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있어도 못 쓰는 ‘치매머니’

입력 2025.08.1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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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치매 환자 수는 97만 명. 내년엔 100만 명이 넘을 거라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 환자입니다.

KBS 뉴스
치매 환자들이 평생 일궈온 자산, '치매머니'는 154조 원으로 우리나라 GDP의 6.4% 정도로 추산됩니다.

치매가 오면 돈이 묶이고 삶이 멈추는 2025년 대한민국.

더 큰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박인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지금 은퇴하는 시기가 되었고 연세가 올라갈수록 치매 환자가 늘어나게 되거든요. 150조 정도 규모가 아니라 훨씬 큰 규모의 재산들이 사장되는.

치매 등 인지 능력이 저하된 성인을 보호하고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성년 후견 제도.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는 오히려 적극적인 자산 활용을 막는 족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오경환/치매 아버지 법정후견인
있어도 못 쓰고 있는 것도 관리도 제가 하지만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후견 업무를 저처럼 진행하신다고 하면 저는 솔직히 말해서 말리고 싶습니다. 10명이면 10명 다 후회하실 겁니다.

방치된 치매머니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KBS 뉴스
치매 노인을 속여 수천만 원을 가로챈 60대 남성이 경찰에 구속됐습니다.

KBS뉴스
치매가 있는 80대 자산가에게 접근해 90억 원을 빼돌린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치매 환자의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존엄한 노후를 위해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노인보호전문기관 대표인 오복경 관장.

치매에 걸린 뒤 평생 일군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정 씨 할아버지의 과거 흔적을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부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떤 여자분하고 같이 사시나요?
(복잡하긴 해. 옆집에 살던 사람하고 혼자 있으니까 같이 또 살았어.)
그렇게 하다가 여자분 집으로 갔는데 본인 집 명의가 여자분 앞으로? (바로 줬어요) 줬어요? (예)

30년을 살아온 집 명의를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웃집 여성에게 넘긴 정 할아버지.

오랜 시간 함께 근무했다는 정 할아버지의 직장 동료는 내밀한 이야기까지 건넵니다.


6천만 원인가 현찰로 갚아줬대 빚을 (여자 빚을 갚아줬다고요?) 사기당한 것 같아 단시간 별로 살지도 못했어.

당시 정 할아버지는 이미 치매를 앓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는 무슨 문제가 없었어요?
(인지 능력이 떨어지니까 운행하다 보면 노선으로 가야 되는데 다른 노선으로 몇 번 갔대.)

오 관장과 정 할아버지가 처음 만난 건 3년 전.

신고를 받고 나간 현장에서는 치매로 의심되는 정 할아버지가 홀로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정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오고 불과 2년 사이 본인 명의의 집과 2억 원이 넘는 예금은 모두 사라진 뒤였습니다.

돌봐줄 가족이 없었지만, 정부의 도움 역시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 관장은 결국, 법원으로부터 치매에 걸린 정 할아버지를 대신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정후견인으로 선임됐습니다.

이후 오 갈 곳 없는 정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오 관장은 정 씨의 돈을 빌려 갚지 않거나 가로챈 이들을 찾아내 직접 변제 각서를 받고, 민사 소송도 진행했습니다.

어렵게 되찾은 돈을 정 씨를 치료하고 돌보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오 관장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복경/충남 남부 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당신이 평생을 모아놓은 돈은 그 짧은 시간에 다 타인에게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라고 저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제도나 예방을 할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가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저는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이 정말 심각하다.

의사 결정 능력에 문제가 있는 성인의 신원 보호와 자산 관리를 위해 우리나라는 2013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건강할 때 미리 신뢰하는 사람과 계약과 공증을 통해 자산 관리 계획 등을 세워두고 치매가 오면 법원이 후견감독인을 선임해 감독하도록 하는 ‘임의 후견’과 치매에 걸린 뒤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권한을 부여하고 직접 감독하는 ‘법정후견’으로 크게 나뉩니다.


정 할아버지의 법정후견인 선임 절차를 도왔던 배광렬 변호사는 돌봐줄 가족이 없는 치매 환자의 자산은 범죄의 표적이 될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법적 보호 장치가 있어도 스스로 법원에 법정후견인 선임을 요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배광렬 /사단법인 온율 공익변호사
정말 정말 운이 좋았던 케이스예요. 그런 관장님을 만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재산을 일궈서 그냥 본인이 스스로 잘 이렇게 생활해 왔던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가장 위험한 상황입니다. 치매가 와버리면 나밖에 없는데 내가 내 재산을 관리 못하고 내 몸을 건사하지 못하니까.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돈을 빼간다든가 뭐 그 사람이 양자로 들어가 가지고 돈을 다 상속으로 받아 가버린다든가 그런 일이 발생해도 누구도 모릅니다

돌봐줄 가족이 없는 고령층은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건강할 때 먼저 임의 후견을 계약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임의 후견 계약이 실제 개시된 사례는 103건에 불과합니다.


