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는 되지 않겠다’ 한암스님 가사에 서린 기개
입력 2025.03.31 (19:17)
수정 2025.03.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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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원도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해보는 연중기획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한암 스님의 25조 홍색 모본단가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한암 스님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기개를 지킨 근대 불교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00년의 세월이 담긴, 빛바랜 책 한 권.
1937년, 오대산에서 발간된 '금강경'.
집착을 버리라는 수도자의 길을 적은 불교 서적입니다.
서슬 퍼런 일제시대, 이 책이 한글 언해본으로 만들어진 건 '한암 스님' 덕분입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민족 문화가 말살되는 그런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한글 언해본이 되는 경전의 그런 작업들을 이제 계속 진행하셨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제 나라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편은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1876년 화천에서 태어난 한암 중원은 금강산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참선과 염불 등 수행법칙을 만드는 등 초대 조계종의 최고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회유가 계속되자, 이 한마디를 남기고 오대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1951년 입적 때까지 무려 27년.
오대산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고고했던 기개는 유일한 유산인 가사에 서려 있습니다.
생전 그가 걸쳤던 법의 세 점입니다.
2m 길이 화려한 붉은 비단 가사.
한 땀 한 땀 덕을 쌓듯 조각을 꿰어 만든 모시 가사.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빌며 중생들이 정성으로 지은 것입니다.
네 모서리에 장식한 글자와 해와 달 문양에선 당시의 직조방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보관 상태도 깨끗해 역사적 가치는 높아졌습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상태가 굉장히 좀 좋은 것으로 봤을 때 스님께서 이렇게 화려한 그런 것들을 취하지 않으시는 편이기도 했고…. 옷감류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이제 훼손되고 상하기 때문에."]
한암의 사진은 6.25때 대부분 소실되고 이제 채 10장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들로 한암의 웃는 얼굴을 인공지능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꼿꼿한 기개로 세상의 등불이 된, 학승 한암.
그의 가사는 2014년 국가유산이 돼, 오대산 자락에 안겼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화면제공:월정사 성보박물관·송동섭·윤주영
강원도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해보는 연중기획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한암 스님의 25조 홍색 모본단가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한암 스님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기개를 지킨 근대 불교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00년의 세월이 담긴, 빛바랜 책 한 권.
1937년, 오대산에서 발간된 '금강경'.
집착을 버리라는 수도자의 길을 적은 불교 서적입니다.
서슬 퍼런 일제시대, 이 책이 한글 언해본으로 만들어진 건 '한암 스님' 덕분입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민족 문화가 말살되는 그런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한글 언해본이 되는 경전의 그런 작업들을 이제 계속 진행하셨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제 나라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편은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1876년 화천에서 태어난 한암 중원은 금강산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참선과 염불 등 수행법칙을 만드는 등 초대 조계종의 최고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회유가 계속되자, 이 한마디를 남기고 오대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1951년 입적 때까지 무려 27년.
오대산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고고했던 기개는 유일한 유산인 가사에 서려 있습니다.
생전 그가 걸쳤던 법의 세 점입니다.
2m 길이 화려한 붉은 비단 가사.
한 땀 한 땀 덕을 쌓듯 조각을 꿰어 만든 모시 가사.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빌며 중생들이 정성으로 지은 것입니다.
네 모서리에 장식한 글자와 해와 달 문양에선 당시의 직조방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보관 상태도 깨끗해 역사적 가치는 높아졌습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상태가 굉장히 좀 좋은 것으로 봤을 때 스님께서 이렇게 화려한 그런 것들을 취하지 않으시는 편이기도 했고…. 옷감류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이제 훼손되고 상하기 때문에."]
한암의 사진은 6.25때 대부분 소실되고 이제 채 10장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들로 한암의 웃는 얼굴을 인공지능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꼿꼿한 기개로 세상의 등불이 된, 학승 한암.
