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사고 조사 내용을 설명하다 유가족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사조위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사 결과 자체를 두고 사조위와 유가족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유가족은 물론 현직 조종사들과 항공 전문가 다수가 비슷한 목소리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 "조종사가 엔진전력장치(IDG) 껐다"…근거는?
바로 사고기 우측 엔진전력장치(IDG)를 조종사가 끈 것으로 판단한다는 사조위의 설명입니다.
엔진전력장치, IDG(Integrated Driven Generator)란 비행기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좌우 엔진 마다 2개씩 장착돼 있습니다.
사고 기체의 IDG 상태를 분해해 검사해봤더니, 오른쪽 IDG가 엔진으로부터 분리돼 있었다는 게 사조위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사고 당시 기내 전기 공급이 끊겼고, 비행기 블랙박스(FDR, CVR)도 모두 꺼졌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IDG는 어떤 상황에서 분리되는 걸까요?

사고기 기종, 보잉 737의 매뉴얼입니다.
IDG가 분리되는 조건을 2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수동에 의한 IDG 연결 해제입니다. IDG 스위치를 직접 사람이 손으로 끄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번째는 열에 의한 연결 해제. IDG의 윤활유 온도가 너무 뜨거워지면 자동으로 연결을 끊는 절차를 밟습니다.
사조위는 사고기의 IDG 윤활유 온도는 높지 않았으니, 조종사가 껐을 거란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 매뉴얼 밖 상황, 검증됐나?
매뉴얼에 담겨 있는 조건 외에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비행기 엔진 손상으로 출력이 급격하게 낮아져 엔진의 분당 회전수(RPM)가 줄어들 때도 IDG가 자동 분리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정상적인 엔진 구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IDG가 스스로 연결을 끊어버리는 항공기의 설계 시스템입니다.
여기에 IDG 자체 결함 여부와 기체의 외부 충돌로 인한 분리 가능성도 철처한 검증 대상입니다.
■ 아래로 내려진 스위치, 조종사 조작 여부는 미궁
조종사가 껐다는 IDG 스위치도 의문 투성이입니다.
사조위 설명대로면, 조종사가 조종석 천장에 달린 스위치를 직접 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스위치는 다른 장치들과 달리 덮개로 씌워져 있습니다. 덮개를 열면 얇은 구리선으로 감겨 있습니다.
스위치 조작 과정에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건데, 그만큼 신중하게 다뤄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 이 스위치는 위로 올리면 꺼지고 아래로 내리면 켜지는데, 스프링 방식이어서 위로 올렸던 스위치는 이내 아래로 내려오도록 제작됐습니다.
사고기 잔해에서 확인된 IDG 스위치는 아래로 향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모습만 봐서는 조종사가 IDG를 직접 껐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사조위는 조종사가 직접 끈 것으로 본다고 하면서도, 스위치의 상태나 조작 흔적 등 직·간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매뉴얼상 2가지 조건 중 하나가 틀리니 남은 하나가 답이라는 식입니다.
■ 24초 안에 수행한 IDG 분리?…"근거 공개해야"
사조위 설명대로면, 비행기 블랙박스가 꺼지기 직전 IDG가 꺼져야 합니다. 먼저 전기가 끊겨야 블랙박스도 꺼지기 때문입니다.
사고기가 조류와 충돌하고 비행기 블랙박스가 꺼지기 까지 24초가 걸렸습니다.
두 조종사가 비상절차를 수행하면서 복행을 시도하고 착륙할 활주로를 정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한 현직 조종사는 "이 긴박한 상황에서 IDG 스위치를 찾아 끄는 행위는 비상 절차 매뉴얼에도 있지 않을 뿐더러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작업"이라며 "사조위가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희준 극동대 항공정비학과 교수는 "비행기 블랙박스(FDR)가 꺼지기 전까지 IDG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며 "관련 자료를 공개하거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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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진 엔진전력 스위치, “조종사가 껐다” 근거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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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7-26 07:01:06

