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공격야구 고집.. PO 진출에 빨간불

입력 2003.08.20 (11:34) 수정 2003.08.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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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로 뒤진 팀이 8회초 공격에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천금 같은 동점찬스. 이런 상황이면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 대부분은 보내기번트 작전을 편다. 몇몇 감독은 타석에 4번타자가 들어서도 희생번트로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나 이광환 LG 감독만은 꿋꿋하게 강공책을 구사한다. 타자가 신인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것이 과연 신바람 야구이고 빅리그를 표방한 호방한 야구일까.



신바람도 이겨야 난다



LG의 4강진출 꿈은 백척간두에 있다. 19일 현재 잔여경기수는 32개. 그 안에 SK보다 6승 이상을 더 따내야 희망이 있다. 산술적으로는 사실상 희박한 확률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렵다. LG가 이처럼 벼랑 끝에 몰리게 된 데는 최근 5연패가 컸다. 특히 그중 4연패를 7·8위팀인 두산과 롯데에 당해 더욱 뼈아프다.



5연패하는 동안 LG는 너무 ‘헤픈 야구’를 했다. 선두타자 출루시 득점확률이 1할에도 못 미쳤을 정도다. 그 5경기에서 LG는 모두 13번 선두타자가 출루했지만 단 1명만이 홈을 밟았다. 올 페넌트레이스 최대 승부처에서 안이한 경기를 펼쳤다는 증거다. 절대 책임은 벤치에 있다.



LG벤치는 13번 중 한 번만 빼고 모두 강공책을 썼다. 단 한 번의 번트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나머지 12번의 강공 가운데 두 번이 안타와 상대 실책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그 두 번도 계속된 무사 1·2루에서 강공을 고집하다 결국 득점에 실패했다. 두 번의 1·2루 기회는 공교롭게도 모두 2점차로 리드를 당했을 때(15일 두산전 4회·19일 롯데전 8회)였다. 번트를 막무가내로 무시하다 중요한 게임에서 게도 놓치고 구럭도 놓친 셈이다.



하지만 이제 후회해도 늦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LG타자들은 올시즌 내내 거의 번트훈련을 하지 않았다. 프리배팅 때 잠깐 시늉만 내다 마는 게 전부였다. 훈련이나 실전에서 번트를 댄 적이 별로 없는 타자들이 갑자기 ‘번트야구’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듯 무기력하게 속수무책으로 패하면 더 이상 신바람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발도 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야 한다



이감독은 번트를 싫어한다. “번트로 득점할 확률이 더 적다”는 신념 때문이다. 실제로 이감독은 지난 94년 8개팀 최소 희생번트(54개)로도 당당히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그러나 이감독의 ‘호방한 야구’는 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95년 절정을 치닫는 듯했으나 96년 곧바로 내리막을 탔다. 4년간의 야인생활 끝에 2001년 한화 사령탑으로 재기했을 때도 이감독의 야구는 결과적으로 성공보다 실패 쪽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해 모 야구인은 “이감독의 신념이 잘못된 탓은 아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있는 괴리다. 이감독의 철학은 메이저리그 같은 톱클래스 야구에서는 환영받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의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감독의 선진야구를 소화하기에 선수들의 기량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설명은 LG타선의 현주소를 떠올리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LG는 19일까지 안타수(812) 타율(.245) 출루율(.317) 등에서 꼴찌다. 게다가 좌타자가 절대 부족하고 밀어치기에 능한 오른쪽 타자들도 드물다. 규정타석을 채운 정교한 3할타자가 없는 것도 커다란 약점이다. 따라서 LG의 현실은 애석하게도 이감독이 애용하는 치고 달리기 작전과 상통하지 않는다. 좌타자 3할타자 등이 고루 포진한 94년 우승 당시와는 천양지차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자를 아끼는 야구를 하는 게 정석이다.



