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취업에 울고, 착복에 울고

입력 2006.03.20 (13:56) 수정 2006.04.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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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장애라는 ‘차이’가 ‘차별’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장애인 모두의 한결 같은 바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특히 일자리를 찾는 데는 더욱 큰 차별을 겪습니다. 이렇다 보니 장애인의 취업을 악용해 잇속만 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래서 장애인들은 이래저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어스름한 새벽 골목길. 한정렬 씨가 우산을 받쳐들고 집을 나섭니다. 사회에 나온 뒤 첫 직장으로 3년째 다니고 있는 장애인 자치 작업장에 가는 길입니다. 인천 집에서 작업장이 있는 서울 노원구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일찍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열차가 들어오자 한 씨가 서둘러 몸을 싣습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중증 장애인 노동자 /성우 대독): "(힘들지 않으세요?)아침에 눈을 떠서 어디를 다닐 수 있다는 게 어디에요. 일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동행하는 취재진 때문에 평소보다 15분 정도 늦어버린 한 씨, 지각하는 직장인이 누구나 그렇듯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중증 장애인 노동자): "몇 시에요?(몇 시냐구요? 7시 20분이에요. 늦으셨죠?)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탄 한 씨는 다소 지쳐 보입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 중증 장애인 노동자): "(왜 이렇게 멀리 다니세요?) 직장 구하기가 힘들어서요. 저 같은 장애인들은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손이 부자유스럽고 언어가 불편해서 일반 업체에서 이걸 인정 안 하죠.”


집을 나선 지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 복지관. 복지관에 있는 자치 작업장에서 하는 일은 양말 상자를 접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천과 서울을 어렵게 오가며 일하고 있지만, 작업장에서 성과에 따라 받는 월급은 10만 원 안팎이 고작입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 중증 장애인 노동자): (일은 재미있으세요?)단순 작업, 양말 박스를 접어요. 일하면서 손 기능이 좋아져요. 그런데 어떨 때는 욕심이 생겨서 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죠.”


퇴근한 한 씨가 가족들과 마주앉은 자리, 부모님은 한때 취업을 거절당하기도 했던 아들이 성실하게 작업장에 다니는 모습이 대견스럽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인터뷰> 최중식 (한 씨 어머니): “눈으로 안보는 게 편한데 가는 것을 보면 아침에… 그걸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그래도 본인이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감사하게 생각해요.”


자신의 방에 돌아오자마자 정렬 씨가 손에 잡는 것은 붓입니다. 며칠째 작업중인 수채화를 수정합니다. 독학한 컴퓨터로도 그림 그리는 데 열심입니다. 요즘 한 씨의 소망은 장애인인 자신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적성에 맞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 중증 장애인 노동자):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컴퓨터 쪽 일을 하고 싶습니다.컴퓨터는 도스 시절부터 터득해서 지금 중급 정도 다루는데요. 그렇게 썩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캐릭터 디자인 쪽에서 색 입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한 씨처럼 직장을 다니는 장애인은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올해 31살의 중증 장애인 이모 씨. 지난 2003년, 대학졸업 직후 작은 회사에 취업했지만 일손이 빠르지 않다는 이유로 1년이 채 안돼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인터뷰>이모 씨(가명/중증 장애인): “장애인도 사람이니까, 사람은 누구나 노동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일을 해야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은 똑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하다 실직했을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살아가는 이유가 뭔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실직한 뒤 일자리를 다시 구하지 못한 이 씨가 찾은 곳은 서울의 한 장애인 단체. 그러나 이 씨는 그곳에서 더욱 실망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이 장애인 단체는 이 씨에게 장애인 고용장려금 부정 수급을 도와 달라는 제의를 했습니다.

이 씨 같은 중증 장애인의 경우 취업이 확인되면 국가에서 사업주에게 달마다 70만 원 가량의 장애인 고용장려금이 지급되는데, 고용 사실을 증명할 수 있도록 이 씨의 돈을 자신의 금여 통장에 스스로 입금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이모 씨(가명/중증 장애인): "월급을 단체 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입금을 하고 그런 자료를 만들어서, 쉽게 말해, 월급을 줬다는 통장 처리를 해놓고 1년 동안 쌓아놓으면 장애인 한 사람 고용한 것이 되잖아요.”

이렇게 1년을 월급을 준 것처럼 꾸민 뒤 장려금을 받게 되면 이를 다시 되돌려 주겠다는 장애인 단체의 제의를 이 씨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이 모씨(가명/중증 장애인): “근본적으로 중증 장애인들이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말로 구워삶아서… 우리가 살기가 어려우니까 단체를 만들고 구성을 해서 이런 제도를 이용해서라도 우리가 일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는거죠.”


