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은퇴 대신 폐업

입력 2025.06.2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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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목/자영업자
부모님 모시고 자식들을 대학을 다 가르치다 보니까 그리고 나서 보니까 60이 넘은 거예요. 저축해 놓을 시간이 없었지. 나의 노후를 위해 준비할 만한 시간이 없었지.

가족들 챙기느라 바쁜 줄도 모르고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

이미 은퇴했을 시기이지만 일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가게를 열어도 막막하고, 닫기는 더 어려운 삶. 고령 자영업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겐 다른 선택의 기회는 없는 걸까요?


올해 65살 김정희 씨는 재작년까지 카페를 운영했지만, 이제 정희 씨의 카페는 흔적조차 사라졌습니다.

직접 가게 소품도 만들며 5년간 정성을 다해 운영해 왔던 곳이었습니다.

김정희/자영업자
(마음이) 많이 아팠죠. 그냥 커피 가게보다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나의 인생 스토리를 커피 가게에 다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카페를 열기 전 30년 가까이 농산물 유통업을 했던 정희 씨.


남들은 은퇴를 고민할 나이에 또다시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었던 건 가족들 때문이었습니다.

김정희/폐업 자영업자
부모 입장에서 내가 자식이 못됐을 때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주자. 금전적으로 조금 도와주면 애가 다시 일어설 수도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한 거죠.

처음엔 입소문도 타며 자리를 잡아갔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오르는 물가에 경쟁까지 치열해지는 상황에 결국 김 씨는 폐업을 선택했습니다.

김정희/폐업 자영업자
폐업은 자의 반 타의 반인 거죠. 옆에 저가 카페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저희가 그동안 꾸준히 하고 있는데 다른 카페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경쟁하기에는 저한테 좀 부담이 됐어요.


6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던 디저트 가게 앞에 서 있는 박민영 씨의 마음도 착잡하기만 합니다.

창업에 뛰어들기 전 여행업에 종사했던 민영 씨는 경험을 살려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년 넘는 경력의 민영 씨에게도 재취업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박민영(가명)/폐업 자영업자(디저트 가게 운영)
지금 취업 한다고 이력서를 내더라도 그 이력서로 저를 불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보다 어린 분들이 훨씬 많은데 저는 경력직으로 써야 하면 어쨌든 회사 입장에서도 월급을 많이 책정해 줘야 하고 하니까요.

고민 끝에 선택한 건 결국 자영업이었습니다.

박민영(가명)/폐업 자영업자(디저트 가게 운영)
회사에 들어갈 때는 어느 정도 이력이 있어야 하고 내가 그 회사에서 말하는 하한선을 갖춰야 하는데 사실 자영업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진입 장벽도 제일 낮고 해서 아무래도 시작하기가 수월하죠


현재 우리나라의 60세 이상 고령 자영업자 수는 210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나라 단일 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큰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미 은퇴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불과 7년 뒤 이 숫자는 24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은퇴 후 창업을 하는 게 과연 최선일까요?

4년 전 남편의 은퇴에 맞춰 해 오던 일을 접고 도넛 가게를 연 송명순 씨.

남편의 퇴직금을 포함해 평생 모아온 돈 2억 5천만 원은 고스란히 창업 자금으로 들어갔습니다.


송명순/자영업자
저희는 그냥 용돈에, 생활비에 조금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살려고 자영업을 시작한 거죠. 그리고 60살이 젊어요. 젊으니까 일을 하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일하면서 적당히 조금씩만 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창업에 필요한 정보는 물론이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어려웠던 상황.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프랜차이즈였습니다.

송명순/자영업자
뭔가를 새롭게 도전하기에 젊은 사람이면 했다가 엎었다 할 수 있지만,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두렵죠. 그러니까 안정적인 걸 찾아요. 큰 수익은 찾지 않아요. 그러니까 프랜차이즈 찾는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창업에 필요한 정보는 부족했고, 하루 10시간 넘게 꼬박 일을 해도 손에 들어오는 돈이 한 달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달도 많았다고 합니다.

