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전문가’ 한준희 KBS 해설위원

입력 2006.08.21 (19:41) 수정 2006.09.0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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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계 미식축구 스타인 하인스 워드가 방한을 했을 당시 그와 그의 어머니의 따뜻한 감동의 스토리에 대한 소식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감동의 기사들 보다 눈을 사로잡는 한 기사가 있었다. NFL의 최종 결승전인 ‘수퍼볼’에 관련한 소식으로 ‘수퍼볼’을 방영할 때의 광고료에 대한 문제였다. 답부터 말한다면 30초 TV 광고료가 무려 25억 원에 달하며 이 비싼 광고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업들은 광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월드컵이 낳는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2 한일 월드컵이 이끌어낸 부가가치 효과는 5조 3000억 원에 달하며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약 12조 3000억 원의 부가가치 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월드컵 특수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가수들은 앞 다투어 월드컵 응원가를 발표하고 있고 각 기업의 CF에는 어김없이 축구 스타나 붉은악마가 등장한다. 이는 시청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방송사도 마찬가지인데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좋은 캐스터와 해설자를 확보하기 위해 월드컵을 한 달여 앞두고 총성 없는 전쟁이 바쁘게 전개되고 있다. 시청률은 곧 광고의 수급과 깊은 관계를 맺기에 좋은 해설자와 캐스터를 확보하는 일은 각 방송사에게 있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성적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보다 어찌 보면 더 중대한 사항일 수도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는 ‘아~4강~4강~!’의 울부짖음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이상철 현(現)울산현대 코치, 해설 내내 아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서슴지 않다가 8강 진출이 확정되자 ‘저기 우리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극진한 아들 사랑을 보여준 차범근 현(現)수원삼성 감독 등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일약 스타 해설위원으로 급부상 했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도 많은 캐스터와 해설가들이 양질의 경기 중계를 전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K리그 명예기자단은 2006 독일 월드컵을 맞아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캐스터와 해설가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대단한 유럽축구 지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와의 경기에서 ‘악~반 데 사르’라는 외침으로 인해 ‘샤우팅의 대가’로 유명세를 치른 한준희 KBS 해설위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유럽 축구 전문가로서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다양한 축구 상식과 그만이 가진 특유의 외침으로 많은 축구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한준희 해설위원을 서울 광장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보았다.




한준희 해설위원을 경기장 안팎에서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은 그 겸손함과 지나칠 정도의 친절한 성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이제 적지 않을 법도 한데 싸인을 받기 위해 접근하는 팬에게 90도에 가까운 깍듯한 인사와 ‘살인 미소’를 매번 날려주는 그의 모습은 ‘친절한 금자씨’의 친절이 무색할 정도다.


인터뷰를 하기 전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 필자는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인사를 건넨 적이 있는데 이내 돌아오는 ‘감사합니다.’의 연발과 친절한 인사말에 적잖게 당황한 경험이 있다.


이번 만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얼굴에 배어 있는 그의 살인미소와 ‘죄송합니다.’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그의 언행 덕분에 마치 전통혼례를 치르는 신랑과 신부처럼 매번 수직 맞절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전날 이미 3개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다음날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쥴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쉬는 날을 맞아 장시간 인터뷰를 허락한 그의 ‘친절함’에는 더욱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 축구 해설위원 한준희 보다는 ‘축구팬’ 한준희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저는 사실 축구 해설위원 보다는 축구팬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 축구팬 한준희가 축구에 빠져들게 된 경기는 도대체 얼마나 멋진 경기였죠?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경기라고 한 가지를 짚기는 어렵지만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축구 경기 중 가장 오래된 명승부는 바로 말레이시아 전에서 차범근 감독이 세 골을 넣었던 76년 박스컵 입니다. 그 때 4-0 상황에서 박상인 선수가 한 골을 넣어서 4-1이 되었고 그 다음에 차범근 선수가 세 골을 넣어서 4-4로 비겼었죠. 당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상에 축구대회는 챔피언스 리그 같은 건 몰랐고 월드컵하고 박스컵, 킹스컵, 메르데카배 이게 축구의 다라고 생각하던 시절인데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근데 사실은 저는 축구 이외에도 스포츠 모든 종목들을 다 좋아했어요. 이종경, 강만수, 박수교, 신동찬, 박인규, 이문규, 조명수, 박종천......(너무 많아서 생략) 제 성장과 시대별 구분으로 분류하자면 7~8살 때부터 82년 까지는 동네에서 공하나 갖고 길 위에 돌 두 개 올려놓고 골대 만들어서 축구를 주로 했죠. 그리고 82년에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동네에서 야구공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구요. 중학 2~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농구를 했죠. 박수교, 이충희 대 신동찬 김현준. 현대와 삼성의 라이벌전이 일품이었죠. 나중에는 허재의 중앙대가 나왔지만.