그러나, 이 씨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이 장애인 단체는 이런 일을 꾸몄습니다. 이 단체에 근무했다는 장애인 박모 씨의 지난 2003년도 근로 계약서입니다. 근로시간이 일주일에 44시간이고, 임금으로 달마다 65만 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박 씨는 이 단체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박 씨에게 월급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前 직원 A: “그분은 한번도 안 오셨고, 저희 부서에서 홈페이지 관리 부분을 맡으신 걸로 돼 있었는데, 그 당시 그분 말고 다른 분이 그 일을 하셨어요.”

이 같은 허위 근로계약서로 고용장려금을 받게 된 이 단체의 고용장려금 사용 계획서입니다. 박 씨 앞으로 지급된 월 65만 원의 고용장려금 중에 정작 박 씨에게 돌아가는 돈은 절반에 못 미치는 3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뷰>이모 씨(가명/중증 장애인): “단체가 한 사람을 고용하면 보험료라든가 이것저것 부수적인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그것들을 제하고 나머지를 직원들에게 돌려주는 식이죠. 따라서 1년이 지나고 고용장려금을 받게 되더라도 상당수의 직원은 자신이 일한만큼의 대우는 제대로 못 받는거죠.”


이 단체는 이렇게 부정 수급한 돈을 해당 장애인과 나눠 가지거나, 단체 운영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취업이 어려워 이 단체로 모여드는 장애인들을 위해 교통비라도 주기 위해 선택한 편법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식 인터뷰는 거절했습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前 직원 B: “전체적인 장애인 측면에서 보면 (장애인 단체에 의해) 또 다른 장애인이 이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하니까… 장애인들이 장애인단체에 대해 문제를 안 느낀 장애인은 없을 거예요. 그동안 이용당한 장애인도 많으니까요. 같이 올바르게 되기 위한 활동이 필요한데 좀 아쉽죠.”

이같은 부정 수급 사실은 뒤늦게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적발돼 이 단체는 고용장려금 2천여만 원을 환수 당하게 됐습니다.

<인터뷰>이재구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팀장): “부정 수급에 대해서는 단돈 1원도 용납해서는 안되고요. 다만 현실적으로 중증 장애인들이 취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한 취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40대 후반의 장애인 김모 씨는 자신이 일했던 인천의 한 장애인 단체와 몇달째 승강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장애인 단체의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여덟달동안 근무했지만, 명절 떡값을 제외하고는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김모 씨(가명/장애인: “조금만 있으면 풀린다, 이제 풀린다, 풀리면 돈 준다 그래가지고 금방 뭐 나올 것 같으니까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이거 꼭 받아가지고 나가야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해당 단체에서는 김 씨가 정식 직원이 아니었고, 당시 봉사활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관계자: “차라리 일을 했으면 주지만, 명분이 없는 거에요. 돈을 주는... 우리는 법적으로 뭘 하든 당신 마음대로 해라, 그런 입장이고 인건비를 못 받았으면 노동청에 가서 항의를 하면 노동부에서 사람 나와서 조사할 것 아니에요?”

그러나 정작 일하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던 김 씨는, 뜻밖에도 이 단체를 그만둔 뒤 넉달동안 정부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6개월 이상 직장을 다녔다는 증거입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관계자: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 나도 실업급여 받은 걸 몰랐어요. 근데 그걸 만들어주면 자기가 사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해서 여기 와서 사정사정 한 거예요. 그래서 다른 간부가 만들어줬다고 그러더라구요.”

이 단체의 주장대로라면 이 단체는 직원이 아니었던 김 씨를 뒤늦게 직원으로 탈바꿈시키는 편법을 저지른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실제로 일했던 김 씨에게 급여를 주지 않은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인터뷰>김모 씨(가명/장애인): “내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봉사활동을 하겠습니까? 돈을 벌어보려고 갔더니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일을 해서 생활비나 벌어보려고 했더니…”