송명순/자영업자
수익이 안 돼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아이들도 다 컸고 특별히 이제 학비 들어갈 일은 없거든요. 그러면 이제 살아가면서 둘이 쓸 용돈 그 정도 버는 거죠. 그랬는데 그 수익이 (그만큼) 안 돼요.

2022년 소상공인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60대 신규 자영업자의 1인당 매출은 연간 3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35%는 과도한 경쟁과 낮은 생산성 탓에 영업이익이 천만 원도 안 됐습니다.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운수업이나 요식업 등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자영업은 경기에 상당히 민감한 특성이 있습니다. 결국 코로나라든지 지난해와 같은 내수 부진이 이어진다면 아마도 경제적 충격을 제일 먼저 크게 받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따라서 고령 자영업자가 이러한 업종을 중심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구조적 취약성이 높아지는 요인이 됩니다.

낮은 수익률 때문에 명순 씨는 폐업도 생각해 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송명순/자영업자
저희 같은 경우는 이걸 그만둬도 뭘 할 게 없어요. 다시 무슨 사업을 한다? 아니요. 하고 싶지도 않고 다른 자영업을 한다? 그럼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음을 뭘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폐업을 망설이는 거예요.

고령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망설이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여는 올해 75살의 조중목 씨.

30여 년의 식자재 유통업 경력을 뒤로 하고, 60대 후반에 동네에 작은 슈퍼마켓을 열었습니다.


조중목/자영업자
우리 세대 60대 중반 이후는 부모님을 다 모셨어. 그리고 자식들 대학까지 다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부모님 모시고 자식들 대학 (공부)을 다 가르치다 보니까 그리고 나서 보니까 60살이 넘은 거예요. 저축해 놓을 시간이 없었지.

가족을 챙기느라, 가게를 운영하느라 그간 쌓인 빚만 2억 원.

조중목/자영업자
돈이 없으니까 (돈 벌려고) 사업을 하는 거잖아요. 없는데 사업을 하니까 대출을 안 받을 방법이 없죠.

오랫동안 이어진 불경기에다 곳곳에 들어선 대형마트의 영향으로 매출은 갈수록 떨어졌지만, 그사이에도 매달 2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했습니다.

갈수록 손해만 보는 상황에 폐업도 생각해 봤지만, 이 빚들을 해결하기 전엔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조중목/자영업자
장사는 안되면서 한 달에 관리비만 40~50만 원이 추가되니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게 제일 힘들었고 희망이라는 단어가 없는 거야. 요새 와서는 소상공인 대출받은 것이 해결이 안 돼서 폐업을 못 해 하고 싶어도 그걸 갚아야 폐업이 되니까

지난해 말 기준 60대 이상 고령 자영업자의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372조 원이 넘습니다.


1년 전보다 24조 원 이상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다른 연령대에선 대출 잔액이 줄어든 것과 대조적입니다.

60대 이상 자영업자의 채무 불이행자 수도 3만 천여 명으로, 1년 새 52%나 늘었습니다.

이들의 높은 부채 비율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금융과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만약에 자영업에서 실패하게 돼 폐업하게 된다면 그동안 자영업 자격으로 받았던 부채를 상환해야 할 텐데요. 우리나라 금융 안정 측면에서도 상당히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원/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연합회 사무총장
부채 문제가 해결돼야 자영업자들도 사실은 소비 여력이 생기고 자영업자도 사실은 소비자잖아요. 자영업자들이 어려워지니 자영업자 자신도 돈을 쓸 수가 없고 또 그러다 보니까 자영업자가 어려워지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보니까

폐업을 하면 끝일까요? 더 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자영업을 대신할 일자리가 사실상 부족한 상황.

