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단어 보면 최고점 주세요”…입찰 업체가 평가위원에게 한 말의 결과는?

입력 2025.03.17 (18:34) 수정 2025.03.1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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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맺는 민간 위탁 계약을 둘러싼 불공정 시비와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언론을 통해 민간 위탁 관련 비리 사건이 간간이 보도되기도 하고, 충분한 근거 없어 숱한 의혹을 일으키며 풍문으로만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KBS가 최근 행정안전부 감찰 보고서를 단독 입수하면서, 그간 언론에서 다루지 못한 여러 의혹 가운데 실체를 하나 확인했습니다. 전북 순창군 공공하수처리시설 민간 위탁 업체 선정 과정에서, 업체 측 청탁을 받고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평가위원이 고점을 주는 방식, 이른바 '특정 업체 밀어주기'가 이뤄졌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평가위원에는 공무원, 교수 등 여러 전문가가 다수 포함됐습니다.


■ 공문 받기도 전에 신청서 제출…'수상한' 평가위원 공모

지난해 5월, 순창군은 공공하수처리시설을 운영할 위탁 업체를 선정했습니다. 용역 기간은 4년 4개월, 업체는 순창군으로부터 180억 원을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여러 업체가 제안서를 냈습니다. 순창군은 제안서를 심사하기 위해 평가위원을 모집했습니다. 인근 지자체와 대학교 등 기관에 평가위원을 모집한다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순창군이 보낸 공문이 수신 기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당 기관에 소속돼 있는 공무원과 교수 등이 순창군에 평가위원 신청서를 제출한 겁니다.

평가위원 신청서 제출자 21명 가운데 순창군 소속 공무원 3명을 뺀 외부 인사는 18명입니다. 교수가 9명, 공무원이 9명입니다. 그리고 18명 가운데 14명이 본인 소속 기관에 공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순창군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심지어는 본인 소속 기관에 공문이 도착하기 이틀 전에, 순창군에 지원서를 낸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재직증명서 등 관련 자료까지 모두 갖춘 상태였습니다. 어디선가 정보가 사전 유출된 겁니다. 실제 이들 중 6명이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선정됐습니다.


■ 전주시, 정읍시, 김제시 공무원 줄줄이 연루

실마리는 순창군 공공하수처리시설 관리 대행 업체로 선정된 A 회사에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특별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A 업체는 제안서 심사 전 여러 공무원에게 청탁했습니다. 평가위원으로 들어가 자기 업체에 좋은 점수를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A 업체는 정읍시 팀장급 공무원 a씨에게 "평가위원 모집 안내문을 미리 보내줄 테니 먼저 작성해 놓고 순창군에서 공고가 나면 접수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a씨는 업체 부탁대로, 신청서를 순창군에 접수했습니다. 이후 업체 측에 전화해 평가위원으로 선정된 사실을 알렸습니다. 업체 측은 " 우리 회사 제안서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표지 상단에 있으니 높은 점수를 달라"고 청탁했습니다.

김제시 공무원 c씨 또한, A업체 측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제안서 평가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c씨는 심사 과정에서 A 업체 측과 수시로 연락하며 지원서 접수 사실과 평가위원 선정 여부 등을 보고했습니다.

전주시 소속 공무원 b씨는 경쟁에 참여한 업체 2곳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습니다. 업체 측으로부터 평가위원 모집 안내문을 전달받고 순창군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업체 측의 제안서 사진과 제안서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청탁받은 두 업체에 각각 1위와 2위 점수를 줬습니다.

청탁을 받은 공무원들이 특정 업체에 최고점을 주면서 심사 결과는 뒤바뀌었습니다. 7개의 입찰 참여 업체 가운데 정량평가에서 최저점을 받은 A 업체가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겁니다.

일부 교수 역시 몇몇 업체로부터 "평가위원으로 들어가 달라"는 청탁을 받은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점수를 잘 달라"는 부탁은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행안부는 "'평가위원 공개해야"…지자체는 "개인정보라 비공개"

민간 위탁 업체 선정 과정에서 업체들의 '심사위원 밀어넣기'는 암묵적인 관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인 업체에 유리한 심사위원이 많을수록 더 좋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위탁을 맡기는 기관에서는 평가위원 추첨 등 여러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 한계가 명확한 상황입니다.

심지어 지자체의 정보 공개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 입찰 시 낙찰자 결정 기준'을 통해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지자체에서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평가위원 명단을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KBS가 전주시에 공공하수처리시설 위탁 업체 선정 관련 평가위원 명단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전주시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부하다가 환경부로부터 공문을 받은 뒤에야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경찰 수사 착수…순창군 '재심의' 신청하더니 뒤늦게 수사 의뢰


행정안전부는 순창군수에 관련 공무원들과 업체를 수사 의뢰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A 업체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순창군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감찰 결과에 대해 재심의를 신청했습니다.

