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600주년, 창덕궁 내부공개

입력 2005.11.26 (00:00) 수정 2005.11.2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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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0월 25일인 11월 26일은 태종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궁을 옮긴 지 꼭 600년 되는 날입니다.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는 창덕궁 창건 600주년을 맞아 그 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인정전 동쪽 임금의 침소인 대조전과, 대조전 맞은편에 있는 임금의 집무실인 희정당 내부, 부용정의 비경이 내려다보이는 주합루 내부를 오는 30일까지 하루 3회 매회 30명에게 특별 공개합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광해군 2년(1610)에 중건하여 사용하다가, 인조반정(1623)으로 다시 불에탔고, 인조 25년(1647) 다시 중건이 시작된 이후 크고 작은 화재와 재건축이 이어졌습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때부터 경복궁 재건 전까지 13대에 걸쳐 약 270여 년간 역대 임금이 정사를 본 왕궁으로 창경궁과 함께 '동궐' 또는 '동관대궐' 이라고 불렸습니다.

1919년 8월 29일 한일합방의 조약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이루어졌으며, 1926년 4월 25일에는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창덕궁은 주인을 잃었고 500여 년의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후 일제는 전각을 헐어 전시장과 각종 편의시설을 마련하여 일반인들에게 관람을 허락했습니다.

한때 '비원(秘苑)'으로 축소,왜곡되어 불려지기도 했으나, 1990년대 대대적인 복원을 통해 현재는 조선시대 궁궐의 후원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궁궐로 남아있으며, 1997년 12월 우리나라의 궁궐 중에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편, 창건 600주년을 맞은 창덕궁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마련됩니다.
26일에는 경복궁에서 창덕궁에 이르는 어가행렬이 재현되고, 27일은 모든 지역이 자유 관람으로 개방되며 궁중무용이 곁들여진 궁중음악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창덕궁 인정전 행각에서 창덕궁의 600년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사진전이 다음달 20일까지 열립니다.

▶ 희정당(熙政堂 : 보물 815호)

희정당(熙政堂)은 창덕궁 안에 있는 침전(寢殿)의 하나로 내전에 속하는 건물이었으나 순조 때부터 왕이 대대로 집무를 하는 통에 편전(便殿)으로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순조 30년 5월에는 효명세자(후에 익종으로 추존)가 이곳에서 승하했으며, 고종이 경복궁 완공 전까지 머물던 곳입니다.

현재의 희정당은 연산 2년(1496년) 12월 숭문당(崇文堂)을 고쳐 희정당(熙政堂)이라 칭하였으며,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1917년 대화재 이후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내고 옮겨 지은 건물입니다.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 보물 815호) 내부
희정당은 조선후기 서구 문명이 유입된 흔적을 잘 보여주는데, 우리 전통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현관이 나타나 있고 자동차가 들어와 댈 수 있도록 한 구조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내부에는 붉은 카펫과 샹들리에, 서양식 가구가 놓여있어 묘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희정당 응접실 벽에는 1920년 순종의 명을 받아 그린 해당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 와 '금강산문물초승경도'가 붙어져 있습니다.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 보물 815호)


▶ 대조전(大造殿 : 보물 816호)

궁궐의 내전에서 가장 중심이 되며,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됐습니다.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광해군 초에 중건하였고, 현재의 대조전은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서 재건하였습니다.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大造殿) 무량각 지붕
대조전의 지붕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용마루가 없는 전각들은 대부분 왕 또는 왕비의 침전으로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용으로 상징되는 왕의 침소에 용마루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 건물에서 순조의 세자로 후에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 효종, 철종,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승하해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많은 왕이 승하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곳은 고종황제가 가끔 당대의 명창을 불러다 명성황후와 함께 이곳에서 궁정음악회를 열기도 했던 곳입니다.

대조전은 조선조 왕가 일족이 실제로 생활을 하던 공간인데다가, 특히 구한말 황실의 내실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창덕궁 대조전(大造殿 : 보물 816호) 내부


▶ 주합루(宙合樓)

후원은 일반인들에게 '비원(秘苑)' 또는 '금원(禁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원래 창덕궁과 창경궁 뒤쪽에 자리 잡은 정원으로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입니다.

주합루에서 바라 본 부용지(芙蓉池)
후원 초입에 자리잡은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다는 뜻의 주합루(宙合樓)는 아름다운 절경인 부용지(芙蓉池)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합루로 올라가는 계단입구에 마련된 어수문(漁水門)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임금의 뜻 안에서 열심히 노력을 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문으로, 임금이 사용하는 문과 좌우에 지붕을 곡면으로 만든 작은 문이 하나씩 있어 신하들이 드나드는 문이 달리 되어 있습니다.

