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선사하는 ‘우리의 얼굴’…창령사와 오백나한

입력 2025.08.18 (19:18) 수정 2025.08.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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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원도 곳곳에 숨은 유산들을 재조명해 보는 2025 강원유산지도 순섭니다.

오늘은 영월 창령사지와 그곳에서 출토된 오백나한상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치유와 성찰을 살펴봅니다.

고순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강원도 영월과 충청북도 단양이 맞닿은 곳에 놓인 초로봉.

산골짜기로 이어진 좁은 길을 오르다 보면 작은 절터가 나옵니다.

이름 모를 절터였던 이곳은 2000년대 초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땅속에서 정체 모를 사람 모양 돌조각 수백 점이 출토됐기 때문입니다.

'오백나한'이 다시 세상에 나온 순간입니다.

고려시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절은 '창령사'라는 이름도 되찾았습니다.

나한상이 대규모로 나한전 터와 함께 발굴된 만큼,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았습니다.

[홍성익/강원도 문화재위원/창령사지 발굴 조사원 : "(나한전 터와 오백나한 동시 발굴로) 현재까지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10여 점이라든가 20여 점 그밖에 지나지 않았고, 창령 나한상은 거의 오백 나한에 가까운 나한상이 출토됐다는 점에서는 최고의 발굴이라고 아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한'은 본래 깨달음을 얻은 불교 수행자를 뜻합니다.

하지만, 창령사지 오백나한은 조금 다릅니다.

슬그머니 바위 뒤에 숨어 무언가를 지켜보는 나한.

두 눈을 굳게 감고 생각에 깊이 빠진 나한.

친구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듯 입꼬리를 비쭉 올리고 웃기도 하고, 이를 인자하게 듣기도 합니다.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고매한 불가 성인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보통의 나한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화강암을 거칠게 깎은 투박한 모양새에,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하나하나 새겨넣은 조각들은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 그대롭니다.

[김연희/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 : "(부처상이나 보살상과 달리) 나한상 같은 경우에는 그런 특정 모습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자유롭게 당시에 깨달은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이렇게 편안하고 좀 다양한 모습으로…."]

웃는 듯, 우는 듯 어찌 보면 다정하고, 또 어찌 보면 의뭉스러운 '나한상'의 질박한 얼굴.

관람객들은 '내 얼굴'을 마주하고,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기회를 얻습니다.

[김연희/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 : "나한이라는 이 사람들은 깨달음을 나에게서 찾은 사람들이거든요. 이 나한들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 타인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나를 좀 보는 게 어떤가 하면서 그런 깨달음을, 그 시간만은 여기서 가질 수 있게."]

천 년의 세월을 건너온 '우리의 얼굴'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찰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고순정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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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유를 선사하는 ‘우리의 얼굴’…창령사와 오백나한
    • 입력 2025-08-18 19:18:38
    • 수정2025-08-18 19:30:40
    뉴스7(춘천)
[앵커]

강원도 곳곳에 숨은 유산들을 재조명해 보는 2025 강원유산지도 순섭니다.

오늘은 영월 창령사지와 그곳에서 출토된 오백나한상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치유와 성찰을 살펴봅니다.

고순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강원도 영월과 충청북도 단양이 맞닿은 곳에 놓인 초로봉.

산골짜기로 이어진 좁은 길을 오르다 보면 작은 절터가 나옵니다.

이름 모를 절터였던 이곳은 2000년대 초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됩니다.

땅속에서 정체 모를 사람 모양 돌조각 수백 점이 출토됐기 때문입니다.

'오백나한'이 다시 세상에 나온 순간입니다.

고려시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절은 '창령사'라는 이름도 되찾았습니다.

나한상이 대규모로 나한전 터와 함께 발굴된 만큼,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았습니다.

[홍성익/강원도 문화재위원/창령사지 발굴 조사원 : "(나한전 터와 오백나한 동시 발굴로) 현재까지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10여 점이라든가 20여 점 그밖에 지나지 않았고, 창령 나한상은 거의 오백 나한에 가까운 나한상이 출토됐다는 점에서는 최고의 발굴이라고 아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한'은 본래 깨달음을 얻은 불교 수행자를 뜻합니다.

하지만, 창령사지 오백나한은 조금 다릅니다.

슬그머니 바위 뒤에 숨어 무언가를 지켜보는 나한.

두 눈을 굳게 감고 생각에 깊이 빠진 나한.

친구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듯 입꼬리를 비쭉 올리고 웃기도 하고, 이를 인자하게 듣기도 합니다.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고매한 불가 성인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보통의 나한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화강암을 거칠게 깎은 투박한 모양새에,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하나하나 새겨넣은 조각들은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 그대롭니다.

[김연희/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 : "(부처상이나 보살상과 달리) 나한상 같은 경우에는 그런 특정 모습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자유롭게 당시에 깨달은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이렇게 편안하고 좀 다양한 모습으로…."]

웃는 듯, 우는 듯 어찌 보면 다정하고, 또 어찌 보면 의뭉스러운 '나한상'의 질박한 얼굴.

관람객들은 '내 얼굴'을 마주하고,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기회를 얻습니다.

[김연희/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 : "나한이라는 이 사람들은 깨달음을 나에게서 찾은 사람들이거든요. 이 나한들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 타인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나를 좀 보는 게 어떤가 하면서 그런 깨달음을, 그 시간만은 여기서 가질 수 있게."]

천 년의 세월을 건너온 '우리의 얼굴'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찰과 치유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고순정입니다.

촬영기자:최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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