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호소 [취재후]
입력 2025.03.28 (13:41)
수정 2025.03.28 (13:4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부는 40년 전에도 우리를 짐승처럼 잡아 가두었고, 지금도 재판이라는 이름의 형옥에 감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이기에 사과 또한 받고 싶습니다. 사과의 시작은 잘못의 인정부터입니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향직 씨가 대법원 담당 판사에게 올린 호소문 중 - |
스스로를 '사람'으로 부르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입니다.
피해자 13명은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소송을 걸었습니다. 상대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1심은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2심은 다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가는 또 항소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는 이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피고 대한민국의 대리인들이 낸 서면을 읽었습니다. 볼 때마다 숨을 쉬기 힘들어졌지만, 직시해야 했습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피해자가 맞는지 증명이 부족하다"
"내무부 훈령 410호는 불법이 아니다"
"열네 살이면 사리 분별이 될 나이인데, 파출소에서 왜 도망을 가지 않았냐"
*내무부 훈령 410호: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랑인들을 감시하고 보호해야 한다'며 만들었다. 영장 없이도 부랑인들을 단속하고 시설에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씨가 증거로 낸 소년의집 아동카드에는 이름, 형제복지원 수용번호, OO중학교 중퇴 등의 신상정보가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피고 대한민국 측은 '생년월일 중 생년만 기록됐고 월일은 기재돼 있지 않아 본인 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씨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OO중학교에서 재학 중 제적됐음을 알려주는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또 피고 측에서 '동명이인'을 주장할까 봐, 교육청에 직접 가서 '1984년에 OO중학교 학생 중 이향직 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의 수'를 정보공개 청구했습니다. 결과는 '1명'이었습니다.
이 씨의 노력에도 국가는 항소에 항소를 거듭했습니다.
결국 대법원 판단을 받기까지, 피 말리는 소송은 4년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지난 2월 이 씨는 소를 제기한 피해자 13명의 목소리를 모아 대법원 담당 판사에게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해당 호소문에 소개된 13명의 사연을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 "이렇게 오랜 기간 감히 대한민국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피고와 싸우고 있습니다"
원고 1 OOO는 그 지옥에서 두들겨 맞아서 허리에 늘 통증이 있지만 생계를 위해 그 몸으로 막노동을 다니고 있습니다. (장애등록증이 있는 장애인입니다)
원고 2 OOO는 마찬가지로 그 지옥에서 맞은 후유증으로 허리와 몸 여기저기가 골병이 들어서 운신의 폭이 좁은 데다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피고의 계속된 항소와 상고에 무너진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자살 시도 까지 했습니다.
원고 3 OOO는 그 지옥에서 두들겨 맞는 과정에서 입안의 거의 모든 이빨이 깨지고 빠져서 성한 이가 없습니다. 또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서 정신과 진료를 겸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몸으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노동일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원고 4 OOO는 물 당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가 컸었던 OOO는 그 지옥에서 아동소대와 청소년소대에서 생활한 약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산에서 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을 매일 플라스틱으로 된 큰 드럼통에 받아서 어깨에 짊어지고 소대 화장실로 날랐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외과, 한의원 등에서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하여 정신과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습니다. OOO는 도저히 근로 능력이 되질 않아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고 있습니다.
원고 5 OOO는 그 지옥에서 조장, 서무들에게 맞아서 한쪽 다리에 심각한 장애를 입었습니다. 다리가
절뚝거리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마땅한 일자리도 못 구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원고 6 OOO는 그 지옥에서 두들겨 맞다가 잘못 맞아서 인대가 손상되었으나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은 상태로 세월이 흘러 지금은 가벼운 물건도 곧잘 떨어트리기도 하고 힘든 일은 못 하는 상태로 살고 있고, 팔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그 지옥이 생각나서 가슴을 두드리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어릴 때 형제원에서 갱생원으로 전원 갔을 때,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허리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원고 7 OOO, 원고 8 OOO는 남매로서 5살과 7살. 너무나 어린 시절 경찰관이 엄마 찾아 준다는 말에 속아서 그 지옥에 끌려간 이후 오랜 기간 가정과 격리된 채 살게 됨으로 인해 화목하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고, 지금 까지도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원고 9 이향직 저는 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법원에 제출된 저의 진단서처럼 저는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 그 지옥을 생각하면 그 당시 맞았던 부위들에서 통증이 되살아나는 환상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에 검사한 정신과 기본 검사에서 초진 당시(약 10년 전) 정신과 검사했을 때보다 수치가 더 나빠졌다고 하시면서 빨리 그 진행 중인 형제복지원 관련 재판이 마무리되고 과거의 기억 재생을 멈춰야 치료가 될 수 있지, 이대로는 큰일 날 것 같다는 취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원고 10 OOO는 그 지옥에서 당한 구타와 고문에 가까운 기합에 대한 후유장애로 척추가 굽어진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자세한 병명을 몰라서 표현하기 조심스러운데 어린 시절 우리는 그렇게 허리가 굽어진 상태로 생활하던 분들을 곱추 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발간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결정서를 살펴보시면 과거 그 지옥에서 폐결핵이 만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 OOO는 폐에 물이 차서 병원을 가서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죽을려고 했던 날이 불과 수개월 전입니다. (원고들이 돈을 조금씩 걷어서 시술받고 살았습니다)
원고 11 OOO는 저와 전화 통화 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어렵고 어떤 때는 머리가 빙~ 도는 듯한 어지러움 증상이 반복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 인지라 정신과를 가봐야 한다고 권하고 있으나 직업상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불이익이 예상되어 안 된다고 합니다. 결국 치료도 못 받고 맨몸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원고 12 OOO는 어린 시절 배운 것 없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나이트클럽 웨이터이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송이 진행 중이었던 어느 날 한 방송에 사연과 얼굴이 나간 이후, 이전에는 자신을 자주 찾던 단골손님들의 대부분이 자신을 멀리하고 OOO를 찾아 주지 않아서 최근에는 생계마저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수십 년간 해온 직업을 54세의 나이에 바꿀 수도 없어서 하고는 있지만 생계는 힘들다고 합니다.
