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벼룩’이 수두룩…인근 숲 때문?

입력 2025.07.0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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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벼룩'을 본 적 있으십니까? 예전보다 위생에 신경을 더 쓰고, 방역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요즘 실제 '벼룩'을 보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때아닌 벼룩이 부산의 한 아파트를 뒤덮었습니다. 주민들은 벼룩에게 물려 몸 곳곳을 긁었고, 흉터까지 남았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너도 물렸어? 나도 물렸다!

벼룩이 나온 부산 중구의 한 아파트벼룩이 나온 부산 중구의 한 아파트

벼룩이 부산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처음 발견된 건 2021년 봄. 벌레에 물린 자국에 간지럼을 느낀 주민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모기 때문인 것으로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린 자국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데다, 모양도 달랐습니다. 경로당에서 같은 증상을 겪었다는 주민들이 늘어나며 벌레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벼룩에 잇따라 물린 아파트 주민의 다리.벼룩에 잇따라 물린 아파트 주민의 다리.

해가 가며 벌레의 개체수가 늘어난 나머지, 주민들은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벌레가 통통 튀는 걸 발견했습니다. 길이 2~3mm, 자기 몸의 200배까지 뛸 수 있는 벼룩입니다.

올해는 경로당은 물론, 아파트 내부 현관과 침대, 소파까지 벼룩이 침투한 상황. 주민들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물린 자리를 긁다, 흉터까지 수십 군데 생겼습니다. 아파트 관계자는 "60세대가량의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피해를 겪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2025년에 벼룩…나타난 이유는?

그렇다면, 벼룩은 대체 왜,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현장에서 발견한 살아있는 벼룩. 앞서 주민들은 벼룩, 빈대, 진드기 가운데 하나로 의심했지만, 한국방역협회 소속사는 벼룩이 맞다고 결론지었습니다.현장에서 발견한 살아있는 벼룩. 앞서 주민들은 벼룩, 빈대, 진드기 가운데 하나로 의심했지만, 한국방역협회 소속사는 벼룩이 맞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벼룩은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해충입니다. 동물에 붙어 기생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과거엔 쥐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 '쥐벼룩'이라 불렀고, 최근에는 고양이를 통해 옮겨지며 '고양이벼룩'이라고도 불립니다.

실제로 아파트가 있는 동네에는 길고양이도 많았고, 방역 업체 관계자들이 아파트를 살펴본 결과, 준공 50년 차의 이 아파트에는 길고양이나 쥐가 쉴 곳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이나 주민이 키우는 반려동물이, 인근의 길고양이나 쥐와 접촉해 벼룩에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왜 이 아파트만 심할까? 방역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런데 문제는, 주민들이 방역을 해도, 며칠만 지나면 다시 벼룩이 창궐했다고 합니다. 인근의 다른 주택들도 환경은 비슷한데, 유독 이 아파트에만 단지 전체에 걸쳐 수 년째 벼룩이 사리지지 않는 상황.

이 아파트만 다른 점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파트가 낡았다는 점과 인근에 동물이 오가는 건 근처의 다른 주택들도 마찬가지. 이 아파트만 가진 점이 뭘까요?

아파트 입구는 부산시 소유 숲과 맞닿아 있습니다.아파트 입구는 부산시 소유 숲과 맞닿아 있습니다.

주민들의 증언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벼룩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아파트 뒤편. 이곳의 아파트 입구는원시림에 가까울 정도로 빽빽한 숲과 맞닿아 있는데요, 밝은 색 바지를 입고 아파트와 숲 사이를 지나면 바지에 벼룩이 2~3마리씩 붙는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 자동차에 타면 차 안까지 따라 들어오기 때문에, 퇴근 후 독한 농약을 차 안에 뿌려놓기까지 하는 상황.

벼룩은 동물이나 털에 붙어 사는데, 왜 숲 얘기가 나올까요? 한국방역협회 소속 전문가 설명 들어보시죠.

"벼룩이 퍼지면 한 집만 피해를 입고 끝날 수도 있는데, 왜 아파트 전체로 퍼졌을까요? 한 가지 이유만 있진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숲에서 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벼룩은 쥐나 고양이같은 동물에 붙어 함꼐 다닐텐데, 동물들이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닐 때 당연히 숲을 거치겠죠.

벼룩도 흡혈하고 나면 쉴 곳이 필요한데, 아파트에서 실컷 흡혈하고, 근처에 온 동물에 다시 붙고, 숲에서 쉬다 다시 동물에 붙어 아파트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겁니다.

그늘지고 습한 데다, 나뭇잎도 많은 숲은 훌륭한 쉼터죠."

(한국방역협회 소속 부산 OO방역 부사장)

한 마디로 숲이 벼룩의 '쉼터' 역할을 하는 건데요. 벼룩이 숲에서 쉬며 개체수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유독 이 아파트에서만 오래, 그리고 많이 퍼졌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주민 "숲 정리해달라"…부산시 "예산 없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은 근본적인 벼룩 퇴치를 위해, 부산시에 숲의 앞부분만이라도 가지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 재산을 관리하는 담당자에게 돌아온 답은 "예산 부족".

주민들은 "부산시 소유 재산이 문제를 키웠다면, 시가 나서 해결해달라"고 말합니다.

현장 점검 중인 방역업체 직원을 바라보는 아파트 주민.현장 점검 중인 방역업체 직원을 바라보는 아파트 주민.