올해 우리나라 노인 일자리 사업 예산은 2조 천8백여억 원으로, 일자리 수는 109만 개 남짓입니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 즉 천만 명이 넘는 걸 고려하면 일자리는 10분의 1에 그칩니다.

결국 60대 자영업자 중 상당수는 자영업을 그만두면 임시 일용직 일자리를 얻거나 아예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A 씨/폐업 자영업자
지인 한 분은 식당 경영했다가 폐업했습니다. 지금 그분이 원래 76살인가 77살인데 완전 폐인이 되다시피 하더라고요. 자영업을 하다가 망하면 사람들이 잘못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실망하면 그게 회복하기 힘들어요. 노후 자금 퇴직금도 다 여기 넣었다가 사업 실패하고 나면 맨날 술이나 드시고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떠밀리듯 폐업한 고령 자영업자들은 평생 모은 자산마저 소진하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정희/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퇴직금이라든가 그동안에 모아뒀던 목돈을 가지고 이제 창업을 시작합니다. 실패하게 되면 이게 사라지게 되는 거거든요. 일종의 매몰 비용이 됩니다. 내가 되찾을 수 없는 비용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될 경우는 다시 재기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죠.

이미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파르게 늘어나는 고령자영업자의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상당수 고령 자영업자가 폐업과 동시에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면 국가 차원의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이들을 위해서 상당한 재정이 투입돼야 할 거고. 이들이 계속해서 생계유지할 수 있도록 일자리 측면에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할 텐데요. 그런 측면에서도 또 재정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고령층을 위한 일자리 대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


전문가들은 노동 의지가 큰 은퇴 고령층이 자영업 진출에 앞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일자리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전면적인 정년 연장이 어렵다면 임금체계 개편과 정부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한 기업의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 중소기업에서 고령 인력이 일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정년 연장이라든지 계속 고용이라든지 퇴직 후 재고용이라든지 많은 논의가 있는데요.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서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제 쏟아지기 전에 이들을 위한 안정적인 임금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지 고령 자영업자로 진입하는 그런 통로를 좀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영업 진입을 강제로 억제할 수 없다면, 생계형 자영업자의 실패 위험을 낮추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영갑/KYG상권분석연구원 교수
기본 역량은 충분한 분들이에요. 왜냐하면 사회생활도 했죠. 어느 정도 지식도 갖췄죠. 회사도 다녔기 때문에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은 있어요. 단 부족한 게 뭐냐 하면 이 소상공인 시장에 대한 도메인 지식(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이라고 저희가 표현하거든요. 이 (소상공업) 지식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강종헌/K창업연구소 소장
고령층이 실제 경험해 보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한번 만들어 주면 어떨까? 고령층만을 위한 공간 시설을 한번 만들어 주면 충분히 이 사람들이 창업하기 이전에 테스트 과정도 거치고, ‘내가 컨설팅을 통해서 잘못된 게 있다’ 그러면 한 번이라도 수정해서 나간다면 시장에 더 정확하게 정착하지 않을까.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김정희 씨. 몇 달 전부터 지역 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며, 재기에 나섰습니다.



김정희/폐업 자영업자
손님한테 응대하는 방법이라든가 여기서 쓰는 시스템의 준비라든가 또 마감하는 방법 그런 것을 하나하나 다 교육을 받고 하고 있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그냥 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다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고 설렘은 분명히 있죠.

은퇴 후에도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속속 나서고 있는 고령 자영업자들.

이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에 우리 사회는 반응할 준비가 돼 있을까요?

이성원/한국중소상인연합회 사무총장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서 그 충격을 완화하는 게 바로 자영업 시장이었던 거죠. 오랫동안 고용 저수지 역할을 해 온 이 자영업마저 붕괴됐을 때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굉장히 절실한 것 같습니다.

