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집 없는 최초의 선거 될까?
입력 2025.05.11 (10:01)
수정 2025.05.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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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 나온 책, 무엇인지 짐작이 가실까요? 대통령선거 때마다 각 당에서 출판한 정책공약집입니다. 교보문고, 알라딘 같은 시중 서점에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기자도 이번에 취재하면서 공약집이 '책' 형태로 판매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공약집 안엔 대선 후보가 국민에게 제시하는 '5년 간의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경제, 일자리, 복지, 사법 등 다양한 분야의 공약이 담기다 보니 분량도 수백 장에 달합니다.
■ 유권자 "정책·공약 중요하게 고려"
그렇다면 우리나라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선택할 때 어떤 요인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20대 대통령선거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인물·능력·도덕성 △정책·공약 △소속 정당 등이 주요하게 꼽힙니다. 정책·공약이 조사 때마다 30% 이상의 응답률을 보이며 높은 순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참고로 이 결과는 20대 대선이 치러진 2022년, (주)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차수마다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1차 조사는 선거일 30일 전, 2차는 선거일 10일 전, 3차 조사는 선거일 후에 이뤄졌습니다.

■ 정책, 진짜 중요하게 보는 거 맞아?
그런데 지난해 발표된 논문 중 이 조사 결과와 다른 분석을 내놓은 연구 결과가 하나 눈에 띕니다. 지난 10년 간 치러진 3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투표 행태가 얼마나 일관적이었는지를 분석한 연구인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유권자의 투표 패턴은 뚜렷하게 정당 편향적 경향을 보이고, 이런 흐름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한국정치학회가 수행한 유권자 의식조사 자료를 '랜덤 포레스트'(기계학습 기반 의사결정 ) 모형을 적용해 분석한 결과입니다.
유권자 의식조사는 응답자의 거주지역, 성별, 연령대, 투표 여부, 투표할 때 어떤 점을 가장 많이 고려했는지 등 60여 개 항목을 묻는데요. 2022년 대선 직후 수집된 설문조사 자료 중 일부 자료와 변수를 무작위로 골라 여러 개의 의사결정 나무(트리)를 만듭니다. 각각의 나무는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면 나름의 예측(대통령이 누가 될지)을 내놓고, 다수결로 최종 예측 결과를 도출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예측 결과에 크게 영향을 줬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에서 유권자의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론 △후보자에 대한 호감도 △지난 선거에서 선택한 지역구 및 비례대표 정당 △전 정부에 대한 평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만족도 등이 꼽혔습니다. 이런 변수를 토대로 선거 결과를 예측했을 때 90% 전후의 높은 확률로 승자 예측이 가능했다고 연구진은 밝힙니다.
흥미롭게도, 여기에서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은 예측 정확도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아니었습니다.
참고논문: Lee, Jae-Mook, and Na Kyeong Lee. 2024. “Partisan habitual voters in South Korea: Employing Random Forests to understand Korean voters’ electoral choices.” Social Science Quarterly 105: 2154–73. https://doi.org/10.1111/ssqu.13459 |
■ 12일, 11일, 9일…이러면 언제 살펴보나요?
다시 정책공약집 얘기로 돌아옵니다.
대선 때마다 공약집이 나옵니다. 지난 대선 윤석열, 이재명 후보. 2017년 문재인, 홍준표 후보. 2012년 박근혜, 문재인 후보. 2007년 이명박, 정동영 후보. 모두 예외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출판 시기입니다.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 측은 투표 12일 전, 2017년 문재인 후보 측은 투표 11일 전, 2012년 박근혜 후보 측은 투표 9일 전에 냈습니다.

각 정당도 선거 결과에 정책과 공약은 큰 변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점점 더 늦게 냅니다. 심지어 며칠에 하나씩 쪼개서 내기도 합니다. 유권자가 후보자의 공약이 뭔지 알기도 어렵고, 언론이 공약을 검증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광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6개월 전에 발표가 돼야 검증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데요. 하기 싫은 얘기는 표를 얻기 위해 말로 풀어가다 나중에 선거 때 승리하면 '정책공약집에 들어가 있는 정책'이라며 국정과제로 전환합니다. (중략) 이건 유권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거고요. 백지수표로 자기가 위임받겠다고 하는 정치 후퇴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고 있습니다." |
■ 사법리스크, 단일화가 집어삼킨 선거…공약집 없는 최초의 선거 될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법원 파기환송 선고 이후 '사법리스크' 문제가 한동안 방송과 신문을 가득 채웠습니다. 지금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의 단일화 문제가 대선판의 최대 관심사가 됐습니다. 그 사이 대선 공약은 간간이 인터뷰나 토론회에서 소개될 뿐입니다. 당선되면 5년간 나라를 어떻게 운영될지, 방향과 정책을 보여주는 '정책공약집'은 언제나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표를 얻기 위한 '말'뿐인 공약인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건지, 우려되는 지점은 없는지, 검증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한민국 5년간의 항해를 책임질 선장을 뽑는 제21대 대통령선거, 이제 2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이번 21대 대통령선거가 공약집 없는 최초의 선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번 대선, 투표장에 들어가기 전에 정책공약집을 서점에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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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 나온 책, 무엇인지 짐작이 가실까요? 대통령선거 때마다 각 당에서 출판한 정책공약집입니다. 교보문고, 알라딘 같은 시중 서점에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기자도 이번에 취재하면서 공약집이 '책' 형태로 판매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공약집 안엔 대선 후보가 국민에게 제시하는 '5년 간의 약속'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경제, 일자리, 복지, 사법 등 다양한 분야의 공약이 담기다 보니 분량도 수백 장에 달합니다.
■ 유권자 "정책·공약 중요하게 고려"
그렇다면 우리나라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선택할 때 어떤 요인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20대 대통령선거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인물·능력·도덕성 △정책·공약 △소속 정당 등이 주요하게 꼽힙니다. 정책·공약이 조사 때마다 30% 이상의 응답률을 보이며 높은 순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참고로 이 결과는 20대 대선이 치러진 2022년, (주)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차수마다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00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1차 조사는 선거일 30일 전, 2차는 선거일 10일 전, 3차 조사는 선거일 후에 이뤄졌습니다.

