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경호원까지…교사 10명 고소·100번 넘게 민원 [취재후]

입력 2025.05.30 (07:00) 수정 2025.05.3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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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최근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과도한 민원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이번에는 자녀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사 10명을 고소하고, 100차례 넘게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학부모는 교사에게 협박성 발언까지 일삼은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교권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민원 대응 체계의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5년 05월 28일 KBS 제주 뉴스2025년 05월 28일 KBS 제주 뉴스

■ "죽이겠다"는 민원에 경호원까지 배치한 결혼식

제주시 한 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았던 30대 교사는 지난해부터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녀가 중학교에 올라간 뒤, 건강이 안 좋아졌는데 초등학교 시절 담임 교사 탓이라는 겁니다.

또 초등학교 시절 "교사가 자신의 자녀는 발표시키지 않고, 다른 학생을 발표시킨 적이 있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민원도 넣었습니다.

이 학부모는 반복적으로 학교 행정실로 전화를 걸어 교사를 찾았고, 교사는 이를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교사 개인 번호까지 알아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죽이겠다'는 위협적인 발언은 기본에 결혼식을 앞둔 교사에게 협박도 일삼았습니다. 피해 교사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아내랑 찍은 사진들이 노출된 상황에서 결혼식에 대한 협박까지 받으니 두려움이 컸다"며 "혹시나 결혼식장에 나타나, 행패 부릴까 봐, 결혼식 당일 경호원까지 배치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찾아가서 해코지하겠다'는 말도 해 업무도 손에 잡히지 않고, 수시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루하루가 긴장 상태"였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 교사는 “학부모와 관련된 꿈을 꾸고, 깨어난 뒤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됐다”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털어놨습니다. “법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더 큰 해코지로 돌아올까 두려워,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 교사 10명을 무더기로 고소하고 100번 넘게 민원 제기한 학부모

2025년 05월 28일 KBS 제주 뉴스2025년 05월 28일 KBS 제주 뉴스

이 학부모에게 괴롭힘을 당한 교사는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자녀의 초등학교 시절 담임 등 교사 10명을 정서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겁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올해 3월 2차례에 걸쳐 교사 10명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학부모는 또 교사들이 의도적으로 자녀에게 불리한 반 편성을 했다며, 교육청과 학교에도 민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청 교직원 등 20여 명을 상대로 지난해 3월부터 제기한 민원이 100번을 넘었습니다.

반 편성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하고, 민원 전화를 받은 교직원에 대한 항의성 글을 국민신문고에 올리는가 하면, 교육부에도 관련 내용으로 민원을 넣었습니다.

경찰은 결국, 이 학부모를 협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또 입건된 학부모가 민원을 남발한 만큼 추가 피해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제주도교육청은 “해당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으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울 정도였다”며 “앞으로는 악성 민원 학부모에 대해 고발 등 법적 대응을 포함한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피해 교사에 대해 소송 비용과 심리 치료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무기력감에 빠져"…지난해 중도 퇴직 교사 최대


이번 사건 이후, 피해 교사는 깊은 회의감과 무기력감에 빠졌습니다. 취재진에 “'교사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일인지조차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습니다.

피해 교사는 “교사를 그만두고 제주를 떠나야만,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학생들에게 화내지 않고, 친절하게 말하는 교사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교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신념과 정반대의 내용으로 신고를 당하니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다정한 교사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노력했던 시간이 다 무의미해지는 기분이에요" -피해 교사-

피해 교사는 취재진과 대화하는 내내 허탈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학부모 민원 등으로 인해 중도 퇴직을 고민하는 교원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중도 퇴직자 수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분석한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중도 퇴직한 교원은 3만 6천7백여 명이었습니다.

이 중, 초등교사가 만 5천여 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중도 퇴직 교원은 2020년 6천5백여 명, 2021년 6천 6백여 명, 2022년 6천 7백여 명, 2023년 7천6백여 명에서 2024년 9천백여 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초등교사 출신인 백승아 의원은 "제 친구들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해서, 2명이 사표를 냈다"며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원을 민원에서 보호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학부모 민원은 학교가 책임져야"…민원대응팀 체계 점검 시급



2년 전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장 책임하에 각종 민원을 처리하는 '민원대응팀'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사 개인이 처리했던 민원을 학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 '민원대응팀'이 응대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민원대응팀은 각 민원 특성에 맞게 유형을 분류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교내 민원대응팀이 있다는 사실조차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제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민원대응팀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면서 “실제로 민원이 들어오면 여전히 교사에게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담임 교사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국 교사의 3분의 2가량은 교사 노조 설문조사에서 교내 민원대응팀 구성과 안내가 잘 안 돼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보미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현재 민원대응팀 운영 비율이 낮고, 제도 자체도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온라인 민원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 교사 개인 연락처로 민원을 받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원단체들도 학교의 민원 대응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교육청 차원에서 악성 민원 제기자에 대한 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교육부가 온라인 민원 시스템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의 민원 대응 체계는 교사를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준영 전국시도교총회장협의회장은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을 지키겠다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면서, “무고성 민원을 막기 위해서는 교권 5법의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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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식에 경호원까지…교사 10명 고소·100번 넘게 민원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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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5-05-30 07:04:17
    취재후
최근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과도한 민원으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이번에는 자녀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사 10명을 고소하고, 100차례 넘게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학부모는 교사에게 협박성 발언까지 일삼은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교권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민원 대응 체계의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br />


2025년 05월 28일 KBS 제주 뉴스
■ "죽이겠다"는 민원에 경호원까지 배치한 결혼식

제주시 한 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았던 30대 교사는 지난해부터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녀가 중학교에 올라간 뒤, 건강이 안 좋아졌는데 초등학교 시절 담임 교사 탓이라는 겁니다.

