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눈물의 삼창…3대 걸친 4·3 유족의 사연 [현장영상]
입력 2025.04.03 (16:02)
수정 2025.04.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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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7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는 4·3 당시 행방불명됐다가 발굴 유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75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고 김희숙 씨와 유족의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유족들은 김희숙 씨가 29세였던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돼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고 지냈습니다. 4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진 아들 김광익 씨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섯알오름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손자 김경현 씨 채혈로 유족들은 유해를 찾을 수 있었고, 유해가 섯알오름이 아닌 제주공항에 묻혀있었던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날 추념식장에서는 손자 김경현 씨가 딸 해나 양과 함께 무대에 올라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김경현 씨는 "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행방불명된 후 고향 마을에 살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사진들도 모두 잃어버렸다"며 아버지의 고달팠던 삶을 전했습니다.
이어 "예전 같지 않게 기운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혹시나 할아버지 유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 제가 나서서 유가족 채혈을 했다"며 "며칠 뒤 저랑 어느 정도 DNA가 일치하는 분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아버지와 형님도 DNA 검사를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김 씨는 "이렇게 채혈 한 번의 결과로 할아버지 유해를 찾았고,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제주공항에 묻혀 계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며 "비로소 4·3 유가족으로서 4·3이 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셨을 때 외치셨던 그 말, 저도 아버지께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딸 해나 양도 "한강 작가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별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가족은 이제 오랜 아픔과 작별하고 증조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며 "할아버지가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격려의 박수를 힘껏 보냈습니다.
현재까지 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 유해 총 419구가 발굴됐으나,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147명뿐입니다.
유족들은 김희숙 씨가 29세였던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돼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고 지냈습니다. 4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진 아들 김광익 씨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섯알오름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손자 김경현 씨 채혈로 유족들은 유해를 찾을 수 있었고, 유해가 섯알오름이 아닌 제주공항에 묻혀있었던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날 추념식장에서는 손자 김경현 씨가 딸 해나 양과 함께 무대에 올라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김경현 씨는 "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행방불명된 후 고향 마을에 살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사진들도 모두 잃어버렸다"며 아버지의 고달팠던 삶을 전했습니다.
이어 "예전 같지 않게 기운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혹시나 할아버지 유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 제가 나서서 유가족 채혈을 했다"며 "며칠 뒤 저랑 어느 정도 DNA가 일치하는 분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아버지와 형님도 DNA 검사를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김 씨는 "이렇게 채혈 한 번의 결과로 할아버지 유해를 찾았고,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제주공항에 묻혀 계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며 "비로소 4·3 유가족으로서 4·3이 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셨을 때 외치셨던 그 말, 저도 아버지께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딸 해나 양도 "한강 작가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별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가족은 이제 오랜 아픔과 작별하고 증조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며 "할아버지가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격려의 박수를 힘껏 보냈습니다.
현재까지 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 유해 총 419구가 발굴됐으나,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147명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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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합니다” 눈물의 삼창…3대 걸친 4·3 유족의 사연 [현장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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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4-03 1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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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7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는 4·3 당시 행방불명됐다가 발굴 유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75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고 김희숙 씨와 유족의 사연이 소개됐습니다.
유족들은 김희숙 씨가 29세였던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돼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고 지냈습니다. 4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진 아들 김광익 씨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섯알오름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손자 김경현 씨 채혈로 유족들은 유해를 찾을 수 있었고, 유해가 섯알오름이 아닌 제주공항에 묻혀있었던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날 추념식장에서는 손자 김경현 씨가 딸 해나 양과 함께 무대에 올라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김경현 씨는 "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행방불명된 후 고향 마을에 살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사진들도 모두 잃어버렸다"며 아버지의 고달팠던 삶을 전했습니다.
이어 "예전 같지 않게 기운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혹시나 할아버지 유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 제가 나서서 유가족 채혈을 했다"며 "며칠 뒤 저랑 어느 정도 DNA가 일치하는 분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아버지와 형님도 DNA 검사를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김 씨는 "이렇게 채혈 한 번의 결과로 할아버지 유해를 찾았고,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제주공항에 묻혀 계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며 "비로소 4·3 유가족으로서 4·3이 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셨을 때 외치셨던 그 말, 저도 아버지께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딸 해나 양도 "한강 작가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별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가족은 이제 오랜 아픔과 작별하고 증조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며 "할아버지가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격려의 박수를 힘껏 보냈습니다.
현재까지 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 유해 총 419구가 발굴됐으나,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147명뿐입니다.
유족들은 김희숙 씨가 29세였던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돼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고 지냈습니다. 4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진 아들 김광익 씨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섯알오름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손자 김경현 씨 채혈로 유족들은 유해를 찾을 수 있었고, 유해가 섯알오름이 아닌 제주공항에 묻혀있었던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이날 추념식장에서는 손자 김경현 씨가 딸 해나 양과 함께 무대에 올라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김경현 씨는 "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행방불명된 후 고향 마을에 살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사진들도 모두 잃어버렸다"며 아버지의 고달팠던 삶을 전했습니다.
이어 "예전 같지 않게 기운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혹시나 할아버지 유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 제가 나서서 유가족 채혈을 했다"며 "며칠 뒤 저랑 어느 정도 DNA가 일치하는 분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아버지와 형님도 DNA 검사를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김 씨는 "이렇게 채혈 한 번의 결과로 할아버지 유해를 찾았고,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제주공항에 묻혀 계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며 "비로소 4·3 유가족으로서 4·3이 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셨을 때 외치셨던 그 말, 저도 아버지께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딸 해나 양도 "한강 작가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별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가족은 이제 오랜 아픔과 작별하고 증조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며 "할아버지가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격려의 박수를 힘껏 보냈습니다.
현재까지 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 유해 총 419구가 발굴됐으나,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147명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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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석 기자 hy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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