지난해 김성근 전 LG 감독이 어윤태 사장의 신바람 야구론에 맞받아친 말이 있다. “나도 1만원짜리를 펑펑 쓰고 싶다. 하지만 내 수중에는 1,000원짜리밖에 없다.” 감독이 취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팀 전력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감독은 혹시 그 일을 소홀히 한 채 신바람의 허상만 좇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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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 공격야구 고집.. PO 진출에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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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03-08-20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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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로 뒤진 팀이 8회초 공격에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천금 같은 동점찬스. 이런 상황이면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 대부분은 보내기번트 작전을 편다. 몇몇 감독은 타석에 4번타자가 들어서도 희생번트로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나 이광환 LG 감독만은 꿋꿋하게 강공책을 구사한다. 타자가 신인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것이 과연 신바람 야구이고 빅리그를 표방한 호방한 야구일까.

신바람도 이겨야 난다

LG의 4강진출 꿈은 백척간두에 있다. 19일 현재 잔여경기수는 32개. 그 안에 SK보다 6승 이상을 더 따내야 희망이 있다. 산술적으로는 사실상 희박한 확률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렵다. LG가 이처럼 벼랑 끝에 몰리게 된 데는 최근 5연패가 컸다. 특히 그중 4연패를 7·8위팀인 두산과 롯데에 당해 더욱 뼈아프다.

5연패하는 동안 LG는 너무 ‘헤픈 야구’를 했다. 선두타자 출루시 득점확률이 1할에도 못 미쳤을 정도다. 그 5경기에서 LG는 모두 13번 선두타자가 출루했지만 단 1명만이 홈을 밟았다. 올 페넌트레이스 최대 승부처에서 안이한 경기를 펼쳤다는 증거다. 절대 책임은 벤치에 있다.

LG벤치는 13번 중 한 번만 빼고 모두 강공책을 썼다. 단 한 번의 번트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나머지 12번의 강공 가운데 두 번이 안타와 상대 실책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그 두 번도 계속된 무사 1·2루에서 강공을 고집하다 결국 득점에 실패했다. 두 번의 1·2루 기회는 공교롭게도 모두 2점차로 리드를 당했을 때(15일 두산전 4회·19일 롯데전 8회)였다. 번트를 막무가내로 무시하다 중요한 게임에서 게도 놓치고 구럭도 놓친 셈이다.

하지만 이제 후회해도 늦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LG타자들은 올시즌 내내 거의 번트훈련을 하지 않았다. 프리배팅 때 잠깐 시늉만 내다 마는 게 전부였다. 훈련이나 실전에서 번트를 댄 적이 별로 없는 타자들이 갑자기 ‘번트야구’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듯 무기력하게 속수무책으로 패하면 더 이상 신바람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발도 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야 한다

이감독은 번트를 싫어한다. “번트로 득점할 확률이 더 적다”는 신념 때문이다. 실제로 이감독은 지난 94년 8개팀 최소 희생번트(54개)로도 당당히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그러나 이감독의 ‘호방한 야구’는 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95년 절정을 치닫는 듯했으나 96년 곧바로 내리막을 탔다. 4년간의 야인생활 끝에 2001년 한화 사령탑으로 재기했을 때도 이감독의 야구는 결과적으로 성공보다 실패 쪽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해 모 야구인은 “이감독의 신념이 잘못된 탓은 아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있는 괴리다. 이감독의 철학은 메이저리그 같은 톱클래스 야구에서는 환영받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의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감독의 선진야구를 소화하기에 선수들의 기량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설명은 LG타선의 현주소를 떠올리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LG는 19일까지 안타수(812) 타율(.245) 출루율(.317) 등에서 꼴찌다. 게다가 좌타자가 절대 부족하고 밀어치기에 능한 오른쪽 타자들도 드물다. 규정타석을 채운 정교한 3할타자가 없는 것도 커다란 약점이다. 따라서 LG의 현실은 애석하게도 이감독이 애용하는 치고 달리기 작전과 상통하지 않는다. 좌타자 3할타자 등이 고루 포진한 94년 우승 당시와는 천양지차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자를 아끼는 야구를 하는 게 정석이다.

지난해 김성근 전 LG 감독이 어윤태 사장의 신바람 야구론에 맞받아친 말이 있다. “나도 1만원짜리를 펑펑 쓰고 싶다. 하지만 내 수중에는 1,000원짜리밖에 없다.” 감독이 취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팀 전력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감독은 혹시 그 일을 소홀히 한 채 신바람의 허상만 좇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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