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일주일 사이 4건의 '테러 협박'이 전국의 공공시설로 발송됐습니다. '학생들에게 황산 테러를 하겠다'부터 '에버랜드에 폭탄을 설치했다'까지 내용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된 특징이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듯한 문장을 구사하고, 무엇보다 '가라사와 다카히로'의 이름으로 발송됐다는 겁니다.
'가라사와 다카히로'는 누구일까요? 우리 일상을 뒤흔들고 있는 이 협박범을 왜 빨리 못 잡고 있는 걸까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부터 에버랜드까지…"폭탄을 설치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 대전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한 출처불명의 팩스 한 장이 들어왔습니다. 팩스에 적혀있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버랜드 리조트에 플라스틱 폭약을 사용한 살상력이 높은 폭탄 4만여 개를 설치했습니다. 폭발 시간은 8월 13일 오후 3시 34분입니다." - 에버랜드 폭파 협박 팩스 |
대전출입국관리소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비상령을 내리고 어제 정오부터 경찰특공대와 기동순찰대 등 경찰관들을 투입해 수색에 나섰습니다.
에버랜드 측은 수색을 하는 동안 신규 방문객의 입장을 통제했으며, 기존 이용객들에게는 안내방송을 통해 수색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수색은 네 시간가량 이어졌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일엔 국가인권위원회에 "광주광역시의 한 백화점을 폭파하겠다"는 팩스가 들어왔습니다.
그보다 하루 전인 10일에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팩스가, 7일에는 "한국 학생과 교사들에게 '황산 테러'를 하겠다"는 협박 팩스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외국인 주민센터로 발송됐습니다.
네 건의 팩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팩스 발송 번호가 같았고, 일본어로 변호사를 자처하며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겁니다.
팩스를 발송한 번호를 추적하면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일본 변호사 '가라사와 다카히로'입니다.
■ 일본서부터 명의 사칭 이어져…한국서도 2년 새 45건
'가라사와 다카히로(唐澤貴洋)'는 실존하는 일본 변호사입니다.
그는 2012년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2ch’에서 악플에 시달리던 고등학생 변호를 맡았다가 일본 우익의 사이버 테러 표적이 됐습니다.
우익 네티즌들은 그를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를 일으켰던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를 패러디한 가상의 종교 ‘항심교’ 교주로 삼은 뒤, 그의 명의를 도용한 메일과 팩스를 공공시설과 정부 기관에 보내 허위 테러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범죄는 일본에서 일종의 '밈(인터넷 유행)'처럼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은 최근 잇달아 접수되는 '폭파 협박'들도 일본 변호사 사칭 테러 협박 사건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송되는 팩스와 이메일에서 빈번하게 '가라사와'의 이름이 언급되고, '항심교'를 연상하게 하는 표현이 일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지난 2023년 8월 "이재명 대표를 살해하지 않으면 국립중앙박물관을 폭파시키겠다"는 이메일을 시작으로 올해 초까지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경찰이 파악한 사건만 2년 새 45건에 이릅니다. 전자우편이 18건이며 팩스는 27건입니다.
■ 용의자 특정부터 난항…"공조 수사 속도 높일 것"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년 전부터 정체불명의 팩스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추적해 왔지만, 아직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메일과 팩스가 일본에서 발송된 거로 추정되는데, 이를 추적하기 위해선 일본 사법당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협조를 기다리는 동안 범인이 인터넷 접속 경로(IP)나 팩스 통신망에서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경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공조수사와 형사사법공조를 3회와 5회씩 요청했고, 조만간 일본 수사기관과 공조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테러 실행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공권력이 낭비되는 만큼 공조수사를 서두르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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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뒤흔드는 ‘가라사와 다카히로’ 명의 폭파 협박…그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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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8-15 09:00:18

최근 일주일 사이 4건의 '테러 협박'이 전국의 공공시설로 발송됐습니다. '학생들에게 황산 테러를 하겠다'부터 '에버랜드에 폭탄을 설치했다'까지 내용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된 특징이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듯한 문장을 구사하고, 무엇보다 '가라사와 다카히로'의 이름으로 발송됐다는 겁니다.
'가라사와 다카히로'는 누구일까요? 우리 일상을 뒤흔들고 있는 이 협박범을 왜 빨리 못 잡고 있는 걸까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부터 에버랜드까지…"폭탄을 설치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 대전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한 출처불명의 팩스 한 장이 들어왔습니다. 팩스에 적혀있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버랜드 리조트에 플라스틱 폭약을 사용한 살상력이 높은 폭탄 4만여 개를 설치했습니다. 폭발 시간은 8월 13일 오후 3시 34분입니다." - 에버랜드 폭파 협박 팩스 |
대전출입국관리소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비상령을 내리고 어제 정오부터 경찰특공대와 기동순찰대 등 경찰관들을 투입해 수색에 나섰습니다.
에버랜드 측은 수색을 하는 동안 신규 방문객의 입장을 통제했으며, 기존 이용객들에게는 안내방송을 통해 수색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수색은 네 시간가량 이어졌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1일엔 국가인권위원회에 "광주광역시의 한 백화점을 폭파하겠다"는 팩스가 들어왔습니다.
그보다 하루 전인 10일에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팩스가, 7일에는 "한국 학생과 교사들에게 '황산 테러'를 하겠다"는 협박 팩스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외국인 주민센터로 발송됐습니다.
네 건의 팩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팩스 발송 번호가 같았고, 일본어로 변호사를 자처하며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겁니다.
팩스를 발송한 번호를 추적하면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일본 변호사 '가라사와 다카히로'입니다.
■ 일본서부터 명의 사칭 이어져…한국서도 2년 새 45건
'가라사와 다카히로(唐澤貴洋)'는 실존하는 일본 변호사입니다.
그는 2012년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2ch’에서 악플에 시달리던 고등학생 변호를 맡았다가 일본 우익의 사이버 테러 표적이 됐습니다.
우익 네티즌들은 그를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를 일으켰던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를 패러디한 가상의 종교 ‘항심교’ 교주로 삼은 뒤, 그의 명의를 도용한 메일과 팩스를 공공시설과 정부 기관에 보내 허위 테러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범죄는 일본에서 일종의 '밈(인터넷 유행)'처럼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은 최근 잇달아 접수되는 '폭파 협박'들도 일본 변호사 사칭 테러 협박 사건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발송되는 팩스와 이메일에서 빈번하게 '가라사와'의 이름이 언급되고, '항심교'를 연상하게 하는 표현이 일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지난 2023년 8월 "이재명 대표를 살해하지 않으면 국립중앙박물관을 폭파시키겠다"는 이메일을 시작으로 올해 초까지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경찰이 파악한 사건만 2년 새 45건에 이릅니다. 전자우편이 18건이며 팩스는 27건입니다.
■ 용의자 특정부터 난항…"공조 수사 속도 높일 것"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년 전부터 정체불명의 팩스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추적해 왔지만, 아직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메일과 팩스가 일본에서 발송된 거로 추정되는데, 이를 추적하기 위해선 일본 사법당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협조를 기다리는 동안 범인이 인터넷 접속 경로(IP)나 팩스 통신망에서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경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공조수사와 형사사법공조를 3회와 5회씩 요청했고, 조만간 일본 수사기관과 공조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테러 실행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공권력이 낭비되는 만큼 공조수사를 서두르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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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담 기자 boda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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