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들 “진실 밝혀져 다행”
입력 2006.01.26 (22:05)
수정 2018.08.29 (15: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동백림 사건으로 억울한 고초를 겪었던 관련자들은 때늦은 발표지만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덕원 기자입니다.
<리포트>
유럽의 현대음악과 한국음악의 융합으로 유럽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윤이상 선생은 지난 1963년 평양을 방문한 것이 화근이 돼 동백림 사건의 주범격으로 2년 동안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뒤 독일 정부의 탄원등으로 석방된 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지난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윤이상 선생은 사후 남과 북에서 기념 재단이 설립되고 음악회가 개최되는 등 부활했지만 이념의 굴레는 아직도 여전합니다.
<인터뷰> 윤인숙(故 윤이상 선생 제자) : "그분의 작품이라든가 음악 세계가 좀 더 큰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 심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독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 간첩 협의로 확대되면서 6개월 동안의 모진 고초를 겪은 귀천의 천상병 시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는 그의 시 귀천은 13년 전 천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뒤 부인에 의해 '찻집'으로 다시 태어나 시인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녹취> 목순옥(故 천상병 시인 부인) : "남편이 이 소식 들었다면 "그것봐 진실은 이기는 거야" 이렇게 얘기 하겠죠".
세계적인 화가 故 이응노 화백의 가족들 역시 40년 만에 간첩 혐의를 벗었다는 소식에 이 화백이 오해를 풀지 못하고 이국에서 돌아가신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동백림 사건으로 억울한 고초를 겪었던 관련자들은 때늦은 발표지만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덕원 기자입니다.
<리포트>
유럽의 현대음악과 한국음악의 융합으로 유럽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윤이상 선생은 지난 1963년 평양을 방문한 것이 화근이 돼 동백림 사건의 주범격으로 2년 동안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뒤 독일 정부의 탄원등으로 석방된 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지난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윤이상 선생은 사후 남과 북에서 기념 재단이 설립되고 음악회가 개최되는 등 부활했지만 이념의 굴레는 아직도 여전합니다.
<인터뷰> 윤인숙(故 윤이상 선생 제자) : "그분의 작품이라든가 음악 세계가 좀 더 큰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 심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독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 간첩 협의로 확대되면서 6개월 동안의 모진 고초를 겪은 귀천의 천상병 시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는 그의 시 귀천은 13년 전 천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뒤 부인에 의해 '찻집'으로 다시 태어나 시인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녹취> 목순옥(故 천상병 시인 부인) : "남편이 이 소식 들었다면 "그것봐 진실은 이기는 거야" 이렇게 얘기 하겠죠".
세계적인 화가 故 이응노 화백의 가족들 역시 40년 만에 간첩 혐의를 벗었다는 소식에 이 화백이 오해를 풀지 못하고 이국에서 돌아가신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관련자들 “진실 밝혀져 다행”
-
- 입력 2006-01-26 21:16:53
-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멘트>
동백림 사건으로 억울한 고초를 겪었던 관련자들은 때늦은 발표지만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덕원 기자입니다.
<리포트>
유럽의 현대음악과 한국음악의 융합으로 유럽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윤이상 선생은 지난 1963년 평양을 방문한 것이 화근이 돼 동백림 사건의 주범격으로 2년 동안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뒤 독일 정부의 탄원등으로 석방된 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결국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지난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윤이상 선생은 사후 남과 북에서 기념 재단이 설립되고 음악회가 개최되는 등 부활했지만 이념의 굴레는 아직도 여전합니다.
<인터뷰> 윤인숙(故 윤이상 선생 제자) : "그분의 작품이라든가 음악 세계가 좀 더 큰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 심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동독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 간첩 협의로 확대되면서 6개월 동안의 모진 고초를 겪은 귀천의 천상병 시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는 그의 시 귀천은 13년 전 천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뒤 부인에 의해 '찻집'으로 다시 태어나 시인의 존재를 알리고 있습니다.
<녹취> 목순옥(故 천상병 시인 부인) : "남편이 이 소식 들었다면 "그것봐 진실은 이기는 거야" 이렇게 얘기 하겠죠".
세계적인 화가 故 이응노 화백의 가족들 역시 40년 만에 간첩 혐의를 벗었다는 소식에 이 화백이 오해를 풀지 못하고 이국에서 돌아가신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KBS 뉴스 김덕원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