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방 안에 청년이 있다

입력 2025.04.2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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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다가 아예 안 하게 되고 그렇게 은둔이 시작된 거죠.”

매일 매일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좁은 공간에서 보내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게 없어진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채용 공고를 보거나 이러면 너무 우울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좀 회피하고 유튜브 이런 거 보고.”

다른 이들이 쉼 없이 전진할 때, 한곳에 정체된 청년들.

그들은 왜 사회에서 멀어졌을까.

“취업이 힘들어져서 어느샌가 너무 지쳐 버려서 마음이 확 꺾였어요. ”

“실패 경험 때문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가 조금 어려워서”

고립·은둔 청년 54만 명 시대.

지금, 방 안에 숨어 있는 청년들을 마주합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30대 중반 한정수 씨(가명) 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정수 씨는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벌써 2년째.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시간 감각마저 둔해졌습니다.

한정수(가명) /고립·은둔 극복 노력 청년
“아주 필요한 부분. 그러니까 생필품을 사 온다든가 아니면 은행 일을 본다든가 이런 걸 제외하고는 전부 다 집에 있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런 느낌.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런 게 되게 좀 둔해요.”

정수 씨는 왜 스스로를 가둔 걸까.

“(학생 때) 집단 따돌림에 좀 시달렸어요. 목을 졸리거나, 화장실에 끌려가서 맞거나. 아무래도 학교폭력이나 이런 걸 겪고 나니까 대인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졌죠.

어렵사리 용기를 내 취업도 해봤지만, 경쟁적 분위기에서 늘 불안했고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남들만큼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그를 방 안 깊숙이 밀어 넣었습니다.

정수 씨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청년을 ‘고립·은둔 청년’이라고 부릅니다.


지난해 기준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의 5.2% 수준, 2년 전 조사보다 2배 이상 늘었습니다. 54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2023년 이뤄진 실태조사에선, 고립·은둔 기간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가장 많았지만 10년 이상도 6%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4년째 고립 생활 중인 27살 최유리 씨. 코로나와 맞물렸던 구직 활동 기간, 이른바 남들 정도의 ‘스펙’은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최유리(가명)/ 고립 ·은둔 극복 노력 청년
“토익 875점. 그리고 OPIC도 IH(레벨) 있고요. 어학 자격증도 있고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도 땄었어요. 근데 그게 자꾸 그래도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한 회사에서 채용을 조건으로 인턴을 했지만, 회사 측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다 결국 유리 씨를 뽑지 않았습니다.

“3개월 인턴을 하고, 마지막에 계약을 하자고 얘기가 됐는데. 한 2달이 지났을 때 갑자기 계약직을 안 뽑기로 결론이 났다. 그 계획이 다 어그러지니까 다시 뭐부터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력감에 일상은 점점 무너졌고, 이젠 구직 활동을 할 의욕조차 잃었습니다.

유리 씨처럼 청년들이 ‘고립 은둔’ 상황에 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실패’였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등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심화하면서, 한정된 양질의 일자리에서 밀려난 청년들이 세상과 담을 쌓는 겁니다.


최영준/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청년들의 기대 수준에 맞는 그런 노동시장의 일자리가 충분하게 있지 못하다 보니까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이행하는 그 전환기의 시기에 거기에서 실패한 우리 청년들이 고립이나 은둔을 선택하는 경향성이 좀 늘어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고립과 은둔 생활이 길어질수록, 경력 공백이 늘어나 취업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겁니다.

반복되는 좌절에 나아갈 힘마저 부족해지는 청년들.


박재영/ 청년재단 이음사업 팀장
“고립 청년이 고립되었다고 해서 사회적 동물이 아닌 게 아니에요. 본인들도 정말 불안하거든요. 방 안에 있으면서 편하게 있지 않아요. 나이가 1년을 더 먹는데 돈을 안 벌어도 되나, 취업을 안 해도 되나, 뭐 이런 생각들을 하거든요. 그런데, 말할 데가 없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절망감.

기댈 곳 없는 극심한 고립과 은둔 생활은 삶 자체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10년 넘게 고독사 현장을 청소해 온 구찬모 씨.


적막한 방에서 청년들의 고립과 은둔 흔적을 수없이 봐 왔다고 합니다.

