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열사병이라고요?”…지구는 뜨거운데 정책은 냉각 중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7.0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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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유럽은 말 그대로 펄펄 끓었습니다.
폭염 기사는 SNS를 장악했고,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 소식이 속출했습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선 온열 질환으로 숨진 사례가 연이어 보고됐고, 유럽 전역에선 지난 1주간 하루 평균 8명 이상이 폭염 관련 사망자로 집계됐습니다. 병원 이송자만 수백 명에 달합니다.
특파원으로 나와 있는 이곳 프랑스는 건축법상 건물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선풍기 하나로 나야 하는데, 한국의 냉방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인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여름이었습니다. 어지럽고 힘이 빠지는 탓에 여러 번 방문한 병원에서는 열사병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비타민을 먹고 얼음물을 잘 마시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 "유럽, 폭염으로 경제 성장률 0.5%p ↓… 전세계는 0.6%p↓"
폭염은 실질 경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보험사 Allianz는 유럽의 연간 GDP 성장률이 폭염으로만 0.5%p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전 세계로 보면 0.6%p 감소할 거라고 했습니다. 노동생산성 감소와 에너지 수요 폭증, 농업·식량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 2022년 유럽 폭염 당시 밀·올리브 등 작황 부진으로 식재료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올해 폭염으론 독일과 프랑스의 농작물 생산량은 10% 가까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벌써 관광·외식업계는 ‘여름 특수’가 아닌 ‘피해 복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이 와중에 유럽연합 "2040년 기후 목표 완화"
그런데, 유럽연합은 오히려 기후 목표를 완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지난 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2040년 온실가스 감축안'은 열사병에 걸린 저뿐만 아니라 환경단체와 시민사회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90% 이상 감축하자는 초안은 유지한다면서도, 최대 3%까지는 개발도상국 투자 등 외부 수단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문구가 포함된 겁니다.
그러니까, 탄소를 감축해야 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나무를 심거나 재생에너지 건립 등에 자금을 대는 것만으로도 '역내 감축분'으로 일부 인정해 주겠다는 겁니다. 기존의 유럽연합 기후 목표는 오롯이 연내 감축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럽연합 경제 규모 1위 독일의 요구가 반영됐습니다.
물론 온실가스 감축은 지역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과거 교토 의정서에 따라 선진국들이 개도국 사업을 통해 얻은 온실가스 감축량을 자국 실적으로 인정해 주었다가 사업 효과성과 신뢰성 부족 등으로 실패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전문가들도 유럽 내 탈탄소화 노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남겼습니다. 유럽 최대 환경단체 중 하나인 CAN Europe은 이번 EU 감축안이 ‘감축이 아닌 회피이며, 부유국이 기후책임을 개도국에 떠넘기는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올해 열리는 유엔기후총회도 '기대' 보다는 '우려'
올해 11월로 예정된 유엔기후총회도(COP30) 기대보다는 우려가 큽니다.
올해로 30회를 맞는 유엔기후총회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 190여 개국이 매년 한 번씩 모여서 '우리 온실가스 얼마나 줄일까'를 논의하는 회의입니다. 각국이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식 제출하고,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을 억제하려는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는 자리입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회의체)는 2018년 특별보고서에서 '1.5도를 넘는 순간 해수면 상승과 극단적 폭염, 생태계 붕괴 등 불가역적 피해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거든요.
의지와 다르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COP29에서도 선진국의 기후 기금 기여가 지지부진했고, 올해 역시 주요국이 감축 목표를 내지 않거나, 개발도상국 등에 감축 책임을 외주화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교황 "지구는 열병 걸렸다…지금 행동해야"
교황도 거듭 기후 위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2023년 발표한 라우다토 데움(Laudate Deum)에서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며 기후위기 대응의 속도와 효과적 실천을 촉구했습니다. 심지어 2024년에는 “지구는 열병을 앓고 있다(earth has a fever and is sick)”고까지 표현하며, 행동할 시간은 이미 지났다고 경고했습니다.
신임 레오 14세 교황도 지난 2일, "인간의 탐욕과 불의로 지구가 황폐해지고 있다"며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교황청은 오는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에 내놓을 메시지를 미리 공개하면서 "인간 활동으로 유발된 기후 변화가 초래한 극단적인 자연 현상들이 점점 더 잦아지고 강력해지고 있다"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모두에게 똑같이 미치지 않는.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배제된 이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환경 정의는 더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며, 사회적·경제적·인간적인 정의의 문제이자 신앙과 인간성의 표현"이라며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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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열사병이라고요?”…지구는 뜨거운데 정책은 냉각 중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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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7-04 06:02:01

올해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유럽은 말 그대로 펄펄 끓었습니다.