우리나라의 장애인 실업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7배가 넘을 정도로 취업이 어렵습니다. 설사 어렵게 일자리를 얻더라도 단순 노무직이 대부분이고, 월평균 소득은 비장애인 노동자들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처지를 이용해 잇속만 차리려는 사람 때문에 장애인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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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3-20 11:55:37
    • 수정2006-04-17 12:59:40
    취재파일K
신체적 장애라는 ‘차이’가 ‘차별’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게 장애인 모두의 한결 같은 바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특히 일자리를 찾는 데는 더욱 큰 차별을 겪습니다. 이렇다 보니 장애인의 취업을 악용해 잇속만 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래서 장애인들은 이래저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어스름한 새벽 골목길. 한정렬 씨가 우산을 받쳐들고 집을 나섭니다. 사회에 나온 뒤 첫 직장으로 3년째 다니고 있는 장애인 자치 작업장에 가는 길입니다. 인천 집에서 작업장이 있는 서울 노원구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일찍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열차가 들어오자 한 씨가 서둘러 몸을 싣습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중증 장애인 노동자 /성우 대독): "(힘들지 않으세요?)아침에 눈을 떠서 어디를 다닐 수 있다는 게 어디에요. 일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동행하는 취재진 때문에 평소보다 15분 정도 늦어버린 한 씨, 지각하는 직장인이 누구나 그렇듯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중증 장애인 노동자): "몇 시에요?(몇 시냐구요? 7시 20분이에요. 늦으셨죠?)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탄 한 씨는 다소 지쳐 보입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 중증 장애인 노동자): "(왜 이렇게 멀리 다니세요?) 직장 구하기가 힘들어서요. 저 같은 장애인들은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손이 부자유스럽고 언어가 불편해서 일반 업체에서 이걸 인정 안 하죠.” 집을 나선 지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 복지관. 복지관에 있는 자치 작업장에서 하는 일은 양말 상자를 접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천과 서울을 어렵게 오가며 일하고 있지만, 작업장에서 성과에 따라 받는 월급은 10만 원 안팎이 고작입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 중증 장애인 노동자): (일은 재미있으세요?)단순 작업, 양말 박스를 접어요. 일하면서 손 기능이 좋아져요. 그런데 어떨 때는 욕심이 생겨서 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죠.” 퇴근한 한 씨가 가족들과 마주앉은 자리, 부모님은 한때 취업을 거절당하기도 했던 아들이 성실하게 작업장에 다니는 모습이 대견스럽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인터뷰> 최중식 (한 씨 어머니): “눈으로 안보는 게 편한데 가는 것을 보면 아침에… 그걸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그래도 본인이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감사하게 생각해요.” 자신의 방에 돌아오자마자 정렬 씨가 손에 잡는 것은 붓입니다. 며칠째 작업중인 수채화를 수정합니다. 독학한 컴퓨터로도 그림 그리는 데 열심입니다. 요즘 한 씨의 소망은 장애인인 자신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적성에 맞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인터뷰>한정렬 (31살/ 중증 장애인 노동자):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컴퓨터 쪽 일을 하고 싶습니다.컴퓨터는 도스 시절부터 터득해서 지금 중급 정도 다루는데요. 그렇게 썩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캐릭터 디자인 쪽에서 색 입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한 씨처럼 직장을 다니는 장애인은 형편이 나은 편입니다. 올해 31살의 중증 장애인 이모 씨. 지난 2003년, 대학졸업 직후 작은 회사에 취업했지만 일손이 빠르지 않다는 이유로 1년이 채 안돼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인터뷰>이모 씨(가명/중증 장애인): “장애인도 사람이니까, 사람은 누구나 노동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일을 해야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은 똑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하다 실직했을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살아가는 이유가 뭔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실직한 뒤 일자리를 다시 구하지 못한 이 씨가 찾은 곳은 서울의 한 장애인 단체. 그러나 이 씨는 그곳에서 더욱 실망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이 장애인 단체는 이 씨에게 장애인 고용장려금 부정 수급을 도와 달라는 제의를 했습니다. 이 씨 같은 중증 장애인의 경우 취업이 확인되면 국가에서 사업주에게 달마다 70만 원 가량의 장애인 고용장려금이 지급되는데, 고용 사실을 증명할 수 있도록 이 씨의 돈을 자신의 금여 통장에 스스로 입금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이모 씨(가명/중증 장애인): "월급을 단체 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입금을 하고 그런 자료를 만들어서, 쉽게 말해, 월급을 줬다는 통장 처리를 해놓고 1년 동안 쌓아놓으면 장애인 한 사람 고용한 것이 되잖아요.” 