배광렬 /사단법인 온율 공익변호사
임의 후견 제도 자체도 우리나라가 좀 굉장히 불편하게 되어 있긴 해요. 후견 계약하려고 계약 상담하지, 공증 받지, 공증하는 데 돈 내지, 법원에 청구하는 데 돈 냈지. 그랬더니 이제는 감독인을 선임하고 감독인한테도 돈을 줘야 한 대요. 이것을 누가 하겠어요?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법정후견인 오경환 씨.

오늘은 휴가를 내고 서둘러 40분 거리의 법원으로 향합니다.

아버지의 법정후견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인 ‘후견등기사항증명서’는 직접 법원을 방문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오경환/치매 아버지 법정후견인
인터넷이나 주민센터 이런 가까운 곳에서 발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은행, 관공서, 일반적으로 보험회사까지도 이 등기사항 증명서류 최신 본으로 항상 요구하고 있고요. 석 달이 지나면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어떤 업무도 볼 수 없습니다.


법원은 피후견인인 아버지의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서도, 동시에 비대면 금융거래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4년 전 오 씨는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자, 생각지 못한 문제에 마주했습니다.

아버지의 자산을 매각해 생활비와 돌봄비용 등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모든 금융거래가 막혔습니다. 있어도 쓰지 못하는 ‘치매머니’가 된 겁니다.


가족이라 해도 법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지 않으면 타인의 재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생소한 법률 절차를 알아볼 수 있는 곳도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관련 서류를 법원에 접수한 뒤 법정후견인 선임까지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후견인이 된 뒤에도 아버지의 운전면허 정지나 신분증 재발급 같은 단순 업무도 쉽게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법원이 허용한 자산 관리 권한은 제한된 금액의 생활비나 병원비를 사용하는 정도였습니다.

오경환/치매 아버지 법정후견인
치매 진단을 받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생각이 있더라도 모든 권한은 다 법원이 갖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주고 싶어도 주실 수 없습니다. 가정법원에 저희가 재산 처분에 관련된 청구도 요청해야 하고요. 그 청구를 요청해서 판사님께서 보고 합당한 처분일 경우에만 저희에게 이제 권한을 주십니다.

해마다 가정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후견 감독 보고서는 결국 변호사에게 맡겼습니다.

사용했던 모든 금전에 대한 내용을 작성해서 보고 올려야 됩니다. 너무 힘들어서 변호사 사무실에 맡겼습니다. 올해는 한 300만 원 이상 저희 소요가 됐고요.


국내 치매 환자 중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는 비율은 고작 1%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법원이 후견인 선임부터 감독까지 도맡고 있어 치매 환자의 자산을 ‘보호’하는 것만도 벅찬 상황입니다.

박인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역사회에서 후견인들을 지원하는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바로 가정법원하고 (후견인이) 다이렉트로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가정법원의 인력을 고려하면 친절하게 잘 상담해 주기 어렵거든요.가정법원은 걱정이 되는 거죠. 혹시 권한을 내가 부여했는데 감독 못하는 사이에 권한을 남용한다든지 부정행위를 한다든지 이런 것이 없을까 걱정을 하니까 보고서를 정식적으로 내라고, 후견 감독 사건으로 입건을 해서 관리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자산을 잘 쓸 수 있게 돕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제철웅/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후견 제도가 인지 능력이 떨어지신 분들의 재산을 좀 잘 쓸 수 있게끔 도와주는 제도인데. 감독에서의 목적도 감독보다는 지원의 목적이 있습니다. 치매 어르신들을 국가가 잘 보호해 줘야 하겠다,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겠다라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면은 그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가족이라든지 주변 사람들을 믿고 치매 환자가 실제로 편하게 자기 재산을 쓸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

우리 정부는 올봄 처음으로 치매머니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고령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은 154조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 GDP의 6.4%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2050년이면 치매 환자의 자산 규모가 500조에 달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박인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지금 은퇴하는 시기가 되었고 연세가 올라갈수록 치매 환자가 늘어나게 되거든요. 지금 150조 정도 규모가 아니라 훨씬 큰 규모의 재산들이 사장되는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손해인 현상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우리나라보다 20년 일찍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

84살 테라사와 미요코 씨는 돌봐줄 가족이 없어 혼자 살고 있지만 안심할 수 있습니다.