그 사이, 전북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관련자 일부를 불러 조사하는 등 해당 사안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행안부는 순창군의 재심의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고, 순창군은 뒤늦게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경찰은 업체와 평가위원 사이 청탁 과정에서 뇌물 수수와 같이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업체가 공모 일시와 관련 서류 등을 사전에 어떻게 입수하고 또 어디로 유출했는지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을 계기로 민간 위탁 업체 심사 과정이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개선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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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 : 김동균 / 그래픽 : 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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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17 18:34:25
    • 수정2025-03-17 1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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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최근 행정안전부 감찰 보고서를 단독 입수하면서, 그간 언론에서 다루지 못한 여러 의혹 가운데 실체를 하나 확인했습니다. 전북 순창군 공공하수처리시설 민간 위탁 업체 선정 과정에서, 업체 측 청탁을 받고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평가위원이 고점을 주는 방식, 이른바 '특정 업체 밀어주기'가 이뤄졌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평가위원에는 공무원, 교수 등 여러 전문가가 다수 포함됐습니다.


■ 공문 받기도 전에 신청서 제출…'수상한' 평가위원 공모

지난해 5월, 순창군은 공공하수처리시설을 운영할 위탁 업체를 선정했습니다. 용역 기간은 4년 4개월, 업체는 순창군으로부터 180억 원을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여러 업체가 제안서를 냈습니다. 순창군은 제안서를 심사하기 위해 평가위원을 모집했습니다. 인근 지자체와 대학교 등 기관에 평가위원을 모집한다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순창군이 보낸 공문이 수신 기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당 기관에 소속돼 있는 공무원과 교수 등이 순창군에 평가위원 신청서를 제출한 겁니다.

평가위원 신청서 제출자 21명 가운데 순창군 소속 공무원 3명을 뺀 외부 인사는 18명입니다. 교수가 9명, 공무원이 9명입니다. 그리고 18명 가운데 14명이 본인 소속 기관에 공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순창군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심지어는 본인 소속 기관에 공문이 도착하기 이틀 전에, 순창군에 지원서를 낸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재직증명서 등 관련 자료까지 모두 갖춘 상태였습니다. 어디선가 정보가 사전 유출된 겁니다. 실제 이들 중 6명이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선정됐습니다.


■ 전주시, 정읍시, 김제시 공무원 줄줄이 연루

실마리는 순창군 공공하수처리시설 관리 대행 업체로 선정된 A 회사에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특별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A 업체는 제안서 심사 전 여러 공무원에게 청탁했습니다. 평가위원으로 들어가 자기 업체에 좋은 점수를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A 업체는 정읍시 팀장급 공무원 a씨에게 "평가위원 모집 안내문을 미리 보내줄 테니 먼저 작성해 놓고 순창군에서 공고가 나면 접수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a씨는 업체 부탁대로, 신청서를 순창군에 접수했습니다. 이후 업체 측에 전화해 평가위원으로 선정된 사실을 알렸습니다. 업체 측은 " 우리 회사 제안서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표지 상단에 있으니 높은 점수를 달라"고 청탁했습니다.

김제시 공무원 c씨 또한, A업체 측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제안서 평가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c씨는 심사 과정에서 A 업체 측과 수시로 연락하며 지원서 접수 사실과 평가위원 선정 여부 등을 보고했습니다.

전주시 소속 공무원 b씨는 경쟁에 참여한 업체 2곳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습니다. 업체 측으로부터 평가위원 모집 안내문을 전달받고 순창군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업체 측의 제안서 사진과 제안서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청탁받은 두 업체에 각각 1위와 2위 점수를 줬습니다.

청탁을 받은 공무원들이 특정 업체에 최고점을 주면서 심사 결과는 뒤바뀌었습니다. 7개의 입찰 참여 업체 가운데 정량평가에서 최저점을 받은 A 업체가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겁니다.

일부 교수 역시 몇몇 업체로부터 "평가위원으로 들어가 달라"는 청탁을 받은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점수를 잘 달라"는 부탁은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행안부는 "'평가위원 공개해야"…지자체는 "개인정보라 비공개"

민간 위탁 업체 선정 과정에서 업체들의 '심사위원 밀어넣기'는 암묵적인 관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인 업체에 유리한 심사위원이 많을수록 더 좋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위탁을 맡기는 기관에서는 평가위원 추첨 등 여러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 한계가 명확한 상황입니다.

심지어 지자체의 정보 공개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 입찰 시 낙찰자 결정 기준'을 통해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지자체에서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평가위원 명단을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KBS가 전주시에 공공하수처리시설 위탁 업체 선정 관련 평가위원 명단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전주시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부하다가 환경부로부터 공문을 받은 뒤에야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경찰 수사 착수…순창군 '재심의' 신청하더니 뒤늦게 수사 의뢰


행정안전부는 순창군수에 관련 공무원들과 업체를 수사 의뢰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A 업체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순창군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감찰 결과에 대해 재심의를 신청했습니다.

그 사이, 전북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관련자 일부를 불러 조사하는 등 해당 사안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행안부는 순창군의 재심의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고, 순창군은 뒤늦게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경찰은 업체와 평가위원 사이 청탁 과정에서 뇌물 수수와 같이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업체가 공모 일시와 관련 서류 등을 사전에 어떻게 입수하고 또 어디로 유출했는지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을 계기로 민간 위탁 업체 심사 과정이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개선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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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 : 김동균 / 그래픽 : 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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