이렇게 1년을 월급을 준 것처럼 꾸민 뒤 장려금을 받게 되면 이를 다시 되돌려 주겠다는 장애인 단체의 제의를 이 씨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이 모씨(가명/중증 장애인): “근본적으로 중증 장애인들이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말로 구워삶아서… 우리가 살기가 어려우니까 단체를 만들고 구성을 해서 이런 제도를 이용해서라도 우리가 일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는거죠.” 그러나, 이 씨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이 장애인 단체는 이런 일을 꾸몄습니다. 이 단체에 근무했다는 장애인 박모 씨의 지난 2003년도 근로 계약서입니다. 근로시간이 일주일에 44시간이고, 임금으로 달마다 65만 원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박 씨는 이 단체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박 씨에게 월급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前 직원 A: “그분은 한번도 안 오셨고, 저희 부서에서 홈페이지 관리 부분을 맡으신 걸로 돼 있었는데, 그 당시 그분 말고 다른 분이 그 일을 하셨어요.” 이 같은 허위 근로계약서로 고용장려금을 받게 된 이 단체의 고용장려금 사용 계획서입니다. 박 씨 앞으로 지급된 월 65만 원의 고용장려금 중에 정작 박 씨에게 돌아가는 돈은 절반에 못 미치는 30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뷰>이모 씨(가명/중증 장애인): “단체가 한 사람을 고용하면 보험료라든가 이것저것 부수적인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그것들을 제하고 나머지를 직원들에게 돌려주는 식이죠. 따라서 1년이 지나고 고용장려금을 받게 되더라도 상당수의 직원은 자신이 일한만큼의 대우는 제대로 못 받는거죠.” 이 단체는 이렇게 부정 수급한 돈을 해당 장애인과 나눠 가지거나, 단체 운영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취업이 어려워 이 단체로 모여드는 장애인들을 위해 교통비라도 주기 위해 선택한 편법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식 인터뷰는 거절했습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前 직원 B: “전체적인 장애인 측면에서 보면 (장애인 단체에 의해) 또 다른 장애인이 이용되는 수단으로 전락하니까… 장애인들이 장애인단체에 대해 문제를 안 느낀 장애인은 없을 거예요. 그동안 이용당한 장애인도 많으니까요. 같이 올바르게 되기 위한 활동이 필요한데 좀 아쉽죠.” 이같은 부정 수급 사실은 뒤늦게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적발돼 이 단체는 고용장려금 2천여만 원을 환수 당하게 됐습니다. <인터뷰>이재구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팀장): “부정 수급에 대해서는 단돈 1원도 용납해서는 안되고요. 다만 현실적으로 중증 장애인들이 취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한 취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40대 후반의 장애인 김모 씨는 자신이 일했던 인천의 한 장애인 단체와 몇달째 승강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장애인 단체의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여덟달동안 근무했지만, 명절 떡값을 제외하고는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김모 씨(가명/장애인: “조금만 있으면 풀린다, 이제 풀린다, 풀리면 돈 준다 그래가지고 금방 뭐 나올 것 같으니까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이거 꼭 받아가지고 나가야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해당 단체에서는 김 씨가 정식 직원이 아니었고, 당시 봉사활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관계자: “차라리 일을 했으면 주지만, 명분이 없는 거에요. 돈을 주는... 우리는 법적으로 뭘 하든 당신 마음대로 해라, 그런 입장이고 인건비를 못 받았으면 노동청에 가서 항의를 하면 노동부에서 사람 나와서 조사할 것 아니에요?” 그러나 정작 일하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던 김 씨는, 뜻밖에도 이 단체를 그만둔 뒤 넉달동안 정부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6개월 이상 직장을 다녔다는 증거입니다. <인터뷰>해당 장애인단체 관계자: “내 얘기를 들어보세요. 나도 실업급여 받은 걸 몰랐어요. 근데 그걸 만들어주면 자기가 사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해서 여기 와서 사정사정 한 거예요. 그래서 다른 간부가 만들어줬다고 그러더라구요.” 이 단체의 주장대로라면 이 단체는 직원이 아니었던 김 씨를 뒤늦게 직원으로 탈바꿈시키는 편법을 저지른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실제로 일했던 김 씨에게 급여를 주지 않은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인터뷰>김모 씨(가명/장애인): “내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봉사활동을 하겠습니까? 돈을 벌어보려고 갔더니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일을 해서 생활비나 벌어보려고 했더니…” 우리나라의 장애인 실업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7배가 넘을 정도로 취업이 어렵습니다. 설사 어렵게 일자리를 얻더라도 단순 노무직이 대부분이고, 월평균 소득은 비장애인 노동자들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처지를 이용해 잇속만 차리려는 사람 때문에 장애인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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