지역 성년후견센터와 계약한 임의 후견 덕분입니다.


사사키 유우/도쿄 시나가와구 성년후견센터
본인의 판단 능력이 저하되기 전 건강할 때, 예금 적금 관리를 부탁한다거나 부동산이나 우편 신청 등에 대해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만약 판단 능력이 저하되면 우리는 계약 내용을 후견인에게 그대로 인계해서 도와드리기 시작해요.

2002년 문을 연 도쿄 시나가와구의 성년후견센터.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기기 전 먼저 준비할 수 있는 임의 후견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코사나미 간오/도쿄 시나가와구 성년후견센터 소장
(임의후견은) 본인의 의사, 이렇게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본인이 결정해요.
후견인도 본인이 정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임의 후견이 성년후견제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결과 임의 후견 계약 건수는 10년 새 70% 넘게 증가했습니다.


아라이 마코토/일본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
지금까지 일본의 임의 후견은 이용률이 굉장히 낮았어요. 하지만 최근에 조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요. 그것도 큰 부자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이 이용하는 거죠. 그것이 점점 늘어난다면 좋은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1980년대 일본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고도성장의 수혜를 입은 세대는 그대로 부유한 노인이 됐고,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사인 ‘치매머니’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2000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한 일본.

하지만, 낯설고 불편한 법률 제도를 일본 국민은 외면했고 치매 환자의 자산은 각종 범죄에 노출됐습니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6년 성년후견제도 이용 촉진법을 제정해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습니다.

제도 개혁의 가장 큰 목표는 성년후견제도를 친근한 사회복지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라이 마코토/일본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
법원이 성년후견의 법률적인 부분은 담당하지만, 복지 부분은 사회복지협의회나 복지 담당이 책임지도록 확대됐어요. 그래서 성년후견제도 운영은 예전에는 법무성 담당이었지만 지금은 법무성과 후생노동성이 함께 담당합니다.


이를 위해 자치단체별로 성년후견센터와 같은 ‘중핵기관’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정부의 독려 속 기초자치단체의 80% 이상이 중핵기관을 설치했습니다.

남은 과제는 지역별 격차를 줄이는 겁니다.

아라이 마코토/일본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
일본 전체를 봤을 때 전혀 여유가 없는 지자체도 있어요. 그 지역을 어떤 식으로 지원할 것인가가
지금 우리의 큰 과제예요. 그곳은 후생노동성이 집중적으로 예산을 분배하는 거죠.
전국을 동일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풍족한 자치단체만 선진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면 곤란하니까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딴 도요타시.

이곳에도 8년 전, 중핵기관인 성년후견지원센터가 들어섰습니다.


성년후견제도 등에 대한 상담부터 법원의 심판 청구 과정까지 낯선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 시민들의 관심도 크게 늘었습니다.

나카타 수지/ 도요타시 성년후견지원센터
미래를 위해서 미리 알아두겠다는 거죠. 지금 당장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전체 상담 건수 중에
미래를 대비해서 알아두겠다고 상담하러 오시는 분이 절반 가까이 돼요.


치매 환자의 자산을 자신을 위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가장 큰 변화입니다.

안도 토오루/도요타시 복지상담과장
(치매 환자의) 돈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실현할 수 있도록 돈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가운데 성년후견제도 등을 잘 활용할 수 있고 금융기관도 그 부분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치매 환자의 자산을) 보호하는 부분과 본인의 권리 행사 부분, 지금 일본에서는 두 가지의 균형을 잡으면서 (성년후견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치매 환자들이 생활하는 특별노인양호시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치매와 동행하는 거점 시설입니다.

오늘은 지역을 누비며 주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민생위원’들을 대상으로 성년후견제도를 알리는 교육이 한창입니다.


마츠이 카츠야/도요타시 치매동행거점시설 위탁 운영자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를 간호하는 가족 또는 지원하는 다양한 분들에게 치매에 관한 상담을 해드리고 있어요. (지역 복지 서비스의) 그물망을 촘촘하게 엮는 것이 네트워크예요. (지역 복지 서비스를) 얼마나 주민에게 친근하게 확산할 수 있겠는가 어느 기관과 연결할 것인가. 지역포괄지원센터나 성년후견지원센터와 연결하는 등의 노력으로 지역 복지 체계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중요해요.


평범한 시민을 ‘시민 후견인’으로 양성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즈타니/도요타시 성년후견센터
’시민 후견인‘은 지역 주민의 시선에서 피후견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피후견인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피후견인이 어떤 생활을 희망하는지를 가까이에서 시민이 지원해 나가자는 것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방향입니다.


