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 1개 가격이 11만 달러(약 1억 5,100만 원)를 넘었습니다.
국내 5대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고파는 투자자는 966만여 명(지난해 말 기준). 곧 천만 명을 넘을 기세입니다.
투자 수단으로서 코인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습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집니다. 가상자산은 범죄 수단으로도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시스템을 건너뛸 수 있는 점이 범죄 조직엔 최대 매력입니다.
보이스피싱, 사이버 도박 일당의 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건 이제 옛말 수준입니다.
국가 간 제재도 우습게 뚫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명징한 사례가 최근 국내서 덜미가 잡혔습니다.
■ 테더로 '환치기' 580억 원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오늘(22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러시아 국적 환전상 40대 남녀를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이들이 한국과 러시아 사이를 오가게 한 돈은 580억 원이었습니다.
이들은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 '테더'를 활용했습니다.
❓ 스테이블 코인 말 그대로, 안정적인(stable) 코인(coin)을 뜻합니다. 가격 변동성이 큰 다른 가상 자산과 달리, 달러나 유로 등 기존 법정 화폐와 1대1로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 자산으로, '테더' '서클' 등이 대표적입니다. |
이들이 받는 혐의는 두 가지, 이 테더를 이용한 '환치기'로 ① 러시아에 돈을 보내고 ② 러시아에서 돈을 받았다는 겁니다.
먼저, 러시아로 돈을 보낼 때 수법은 이렇습니다.
러시아 환치기를 원하는 고객을 텔레그램에서 모집합니다. 고객이 확보되면, 편의점 무통장 송금 앱으로 돈을 받습니다.
바코드 이미지만 있으면 은행 계좌로 바로 연결돼서, 무통장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입니다.
이렇게 받은 돈으로, 테더를 삽니다. 그리고 이 테더를 러시아에 있는 공범의 가상자산 지갑으로 보냅니다.
이제 마지막. 러시아의 공범들은 테더를 루블화로 바꿔 고객이 지정한 이에게 전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에서 돈을 받아주기도 했습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러시아에서 받을 돈이 있었을까요.
국내에 있는 중고 자동차와 화장품 업체들이었습니다.
러시아로는 수출이 엄격히 통제되지만, 제3국을 우회하는 불법 수출을 한 거로 파악됩니다.
러시아로 물건을 팔았으니, 이제 돈을 받아야겠죠. 이번엔 정반대 과정이 진행됩니다.
러시아에 있는 공범들이 루블화를 받아서 테더를 삽니다. 그 테더를 한국에 있는 환전상에게 보냅니다.
한국의 환전상은 테더를 원화로 바꿔서 수출 업체에 입금합니다.

■ 가상자산이 바꾼 제재의 문법
의뢰인들의 부탁을 받아 러시아로 송금하거나 돈을 받아준 횟수, 6,156차례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왜 의뢰인들은 은행을 통하지 않고 이 환전상을 불법으로 이용했을까요?
러시아가 받는 경제 제재로, 돈을 주고받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러시아 국적 은행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 또는 '스위프트(SWIFT)'로 더 익숙한 국제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된 것입니다.
한국의 A 은행이 러시아의 B 은행과 돈을 주고받는 게 완전히 막혀 있습니다.
돈거래만 막힌 게 아닙니다. 상품 교역도 거의 틀어막았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로 반도체나 자동차 등 전략물자를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돈도 물자도 오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테더는 이런 제재를 비웃듯이 뚫었던 겁니다. 대단한 특수 작전도 아니었습니다.
흔하디흔한 '환치기' 꾼들이었습니다.

가상자산은 전자지갑을 통해 직접 거래할 수 있고 중앙은행을 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기업인 체이널리시스의 '2025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제재 국가들이 거래한 가상자산의 규모가 158억 달러, 우리 돈으로 22조 7천억여 원에 달하는 거로 나타났습니다.
불법 가상자산 거래의 39%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보고서는 "서방 국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제재 대상 국가들은 무역을 유지하고 자본에 접근하기 위해 가상자산과 대체 금융 시스템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거래하는 곳, 러시아와 이란입니다.
지난 3월에도 러시아의 주요 석유 수출업체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테더 등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지난해 8월, 가상자산 채굴을 합법화하고 국제 결제 수단으로도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테더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스테이블 코인이라 변동성이 적기 때문에, 각종 수출입 대금으로 활용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자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가상자산 거래소 등도 제재 목록에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인증 거래소들이 계속 나타나는 데다가, 이전에 문을 닫은 곳이 이름만 바꿔 다시 영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서는 전했습니다.
미국 달러에 묶인 테더가 오히려 미국 주도의 제재 체제를 무력화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현실입니다.
가상자산 때문에 국제사회 제재의 문법을 새로 써야 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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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는 막혀도, 테더는 뚫었다…6천 번, 580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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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5-22 17:00:12