구찬모 / 특수청소업체 대표
“(사망한 청년이) 스물하나예요. 스물하나. 우울증약이 많았고, 정서적·경제적으로 고립이 심했던 것 같아요.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강아지랑 함께 죽었던 고독사 현장인데. 20~30대로 추정이 되고요. (유서엔) ‘매일 쳇바퀴 도는 이런 인생도 힘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힘들다는 내용들이 주로 있어요.”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4명 중 3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고, 이 가운데 1/4 정도는 시도한 적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정한/ 연대 세브란스 정신의학과 전문의>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그걸 유지해 가는 게 우울증이나 그런 고립에서 회복해 나가는 데도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사실 그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제 혼자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반복하거나 뭔가 계속 악순환이 되는 거죠."


고립·은둔 청년을 ‘새로운 취약계층’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장기화된 저성장과 극심한 개인주의가 만든 사회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김성아/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가족 혹은 평생직장 개념들이 과거와 달리 다른 양상으로 변모해 가고 있고요. 그 과정에서 초개인화되는 경험을 저희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부작용으로 이어졌을 때 저희가 이제 고립과 은둔이 나타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청년들의 비경제활동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문제입니다.


2019년 기준, 노동력 손실로 인한 경제 비용만 약 6조 7천억 원. 또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와 실업급여 등 정책 비용에, 고립·은둔이 불러온 의료비까지 더하면, 전체 비용이 연간 7조 원에 이릅니다.

이후 고립·은둔 청년 비율이 더 늘어난 걸 고려하면 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고립·은둔 청년들 대부분 사회로 나오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전국 최초로 설립된 고립·은둔 청년 전담 기관, 서울 청년 기지개 센터.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청년들의 특성에 맞춘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자신의 심리 상태와 문제점을 나타내는 카드를 골라,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활동. 평소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던 이들도,
이곳에서만큼은 용기를 내봅니다.

참가자들 모두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들을 위한 지원 대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전담 기관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서울과 광주, 두 곳뿐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시범 운영 중인 '청년 미래센터'도 4곳에만 설치됐습니다.


올해 초,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돼 전담 기관을 늘릴 수 있게 됐지만,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등 과제가 많습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것만으로도 안 되지만 고용 프로그램만 가지고도 안 되고요. 굉장히 포괄적인 다양한 옵션들 정책의 옵션들을 만들어 놓고 그 사람에 맞는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서비스들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그런 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원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취업의 문턱에서,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과 은둔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사회로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꼽은 건 역시 ‘일자리’였습니다.

고립·은둔 극복 노력 청년 좌담회

“직장인 나도 아니고 학생인 나도 아니고 그냥 나잖아요. 그냥 내가 없는 거예요. 정신 차려 보니까. 사람들한테 ‘내가 어떤 사람이에요’를 말할 수 없고 그러니까 진짜 힘들더라고요.

“일 경험도 시켜주고 일 경력도 좀 1년 이상 쌓아주고 이런 단계를 거칠 수 있는 그런 제도가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다만 고립·은둔 청년들이 긴 은둔 생활로 사회적 관계 형성에 필요한 마음가짐, 이른바 ‘사회적 체력’이 약해진 만큼 이들을 배려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은애/사단법인 씨즈 대표
“3~4년 은둔하다가 주 40시간 노동 못 해요. 절대 체력 힘들고요. 사람들하고 이렇게 계속 8시간 같이 있는 것도 에너지 엄청 쓰이거든요. 소득 활동만 하면 나머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다 (이렇게) 기다리는 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천천히 다져나가는 과정을 만들어주는 건 진짜 중요하다.”

주서영(가명)/ 고립·은둔 극복 노력 청년
“지금 고립 은둔 상태는 그러니까 어느 상태냐면 부상을 입은 선수의 상태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요. 짧게 일자리를 주되 그 대신에 이제 그 사람한테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줘야.”

고립·은둔 청년들에겐 단순한 정책적 지원을 넘어서, ‘조금 느려도 괜찮다’라는 이해가 큰 힘이 됩니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홀로 어두웠던 일상이 따뜻하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요리는 간장 닭볶음탕. 함께 만든 음식 앞에서, 마음이 조금씩 열립니다.

“아무래도 혼자 먹는 것보다 훨씬 낫죠. 다 같이 먹을 수 있으니까”

혼자였던 하루의 시작과 끝이 누군가와 연결되는 경험. 자신과 닮은 이들에게도 이 소중한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립 은둔 청년 #청년 문제 #구직 실패 #사회적 고립 #청년 정책 #노동시장 불평등 #사회적 회복

취재:최은진
촬영:조선기 강우용 설태훈
영상편집:김태형
그래픽:장수현
리서처:한혜민
AD:이민철,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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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방 안에 청년이 있다
    • 입력 2025-04-20 23:16:53
    사회

“구직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다가 아예 안 하게 되고 그렇게 은둔이 시작된 거죠.”

