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K] 물난리 막겠다더니…인력도 전기도 없었다

입력 2025.07.23 (21:45) 수정 2025.07.2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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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주 폭우가 특히 두려웠던 지역, 5년 전 물난리를 겪은 구례였는데요.

이번 폭우 때도 애써 준비한 배수펌프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펌프장을 취재해 보니 재난 상황 때 가동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고, 3년 전부터 문제를 알았는데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찾아가는K 김대영 뉴스캐스터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오이를 재배하는 구례군 사도리의 한 비닐하우스.

수확을 일주일 앞둔 오이는 뿌리가 상했습니다.

예상 수확량의 3분의 1만 건져도 다행인 수준입니다.

[최병수/오이 재배 : "햇볕 나면 금방이야, 저것도 지금 다 죽었어."]

17일 하루에만 218㎜의 비가 내리며 침수 피해가 커진 저지대 비닐하우스.

대처할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2020년 수해 대책으로 지난해 3월 완공된 '사도 배수펌프장'이 비닐하우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당 최고 50밀리미터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17일 새벽부터 밤까지 펌프장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담당자들은 CCTV로 상황을 보고 있었고 현장 확인도 했지만,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해 사도 펌프장을 가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판단과 달리, 농민은 오후 5시부터 양수기로 직접 배수로 물을 빼내고 있었고 밤 9시엔 펌프장을 가동해 달라고 구례군에 요청했습니다.

10분 뒤에 군 담당자가 도착했고 1시간 뒤에는 또 다른 공무원이 왔지만 펌프장은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펌프장에 추가 전기 가설 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유사시에만 예비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상태였던 겁니다.

결국 밤 10시 50분쯤 구례군이 한전에 연락했고, 펌프장은 밤 11시 50분에야 가동될 수 있었습니다.

농민이 직접 양수기를 끌고 나온 지 6시간, 구례군에 요청한 지 3시간 만입니다.

지금은 물이 빠져 있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침수 흔적이 가득합니다.

이 일대 농경지가 비슷한 피해를 겪었는데요.

배수펌프가 제 역할을 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배수펌프장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단 겁니다.

지난해 3월 완공된 구례 펌프장이 7곳 가운데 4곳이 예비 전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케이블과 전봇대 설치 등의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상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펌프장 관리 인력들이라도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모의 훈련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기막힌 건 관계 기관이 이런 문제를 3년 전인 2022년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구례군은 이미 2022년 5월 시설부담금 10억여 원을 납부하고 한전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전기 공급을 촉구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한전 측은 구례군과의 사전 협의가 불발돼 도로 점용 허가 등의 절차를 밟을 수 없었다고 맞섭니다.

전봇대가 설치될 지역의 민원이 우려됐던 걸로 전해지지만, 지난 3년 동안 해결 노력은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5년 전 수해를 겪고도, 3년 전 문제를 인지하고도, 1년 전 시설을 완공하고도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셈입니다.

[윤효근/구례군 건설과장 : "(사도 펌프장) 전기가 안 들어왔다는 걸 알고 다시 또 한전에 공문도 보내고 유선으로 전화도 하고 그렇게 요청을 했는데 사고 당일까지 전기 공급이 안 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극한 호우에 단단히 대비해야 했던 지역, 바로 5년 전 기록적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었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배수펌프장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 전기 공급을 3년 동안 손 놓은 이유, 관계 당국이 점검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는 반복될 겁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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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23 21:45:04
    • 수정2025-07-23 21:53:50
    뉴스9(광주)
[앵커]

지난 주 폭우가 특히 두려웠던 지역, 5년 전 물난리를 겪은 구례였는데요.

이번 폭우 때도 애써 준비한 배수펌프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펌프장을 취재해 보니 재난 상황 때 가동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고, 3년 전부터 문제를 알았는데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찾아가는K 김대영 뉴스캐스터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오이를 재배하는 구례군 사도리의 한 비닐하우스.

수확을 일주일 앞둔 오이는 뿌리가 상했습니다.

예상 수확량의 3분의 1만 건져도 다행인 수준입니다.

[최병수/오이 재배 : "햇볕 나면 금방이야, 저것도 지금 다 죽었어."]

17일 하루에만 218㎜의 비가 내리며 침수 피해가 커진 저지대 비닐하우스.

대처할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2020년 수해 대책으로 지난해 3월 완공된 '사도 배수펌프장'이 비닐하우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당 최고 50밀리미터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17일 새벽부터 밤까지 펌프장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담당자들은 CCTV로 상황을 보고 있었고 현장 확인도 했지만,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해 사도 펌프장을 가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판단과 달리, 농민은 오후 5시부터 양수기로 직접 배수로 물을 빼내고 있었고 밤 9시엔 펌프장을 가동해 달라고 구례군에 요청했습니다.

10분 뒤에 군 담당자가 도착했고 1시간 뒤에는 또 다른 공무원이 왔지만 펌프장은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전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펌프장에 추가 전기 가설 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유사시에만 예비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상태였던 겁니다.

결국 밤 10시 50분쯤 구례군이 한전에 연락했고, 펌프장은 밤 11시 50분에야 가동될 수 있었습니다.

농민이 직접 양수기를 끌고 나온 지 6시간, 구례군에 요청한 지 3시간 만입니다.

지금은 물이 빠져 있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침수 흔적이 가득합니다.

이 일대 농경지가 비슷한 피해를 겪었는데요.

배수펌프가 제 역할을 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배수펌프장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단 겁니다.

지난해 3월 완공된 구례 펌프장이 7곳 가운데 4곳이 예비 전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케이블과 전봇대 설치 등의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상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펌프장 관리 인력들이라도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모의 훈련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기막힌 건 관계 기관이 이런 문제를 3년 전인 2022년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구례군은 이미 2022년 5월 시설부담금 10억여 원을 납부하고 한전에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 전기 공급을 촉구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한전 측은 구례군과의 사전 협의가 불발돼 도로 점용 허가 등의 절차를 밟을 수 없었다고 맞섭니다.

전봇대가 설치될 지역의 민원이 우려됐던 걸로 전해지지만, 지난 3년 동안 해결 노력은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5년 전 수해를 겪고도, 3년 전 문제를 인지하고도, 1년 전 시설을 완공하고도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셈입니다.

[윤효근/구례군 건설과장 : "(사도 펌프장) 전기가 안 들어왔다는 걸 알고 다시 또 한전에 공문도 보내고 유선으로 전화도 하고 그렇게 요청을 했는데 사고 당일까지 전기 공급이 안 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극한 호우에 단단히 대비해야 했던 지역, 바로 5년 전 기록적 수해를 겪은 구례군이었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배수펌프장이 무용지물이 된 이유, 전기 공급을 3년 동안 손 놓은 이유, 관계 당국이 점검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는 반복될 겁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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