원고 13 OOO는 누나와 함께 그 지옥에 납치된 이후 딱히 배운 것 없이 지금까지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당을 받고 노동일을 하고 살고 있고, 그 지옥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껍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배워야 할 시기에 공부를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존경하는 대법관님"
우리 원고들은 더 이상 이 재판을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지치고 힘든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 올린 바와 같이 우리는 진단서가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을 뿐 실상은 우리 모두가 그 지옥을 떠올리면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정신질환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겪고 있는 이 정신질환 역시도 우리가 당한 피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부는 40년 전에도 우리를 짐승처럼 잡아 가두었고, 지금도 재판이라는 이름의 형옥에 감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 이기에 사과 또한 받고 싶습니다. 사과의 시작은 잘못의 인정부터입니다.
피고 대한민국의 잘못된 정책에 희생당한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대한민국은 항소와 상고를
멈춰 줄 것과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다독여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아울러 원고들에게 40년 이상 유지 되어온 고통과 이 감금의 흑역사를 제발 멈춰 주시고,
부디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재판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여 이제 그만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빠른 종결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2025년 2월1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향직 올림
■ 대법원 '항소 기각' 판결
대법원은 어제(27일)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항소를 더는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겁니다.
이향직 씨가 형제복지원에 입소한 날로부터 41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국가가 배상”…첫 대법원 확정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12208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호소 [취재후]
-
- 입력 2025-03-28 13:41:04
- 수정2025-03-28 13:41:20

"정부는 40년 전에도 우리를 짐승처럼 잡아 가두었고, 지금도 재판이라는 이름의 형옥에 감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이기에 사과 또한 받고 싶습니다. 사과의 시작은 잘못의 인정부터입니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향직 씨가 대법원 담당 판사에게 올린 호소문 중 - |
스스로를 '사람'으로 부르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입니다.
피해자 13명은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소송을 걸었습니다. 상대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1심은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2심은 다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가는 또 항소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는 이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피고 대한민국의 대리인들이 낸 서면을 읽었습니다. 볼 때마다 숨을 쉬기 힘들어졌지만, 직시해야 했습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피해자가 맞는지 증명이 부족하다"
"내무부 훈령 410호는 불법이 아니다"
"열네 살이면 사리 분별이 될 나이인데, 파출소에서 왜 도망을 가지 않았냐"
*내무부 훈령 410호: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랑인들을 감시하고 보호해야 한다'며 만들었다. 영장 없이도 부랑인들을 단속하고 시설에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씨가 증거로 낸 소년의집 아동카드에는 이름, 형제복지원 수용번호, OO중학교 중퇴 등의 신상정보가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피고 대한민국 측은 '생년월일 중 생년만 기록됐고 월일은 기재돼 있지 않아 본인 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씨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OO중학교에서 재학 중 제적됐음을 알려주는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또 피고 측에서 '동명이인'을 주장할까 봐, 교육청에 직접 가서 '1984년에 OO중학교 학생 중 이향직 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의 수'를 정보공개 청구했습니다. 결과는 '1명'이었습니다.
이 씨의 노력에도 국가는 항소에 항소를 거듭했습니다.
결국 대법원 판단을 받기까지, 피 말리는 소송은 4년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지난 2월 이 씨는 소를 제기한 피해자 13명의 목소리를 모아 대법원 담당 판사에게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해당 호소문에 소개된 13명의 사연을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 "이렇게 오랜 기간 감히 대한민국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피고와 싸우고 있습니다"
원고 1 OOO는 그 지옥에서 두들겨 맞아서 허리에 늘 통증이 있지만 생계를 위해 그 몸으로 막노동을 다니고 있습니다. (장애등록증이 있는 장애인입니다)
원고 2 OOO는 마찬가지로 그 지옥에서 맞은 후유증으로 허리와 몸 여기저기가 골병이 들어서 운신의 폭이 좁은 데다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피고의 계속된 항소와 상고에 무너진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자살 시도 까지 했습니다.