매일 매일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좁은 공간에서 보내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게 없어진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채용 공고를 보거나 이러면 너무 우울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좀 회피하고 유튜브 이런 거 보고.”

다른 이들이 쉼 없이 전진할 때, 한곳에 정체된 청년들.

그들은 왜 사회에서 멀어졌을까.

“취업이 힘들어져서 어느샌가 너무 지쳐 버려서 마음이 확 꺾였어요. ”

“실패 경험 때문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가 조금 어려워서”

고립·은둔 청년 54만 명 시대.

지금, 방 안에 숨어 있는 청년들을 마주합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30대 중반 한정수 씨(가명) 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정수 씨는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벌써 2년째.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시간 감각마저 둔해졌습니다.

한정수(가명) /고립·은둔 극복 노력 청년
“아주 필요한 부분. 그러니까 생필품을 사 온다든가 아니면 은행 일을 본다든가 이런 걸 제외하고는 전부 다 집에 있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런 느낌.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런 게 되게 좀 둔해요.”

정수 씨는 왜 스스로를 가둔 걸까.

“(학생 때) 집단 따돌림에 좀 시달렸어요. 목을 졸리거나, 화장실에 끌려가서 맞거나. 아무래도 학교폭력이나 이런 걸 겪고 나니까 대인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졌죠.

어렵사리 용기를 내 취업도 해봤지만, 경쟁적 분위기에서 늘 불안했고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남들만큼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그를 방 안 깊숙이 밀어 넣었습니다.

정수 씨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청년을 ‘고립·은둔 청년’이라고 부릅니다.


지난해 기준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청년의 5.2% 수준, 2년 전 조사보다 2배 이상 늘었습니다. 54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2023년 이뤄진 실태조사에선, 고립·은둔 기간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가장 많았지만 10년 이상도 6%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4년째 고립 생활 중인 27살 최유리 씨. 코로나와 맞물렸던 구직 활동 기간, 이른바 남들 정도의 ‘스펙’은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최유리(가명)/ 고립 ·은둔 극복 노력 청년
“토익 875점. 그리고 OPIC도 IH(레벨) 있고요. 어학 자격증도 있고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도 땄었어요. 근데 그게 자꾸 그래도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한 회사에서 채용을 조건으로 인턴을 했지만, 회사 측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다 결국 유리 씨를 뽑지 않았습니다.

“3개월 인턴을 하고, 마지막에 계약을 하자고 얘기가 됐는데. 한 2달이 지났을 때 갑자기 계약직을 안 뽑기로 결론이 났다. 그 계획이 다 어그러지니까 다시 뭐부터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력감에 일상은 점점 무너졌고, 이젠 구직 활동을 할 의욕조차 잃었습니다.

유리 씨처럼 청년들이 ‘고립 은둔’ 상황에 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실패’였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등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심화하면서, 한정된 양질의 일자리에서 밀려난 청년들이 세상과 담을 쌓는 겁니다.


최영준/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청년들의 기대 수준에 맞는 그런 노동시장의 일자리가 충분하게 있지 못하다 보니까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 이행하는 그 전환기의 시기에 거기에서 실패한 우리 청년들이 고립이나 은둔을 선택하는 경향성이 좀 늘어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고립과 은둔 생활이 길어질수록, 경력 공백이 늘어나 취업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겁니다.

반복되는 좌절에 나아갈 힘마저 부족해지는 청년들.


박재영/ 청년재단 이음사업 팀장
“고립 청년이 고립되었다고 해서 사회적 동물이 아닌 게 아니에요. 본인들도 정말 불안하거든요. 방 안에 있으면서 편하게 있지 않아요. 나이가 1년을 더 먹는데 돈을 안 벌어도 되나, 취업을 안 해도 되나, 뭐 이런 생각들을 하거든요. 그런데, 말할 데가 없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절망감.

기댈 곳 없는 극심한 고립과 은둔 생활은 삶 자체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10년 넘게 고독사 현장을 청소해 온 구찬모 씨.


적막한 방에서 청년들의 고립과 은둔 흔적을 수없이 봐 왔다고 합니다.