■ 정책, 진짜 중요하게 보는 거 맞아?
그런데 지난해 발표된 논문 중 이 조사 결과와 다른 분석을 내놓은 연구 결과가 하나 눈에 띕니다. 지난 10년 간 치러진 3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투표 행태가 얼마나 일관적이었는지를 분석한 연구인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유권자의 투표 패턴은 뚜렷하게 정당 편향적 경향을 보이고, 이런 흐름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한국정치학회가 수행한 유권자 의식조사 자료를 '랜덤 포레스트'(기계학습 기반 의사결정 ) 모형을 적용해 분석한 결과입니다.
유권자 의식조사는 응답자의 거주지역, 성별, 연령대, 투표 여부, 투표할 때 어떤 점을 가장 많이 고려했는지 등 60여 개 항목을 묻는데요. 2022년 대선 직후 수집된 설문조사 자료 중 일부 자료와 변수를 무작위로 골라 여러 개의 의사결정 나무(트리)를 만듭니다. 각각의 나무는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면 나름의 예측(대통령이 누가 될지)을 내놓고, 다수결로 최종 예측 결과를 도출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예측 결과에 크게 영향을 줬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에서 유권자의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론 △후보자에 대한 호감도 △지난 선거에서 선택한 지역구 및 비례대표 정당 △전 정부에 대한 평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만족도 등이 꼽혔습니다. 이런 변수를 토대로 선거 결과를 예측했을 때 90% 전후의 높은 확률로 승자 예측이 가능했다고 연구진은 밝힙니다.
흥미롭게도, 여기에서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은 예측 정확도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아니었습니다.
참고논문: Lee, Jae-Mook, and Na Kyeong Lee. 2024. “Partisan habitual voters in South Korea: Employing Random Forests to understand Korean voters’ electoral choices.” Social Science Quarterly 105: 2154–73. https://doi.org/10.1111/ssqu.13459 |
■ 12일, 11일, 9일…이러면 언제 살펴보나요?
다시 정책공약집 얘기로 돌아옵니다.
대선 때마다 공약집이 나옵니다. 지난 대선 윤석열, 이재명 후보. 2017년 문재인, 홍준표 후보. 2012년 박근혜, 문재인 후보. 2007년 이명박, 정동영 후보. 모두 예외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출판 시기입니다.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 측은 투표 12일 전, 2017년 문재인 후보 측은 투표 11일 전, 2012년 박근혜 후보 측은 투표 9일 전에 냈습니다.

각 정당도 선거 결과에 정책과 공약은 큰 변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점점 더 늦게 냅니다. 심지어 며칠에 하나씩 쪼개서 내기도 합니다. 유권자가 후보자의 공약이 뭔지 알기도 어렵고, 언론이 공약을 검증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광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6개월 전에 발표가 돼야 검증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데요. 하기 싫은 얘기는 표를 얻기 위해 말로 풀어가다 나중에 선거 때 승리하면 '정책공약집에 들어가 있는 정책'이라며 국정과제로 전환합니다. (중략) 이건 유권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거고요. 백지수표로 자기가 위임받겠다고 하는 정치 후퇴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고 있습니다." |
■ 사법리스크, 단일화가 집어삼킨 선거…공약집 없는 최초의 선거 될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법원 파기환송 선고 이후 '사법리스크' 문제가 한동안 방송과 신문을 가득 채웠습니다. 지금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의 단일화 문제가 대선판의 최대 관심사가 됐습니다. 그 사이 대선 공약은 간간이 인터뷰나 토론회에서 소개될 뿐입니다. 당선되면 5년간 나라를 어떻게 운영될지, 방향과 정책을 보여주는 '정책공약집'은 언제나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표를 얻기 위한 '말'뿐인 공약인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건지, 우려되는 지점은 없는지, 검증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한민국 5년간의 항해를 책임질 선장을 뽑는 제21대 대통령선거, 이제 2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이번 21대 대통령선거가 공약집 없는 최초의 선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번 대선, 투표장에 들어가기 전에 정책공약집을 서점에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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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기자 realwa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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