#고령 자영업자 #자영업 #고령 사장님 #은퇴 #폐업 #고령 일자리 #2차 베이비부머 #고령 창업 #소상공인 #고용 #정년 연장 #재취업 #대출

취재:강병수
촬영:강우용 박주영
영상편집:김태형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AD:심은별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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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은퇴 대신 폐업
    • 입력 2025-06-29 23:11:58
    사회

조중목/자영업자
부모님 모시고 자식들을 대학을 다 가르치다 보니까 그리고 나서 보니까 60이 넘은 거예요. 저축해 놓을 시간이 없었지. 나의 노후를 위해 준비할 만한 시간이 없었지.

가족들 챙기느라 바쁜 줄도 모르고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

이미 은퇴했을 시기이지만 일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가게를 열어도 막막하고, 닫기는 더 어려운 삶. 고령 자영업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겐 다른 선택의 기회는 없는 걸까요?


올해 65살 김정희 씨는 재작년까지 카페를 운영했지만, 이제 정희 씨의 카페는 흔적조차 사라졌습니다.

직접 가게 소품도 만들며 5년간 정성을 다해 운영해 왔던 곳이었습니다.

김정희/자영업자
(마음이) 많이 아팠죠. 그냥 커피 가게보다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나의 인생 스토리를 커피 가게에 다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카페를 열기 전 30년 가까이 농산물 유통업을 했던 정희 씨.


남들은 은퇴를 고민할 나이에 또다시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었던 건 가족들 때문이었습니다.

김정희/폐업 자영업자
부모 입장에서 내가 자식이 못됐을 때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주자. 금전적으로 조금 도와주면 애가 다시 일어설 수도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한 거죠.

처음엔 입소문도 타며 자리를 잡아갔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오르는 물가에 경쟁까지 치열해지는 상황에 결국 김 씨는 폐업을 선택했습니다.

김정희/폐업 자영업자
폐업은 자의 반 타의 반인 거죠. 옆에 저가 카페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저희가 그동안 꾸준히 하고 있는데 다른 카페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경쟁하기에는 저한테 좀 부담이 됐어요.


6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던 디저트 가게 앞에 서 있는 박민영 씨의 마음도 착잡하기만 합니다.

창업에 뛰어들기 전 여행업에 종사했던 민영 씨는 경험을 살려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년 넘는 경력의 민영 씨에게도 재취업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박민영(가명)/폐업 자영업자(디저트 가게 운영)
지금 취업 한다고 이력서를 내더라도 그 이력서로 저를 불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보다 어린 분들이 훨씬 많은데 저는 경력직으로 써야 하면 어쨌든 회사 입장에서도 월급을 많이 책정해 줘야 하고 하니까요.

고민 끝에 선택한 건 결국 자영업이었습니다.

박민영(가명)/폐업 자영업자(디저트 가게 운영)
회사에 들어갈 때는 어느 정도 이력이 있어야 하고 내가 그 회사에서 말하는 하한선을 갖춰야 하는데 사실 자영업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진입 장벽도 제일 낮고 해서 아무래도 시작하기가 수월하죠


현재 우리나라의 60세 이상 고령 자영업자 수는 210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나라 단일 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큰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미 은퇴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불과 7년 뒤 이 숫자는 24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은퇴 후 창업을 하는 게 과연 최선일까요?

4년 전 남편의 은퇴에 맞춰 해 오던 일을 접고 도넛 가게를 연 송명순 씨.

남편의 퇴직금을 포함해 평생 모아온 돈 2억 5천만 원은 고스란히 창업 자금으로 들어갔습니다.


송명순/자영업자
저희는 그냥 용돈에, 생활비에 조금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살려고 자영업을 시작한 거죠. 그리고 60살이 젊어요. 젊으니까 일을 하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일하면서 적당히 조금씩만 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창업에 필요한 정보는 물론이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어려웠던 상황.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프랜차이즈였습니다.

송명순/자영업자
뭔가를 새롭게 도전하기에 젊은 사람이면 했다가 엎었다 할 수 있지만,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두렵죠. 그러니까 안정적인 걸 찾아요. 큰 수익은 찾지 않아요. 그러니까 프랜차이즈 찾는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창업에 필요한 정보는 부족했고, 하루 10시간 넘게 꼬박 일을 해도 손에 들어오는 돈이 한 달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달도 많았다고 합니다.

