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여할 수 없어” 무슬림 변호사는 컬럼비아 돕기 서명을 거절했다

입력 2025.06.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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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의 옳은 쪽에 서 있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미 컬럼비아 대학 학생들“우리는 역사의 옳은 쪽에 서 있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미 컬럼비아 대학 학생들

미국의 한 명문대에 우수한 튀르키예 출신 학생이 있었다.

성적이 뛰어난 것은 물론 인턴십 이력, 봉사 활동 등 뭐 하나 빠짐없이 우수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로스쿨 입학을 지망하는 그를 위해 프리드한 변호사는 추천서를 써줬다.
☞ 프리드한 변호사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이 기사를 클릭.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77891

그러나 학교 측에서 온 반응은 "어렵겠다"는 것.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조용한 참여자"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해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 현장에 서 있었다.

시위를 주동하거나 연단에 서서 발언하지도 않았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미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따른 합법적 행위일 뿐이다 -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촛불을 들고 죽음과 극한에 내몰린 인도적 위기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했다. 조용히.

"이때는 심지어 바이든 정부 때였습니다. 그런데 시위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 이미 반유대주의의 주홍글씨를 새겨놓았던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오며 이 같은 시선이 달라졌을 리 없다.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한 프리드한 변호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알카 프리드한 / 미국 관타나모 기지에서 벌어진 국가의 폭력과 불법 행위를 밝혀 온 인권 변호사알카 프리드한 / 미국 관타나모 기지에서 벌어진 국가의 폭력과 불법 행위를 밝혀 온 인권 변호사

로스쿨을 졸업해 법조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동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서명운동을 벌이자고. 헌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컬럼비아인들이 모이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말 동조할 거라 생각했던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프리드한 변호사는 튀르키예 출신으로 크게 성공한 무슬림 변호사의 문자를 보여줬다. 장문이었다.

"서명 서식 잘 받았어. 하지만 난 참여할 수 없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무슬림이잖아.
내가 참여하면 반유대주의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가족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편에 서서 싸워줘서 고마워."

"저 친구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컬럼비아를 위한 서명을 했다가 지금 로펌에서 잘린다 해도, 금방 다른 자리를 구할 수도 있는 능력자예요. 그래도 머뭇거릴 수 있죠. 하지만 제가 당혹했던 건 '고맙다'는 거였어요. 자신들을 위해 싸워줘서 고맙다고요."

무슬림으로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로스쿨을 졸업해 법적으로 무장된 이들은, 그러나 누구보다 몸을 사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컬럼비아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 이민국 수배령이 내려진 ‘윤서’를 구명하는 시위컬럼비아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 이민국 수배령이 내려진 ‘윤서’를 구명하는 시위

"한국계 여학생 있잖아요? 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했다가 수배령이 내려져 있는 여학생이요. 컬럼비아는 이미 외국인 학생들의 명단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컬럼비아는 항복했다.

"전조는 있었습니다. 트럼프 1기 때 이민국은 무슬림과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외국인들부터 잡아넣었습니다. 그들은 분간하기가 쉽잖아요."

뉴욕 한복판 컬럼비아 대학은 팔레스타인 시위의 성지였다.

그 대가(?)로 학교에 다니는 무슬림 학생들은 마구잡이로 체포됐고, 이제 그 칼날은 한국계 학생들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시위를 조직하지 않았어도, 연단에서 발언하지 않았어도, 그저 촛불만 들고 있었어도 그는 로스쿨에 진학하는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게 된 거다.

그래도 법치주의는 살아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뉴욕에 있는 작은 관세 법원은 트럼프의 상호 관세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이민자들을 엘살바도르로 내쫓은 행위에는 '도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맞아요. 법치주의는 살아있죠. 미국 전역에 있는 법원들이 차근차근 할 일을 해주고 있어요. 하지만 법원이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잖아요? 우리에겐 입법도 필요하고, 행정부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들도 필요합니다."

프리드한 변호사를 비롯한 미국 내 수많은 변호사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사건을 접수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절차적 불법성과 폭력의 사실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소장을 적고, 국가를 대상으로 한 고소장을 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겁니다. 법적으로 문제를 삼고, 거리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고, 지역구 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할 거예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당장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은, 그다음 차례가 자신들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법원의 시간은 트럼프 2기 집권이 시작된 뒤 폭풍처럼 몰아치는 미국을 떠받치는 장치가 되어 주고 있다. 물론 트럼프는 1심에서 3심까지 걸리는 빠르지 않은 법원의 시간 동안 수많은 행정명령을 쏟아내 법의 공백기를 최대한 활용할 요량인 듯하다.