시민이 지역에 사는 치매환자를 가장 잘 도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소가베 아야/ 도요타시 시민 후견인
’시민 후견인‘의 가장 좋은 장점은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도 도요타시 출신이 아니지만 일 때문에 도요타시로 이주해 살고 있어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본가가 멀기 때문에 제가 힘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시민 후견인 업무의) 가장 가치 있고 의의를 느끼는 점입니다.

홀로 사는 치매 환자인 오덕환 할아버지.


흐릿해지는 기억만큼 힘든 건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오덕환 할아버지의 공공 후견인인 박현조 씨입니다.

일본의 시민 후견인처럼 정부의 양성 교육을 받은 뒤 독거 치매 노인의 후견인이 돼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월세가 밀리고 통장에 수급비가 쌓여 있던 오 할아버지.

이제는 공공후견인 현조 씨가 통장 관리부터 공과금 납부 등 모든 자산 관리를 돕고 있습니다.

병원 진료를 돕고 병원비도 대신 납부합니다.


치매 공공 후견 사업을 통해 홀로 사는 치매 환자를 돕고 있는 공공 후견인은 모두 300명.

홀로 사는 치매 환자 수가 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탓에 저소득층 위주로 한정된 지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명주/서울 서대문구 치매안심센터 사회복지사
(공공 후견인이) 필요할 텐 데라고 생각되는 분들도 있으시긴 한데 그분들을 바로 지원하지 못하고 ‘저희가 내년에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든지 ‘예산이 조금 들어오는 걸 봐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씀을 드릴 때도 있어서 그럴 때 조금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 치매 후견 사업을 일반 치매 노인에게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역사회에서 치매에 대비해 성년후견제도 등을 상담받을 수 있는 기관조차 없습니다.

제철웅/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가 치매가 걱정되면 많은 국민들이 이제는 치매 안심센터를 찾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 치매 안심센터에 후견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습니다. 후견 법인을 만들든 별도의 후견 전문 기관을 만들든 또 치매안심센터에 전문 직원을 두든 전문가가 있어야 합니다.

치매가 오기 전 먼저 대비할 방법은 없을까?

민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운영 중인 유언대용신탁 제도는 하나의 대안입니다.

건강할 때 금융기관에 자산을 맡긴 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사전에 정한 대리인이 치료나 생활비 등을 쓸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하승희/하나은행 유언대용신탁 담당 팀장
내 재산을 맡겨놓은 신탁 계약 안에 내가 혹시 인지 기능이 저하가 되면 나를 대신해서 금융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대리인을 설정하실 수가 있어요. 결국에 재산을 보호한다라는 측면에 신탁의 기능이 발휘되고 또 위탁자를 위해서 자금이 잘 지급이 된다는 금융의 기능 두 가지를 결합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세요.


5대 시중은행이 관리하는 유언대용신탁 자산 규모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주요 금융기관들은 최소 가입 금액을 낮추며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은정/하나은행 하나더넥스트본부장
과거에는 상속이 포커스이다 보니 조금 자산이 많으신 분들께서 재산을 이전하는 거를 목적으로 많이 자문하고 저희가 상담을 했었습니다. 요즘에 시니어분들께서는 자식들한테 부담을 주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재산으로 내가 충분하게 병원비도 하고 또 내가 인지 능력이 저하됐을 때도 나의 돈으로 이렇게 자금을 사용하고 보살핌 받기를 원하셔서

정부도 '고령자 공공 신탁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같은 공공기관이 고령자의 자산을 관리해 치료나 돌봄을 위해 쓰일 수 있게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유희원/국민연금연구원 박사
공공기관에 자신의 재산을 그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맡겨서 보관하고 내가 어떤 치매와 같은 그런 인지 능력 저하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미리 정해 놓은 방식대로 그 재산을 활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제도입니다. 공익적 목적으로 이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수수료도 낮게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내년부터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한다는 구상입니다.

유희원/국민연금연구원 박사
자기가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미리 자기 재산의 보관 관리 방법을 결정하고 활용 방법까지 미리 결정해 놓음으로써 이제 좀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존엄한 노후를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전체 고령자를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에게만은 치매가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맞는 치매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오복경/충남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지막에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저는 더 중요하다고 봐요. 마지막 여행에 삶이 불행하다면 전체 인생은 다 불행으로
결론이 나버리거든요.