지난 주말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사고 조사 내용을 설명하다 유가족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사조위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사 결과 자체를 두고 사조위와 유가족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은 한둘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유가족은 물론 현직 조종사들과 항공 전문가 다수가 비슷한 목소리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 "조종사가 엔진전력장치(IDG) 껐다"…근거는?
바로 사고기 우측 엔진전력장치(IDG)를 조종사가 끈 것으로 판단한다는 사조위의 설명입니다.
엔진전력장치, IDG(Integrated Driven Generator)란 비행기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좌우 엔진 마다 2개씩 장착돼 있습니다.
사고 기체의 IDG 상태를 분해해 검사해봤더니, 오른쪽 IDG가 엔진으로부터 분리돼 있었다는 게 사조위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사고 당시 기내 전기 공급이 끊겼고, 비행기 블랙박스(FDR, CVR)도 모두 꺼졌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IDG는 어떤 상황에서 분리되는 걸까요?

사고기 기종, 보잉 737의 매뉴얼입니다.
IDG가 분리되는 조건을 2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수동에 의한 IDG 연결 해제입니다. IDG 스위치를 직접 사람이 손으로 끄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번째는 열에 의한 연결 해제. IDG의 윤활유 온도가 너무 뜨거워지면 자동으로 연결을 끊는 절차를 밟습니다.
사조위는 사고기의 IDG 윤활유 온도는 높지 않았으니, 조종사가 껐을 거란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 매뉴얼 밖 상황, 검증됐나?
매뉴얼에 담겨 있는 조건 외에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비행기 엔진 손상으로 출력이 급격하게 낮아져 엔진의 분당 회전수(RPM)가 줄어들 때도 IDG가 자동 분리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정상적인 엔진 구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IDG가 스스로 연결을 끊어버리는 항공기의 설계 시스템입니다.
여기에 IDG 자체 결함 여부와 기체의 외부 충돌로 인한 분리 가능성도 철처한 검증 대상입니다.
■ 아래로 내려진 스위치, 조종사 조작 여부는 미궁
조종사가 껐다는 IDG 스위치도 의문 투성이입니다.
사조위 설명대로면, 조종사가 조종석 천장에 달린 스위치를 직접 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스위치는 다른 장치들과 달리 덮개로 씌워져 있습니다. 덮개를 열면 얇은 구리선으로 감겨 있습니다.
스위치 조작 과정에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건데, 그만큼 신중하게 다뤄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 이 스위치는 위로 올리면 꺼지고 아래로 내리면 켜지는데, 스프링 방식이어서 위로 올렸던 스위치는 이내 아래로 내려오도록 제작됐습니다.
사고기 잔해에서 확인된 IDG 스위치는 아래로 향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모습만 봐서는 조종사가 IDG를 직접 껐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사조위는 조종사가 직접 끈 것으로 본다고 하면서도, 스위치의 상태나 조작 흔적 등 직·간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매뉴얼상 2가지 조건 중 하나가 틀리니 남은 하나가 답이라는 식입니다.
■ 24초 안에 수행한 IDG 분리?…"근거 공개해야"
사조위 설명대로면, 비행기 블랙박스가 꺼지기 직전 IDG가 꺼져야 합니다. 먼저 전기가 끊겨야 블랙박스도 꺼지기 때문입니다.
사고기가 조류와 충돌하고 비행기 블랙박스가 꺼지기 까지 24초가 걸렸습니다.
두 조종사가 비상절차를 수행하면서 복행을 시도하고 착륙할 활주로를 정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한 현직 조종사는 "이 긴박한 상황에서 IDG 스위치를 찾아 끄는 행위는 비상 절차 매뉴얼에도 있지 않을 뿐더러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작업"이라며 "사조위가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희준 극동대 항공정비학과 교수는 "비행기 블랙박스(FDR)가 꺼지기 전까지 IDG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며 "관련 자료를 공개하거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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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writt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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