정조가 즉위하던 해 완성된 주합루는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이 수많은 책을 읽으며 실력을 키워가던 공간으로, 2층으로 지은 주합루 1층을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으로 만들어 이곳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1층 서고에 있던 서책들은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져서 일반인들에게 마이크로 필름등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어수문(漁水門)과 주합루(宙合樓)


[KBS 뉴스VJ : 김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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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건 600주년, 창덕궁 내부공개
    • 입력 2005-11-26 00:00:00
    • 수정2005-11-25 13: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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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0월 25일인 11월 26일은 태종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궁을 옮긴 지 꼭 600년 되는 날입니다.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는 창덕궁 창건 600주년을 맞아 그 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인정전 동쪽 임금의 침소인 대조전과, 대조전 맞은편에 있는 임금의 집무실인 희정당 내부, 부용정의 비경이 내려다보이는 주합루 내부를 오는 30일까지 하루 3회 매회 30명에게 특별 공개합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광해군 2년(1610)에 중건하여 사용하다가, 인조반정(1623)으로 다시 불에탔고, 인조 25년(1647) 다시 중건이 시작된 이후 크고 작은 화재와 재건축이 이어졌습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때부터 경복궁 재건 전까지 13대에 걸쳐 약 270여 년간 역대 임금이 정사를 본 왕궁으로 창경궁과 함께 '동궐' 또는 '동관대궐' 이라고 불렸습니다. 1919년 8월 29일 한일합방의 조약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이루어졌으며, 1926년 4월 25일에는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창덕궁은 주인을 잃었고 500여 년의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후 일제는 전각을 헐어 전시장과 각종 편의시설을 마련하여 일반인들에게 관람을 허락했습니다. 한때 '비원(秘苑)'으로 축소,왜곡되어 불려지기도 했으나, 1990년대 대대적인 복원을 통해 현재는 조선시대 궁궐의 후원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궁궐로 남아있으며, 1997년 12월 우리나라의 궁궐 중에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편, 창건 600주년을 맞은 창덕궁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마련됩니다. 26일에는 경복궁에서 창덕궁에 이르는 어가행렬이 재현되고, 27일은 모든 지역이 자유 관람으로 개방되며 궁중무용이 곁들여진 궁중음악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창덕궁 인정전 행각에서 창덕궁의 600년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사진전이 다음달 20일까지 열립니다. ▶ 희정당(熙政堂 : 보물 815호) 희정당(熙政堂)은 창덕궁 안에 있는 침전(寢殿)의 하나로 내전에 속하는 건물이었으나 순조 때부터 왕이 대대로 집무를 하는 통에 편전(便殿)으로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순조 30년 5월에는 효명세자(후에 익종으로 추존)가 이곳에서 승하했으며, 고종이 경복궁 완공 전까지 머물던 곳입니다. 현재의 희정당은 연산 2년(1496년) 12월 숭문당(崇文堂)을 고쳐 희정당(熙政堂)이라 칭하였으며,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1917년 대화재 이후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내고 옮겨 지은 건물입니다.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 보물 815호) 내부
희정당은 조선후기 서구 문명이 유입된 흔적을 잘 보여주는데, 우리 전통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현관이 나타나 있고 자동차가 들어와 댈 수 있도록 한 구조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내부에는 붉은 카펫과 샹들리에, 서양식 가구가 놓여있어 묘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희정당 응접실 벽에는 1920년 순종의 명을 받아 그린 해당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 와 '금강산문물초승경도'가 붙어져 있습니다.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 보물 815호)
▶ 대조전(大造殿 : 보물 816호) 궁궐의 내전에서 가장 중심이 되며,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됐습니다. 임진왜란 때에 소실된 것을 광해군 초에 중건하였고, 현재의 대조전은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서 재건하였습니다.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大造殿) 무량각 지붕
대조전의 지붕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용마루가 없는 전각들은 대부분 왕 또는 왕비의 침전으로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용으로 상징되는 왕의 침소에 용마루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 건물에서 순조의 세자로 후에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 효종, 철종,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승하해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많은 왕이 승하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곳은 고종황제가 가끔 당대의 명창을 불러다 명성황후와 함께 이곳에서 궁정음악회를 열기도 했던 곳입니다. 대조전은 조선조 왕가 일족이 실제로 생활을 하던 공간인데다가, 특히 구한말 황실의 내실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창덕궁 대조전(大造殿 : 보물 816호) 내부
▶ 주합루(宙合樓) 후원은 일반인들에게 '비원(秘苑)' 또는 '금원(禁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원래 창덕궁과 창경궁 뒤쪽에 자리 잡은 정원으로 왕가에서 휴식을 취하던 곳입니다.
주합루에서 바라 본 부용지(芙蓉池)
후원 초입에 자리잡은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다는 뜻의 주합루(宙合樓)는 아름다운 절경인 부용지(芙蓉池)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합루로 올라가는 계단입구에 마련된 어수문(漁水門)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임금의 뜻 안에서 열심히 노력을 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문으로, 임금이 사용하는 문과 좌우에 지붕을 곡면으로 만든 작은 문이 하나씩 있어 신하들이 드나드는 문이 달리 되어 있습니다. 정조가 즉위하던 해 완성된 주합루는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이 수많은 책을 읽으며 실력을 키워가던 공간으로, 2층으로 지은 주합루 1층을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으로 만들어 이곳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1층 서고에 있던 서책들은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져서 일반인들에게 마이크로 필름등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어수문(漁水門)과 주합루(宙合樓)
[KBS 뉴스VJ : 김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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