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 사회가 되면서 연명의료 거부·중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환자가 '임종 과정'으로 판단을 받았을 때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한데, 이걸 '말기'로 앞당기는 것에 대해 전문가 대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KBS가 입수한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의 내용입니다.
당장 '임종 과정'과 '말기'가 무엇이 다른지, 또 연명의료 중단 허용 시점이 말기로 앞당겨지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하나하나 설명해 드립니다.
■ 연명의료 거부했지만 의료진은 "더 기다려야"… 왜?
2018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과 '말기'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또 환자 상태가 임종 과정에 해당된다고 의사 2명이 판단한 경우에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임종 과정과 말기에 대한 정의는 이렇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 2조(정의) 1. "임종과정"이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 3. “말기환자(末期患者)”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
이 구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됩니다.
우선 '말기 환자'는 사전에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혔더라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실제 사례를 보겠습니다. 올해 초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60대 폐암 말기 환자가 의식이 저하된 상태로 실려 왔습니다.
이 환자는 이미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환자 가족들은 우선 응급 처치를 부탁했고, 의료진은 환자 의식이 명료하지 않았기에 '인공호흡기'를 달았습니다.
2주가 지나도록 환자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평소 환자의 뜻대로 "인공호흡기를 중단하고 편안하게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의료진도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환자 상태가 더 악화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임종 과정, 즉 사망이 임박했다고 판단할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법에 따르면 임종이 임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중단하라는 것"이라며 "이것은 환자의 고통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원 낭비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족들도 왜 더 나빠지는 걸 두고 보기만 해야 되느냐 이런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 '기대 여명'으로 말기·임종기 구분…"非암 질환엔 안 맞아"
말기와 임종 과정의 구분이 의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임종 과정이든 말기든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기대 여명'으로 구분할 뿐입니다.
임종 과정은 "사망 임박", 말기는 "수개월 이내 사망"하는 상태로 규정돼 있습니다.
물론 각 의학 전문 학회에서 질환별로 말기와 임종 과정을 판단하는 세부 지침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구분이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게다가 이런 기준은 암 질환에 적합할 뿐, 파킨슨병이나 신부전 등 암이 아닌 질환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말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90대 환자가 신부전으로 실려와 혈액 투석을 받았습니다.
이 환자는 고령인 데다 30년간 파킨슨병을 앓았고, 배뇨 장애와 고혈압이 있었습니다.
거동도 불가능했습니다.

신체 기능이나 삶의 질 측면에서 말기 암 환자보다 상태가 더 나빴지만, 의료진은 말기 판단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신부전 환자는 투석을 계속하면 수년간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유신혜 교수는 "말기의 '수개월'은 암에 맞는 거고, 다른 질환은 암 환자보다 더 기능이 나쁘지만, 수개월보다 더 사시는 분들이 있다"며, "그런 분들은 기능이 나쁘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지만 '지금은 할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의료진이 얘기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 전문가 82% "연명의료 중단 시점, 말기로 앞당겨야"
보건복지부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23년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올해 초 보고서(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의료 환경변화 대응방안 연구)가 나왔습니다.
연구진은 연명의료 중단 허용 시점을 '임종 과정'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방안이 타당한지 다각도로 검토했습니다.
의학 전문 학회 20곳에 의견을 물었는데, 학회 대표 27명 중 82%가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말기의 정의에 대해서도 견해를 물었습니다.
67%는 기간을 명시하지 않거나 '수개월 내 사망'을 기준으로 하는 현행 정의보다 더 길게 잡아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연구진은 "전문가 대다수가 법에 정한 말기 환자 개념보다 긴 생애 말기 기간을 수용하고 있으며, 주요 사망 원인이 되는 질환들의 말기 기간도 법의 정의보다 길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각 학회 대표자들이 인식하는 말기 기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질환별 생애 말기 기간> 암 : 대부분 1년 완치 수단이 없는 혈액 질환 : 2년 말기 심부전 : 1~3년 만성 신부전 : 5년 알츠하이머형 치매 : 1년 |
연구진은 결론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말기 환자로 확대하는 것이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전의료돌봄계획'을 활성화 해야 하고, 의료진의 상담 역량 강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확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활용도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이일학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줄이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며, "환자들이 미리 자기한테 적합한 치료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다 굉장히 뒤로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어떤 상태가 되면 치료를 받지 않겠다' '어떤 종류의 치료는 원하지 않는다' '치료를 받더라도 어디까지 치료를 받겠다'는 식으로 구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지금 우리의 서식은 너무 일반적"이라고 했습니다.
■ 외국 대부분은 '말기'부터 허용…복지부 "사회적 공감대 필요"
미국과 영국, 일본, 타이완 등 외국 대부분은 임종 과정과 말기를 구분하지 않고 있고, 말기부터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우리 국회에서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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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 없어도 인공호흡기 못 떼…“말기부터 연명의료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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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6-10 14:47:47

