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좀 쉬고 싶어요” 공포 속에 홀대받는 ‘중증 천식’ 환자 [취재후]
입력 2025.06.12 (07:00)
수정 2025.06.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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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환절기면 숨쉬기가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증 천식' 환자들입니다.
천식은 비교적 흔히 접할 수 있는 호흡기질환이라 '기침 계속하고, 가래 끓고, 숨차지만, 약 먹으면 괜찮은 병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으로도 증상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중증 단계에 접어든 환자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호흡 곤란 공포 속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 "말도 못 하고 미동도 못해"… 숨 못 쉬는 천식 고통
취재 과정에서 만난 60대 최길자 씨는 10년 넘게 중증 천식을 앓고 있습니다.
원래도 천식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호흡 곤란이 잦아지고 기침도 심해지더니, 약이나 흡입제를 써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결국 일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습하거나 환절기 때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증상이 심해져요. 숨도 못 쉬고, 말도 못 하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갈 때도 있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콱 막혀서요. 그러다 들숨 날숨이 하나도 안 되는 순간이 오면 '이러다 내가 죽는 거구나' 싶어요." (중증 천식 환자 최길자 씨) |
매일 복용하는 약만 10종류가 넘고, 흡입제도 4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과 흡입제 없이는 밖에 나가지 못합니다. 인터뷰 장소인 병원으로 오는 것도 최 씨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 흡입제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병원 입·퇴원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호흡 곤란 때문에, 어느 날은 구토할 때까지 기침을 심하게 하다 뱃속 혈관이 손상돼, 어느 날은 스테로이드 약물 부작용으로 구급차를 탔습니다.
■ 비싼 신약은 '그림의 떡'… 부작용 큰 스테로이드 의존
중증 천식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약물은 과다 복용하면 부작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최 씨도 신장 기능이 절반 수준으로 망가졌고, 당뇨와 골다공증도 걸렸습니다. 매일 경구 스테로이드 복용량을 기록하고 있는데, 먹지 않을 땐 혈당 수치가 정상인 반면 먹은 날엔 혈당 수치가 200mg/dL 가까이 치솟을 정도입니다.

최 씨는 "스테로이드는 기관지 확장에는 정말 도움이 되지만 나머지에는 다 독"이라며 "그래도 일단 숨을 쉬어야 하니까 부작용을 감수하고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천식 치료 효과가 크고 부작용은 적은 '생물학적 신약'들도 있지만 비용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테로이드 약물 위주로 써도 1년 약값이 200만 원이 넘는데, 신약 주사들은 한 달에 한 번 맞는 데 50~200만 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약을 사용하는 중증 천식 환자 A 씨는 "4주 간격으로 입원하고 주사를 맞는다"면서 "1년에 천식에 쓰는 돈이 1,500만 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임상 시험에 참여해 신약 주사를 맞았던 적이 있어요. 그땐 폐 기능 점수가 30~40점에서 80점까지 오를 정도로 너무 좋아졌어요. 그런 주사라도 맞을 수 있으면 사회생활도 하면서 사람답게 살 텐데, 지금은 숨 하나 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쉴 수가 없어요." (중증 천식 환자 최길자 씨) |
■ '중증 난치질환' 인정 못 받는 천식… "산정 특례 적용해야"
국내 12세 이상 중증 천식 환자는 2만 3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천식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은 지금 현실에선 환자의 예후가 경제력과 사보험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합니다.
중증 천식은 산정 특례 적용을 받는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례가 적용되면 환자 본인이 전체 약제비의 10%만 부담하면 되지만, 지금은 60%를 부담해야 합니다.