'치매머니'를 방치하지 않고 자신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잘 쓰일 수 있게 준비하는 것.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치매머니 #독거노인 #고령층 #치매환자 #저소득 #성년후견제도 #법정후견 #임의후견 #초고령사회 #치매공공후견사업 #인지능력저하 #존엄한노후 #일본치매대책 #보이스피싱 #금융범죄

취재기자:이규명
촬영:강우용, 조선기, 안병욱
촬영기자:윤희진, 임현식
편집:김태형, 김기곤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조연출:심은별, 이민철
번역:김조연
현지 코디:조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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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있어도 못 쓰는 ‘치매머니’
    • 입력 2025-08-17 23:01:07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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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 수는 97만 명. 내년엔 100만 명이 넘을 거라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 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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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들이 평생 일궈온 자산, '치매머니'는 154조 원으로 우리나라 GDP의 6.4% 정도로 추산됩니다.

치매가 오면 돈이 묶이고 삶이 멈추는 2025년 대한민국.

더 큰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박인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지금 은퇴하는 시기가 되었고 연세가 올라갈수록 치매 환자가 늘어나게 되거든요. 150조 정도 규모가 아니라 훨씬 큰 규모의 재산들이 사장되는.

치매 등 인지 능력이 저하된 성인을 보호하고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성년 후견 제도.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는 오히려 적극적인 자산 활용을 막는 족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오경환/치매 아버지 법정후견인
있어도 못 쓰고 있는 것도 관리도 제가 하지만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후견 업무를 저처럼 진행하신다고 하면 저는 솔직히 말해서 말리고 싶습니다. 10명이면 10명 다 후회하실 겁니다.

방치된 치매머니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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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가 있는 80대 자산가에게 접근해 90억 원을 빼돌린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치매 환자의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존엄한 노후를 위해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노인보호전문기관 대표인 오복경 관장.

치매에 걸린 뒤 평생 일군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정 씨 할아버지의 과거 흔적을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부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떤 여자분하고 같이 사시나요?
(복잡하긴 해. 옆집에 살던 사람하고 혼자 있으니까 같이 또 살았어.)
그렇게 하다가 여자분 집으로 갔는데 본인 집 명의가 여자분 앞으로? (바로 줬어요) 줬어요? (예)

30년을 살아온 집 명의를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웃집 여성에게 넘긴 정 할아버지.

오랜 시간 함께 근무했다는 정 할아버지의 직장 동료는 내밀한 이야기까지 건넵니다.


6천만 원인가 현찰로 갚아줬대 빚을 (여자 빚을 갚아줬다고요?) 사기당한 것 같아 단시간 별로 살지도 못했어.

당시 정 할아버지는 이미 치매를 앓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는 무슨 문제가 없었어요?
(인지 능력이 떨어지니까 운행하다 보면 노선으로 가야 되는데 다른 노선으로 몇 번 갔대.)

오 관장과 정 할아버지가 처음 만난 건 3년 전.

신고를 받고 나간 현장에서는 치매로 의심되는 정 할아버지가 홀로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정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오고 불과 2년 사이 본인 명의의 집과 2억 원이 넘는 예금은 모두 사라진 뒤였습니다.

돌봐줄 가족이 없었지만, 정부의 도움 역시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 관장은 결국, 법원으로부터 치매에 걸린 정 할아버지를 대신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정후견인으로 선임됐습니다.

이후 오 갈 곳 없는 정 할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모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오 관장은 정 씨의 돈을 빌려 갚지 않거나 가로챈 이들을 찾아내 직접 변제 각서를 받고, 민사 소송도 진행했습니다.

어렵게 되찾은 돈을 정 씨를 치료하고 돌보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오 관장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복경/충남 남부 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당신이 평생을 모아놓은 돈은 그 짧은 시간에 다 타인에게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라고 저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제도나 예방을 할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가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저는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이 정말 심각하다.

의사 결정 능력에 문제가 있는 성인의 신원 보호와 자산 관리를 위해 우리나라는 2013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건강할 때 미리 신뢰하는 사람과 계약과 공증을 통해 자산 관리 계획 등을 세워두고 치매가 오면 법원이 후견감독인을 선임해 감독하도록 하는 ‘임의 후견’과 치매에 걸린 뒤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권한을 부여하고 직접 감독하는 ‘법정후견’으로 크게 나뉩니다.


정 할아버지의 법정후견인 선임 절차를 도왔던 배광렬 변호사는 돌봐줄 가족이 없는 치매 환자의 자산은 범죄의 표적이 될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법적 보호 장치가 있어도 스스로 법원에 법정후견인 선임을 요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배광렬 /사단법인 온율 공익변호사
정말 정말 운이 좋았던 케이스예요. 그런 관장님을 만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재산을 일궈서 그냥 본인이 스스로 잘 이렇게 생활해 왔던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가장 위험한 상황입니다. 치매가 와버리면 나밖에 없는데 내가 내 재산을 관리 못하고 내 몸을 건사하지 못하니까.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돈을 빼간다든가 뭐 그 사람이 양자로 들어가 가지고 돈을 다 상속으로 받아 가버린다든가 그런 일이 발생해도 누구도 모릅니다

돌봐줄 가족이 없는 고령층은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건강할 때 먼저 임의 후견을 계약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임의 후견 계약이 실제 개시된 사례는 103건에 불과합니다.