구찬모 / 특수청소업체 대표
“(사망한 청년이) 스물하나예요. 스물하나. 우울증약이 많았고, 정서적·경제적으로 고립이 심했던 것 같아요.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강아지랑 함께 죽었던 고독사 현장인데. 20~30대로 추정이 되고요. (유서엔) ‘매일 쳇바퀴 도는 이런 인생도 힘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힘들다는 내용들이 주로 있어요.”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4명 중 3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고, 이 가운데 1/4 정도는 시도한 적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정한/ 연대 세브란스 정신의학과 전문의>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그걸 유지해 가는 게 우울증이나 그런 고립에서 회복해 나가는 데도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 되는데 사실 그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제 혼자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반복하거나 뭔가 계속 악순환이 되는 거죠."


고립·은둔 청년을 ‘새로운 취약계층’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장기화된 저성장과 극심한 개인주의가 만든 사회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김성아/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가족 혹은 평생직장 개념들이 과거와 달리 다른 양상으로 변모해 가고 있고요. 그 과정에서 초개인화되는 경험을 저희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부작용으로 이어졌을 때 저희가 이제 고립과 은둔이 나타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청년들의 비경제활동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역시 문제입니다.


2019년 기준, 노동력 손실로 인한 경제 비용만 약 6조 7천억 원. 또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와 실업급여 등 정책 비용에, 고립·은둔이 불러온 의료비까지 더하면, 전체 비용이 연간 7조 원에 이릅니다.

이후 고립·은둔 청년 비율이 더 늘어난 걸 고려하면 1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고립·은둔 청년들 대부분 사회로 나오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전국 최초로 설립된 고립·은둔 청년 전담 기관, 서울 청년 기지개 센터.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청년들의 특성에 맞춘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자신의 심리 상태와 문제점을 나타내는 카드를 골라,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활동. 평소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던 이들도,
이곳에서만큼은 용기를 내봅니다.

참가자들 모두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들을 위한 지원 대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전담 기관을 운영하는 지자체는 서울과 광주, 두 곳뿐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시범 운영 중인 '청년 미래센터'도 4곳에만 설치됐습니다.


올해 초,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돼 전담 기관을 늘릴 수 있게 됐지만,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등 과제가 많습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것만으로도 안 되지만 고용 프로그램만 가지고도 안 되고요. 굉장히 포괄적인 다양한 옵션들 정책의 옵션들을 만들어 놓고 그 사람에 맞는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서비스들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그런 좀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원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취업의 문턱에서,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과 은둔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사회로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꼽은 건 역시 ‘일자리’였습니다.

고립·은둔 극복 노력 청년 좌담회

“직장인 나도 아니고 학생인 나도 아니고 그냥 나잖아요. 그냥 내가 없는 거예요. 정신 차려 보니까. 사람들한테 ‘내가 어떤 사람이에요’를 말할 수 없고 그러니까 진짜 힘들더라고요.

“일 경험도 시켜주고 일 경력도 좀 1년 이상 쌓아주고 이런 단계를 거칠 수 있는 그런 제도가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다만 고립·은둔 청년들이 긴 은둔 생활로 사회적 관계 형성에 필요한 마음가짐, 이른바 ‘사회적 체력’이 약해진 만큼 이들을 배려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은애/사단법인 씨즈 대표
“3~4년 은둔하다가 주 40시간 노동 못 해요. 절대 체력 힘들고요. 사람들하고 이렇게 계속 8시간 같이 있는 것도 에너지 엄청 쓰이거든요. 소득 활동만 하면 나머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다 (이렇게) 기다리는 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천천히 다져나가는 과정을 만들어주는 건 진짜 중요하다.”

주서영(가명)/ 고립·은둔 극복 노력 청년
“지금 고립 은둔 상태는 그러니까 어느 상태냐면 부상을 입은 선수의 상태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요. 짧게 일자리를 주되 그 대신에 이제 그 사람한테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줘야.”

고립·은둔 청년들에겐 단순한 정책적 지원을 넘어서, ‘조금 느려도 괜찮다’라는 이해가 큰 힘이 됩니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홀로 어두웠던 일상이 따뜻하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요리는 간장 닭볶음탕. 함께 만든 음식 앞에서, 마음이 조금씩 열립니다.

“아무래도 혼자 먹는 것보다 훨씬 낫죠. 다 같이 먹을 수 있으니까”

혼자였던 하루의 시작과 끝이 누군가와 연결되는 경험. 자신과 닮은 이들에게도 이 소중한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립 은둔 청년 #청년 문제 #구직 실패 #사회적 고립 #청년 정책 #노동시장 불평등 #사회적 회복

취재:최은진
촬영:조선기 강우용 설태훈
영상편집:김태형
그래픽:장수현
리서처:한혜민
AD:이민철,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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