또 초등학교 시절 "교사가 자신의 자녀는 발표시키지 않고, 다른 학생을 발표시킨 적이 있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민원도 넣었습니다.

이 학부모는 반복적으로 학교 행정실로 전화를 걸어 교사를 찾았고, 교사는 이를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교사 개인 번호까지 알아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죽이겠다'는 위협적인 발언은 기본에 결혼식을 앞둔 교사에게 협박도 일삼았습니다. 피해 교사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아내랑 찍은 사진들이 노출된 상황에서 결혼식에 대한 협박까지 받으니 두려움이 컸다"며 "혹시나 결혼식장에 나타나, 행패 부릴까 봐, 결혼식 당일 경호원까지 배치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찾아가서 해코지하겠다'는 말도 해 업무도 손에 잡히지 않고, 수시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루하루가 긴장 상태"였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 교사는 “학부모와 관련된 꿈을 꾸고, 깨어난 뒤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됐다”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털어놨습니다. “법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더 큰 해코지로 돌아올까 두려워,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 교사 10명을 무더기로 고소하고 100번 넘게 민원 제기한 학부모

2025년 05월 28일 KBS 제주 뉴스
이 학부모에게 괴롭힘을 당한 교사는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자녀의 초등학교 시절 담임 등 교사 10명을 정서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겁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올해 3월 2차례에 걸쳐 교사 10명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학부모는 또 교사들이 의도적으로 자녀에게 불리한 반 편성을 했다며, 교육청과 학교에도 민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청 교직원 등 20여 명을 상대로 지난해 3월부터 제기한 민원이 100번을 넘었습니다.

반 편성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하고, 민원 전화를 받은 교직원에 대한 항의성 글을 국민신문고에 올리는가 하면, 교육부에도 관련 내용으로 민원을 넣었습니다.

경찰은 결국, 이 학부모를 협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또 입건된 학부모가 민원을 남발한 만큼 추가 피해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제주도교육청은 “해당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으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울 정도였다”며 “앞으로는 악성 민원 학부모에 대해 고발 등 법적 대응을 포함한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피해 교사에 대해 소송 비용과 심리 치료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무기력감에 빠져"…지난해 중도 퇴직 교사 최대


이번 사건 이후, 피해 교사는 깊은 회의감과 무기력감에 빠졌습니다. 취재진에 “'교사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 일인지조차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습니다.

피해 교사는 “교사를 그만두고 제주를 떠나야만,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학생들에게 화내지 않고, 친절하게 말하는 교사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교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신념과 정반대의 내용으로 신고를 당하니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다정한 교사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노력했던 시간이 다 무의미해지는 기분이에요" -피해 교사-

피해 교사는 취재진과 대화하는 내내 허탈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학부모 민원 등으로 인해 중도 퇴직을 고민하는 교원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중도 퇴직자 수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분석한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중도 퇴직한 교원은 3만 6천7백여 명이었습니다.

이 중, 초등교사가 만 5천여 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중도 퇴직 교원은 2020년 6천5백여 명, 2021년 6천 6백여 명, 2022년 6천 7백여 명, 2023년 7천6백여 명에서 2024년 9천백여 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초등교사 출신인 백승아 의원은 "제 친구들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해서, 2명이 사표를 냈다"며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원을 민원에서 보호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학부모 민원은 학교가 책임져야"…민원대응팀 체계 점검 시급



2년 전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고,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장 책임하에 각종 민원을 처리하는 '민원대응팀'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사 개인이 처리했던 민원을 학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 '민원대응팀'이 응대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민원대응팀은 각 민원 특성에 맞게 유형을 분류하고 배분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교내 민원대응팀이 있다는 사실조차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제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민원대응팀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면서 “실제로 민원이 들어오면 여전히 교사에게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담임 교사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국 교사의 3분의 2가량은 교사 노조 설문조사에서 교내 민원대응팀 구성과 안내가 잘 안 돼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보미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현재 민원대응팀 운영 비율이 낮고, 제도 자체도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온라인 민원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 교사 개인 연락처로 민원을 받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원단체들도 학교의 민원 대응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교육청 차원에서 악성 민원 제기자에 대한 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교육부가 온라인 민원 시스템을 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의 민원 대응 체계는 교사를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오준영 전국시도교총회장협의회장은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을 지키겠다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면서, “무고성 민원을 막기 위해서는 교권 5법의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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