터뷰 中

이베타 압칼나가 내한을 앞두고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 말입니다.

"각 오르간의 영혼과 특성을 짧은 시간 안에 열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이고 그래서 "보통 공연 하루 전날에 도착해 적어도 8시간 이상은 이 오르간이 제공하는 색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떻게 섞을지, 제 프로그램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 시간을 들인다"는 게 그의 설명.

연주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하는 파이프오르간의 매력, 이번에 두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이베타 압칼나의 연주로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손건반뿐만 아니라 발 건반까지 있어서 전신을 써야 하는 오르간 연주.

백 마디 말보다, 오르간이 주는 깊은 감동을 직접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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