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신상옥 감독 ‘영화같은 그의 삶’
입력 2006.04.12 (22:04)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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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 영화계의 큰별 신상옥 감독이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돌아봅니다.
이민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40여년이 흘렀지만, 노래는 여전히 친숙합니다.
사랑방손님을 맞는 낭랑한 목소리도 그렇습니다.
최초의 칼라영화 성춘향에서 문예영화 상록수까지.
쟝르를 넘나드는 영화는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인터뷰> 신상옥(지난 2001년 11월): "화가들이,피카소 같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하는것처럼 예술적 욕망도 겹쳤다고봐야죠."
4차례의 대종상 수상과 4차례의 아시아 영화제 수상. 60년대 초는 신상옥의 시대였습니다.
'신필름'을 설립해 영화산업의 태동을 알린 이도 그였습니다.
<인터뷰> 조희문(상명대 영화학부 교수): "신필름이 배출한 많은 영화인들이 오늘날의 한국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 영화 산업의 뿌리다."
하지만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지난 78년 부인 최은희씨에 이어 홍콩에서 납북된 신 감독.
북한에서 7편의 작품을 남긴 뒤, 8년만에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합니다.
탈북뒤에도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했던 신 감독은, 2년전 간 이식을 받은 뒤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어제밤 끝내 숨졌습니다.
<인터뷰> 최은희(故 신상옥 감독 부인): "오로지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한국영화의 거인 신상옥,
먼 길을 떠난 그에게 오늘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습니다.
KBS 뉴스 이민우입니다.
우리 영화계의 큰별 신상옥 감독이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돌아봅니다.
이민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40여년이 흘렀지만, 노래는 여전히 친숙합니다.
사랑방손님을 맞는 낭랑한 목소리도 그렇습니다.
최초의 칼라영화 성춘향에서 문예영화 상록수까지.
쟝르를 넘나드는 영화는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인터뷰> 신상옥(지난 2001년 11월): "화가들이,피카소 같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하는것처럼 예술적 욕망도 겹쳤다고봐야죠."
4차례의 대종상 수상과 4차례의 아시아 영화제 수상. 60년대 초는 신상옥의 시대였습니다.
'신필름'을 설립해 영화산업의 태동을 알린 이도 그였습니다.
<인터뷰> 조희문(상명대 영화학부 교수): "신필름이 배출한 많은 영화인들이 오늘날의 한국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 영화 산업의 뿌리다."
하지만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지난 78년 부인 최은희씨에 이어 홍콩에서 납북된 신 감독.
북한에서 7편의 작품을 남긴 뒤, 8년만에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합니다.
탈북뒤에도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했던 신 감독은, 2년전 간 이식을 받은 뒤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어제밤 끝내 숨졌습니다.
<인터뷰> 최은희(故 신상옥 감독 부인): "오로지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한국영화의 거인 신상옥,
먼 길을 떠난 그에게 오늘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습니다.
KBS 뉴스 이민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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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신상옥 감독 ‘영화같은 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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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6-04-12 21:25:27
- 수정2018-08-29 15:00:00
<앵커 멘트>
우리 영화계의 큰별 신상옥 감독이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돌아봅니다.
이민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40여년이 흘렀지만, 노래는 여전히 친숙합니다.
사랑방손님을 맞는 낭랑한 목소리도 그렇습니다.
최초의 칼라영화 성춘향에서 문예영화 상록수까지.
쟝르를 넘나드는 영화는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인터뷰> 신상옥(지난 2001년 11월): "화가들이,피카소 같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하는것처럼 예술적 욕망도 겹쳤다고봐야죠."
4차례의 대종상 수상과 4차례의 아시아 영화제 수상. 60년대 초는 신상옥의 시대였습니다.
'신필름'을 설립해 영화산업의 태동을 알린 이도 그였습니다.
<인터뷰> 조희문(상명대 영화학부 교수): "신필름이 배출한 많은 영화인들이 오늘날의 한국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 영화 산업의 뿌리다."
하지만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지난 78년 부인 최은희씨에 이어 홍콩에서 납북된 신 감독.
북한에서 7편의 작품을 남긴 뒤, 8년만에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합니다.
탈북뒤에도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했던 신 감독은, 2년전 간 이식을 받은 뒤 급격히 건강이 악화돼, 어제밤 끝내 숨졌습니다.
<인터뷰> 최은희(故 신상옥 감독 부인): "오로지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한국영화의 거인 신상옥,
먼 길을 떠난 그에게 오늘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습니다.
KBS 뉴스 이민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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