미국에서는 이번 주말 전역에서 '왕은 없다'(No Kings)를 구호로 하는 반 트럼프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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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참여할 수 없어” 무슬림 변호사는 컬럼비아 돕기 서명을 거절했다
    • 입력 2025-06-14 06: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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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의 옳은 쪽에 서 있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미 컬럼비아 대학 학생들
미국의 한 명문대에 우수한 튀르키예 출신 학생이 있었다.

성적이 뛰어난 것은 물론 인턴십 이력, 봉사 활동 등 뭐 하나 빠짐없이 우수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로스쿨 입학을 지망하는 그를 위해 프리드한 변호사는 추천서를 써줬다.
☞ 프리드한 변호사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이 기사를 클릭.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77891

그러나 학교 측에서 온 반응은 "어렵겠다"는 것.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조용한 참여자"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해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과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 현장에 서 있었다.

시위를 주동하거나 연단에 서서 발언하지도 않았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미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따른 합법적 행위일 뿐이다 -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촛불을 들고 죽음과 극한에 내몰린 인도적 위기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했다. 조용히.

"이때는 심지어 바이든 정부 때였습니다. 그런데 시위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 이미 반유대주의의 주홍글씨를 새겨놓았던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오며 이 같은 시선이 달라졌을 리 없다.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한 프리드한 변호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알카 프리드한 / 미국 관타나모 기지에서 벌어진 국가의 폭력과 불법 행위를 밝혀 온 인권 변호사
로스쿨을 졸업해 법조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동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서명운동을 벌이자고. 헌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컬럼비아인들이 모이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말 동조할 거라 생각했던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프리드한 변호사는 튀르키예 출신으로 크게 성공한 무슬림 변호사의 문자를 보여줬다. 장문이었다.

"서명 서식 잘 받았어. 하지만 난 참여할 수 없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무슬림이잖아.
내가 참여하면 반유대주의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가족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편에 서서 싸워줘서 고마워."

"저 친구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컬럼비아를 위한 서명을 했다가 지금 로펌에서 잘린다 해도, 금방 다른 자리를 구할 수도 있는 능력자예요. 그래도 머뭇거릴 수 있죠. 하지만 제가 당혹했던 건 '고맙다'는 거였어요. 자신들을 위해 싸워줘서 고맙다고요."

무슬림으로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로스쿨을 졸업해 법적으로 무장된 이들은, 그러나 누구보다 몸을 사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컬럼비아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 이민국 수배령이 내려진 ‘윤서’를 구명하는 시위
"한국계 여학생 있잖아요? 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했다가 수배령이 내려져 있는 여학생이요. 컬럼비아는 이미 외국인 학생들의 명단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컬럼비아는 항복했다.

"전조는 있었습니다. 트럼프 1기 때 이민국은 무슬림과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외국인들부터 잡아넣었습니다. 그들은 분간하기가 쉽잖아요."

뉴욕 한복판 컬럼비아 대학은 팔레스타인 시위의 성지였다.

그 대가(?)로 학교에 다니는 무슬림 학생들은 마구잡이로 체포됐고, 이제 그 칼날은 한국계 학생들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시위를 조직하지 않았어도, 연단에서 발언하지 않았어도, 그저 촛불만 들고 있었어도 그는 로스쿨에 진학하는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게 된 거다.

그래도 법치주의는 살아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뉴욕에 있는 작은 관세 법원은 트럼프의 상호 관세가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이민자들을 엘살바도르로 내쫓은 행위에는 '도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맞아요. 법치주의는 살아있죠. 미국 전역에 있는 법원들이 차근차근 할 일을 해주고 있어요. 하지만 법원이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잖아요? 우리에겐 입법도 필요하고, 행정부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들도 필요합니다."

프리드한 변호사를 비롯한 미국 내 수많은 변호사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사건을 접수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절차적 불법성과 폭력의 사실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소장을 적고, 국가를 대상으로 한 고소장을 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겁니다. 법적으로 문제를 삼고, 거리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고, 지역구 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할 거예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당장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은, 그다음 차례가 자신들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법원의 시간은 트럼프 2기 집권이 시작된 뒤 폭풍처럼 몰아치는 미국을 떠받치는 장치가 되어 주고 있다. 물론 트럼프는 1심에서 3심까지 걸리는 빠르지 않은 법원의 시간 동안 수많은 행정명령을 쏟아내 법의 공백기를 최대한 활용할 요량인 듯하다.

미국에서는 이번 주말 전역에서 '왕은 없다'(No Kings)를 구호로 하는 반 트럼프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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