그의 가사는 2014년 국가유산이 돼, 오대산 자락에 안겼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화면제공:월정사 성보박물관·송동섭·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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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5-03-31 20: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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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해보는 연중기획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한암 스님의 25조 홍색 모본단가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한암 스님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기개를 지킨 근대 불교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00년의 세월이 담긴, 빛바랜 책 한 권.
1937년, 오대산에서 발간된 '금강경'.
집착을 버리라는 수도자의 길을 적은 불교 서적입니다.
서슬 퍼런 일제시대, 이 책이 한글 언해본으로 만들어진 건 '한암 스님' 덕분입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민족 문화가 말살되는 그런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한글 언해본이 되는 경전의 그런 작업들을 이제 계속 진행하셨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제 나라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편은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1876년 화천에서 태어난 한암 중원은 금강산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참선과 염불 등 수행법칙을 만드는 등 초대 조계종의 최고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회유가 계속되자, 이 한마디를 남기고 오대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1951년 입적 때까지 무려 27년.
오대산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고고했던 기개는 유일한 유산인 가사에 서려 있습니다.
생전 그가 걸쳤던 법의 세 점입니다.
2m 길이 화려한 붉은 비단 가사.
한 땀 한 땀 덕을 쌓듯 조각을 꿰어 만든 모시 가사.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빌며 중생들이 정성으로 지은 것입니다.
네 모서리에 장식한 글자와 해와 달 문양에선 당시의 직조방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보관 상태도 깨끗해 역사적 가치는 높아졌습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상태가 굉장히 좀 좋은 것으로 봤을 때 스님께서 이렇게 화려한 그런 것들을 취하지 않으시는 편이기도 했고…. 옷감류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이제 훼손되고 상하기 때문에."]
한암의 사진은 6.25때 대부분 소실되고 이제 채 10장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들로 한암의 웃는 얼굴을 인공지능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꼿꼿한 기개로 세상의 등불이 된, 학승 한암.
그의 가사는 2014년 국가유산이 돼, 오대산 자락에 안겼습니다.
KBS 뉴스 김문영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화면제공:월정사 성보박물관·송동섭·윤주영
강원도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해보는 연중기획보도 순서입니다.
오늘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한암 스님의 25조 홍색 모본단가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한암 스님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기개를 지킨 근대 불교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김문영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00년의 세월이 담긴, 빛바랜 책 한 권.
1937년, 오대산에서 발간된 '금강경'.
집착을 버리라는 수도자의 길을 적은 불교 서적입니다.
서슬 퍼런 일제시대, 이 책이 한글 언해본으로 만들어진 건 '한암 스님' 덕분입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민족 문화가 말살되는 그런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한글 언해본이 되는 경전의 그런 작업들을 이제 계속 진행하셨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제 나라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편은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1876년 화천에서 태어난 한암 중원은 금강산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참선과 염불 등 수행법칙을 만드는 등 초대 조계종의 최고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회유가 계속되자, 이 한마디를 남기고 오대산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1951년 입적 때까지 무려 27년.
오대산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고고했던 기개는 유일한 유산인 가사에 서려 있습니다.
생전 그가 걸쳤던 법의 세 점입니다.
2m 길이 화려한 붉은 비단 가사.
한 땀 한 땀 덕을 쌓듯 조각을 꿰어 만든 모시 가사.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빌며 중생들이 정성으로 지은 것입니다.
네 모서리에 장식한 글자와 해와 달 문양에선 당시의 직조방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보관 상태도 깨끗해 역사적 가치는 높아졌습니다.
[서은호/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사 : "상태가 굉장히 좀 좋은 것으로 봤을 때 스님께서 이렇게 화려한 그런 것들을 취하지 않으시는 편이기도 했고…. 옷감류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이제 훼손되고 상하기 때문에."]
한암의 사진은 6.25때 대부분 소실되고 이제 채 10장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들로 한암의 웃는 얼굴을 인공지능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꼿꼿한 기개로 세상의 등불이 된, 학승 한암.
그의 가사는 2014년 국가유산이 돼, 오대산 자락에 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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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최중호/화면제공:월정사 성보박물관·송동섭·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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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영 기자 my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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