송명순/자영업자
수익이 안 돼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아이들도 다 컸고 특별히 이제 학비 들어갈 일은 없거든요. 그러면 이제 살아가면서 둘이 쓸 용돈 그 정도 버는 거죠. 그랬는데 그 수익이 (그만큼) 안 돼요.

2022년 소상공인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60대 신규 자영업자의 1인당 매출은 연간 3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35%는 과도한 경쟁과 낮은 생산성 탓에 영업이익이 천만 원도 안 됐습니다.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운수업이나 요식업 등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자영업은 경기에 상당히 민감한 특성이 있습니다. 결국 코로나라든지 지난해와 같은 내수 부진이 이어진다면 아마도 경제적 충격을 제일 먼저 크게 받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따라서 고령 자영업자가 이러한 업종을 중심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구조적 취약성이 높아지는 요인이 됩니다.

낮은 수익률 때문에 명순 씨는 폐업도 생각해 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송명순/자영업자
저희 같은 경우는 이걸 그만둬도 뭘 할 게 없어요. 다시 무슨 사업을 한다? 아니요. 하고 싶지도 않고 다른 자영업을 한다? 그럼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음을 뭘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폐업을 망설이는 거예요.

고령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망설이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여는 올해 75살의 조중목 씨.

30여 년의 식자재 유통업 경력을 뒤로 하고, 60대 후반에 동네에 작은 슈퍼마켓을 열었습니다.


조중목/자영업자
우리 세대 60대 중반 이후는 부모님을 다 모셨어. 그리고 자식들 대학까지 다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부모님 모시고 자식들 대학 (공부)을 다 가르치다 보니까 그리고 나서 보니까 60살이 넘은 거예요. 저축해 놓을 시간이 없었지.

가족을 챙기느라, 가게를 운영하느라 그간 쌓인 빚만 2억 원.

조중목/자영업자
돈이 없으니까 (돈 벌려고) 사업을 하는 거잖아요. 없는데 사업을 하니까 대출을 안 받을 방법이 없죠.

오랫동안 이어진 불경기에다 곳곳에 들어선 대형마트의 영향으로 매출은 갈수록 떨어졌지만, 그사이에도 매달 2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했습니다.

갈수록 손해만 보는 상황에 폐업도 생각해 봤지만, 이 빚들을 해결하기 전엔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조중목/자영업자
장사는 안되면서 한 달에 관리비만 40~50만 원이 추가되니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게 제일 힘들었고 희망이라는 단어가 없는 거야. 요새 와서는 소상공인 대출받은 것이 해결이 안 돼서 폐업을 못 해 하고 싶어도 그걸 갚아야 폐업이 되니까

지난해 말 기준 60대 이상 고령 자영업자의 금융기관 대출잔액은 372조 원이 넘습니다.


1년 전보다 24조 원 이상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다른 연령대에선 대출 잔액이 줄어든 것과 대조적입니다.

60대 이상 자영업자의 채무 불이행자 수도 3만 천여 명으로, 1년 새 52%나 늘었습니다.

이들의 높은 부채 비율은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금융과 경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만약에 자영업에서 실패하게 돼 폐업하게 된다면 그동안 자영업 자격으로 받았던 부채를 상환해야 할 텐데요. 우리나라 금융 안정 측면에서도 상당히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성원/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연합회 사무총장
부채 문제가 해결돼야 자영업자들도 사실은 소비 여력이 생기고 자영업자도 사실은 소비자잖아요. 자영업자들이 어려워지니 자영업자 자신도 돈을 쓸 수가 없고 또 그러다 보니까 자영업자가 어려워지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보니까

폐업을 하면 끝일까요? 더 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자영업을 대신할 일자리가 사실상 부족한 상황.