손경희 경희의료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중증 천식 환자는 생물학적 제제(신약)에 반응을 잘하는데 보험 적용 기준도 워낙 까다롭고 본인 부담이 크다 보니 접근이 어려운 편"이라며 "어쩔 수 없이 부작용이 많은 경구 스테로이드 약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증 천식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도 넘어야 할 과제입니다.
김상헌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중증 호산구성 천식은 별도 질병코드조차 없는데 일단 코드화를 해서 정확한 현황 관리부터 해야 한다"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인데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는 중증 천식에 대한 산정 특례 지정과 신약 급여기준 확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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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좀 쉬고 싶어요” 공포 속에 홀대받는 ‘중증 천식’ 환자 [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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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6-12 07:00:05
- 수정2025-06-12 07:00:34
요즘 같은 환절기면 숨쉬기가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증 천식' 환자들입니다.
천식은 비교적 흔히 접할 수 있는 호흡기질환이라 '기침 계속하고, 가래 끓고, 숨차지만, 약 먹으면 괜찮은 병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으로도 증상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중증 단계에 접어든 환자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호흡 곤란 공포 속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 "말도 못 하고 미동도 못해"… 숨 못 쉬는 천식 고통
취재 과정에서 만난 60대 최길자 씨는 10년 넘게 중증 천식을 앓고 있습니다.
원래도 천식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호흡 곤란이 잦아지고 기침도 심해지더니, 약이나 흡입제를 써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결국 일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습하거나 환절기 때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증상이 심해져요. 숨도 못 쉬고, 말도 못 하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갈 때도 있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콱 막혀서요. 그러다 들숨 날숨이 하나도 안 되는 순간이 오면 '이러다 내가 죽는 거구나' 싶어요." (중증 천식 환자 최길자 씨) |
매일 복용하는 약만 10종류가 넘고, 흡입제도 4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과 흡입제 없이는 밖에 나가지 못합니다. 인터뷰 장소인 병원으로 오는 것도 최 씨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 흡입제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병원 입·퇴원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호흡 곤란 때문에, 어느 날은 구토할 때까지 기침을 심하게 하다 뱃속 혈관이 손상돼, 어느 날은 스테로이드 약물 부작용으로 구급차를 탔습니다.
■ 비싼 신약은 '그림의 떡'… 부작용 큰 스테로이드 의존
중증 천식 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약물은 과다 복용하면 부작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최 씨도 신장 기능이 절반 수준으로 망가졌고, 당뇨와 골다공증도 걸렸습니다. 매일 경구 스테로이드 복용량을 기록하고 있는데, 먹지 않을 땐 혈당 수치가 정상인 반면 먹은 날엔 혈당 수치가 200mg/dL 가까이 치솟을 정도입니다.

최 씨는 "스테로이드는 기관지 확장에는 정말 도움이 되지만 나머지에는 다 독"이라며 "그래도 일단 숨을 쉬어야 하니까 부작용을 감수하고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천식 치료 효과가 크고 부작용은 적은 '생물학적 신약'들도 있지만 비용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테로이드 약물 위주로 써도 1년 약값이 200만 원이 넘는데, 신약 주사들은 한 달에 한 번 맞는 데 50~200만 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약을 사용하는 중증 천식 환자 A 씨는 "4주 간격으로 입원하고 주사를 맞는다"면서 "1년에 천식에 쓰는 돈이 1,500만 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임상 시험에 참여해 신약 주사를 맞았던 적이 있어요. 그땐 폐 기능 점수가 30~40점에서 80점까지 오를 정도로 너무 좋아졌어요. 그런 주사라도 맞을 수 있으면 사회생활도 하면서 사람답게 살 텐데, 지금은 숨 하나 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쉴 수가 없어요." (중증 천식 환자 최길자 씨) |
■ '중증 난치질환' 인정 못 받는 천식… "산정 특례 적용해야"
국내 12세 이상 중증 천식 환자는 2만 3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천식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은 지금 현실에선 환자의 예후가 경제력과 사보험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합니다.
중증 천식은 산정 특례 적용을 받는 '중증 난치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례가 적용되면 환자 본인이 전체 약제비의 10%만 부담하면 되지만, 지금은 60%를 부담해야 합니다.

손경희 경희의료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중증 천식 환자는 생물학적 제제(신약)에 반응을 잘하는데 보험 적용 기준도 워낙 까다롭고 본인 부담이 크다 보니 접근이 어려운 편"이라며 "어쩔 수 없이 부작용이 많은 경구 스테로이드 약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증 천식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도 넘어야 할 과제입니다.
김상헌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중증 호산구성 천식은 별도 질병코드조차 없는데 일단 코드화를 해서 정확한 현황 관리부터 해야 한다"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인데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는 중증 천식에 대한 산정 특례 지정과 신약 급여기준 확대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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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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