배광렬 /사단법인 온율 공익변호사
임의 후견 제도 자체도 우리나라가 좀 굉장히 불편하게 되어 있긴 해요. 후견 계약하려고 계약 상담하지, 공증 받지, 공증하는 데 돈 내지, 법원에 청구하는 데 돈 냈지. 그랬더니 이제는 감독인을 선임하고 감독인한테도 돈을 줘야 한 대요. 이것을 누가 하겠어요?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법정후견인 오경환 씨.

오늘은 휴가를 내고 서둘러 40분 거리의 법원으로 향합니다.

아버지의 법정후견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인 ‘후견등기사항증명서’는 직접 법원을 방문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오경환/치매 아버지 법정후견인
인터넷이나 주민센터 이런 가까운 곳에서 발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은행, 관공서, 일반적으로 보험회사까지도 이 등기사항 증명서류 최신 본으로 항상 요구하고 있고요. 석 달이 지나면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어떤 업무도 볼 수 없습니다.


법원은 피후견인인 아버지의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서도, 동시에 비대면 금융거래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4년 전 오 씨는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자, 생각지 못한 문제에 마주했습니다.

아버지의 자산을 매각해 생활비와 돌봄비용 등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모든 금융거래가 막혔습니다. 있어도 쓰지 못하는 ‘치매머니’가 된 겁니다.


가족이라 해도 법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지 않으면 타인의 재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생소한 법률 절차를 알아볼 수 있는 곳도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관련 서류를 법원에 접수한 뒤 법정후견인 선임까지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후견인이 된 뒤에도 아버지의 운전면허 정지나 신분증 재발급 같은 단순 업무도 쉽게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법원이 허용한 자산 관리 권한은 제한된 금액의 생활비나 병원비를 사용하는 정도였습니다.

오경환/치매 아버지 법정후견인
치매 진단을 받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생각이 있더라도 모든 권한은 다 법원이 갖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주고 싶어도 주실 수 없습니다. 가정법원에 저희가 재산 처분에 관련된 청구도 요청해야 하고요. 그 청구를 요청해서 판사님께서 보고 합당한 처분일 경우에만 저희에게 이제 권한을 주십니다.

해마다 가정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후견 감독 보고서는 결국 변호사에게 맡겼습니다.

사용했던 모든 금전에 대한 내용을 작성해서 보고 올려야 됩니다. 너무 힘들어서 변호사 사무실에 맡겼습니다. 올해는 한 300만 원 이상 저희 소요가 됐고요.


국내 치매 환자 중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는 비율은 고작 1%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법원이 후견인 선임부터 감독까지 도맡고 있어 치매 환자의 자산을 ‘보호’하는 것만도 벅찬 상황입니다.

박인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역사회에서 후견인들을 지원하는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바로 가정법원하고 (후견인이) 다이렉트로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가정법원의 인력을 고려하면 친절하게 잘 상담해 주기 어렵거든요.가정법원은 걱정이 되는 거죠. 혹시 권한을 내가 부여했는데 감독 못하는 사이에 권한을 남용한다든지 부정행위를 한다든지 이런 것이 없을까 걱정을 하니까 보고서를 정식적으로 내라고, 후견 감독 사건으로 입건을 해서 관리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자산을 잘 쓸 수 있게 돕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제철웅/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후견 제도가 인지 능력이 떨어지신 분들의 재산을 좀 잘 쓸 수 있게끔 도와주는 제도인데. 감독에서의 목적도 감독보다는 지원의 목적이 있습니다. 치매 어르신들을 국가가 잘 보호해 줘야 하겠다,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겠다라고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면은 그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가족이라든지 주변 사람들을 믿고 치매 환자가 실제로 편하게 자기 재산을 쓸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

우리 정부는 올봄 처음으로 치매머니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고령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은 154조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 GDP의 6.4%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2050년이면 치매 환자의 자산 규모가 500조에 달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박인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지금 은퇴하는 시기가 되었고 연세가 올라갈수록 치매 환자가 늘어나게 되거든요. 지금 150조 정도 규모가 아니라 훨씬 큰 규모의 재산들이 사장되는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손해인 현상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우리나라보다 20년 일찍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

84살 테라사와 미요코 씨는 돌봐줄 가족이 없어 혼자 살고 있지만 안심할 수 있습니다.