올해 우리나라 노인 일자리 사업 예산은 2조 천8백여억 원으로, 일자리 수는 109만 개 남짓입니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 즉 천만 명이 넘는 걸 고려하면 일자리는 10분의 1에 그칩니다.

결국 60대 자영업자 중 상당수는 자영업을 그만두면 임시 일용직 일자리를 얻거나 아예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A 씨/폐업 자영업자
지인 한 분은 식당 경영했다가 폐업했습니다. 지금 그분이 원래 76살인가 77살인데 완전 폐인이 되다시피 하더라고요. 자영업을 하다가 망하면 사람들이 잘못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실망하면 그게 회복하기 힘들어요. 노후 자금 퇴직금도 다 여기 넣었다가 사업 실패하고 나면 맨날 술이나 드시고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떠밀리듯 폐업한 고령 자영업자들은 평생 모은 자산마저 소진하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정희/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퇴직금이라든가 그동안에 모아뒀던 목돈을 가지고 이제 창업을 시작합니다. 실패하게 되면 이게 사라지게 되는 거거든요. 일종의 매몰 비용이 됩니다. 내가 되찾을 수 없는 비용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될 경우는 다시 재기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죠.

이미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

가파르게 늘어나는 고령자영업자의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상당수 고령 자영업자가 폐업과 동시에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면 국가 차원의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이들을 위해서 상당한 재정이 투입돼야 할 거고. 이들이 계속해서 생계유지할 수 있도록 일자리 측면에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할 텐데요. 그런 측면에서도 또 재정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고령층을 위한 일자리 대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


전문가들은 노동 의지가 큰 은퇴 고령층이 자영업 진출에 앞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일자리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전면적인 정년 연장이 어렵다면 임금체계 개편과 정부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한 기업의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 중소기업에서 고령 인력이 일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재호/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
정년 연장이라든지 계속 고용이라든지 퇴직 후 재고용이라든지 많은 논의가 있는데요.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조속히 이루어져서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제 쏟아지기 전에 이들을 위한 안정적인 임금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지 고령 자영업자로 진입하는 그런 통로를 좀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영업 진입을 강제로 억제할 수 없다면, 생계형 자영업자의 실패 위험을 낮추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영갑/KYG상권분석연구원 교수
기본 역량은 충분한 분들이에요. 왜냐하면 사회생활도 했죠. 어느 정도 지식도 갖췄죠. 회사도 다녔기 때문에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은 있어요. 단 부족한 게 뭐냐 하면 이 소상공인 시장에 대한 도메인 지식(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이라고 저희가 표현하거든요. 이 (소상공업) 지식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강종헌/K창업연구소 소장
고령층이 실제 경험해 보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한번 만들어 주면 어떨까? 고령층만을 위한 공간 시설을 한번 만들어 주면 충분히 이 사람들이 창업하기 이전에 테스트 과정도 거치고, ‘내가 컨설팅을 통해서 잘못된 게 있다’ 그러면 한 번이라도 수정해서 나간다면 시장에 더 정확하게 정착하지 않을까.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김정희 씨. 몇 달 전부터 지역 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며, 재기에 나섰습니다.



김정희/폐업 자영업자
손님한테 응대하는 방법이라든가 여기서 쓰는 시스템의 준비라든가 또 마감하는 방법 그런 것을 하나하나 다 교육을 받고 하고 있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그냥 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다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고 설렘은 분명히 있죠.

은퇴 후에도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속속 나서고 있는 고령 자영업자들.

이들이 보내는 구조 신호에 우리 사회는 반응할 준비가 돼 있을까요?

이성원/한국중소상인연합회 사무총장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서 그 충격을 완화하는 게 바로 자영업 시장이었던 거죠. 오랫동안 고용 저수지 역할을 해 온 이 자영업마저 붕괴됐을 때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굉장히 절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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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강병수
촬영:강우용 박주영
영상편집:김태형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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