가상자산 '대장주' 비트코인 1개 가격이 11만 달러(약 1억 5,100만 원)를 넘었습니다.
국내 5대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고파는 투자자는 966만여 명(지난해 말 기준). 곧 천만 명을 넘을 기세입니다.
투자 수단으로서 코인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습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집니다. 가상자산은 범죄 수단으로도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중앙은행 시스템을 건너뛸 수 있는 점이 범죄 조직엔 최대 매력입니다.
보이스피싱, 사이버 도박 일당의 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건 이제 옛말 수준입니다.
국가 간 제재도 우습게 뚫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명징한 사례가 최근 국내서 덜미가 잡혔습니다.
■ 테더로 '환치기' 580억 원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오늘(22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러시아 국적 환전상 40대 남녀를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2023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이들이 한국과 러시아 사이를 오가게 한 돈은 580억 원이었습니다.
이들은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 '테더'를 활용했습니다.
❓ 스테이블 코인 말 그대로, 안정적인(stable) 코인(coin)을 뜻합니다. 가격 변동성이 큰 다른 가상 자산과 달리, 달러나 유로 등 기존 법정 화폐와 1대1로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 자산으로, '테더' '서클' 등이 대표적입니다. |
이들이 받는 혐의는 두 가지, 이 테더를 이용한 '환치기'로 ① 러시아에 돈을 보내고 ② 러시아에서 돈을 받았다는 겁니다.
먼저, 러시아로 돈을 보낼 때 수법은 이렇습니다.
러시아 환치기를 원하는 고객을 텔레그램에서 모집합니다. 고객이 확보되면, 편의점 무통장 송금 앱으로 돈을 받습니다.
바코드 이미지만 있으면 은행 계좌로 바로 연결돼서, 무통장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입니다.
이렇게 받은 돈으로, 테더를 삽니다. 그리고 이 테더를 러시아에 있는 공범의 가상자산 지갑으로 보냅니다.
이제 마지막. 러시아의 공범들은 테더를 루블화로 바꿔 고객이 지정한 이에게 전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에서 돈을 받아주기도 했습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러시아에서 받을 돈이 있었을까요.
국내에 있는 중고 자동차와 화장품 업체들이었습니다.
러시아로는 수출이 엄격히 통제되지만, 제3국을 우회하는 불법 수출을 한 거로 파악됩니다.
러시아로 물건을 팔았으니, 이제 돈을 받아야겠죠. 이번엔 정반대 과정이 진행됩니다.
러시아에 있는 공범들이 루블화를 받아서 테더를 삽니다. 그 테더를 한국에 있는 환전상에게 보냅니다.
한국의 환전상은 테더를 원화로 바꿔서 수출 업체에 입금합니다.

■ 가상자산이 바꾼 제재의 문법
의뢰인들의 부탁을 받아 러시아로 송금하거나 돈을 받아준 횟수, 6,156차례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왜 의뢰인들은 은행을 통하지 않고 이 환전상을 불법으로 이용했을까요?
러시아가 받는 경제 제재로, 돈을 주고받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러시아 국적 은행들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 또는 '스위프트(SWIFT)'로 더 익숙한 국제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된 것입니다.
한국의 A 은행이 러시아의 B 은행과 돈을 주고받는 게 완전히 막혀 있습니다.
돈거래만 막힌 게 아닙니다. 상품 교역도 거의 틀어막았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로 반도체나 자동차 등 전략물자를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돈도 물자도 오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테더는 이런 제재를 비웃듯이 뚫었던 겁니다. 대단한 특수 작전도 아니었습니다.
흔하디흔한 '환치기' 꾼들이었습니다.

가상자산은 전자지갑을 통해 직접 거래할 수 있고 중앙은행을 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사회의 제재 노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기업인 체이널리시스의 '2025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제재 국가들이 거래한 가상자산의 규모가 158억 달러, 우리 돈으로 22조 7천억여 원에 달하는 거로 나타났습니다.
불법 가상자산 거래의 39%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보고서는 "서방 국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제재 대상 국가들은 무역을 유지하고 자본에 접근하기 위해 가상자산과 대체 금융 시스템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거래하는 곳, 러시아와 이란입니다.
지난 3월에도 러시아의 주요 석유 수출업체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테더 등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지난해 8월, 가상자산 채굴을 합법화하고 국제 결제 수단으로도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테더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스테이블 코인이라 변동성이 적기 때문에, 각종 수출입 대금으로 활용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되자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가상자산 거래소 등도 제재 목록에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인증 거래소들이 계속 나타나는 데다가, 이전에 문을 닫은 곳이 이름만 바꿔 다시 영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서는 전했습니다.
미국 달러에 묶인 테더가 오히려 미국 주도의 제재 체제를 무력화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현실입니다.
가상자산 때문에 국제사회 제재의 문법을 새로 써야 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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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기자 vox@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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