지역 성년후견센터와 계약한 임의 후견 덕분입니다.


사사키 유우/도쿄 시나가와구 성년후견센터
본인의 판단 능력이 저하되기 전 건강할 때, 예금 적금 관리를 부탁한다거나 부동산이나 우편 신청 등에 대해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만약 판단 능력이 저하되면 우리는 계약 내용을 후견인에게 그대로 인계해서 도와드리기 시작해요.

2002년 문을 연 도쿄 시나가와구의 성년후견센터.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기기 전 먼저 준비할 수 있는 임의 후견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코사나미 간오/도쿄 시나가와구 성년후견센터 소장
(임의후견은) 본인의 의사, 이렇게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본인이 결정해요.
후견인도 본인이 정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임의 후견이 성년후견제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결과 임의 후견 계약 건수는 10년 새 70% 넘게 증가했습니다.


아라이 마코토/일본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
지금까지 일본의 임의 후견은 이용률이 굉장히 낮았어요. 하지만 최근에 조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요. 그것도 큰 부자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서민이 이용하는 거죠. 그것이 점점 늘어난다면 좋은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1980년대 일본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고도성장의 수혜를 입은 세대는 그대로 부유한 노인이 됐고,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사인 ‘치매머니’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2000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한 일본.

하지만, 낯설고 불편한 법률 제도를 일본 국민은 외면했고 치매 환자의 자산은 각종 범죄에 노출됐습니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6년 성년후견제도 이용 촉진법을 제정해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습니다.

제도 개혁의 가장 큰 목표는 성년후견제도를 친근한 사회복지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라이 마코토/일본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
법원이 성년후견의 법률적인 부분은 담당하지만, 복지 부분은 사회복지협의회나 복지 담당이 책임지도록 확대됐어요. 그래서 성년후견제도 운영은 예전에는 법무성 담당이었지만 지금은 법무성과 후생노동성이 함께 담당합니다.


이를 위해 자치단체별로 성년후견센터와 같은 ‘중핵기관’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정부의 독려 속 기초자치단체의 80% 이상이 중핵기관을 설치했습니다.

남은 과제는 지역별 격차를 줄이는 겁니다.

아라이 마코토/일본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
일본 전체를 봤을 때 전혀 여유가 없는 지자체도 있어요. 그 지역을 어떤 식으로 지원할 것인가가
지금 우리의 큰 과제예요. 그곳은 후생노동성이 집중적으로 예산을 분배하는 거죠.
전국을 동일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풍족한 자치단체만 선진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면 곤란하니까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딴 도요타시.

이곳에도 8년 전, 중핵기관인 성년후견지원센터가 들어섰습니다.


성년후견제도 등에 대한 상담부터 법원의 심판 청구 과정까지 낯선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 시민들의 관심도 크게 늘었습니다.

나카타 수지/ 도요타시 성년후견지원센터
미래를 위해서 미리 알아두겠다는 거죠. 지금 당장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전체 상담 건수 중에
미래를 대비해서 알아두겠다고 상담하러 오시는 분이 절반 가까이 돼요.


치매 환자의 자산을 자신을 위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가장 큰 변화입니다.

안도 토오루/도요타시 복지상담과장
(치매 환자의) 돈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실현할 수 있도록 돈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가운데 성년후견제도 등을 잘 활용할 수 있고 금융기관도 그 부분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치매 환자의 자산을) 보호하는 부분과 본인의 권리 행사 부분, 지금 일본에서는 두 가지의 균형을 잡으면서 (성년후견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치매 환자들이 생활하는 특별노인양호시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치매와 동행하는 거점 시설입니다.

오늘은 지역을 누비며 주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민생위원’들을 대상으로 성년후견제도를 알리는 교육이 한창입니다.


마츠이 카츠야/도요타시 치매동행거점시설 위탁 운영자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를 간호하는 가족 또는 지원하는 다양한 분들에게 치매에 관한 상담을 해드리고 있어요. (지역 복지 서비스의) 그물망을 촘촘하게 엮는 것이 네트워크예요. (지역 복지 서비스를) 얼마나 주민에게 친근하게 확산할 수 있겠는가 어느 기관과 연결할 것인가. 지역포괄지원센터나 성년후견지원센터와 연결하는 등의 노력으로 지역 복지 체계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중요해요.


평범한 시민을 ‘시민 후견인’으로 양성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즈타니/도요타시 성년후견센터
’시민 후견인‘은 지역 주민의 시선에서 피후견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피후견인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피후견인이 어떤 생활을 희망하는지를 가까이에서 시민이 지원해 나가자는 것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방향입니다.