대책 없이 확산하는 벼룩이 동물들을 따라 인근 다른 아파트까지 퍼진다면, 사회적 비용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아닌 벼룩 대유행에, 주민들은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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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에 ‘벼룩’이 수두룩…인근 숲 때문?
    • 입력 2025-07-03 09: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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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벼룩'을 본 적 있으십니까? 예전보다 위생에 신경을 더 쓰고, 방역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요즘 실제 '벼룩'을 보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때아닌 벼룩이 부산의 한 아파트를 뒤덮었습니다. 주민들은 벼룩에게 물려 몸 곳곳을 긁었고, 흉터까지 남았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너도 물렸어? 나도 물렸다!

벼룩이 나온 부산 중구의 한 아파트
벼룩이 부산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처음 발견된 건 2021년 봄. 벌레에 물린 자국에 간지럼을 느낀 주민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모기 때문인 것으로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린 자국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데다, 모양도 달랐습니다. 경로당에서 같은 증상을 겪었다는 주민들이 늘어나며 벌레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벼룩에 잇따라 물린 아파트 주민의 다리.
해가 가며 벌레의 개체수가 늘어난 나머지, 주민들은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벌레가 통통 튀는 걸 발견했습니다. 길이 2~3mm, 자기 몸의 200배까지 뛸 수 있는 벼룩입니다.

올해는 경로당은 물론, 아파트 내부 현관과 침대, 소파까지 벼룩이 침투한 상황. 주민들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물린 자리를 긁다, 흉터까지 수십 군데 생겼습니다. 아파트 관계자는 "60세대가량의 주민 가운데 절반 이상이 피해를 겪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2025년에 벼룩…나타난 이유는?

그렇다면, 벼룩은 대체 왜,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현장에서 발견한 살아있는 벼룩. 앞서 주민들은 벼룩, 빈대, 진드기 가운데 하나로 의심했지만, 한국방역협회 소속사는 벼룩이 맞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벼룩은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해충입니다. 동물에 붙어 기생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과거엔 쥐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 '쥐벼룩'이라 불렀고, 최근에는 고양이를 통해 옮겨지며 '고양이벼룩'이라고도 불립니다.

실제로 아파트가 있는 동네에는 길고양이도 많았고, 방역 업체 관계자들이 아파트를 살펴본 결과, 준공 50년 차의 이 아파트에는 길고양이나 쥐가 쉴 곳도 많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이나 주민이 키우는 반려동물이, 인근의 길고양이나 쥐와 접촉해 벼룩에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왜 이 아파트만 심할까? 방역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런데 문제는, 주민들이 방역을 해도, 며칠만 지나면 다시 벼룩이 창궐했다고 합니다. 인근의 다른 주택들도 환경은 비슷한데, 유독 이 아파트에만 단지 전체에 걸쳐 수 년째 벼룩이 사리지지 않는 상황.

이 아파트만 다른 점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파트가 낡았다는 점과 인근에 동물이 오가는 건 근처의 다른 주택들도 마찬가지. 이 아파트만 가진 점이 뭘까요?

아파트 입구는 부산시 소유 숲과 맞닿아 있습니다.
주민들의 증언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벼룩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아파트 뒤편. 이곳의 아파트 입구는원시림에 가까울 정도로 빽빽한 숲과 맞닿아 있는데요, 밝은 색 바지를 입고 아파트와 숲 사이를 지나면 바지에 벼룩이 2~3마리씩 붙는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 자동차에 타면 차 안까지 따라 들어오기 때문에, 퇴근 후 독한 농약을 차 안에 뿌려놓기까지 하는 상황.

벼룩은 동물이나 털에 붙어 사는데, 왜 숲 얘기가 나올까요? 한국방역협회 소속 전문가 설명 들어보시죠.

"벼룩이 퍼지면 한 집만 피해를 입고 끝날 수도 있는데, 왜 아파트 전체로 퍼졌을까요? 한 가지 이유만 있진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숲에서 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벼룩은 쥐나 고양이같은 동물에 붙어 함꼐 다닐텐데, 동물들이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닐 때 당연히 숲을 거치겠죠.

벼룩도 흡혈하고 나면 쉴 곳이 필요한데, 아파트에서 실컷 흡혈하고, 근처에 온 동물에 다시 붙고, 숲에서 쉬다 다시 동물에 붙어 아파트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겁니다.

그늘지고 습한 데다, 나뭇잎도 많은 숲은 훌륭한 쉼터죠."

(한국방역협회 소속 부산 OO방역 부사장)

한 마디로 숲이 벼룩의 '쉼터' 역할을 하는 건데요. 벼룩이 숲에서 쉬며 개체수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유독 이 아파트에서만 오래, 그리고 많이 퍼졌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주민 "숲 정리해달라"…부산시 "예산 없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은 근본적인 벼룩 퇴치를 위해, 부산시에 숲의 앞부분만이라도 가지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 재산을 관리하는 담당자에게 돌아온 답은 "예산 부족".

주민들은 "부산시 소유 재산이 문제를 키웠다면, 시가 나서 해결해달라"고 말합니다.

현장 점검 중인 방역업체 직원을 바라보는 아파트 주민.
대책 없이 확산하는 벼룩이 동물들을 따라 인근 다른 아파트까지 퍼진다면, 사회적 비용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아닌 벼룩 대유행에, 주민들은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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