원고 3 OOO는 그 지옥에서 두들겨 맞는 과정에서 입안의 거의 모든 이빨이 깨지고 빠져서 성한 이가 없습니다. 또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서 정신과 진료를 겸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몸으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노동일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원고 4 OOO는 물 당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가 컸었던 OOO는 그 지옥에서 아동소대와 청소년소대에서 생활한 약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산에서 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을 매일 플라스틱으로 된 큰 드럼통에 받아서 어깨에 짊어지고 소대 화장실로 날랐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외과, 한의원 등에서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하여 정신과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습니다. OOO는 도저히 근로 능력이 되질 않아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고 있습니다.
원고 5 OOO는 그 지옥에서 조장, 서무들에게 맞아서 한쪽 다리에 심각한 장애를 입었습니다. 다리가
절뚝거리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마땅한 일자리도 못 구한 채로 살고 있습니다.
원고 6 OOO는 그 지옥에서 두들겨 맞다가 잘못 맞아서 인대가 손상되었으나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은 상태로 세월이 흘러 지금은 가벼운 물건도 곧잘 떨어트리기도 하고 힘든 일은 못 하는 상태로 살고 있고, 팔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그 지옥이 생각나서 가슴을 두드리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어릴 때 형제원에서 갱생원으로 전원 갔을 때,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허리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원고 7 OOO, 원고 8 OOO는 남매로서 5살과 7살. 너무나 어린 시절 경찰관이 엄마 찾아 준다는 말에 속아서 그 지옥에 끌려간 이후 오랜 기간 가정과 격리된 채 살게 됨으로 인해 화목하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고, 지금 까지도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원고 9 이향직 저는 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법원에 제출된 저의 진단서처럼 저는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 그 지옥을 생각하면 그 당시 맞았던 부위들에서 통증이 되살아나는 환상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에 검사한 정신과 기본 검사에서 초진 당시(약 10년 전) 정신과 검사했을 때보다 수치가 더 나빠졌다고 하시면서 빨리 그 진행 중인 형제복지원 관련 재판이 마무리되고 과거의 기억 재생을 멈춰야 치료가 될 수 있지, 이대로는 큰일 날 것 같다는 취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원고 10 OOO는 그 지옥에서 당한 구타와 고문에 가까운 기합에 대한 후유장애로 척추가 굽어진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자세한 병명을 몰라서 표현하기 조심스러운데 어린 시절 우리는 그렇게 허리가 굽어진 상태로 생활하던 분들을 곱추 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발간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결정서를 살펴보시면 과거 그 지옥에서 폐결핵이 만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 OOO는 폐에 물이 차서 병원을 가서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죽을려고 했던 날이 불과 수개월 전입니다. (원고들이 돈을 조금씩 걷어서 시술받고 살았습니다)
원고 11 OOO는 저와 전화 통화 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어렵고 어떤 때는 머리가 빙~ 도는 듯한 어지러움 증상이 반복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 인지라 정신과를 가봐야 한다고 권하고 있으나 직업상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불이익이 예상되어 안 된다고 합니다. 결국 치료도 못 받고 맨몸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원고 12 OOO는 어린 시절 배운 것 없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 나이트클럽 웨이터이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송이 진행 중이었던 어느 날 한 방송에 사연과 얼굴이 나간 이후, 이전에는 자신을 자주 찾던 단골손님들의 대부분이 자신을 멀리하고 OOO를 찾아 주지 않아서 최근에는 생계마저 힘들 정도라고 합니다. 수십 년간 해온 직업을 54세의 나이에 바꿀 수도 없어서 하고는 있지만 생계는 힘들다고 합니다.
원고 13 OOO는 누나와 함께 그 지옥에 납치된 이후 딱히 배운 것 없이 지금까지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당을 받고 노동일을 하고 살고 있고, 그 지옥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껍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배워야 할 시기에 공부를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존경하는 대법관님"
우리 원고들은 더 이상 이 재판을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지치고 힘든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 올린 바와 같이 우리는 진단서가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을 뿐 실상은 우리 모두가 그 지옥을 떠올리면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정신질환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겪고 있는 이 정신질환 역시도 우리가 당한 피해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부는 40년 전에도 우리를 짐승처럼 잡아 가두었고, 지금도 재판이라는 이름의 형옥에 감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 이기에 사과 또한 받고 싶습니다. 사과의 시작은 잘못의 인정부터입니다.
피고 대한민국의 잘못된 정책에 희생당한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대한민국은 항소와 상고를
멈춰 줄 것과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다독여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아울러 원고들에게 40년 이상 유지 되어온 고통과 이 감금의 흑역사를 제발 멈춰 주시고,
부디 우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재판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여 이제 그만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빠른 종결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2025년 2월1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향직 올림
■ 대법원 '항소 기각' 판결
대법원은 어제(27일)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항소를 더는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겁니다.
이향직 씨가 형제복지원에 입소한 날로부터 41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국가가 배상”…첫 대법원 확정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12208
-
-
이원희 기자 212@kbs.co.kr
이원희 기자의 기사 모음 -
진선민 기자 jsm@kbs.co.kr
진선민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