초고령 사회가 되면서 연명의료 거부·중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환자가 '임종 과정'으로 판단을 받았을 때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한데, 이걸 '말기'로 앞당기는 것에 대해 전문가 대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KBS가 입수한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의 내용입니다.
당장 '임종 과정'과 '말기'가 무엇이 다른지, 또 연명의료 중단 허용 시점이 말기로 앞당겨지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하나하나 설명해 드립니다.
■ 연명의료 거부했지만 의료진은 "더 기다려야"… 왜?
2018년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과 '말기'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또 환자 상태가 임종 과정에 해당된다고 의사 2명이 판단한 경우에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임종 과정과 말기에 대한 정의는 이렇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 2조(정의) 1. "임종과정"이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 3. “말기환자(末期患者)”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
이 구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됩니다.
우선 '말기 환자'는 사전에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혔더라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실제 사례를 보겠습니다. 올해 초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60대 폐암 말기 환자가 의식이 저하된 상태로 실려 왔습니다.
이 환자는 이미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환자 가족들은 우선 응급 처치를 부탁했고, 의료진은 환자 의식이 명료하지 않았기에 '인공호흡기'를 달았습니다.
2주가 지나도록 환자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평소 환자의 뜻대로 "인공호흡기를 중단하고 편안하게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의료진도 연명치료가 환자에게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환자 상태가 더 악화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임종 과정, 즉 사망이 임박했다고 판단할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법에 따르면 임종이 임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중단하라는 것"이라며 "이것은 환자의 고통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원 낭비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족들도 왜 더 나빠지는 걸 두고 보기만 해야 되느냐 이런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 '기대 여명'으로 말기·임종기 구분…"非암 질환엔 안 맞아"
말기와 임종 과정의 구분이 의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임종 과정이든 말기든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기대 여명'으로 구분할 뿐입니다.
임종 과정은 "사망 임박", 말기는 "수개월 이내 사망"하는 상태로 규정돼 있습니다.
물론 각 의학 전문 학회에서 질환별로 말기와 임종 과정을 판단하는 세부 지침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구분이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게다가 이런 기준은 암 질환에 적합할 뿐, 파킨슨병이나 신부전 등 암이 아닌 질환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말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90대 환자가 신부전으로 실려와 혈액 투석을 받았습니다.
이 환자는 고령인 데다 30년간 파킨슨병을 앓았고, 배뇨 장애와 고혈압이 있었습니다.
거동도 불가능했습니다.

신체 기능이나 삶의 질 측면에서 말기 암 환자보다 상태가 더 나빴지만, 의료진은 말기 판단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신부전 환자는 투석을 계속하면 수년간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유신혜 교수는 "말기의 '수개월'은 암에 맞는 거고, 다른 질환은 암 환자보다 더 기능이 나쁘지만, 수개월보다 더 사시는 분들이 있다"며, "그런 분들은 기능이 나쁘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지만 '지금은 할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의료진이 얘기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 전문가 82% "연명의료 중단 시점, 말기로 앞당겨야"
보건복지부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23년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올해 초 보고서(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의료 환경변화 대응방안 연구)가 나왔습니다.
연구진은 연명의료 중단 허용 시점을 '임종 과정'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방안이 타당한지 다각도로 검토했습니다.
의학 전문 학회 20곳에 의견을 물었는데, 학회 대표 27명 중 82%가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말기의 정의에 대해서도 견해를 물었습니다.
67%는 기간을 명시하지 않거나 '수개월 내 사망'을 기준으로 하는 현행 정의보다 더 길게 잡아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연구진은 "전문가 대다수가 법에 정한 말기 환자 개념보다 긴 생애 말기 기간을 수용하고 있으며, 주요 사망 원인이 되는 질환들의 말기 기간도 법의 정의보다 길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각 학회 대표자들이 인식하는 말기 기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질환별 생애 말기 기간> 암 : 대부분 1년 완치 수단이 없는 혈액 질환 : 2년 말기 심부전 : 1~3년 만성 신부전 : 5년 알츠하이머형 치매 : 1년 |
연구진은 결론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말기 환자로 확대하는 것이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전의료돌봄계획'을 활성화 해야 하고, 의료진의 상담 역량 강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확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활용도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이일학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줄이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며, "환자들이 미리 자기한테 적합한 치료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다 굉장히 뒤로 미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어떤 상태가 되면 치료를 받지 않겠다' '어떤 종류의 치료는 원하지 않는다' '치료를 받더라도 어디까지 치료를 받겠다'는 식으로 구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지금 우리의 서식은 너무 일반적"이라고 했습니다.
■ 외국 대부분은 '말기'부터 허용…복지부 "사회적 공감대 필요"
미국과 영국, 일본, 타이완 등 외국 대부분은 임종 과정과 말기를 구분하지 않고 있고, 말기부터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우리 국회에서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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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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