폭염 기사는 SNS를 장악했고,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 소식이 속출했습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선 온열 질환으로 숨진 사례가 연이어 보고됐고, 유럽 전역에선 지난 1주간 하루 평균 8명 이상이 폭염 관련 사망자로 집계됐습니다. 병원 이송자만 수백 명에 달합니다.
특파원으로 나와 있는 이곳 프랑스는 건축법상 건물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선풍기 하나로 나야 하는데, 한국의 냉방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인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여름이었습니다. 어지럽고 힘이 빠지는 탓에 여러 번 방문한 병원에서는 열사병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비타민을 먹고 얼음물을 잘 마시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 "유럽, 폭염으로 경제 성장률 0.5%p ↓… 전세계는 0.6%p↓"
폭염은 실질 경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보험사 Allianz는 유럽의 연간 GDP 성장률이 폭염으로만 0.5%p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전 세계로 보면 0.6%p 감소할 거라고 했습니다. 노동생산성 감소와 에너지 수요 폭증, 농업·식량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 2022년 유럽 폭염 당시 밀·올리브 등 작황 부진으로 식재료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올해 폭염으론 독일과 프랑스의 농작물 생산량은 10% 가까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벌써 관광·외식업계는 ‘여름 특수’가 아닌 ‘피해 복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이 와중에 유럽연합 "2040년 기후 목표 완화"
그런데, 유럽연합은 오히려 기후 목표를 완화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지난 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2040년 온실가스 감축안'은 열사병에 걸린 저뿐만 아니라 환경단체와 시민사회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90% 이상 감축하자는 초안은 유지한다면서도, 최대 3%까지는 개발도상국 투자 등 외부 수단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문구가 포함된 겁니다.
그러니까, 탄소를 감축해야 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나무를 심거나 재생에너지 건립 등에 자금을 대는 것만으로도 '역내 감축분'으로 일부 인정해 주겠다는 겁니다. 기존의 유럽연합 기후 목표는 오롯이 연내 감축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럽연합 경제 규모 1위 독일의 요구가 반영됐습니다.
물론 온실가스 감축은 지역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과거 교토 의정서에 따라 선진국들이 개도국 사업을 통해 얻은 온실가스 감축량을 자국 실적으로 인정해 주었다가 사업 효과성과 신뢰성 부족 등으로 실패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전문가들도 유럽 내 탈탄소화 노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남겼습니다. 유럽 최대 환경단체 중 하나인 CAN Europe은 이번 EU 감축안이 ‘감축이 아닌 회피이며, 부유국이 기후책임을 개도국에 떠넘기는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올해 열리는 유엔기후총회도 '기대' 보다는 '우려'
올해 11월로 예정된 유엔기후총회도(COP30) 기대보다는 우려가 큽니다.
올해로 30회를 맞는 유엔기후총회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 190여 개국이 매년 한 번씩 모여서 '우리 온실가스 얼마나 줄일까'를 논의하는 회의입니다. 각국이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식 제출하고,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을 억제하려는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는 자리입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회의체)는 2018년 특별보고서에서 '1.5도를 넘는 순간 해수면 상승과 극단적 폭염, 생태계 붕괴 등 불가역적 피해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거든요.
의지와 다르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COP29에서도 선진국의 기후 기금 기여가 지지부진했고, 올해 역시 주요국이 감축 목표를 내지 않거나, 개발도상국 등에 감축 책임을 외주화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교황 "지구는 열병 걸렸다…지금 행동해야"
교황도 거듭 기후 위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은 2023년 발표한 라우다토 데움(Laudate Deum)에서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며 기후위기 대응의 속도와 효과적 실천을 촉구했습니다. 심지어 2024년에는 “지구는 열병을 앓고 있다(earth has a fever and is sick)”고까지 표현하며, 행동할 시간은 이미 지났다고 경고했습니다.
신임 레오 14세 교황도 지난 2일, "인간의 탐욕과 불의로 지구가 황폐해지고 있다"며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교황청은 오는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에 내놓을 메시지를 미리 공개하면서 "인간 활동으로 유발된 기후 변화가 초래한 극단적인 자연 현상들이 점점 더 잦아지고 강력해지고 있다"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가 모두에게 똑같이 미치지 않는.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배제된 이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환경 정의는 더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며, 사회적·경제적·인간적인 정의의 문제이자 신앙과 인간성의 표현"이라며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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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진 기자 hosk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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