시민이 지역에 사는 치매환자를 가장 잘 도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소가베 아야/ 도요타시 시민 후견인
’시민 후견인‘의 가장 좋은 장점은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도 도요타시 출신이 아니지만 일 때문에 도요타시로 이주해 살고 있어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고 본가가 멀기 때문에 제가 힘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시민 후견인 업무의) 가장 가치 있고 의의를 느끼는 점입니다.

홀로 사는 치매 환자인 오덕환 할아버지.


흐릿해지는 기억만큼 힘든 건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오덕환 할아버지의 공공 후견인인 박현조 씨입니다.

일본의 시민 후견인처럼 정부의 양성 교육을 받은 뒤 독거 치매 노인의 후견인이 돼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월세가 밀리고 통장에 수급비가 쌓여 있던 오 할아버지.

이제는 공공후견인 현조 씨가 통장 관리부터 공과금 납부 등 모든 자산 관리를 돕고 있습니다.

병원 진료를 돕고 병원비도 대신 납부합니다.


치매 공공 후견 사업을 통해 홀로 사는 치매 환자를 돕고 있는 공공 후견인은 모두 300명.

홀로 사는 치매 환자 수가 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탓에 저소득층 위주로 한정된 지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명주/서울 서대문구 치매안심센터 사회복지사
(공공 후견인이) 필요할 텐 데라고 생각되는 분들도 있으시긴 한데 그분들을 바로 지원하지 못하고 ‘저희가 내년에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든지 ‘예산이 조금 들어오는 걸 봐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씀을 드릴 때도 있어서 그럴 때 조금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 치매 후견 사업을 일반 치매 노인에게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역사회에서 치매에 대비해 성년후견제도 등을 상담받을 수 있는 기관조차 없습니다.

제철웅/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가 치매가 걱정되면 많은 국민들이 이제는 치매 안심센터를 찾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 치매 안심센터에 후견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습니다. 후견 법인을 만들든 별도의 후견 전문 기관을 만들든 또 치매안심센터에 전문 직원을 두든 전문가가 있어야 합니다.

치매가 오기 전 먼저 대비할 방법은 없을까?

민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운영 중인 유언대용신탁 제도는 하나의 대안입니다.

건강할 때 금융기관에 자산을 맡긴 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사전에 정한 대리인이 치료나 생활비 등을 쓸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하승희/하나은행 유언대용신탁 담당 팀장
내 재산을 맡겨놓은 신탁 계약 안에 내가 혹시 인지 기능이 저하가 되면 나를 대신해서 금융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대리인을 설정하실 수가 있어요. 결국에 재산을 보호한다라는 측면에 신탁의 기능이 발휘되고 또 위탁자를 위해서 자금이 잘 지급이 된다는 금융의 기능 두 가지를 결합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세요.


5대 시중은행이 관리하는 유언대용신탁 자산 규모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주요 금융기관들은 최소 가입 금액을 낮추며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은정/하나은행 하나더넥스트본부장
과거에는 상속이 포커스이다 보니 조금 자산이 많으신 분들께서 재산을 이전하는 거를 목적으로 많이 자문하고 저희가 상담을 했었습니다. 요즘에 시니어분들께서는 자식들한테 부담을 주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재산으로 내가 충분하게 병원비도 하고 또 내가 인지 능력이 저하됐을 때도 나의 돈으로 이렇게 자금을 사용하고 보살핌 받기를 원하셔서

정부도 '고령자 공공 신탁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같은 공공기관이 고령자의 자산을 관리해 치료나 돌봄을 위해 쓰일 수 있게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유희원/국민연금연구원 박사
공공기관에 자신의 재산을 그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맡겨서 보관하고 내가 어떤 치매와 같은 그런 인지 능력 저하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미리 정해 놓은 방식대로 그 재산을 활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제도입니다. 공익적 목적으로 이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수수료도 낮게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내년부터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한다는 구상입니다.

유희원/국민연금연구원 박사
자기가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미리 자기 재산의 보관 관리 방법을 결정하고 활용 방법까지 미리 결정해 놓음으로써 이제 좀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존엄한 노후를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전체 고령자를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에게만은 치매가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맞는 치매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오복경/충남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지막에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저는 더 중요하다고 봐요. 마지막 여행에 삶이 불행하다면 전체 인생은 다 불행으로
결론이 나버리거든요.

'치매머니'를 방치하지 않고 자신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잘 쓰일 수 있게 준비하는 것.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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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이규명
촬영:강우용, 조선기, 안병욱
촬영기자:윤희진, 임현식
편집:김태형, 김기곤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조연출:심은별, 이민철
번역:김조연
현지 코디:조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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