-다행히 축구로 다시 돌아오셨군요?


물론 축구는 계속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시대별 구분이라 해도 거창한게 아니라 다 제가 동내에서 즐겨했던 스포츠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웃음)


-그렇다면 어렸을 때 좋아하던 선수는 차범근 선수였나요?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할렐루야에 신현호 선수에요. 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의 주역인 신연호 선수 말고 윙 플레이어 신현호 선수가 있었죠. 그때 당시 그 선수가 보여주었던 폭발적이고 저돌적인 돌파는 어린 제 기억 속에서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물론 제일 좋아하던 팀도 할렐루야죠. 그렇다고 제가 종교인이냐? 그건 절대 아니고 저는 무교입니다.(웃음) 할렐루야 팀은 수퍼리그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프로팀이었어요. 달랑 프로팀이 하나라서 그 때는 이벤트 시합만 하고 그랬었죠. 요즘 상투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사설 국가대표. 그 팀 선수들은 다 국가대표였어요. 그 때는 그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 할렐루야 대 화랑 이었죠. 두 팀 경기하면 반칙 100개씩 나오고, 예전에 대통령 배였나? 두 팀이 붙어서 30초에 한 번씩 경기가 끊어진 적도 있어요. 다음날 신문에서 너무 심했다고 엄청 얻어맞기도 하고.


-30초에 한 번은 너무 심했군요. 그렇다면 지금 축구에 반칙 나는건 예전에 비하면 양반이네요?


근데 사실 저는 옛날 축구가 더 재미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국가대표 멤버도 사실은 86년 멤버고. 제가 맨 처음 싸인 받았던 선수가 박윤기 선수. 아시죠? K리그 원년 득점왕이자 1호 골의 주인공. 중학교 수위실에서 싸인 받았어요. 저희 학교 출신이셨거든요. 동북중학교. 제가 전학 갔는데 거기는 중동중이었죠. 어떻게 하다 보니 축구 학교만 돌아다녔네요.




시작이 좋았다. 입심 좋은 해설자답게 여유 있는 유머와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웃음을 곁들인 대화는 마치 친한 동네 형과 대화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유럽 축구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 유럽 축구에 편중된 대화가 오갈 것이라 예상했으나 어렸을 때부터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고 특히 한국 축구를 좋아했다는 말에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왔다. 예전 국가대표 이야기와 수퍼리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알 수 없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화의 깊이가 점점 깊어져갔다.


-한준희씨 하면 유럽축구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습니다. 유럽축구는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나요?


70년대 후반, 80년대 초에 MBC에서 분데스리가를 해줬거든요.


-그 때 차범근 선수가 활약할 때 아니었나요?


네. 근데 불행하게도 그 때 차범근 선수를 많이 보진 못했어요. 왜나면 지금하고는 개념이 조금 틀린게 지금은 박지성하고 이영표만 따라다니잖아요. 근데 그때는 차범근 특별중계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분데스리가 중계였어요. 그리고 풀타임 중계가 아니었어요. 제 기억에는. 한 시간 정도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중계였죠.


주로 바이에른 뮌헨 경기를 보여주었어요. 매주 한 경기씩 중계 해주는데 대부분 세주를 하면 두 주는 바이에른 뮌헨이 나오고. 한주는 함부르크SV 중계를 해주는 식이었죠. 그 때는 바이에른 뮌헨의 가장 큰 라이벌이 함부르크SV 이었거든요. 함부르크가 한동안 잠잠하다가 올 시즌에 좋아졌죠?
바이에른 뮌헨에는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회네스가 유명했고. 지금 루메니게, 회네스가 다 바이에른 뮌헨 임원이잖아요. 함부르크에는 지금 마가트 감독. 마가트가 미드필더고 칼트, 흐르베시가 유명했죠. 흐르베시라고 지금 개념으로 따지면 얀콜러 내지 얀커 인상을 주는 거한 스트라이커가 있어요. 그리고 메머링.


그때 분데스리가를 중계 해주시던 분이 고(故) 주영광 선생님이셨어요. 주영광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면 함흥철 선생님 아시죠? 할렐루야 감독이셨고 국가대표 감독, 단장까지 하셨던 분. 그 분들이 헝가리한테 0-9로 졌던 54스위스 월드컵 멤버들이시죠. 주영광 선생님이 80년대 초, 당시에도 상당히 고령이셨는데 해설을 굉장히 잘하셨어요. 그 분 해설이 지금까지도 인상에 많이 남습니다.


아무튼 그 때 분데스리가를 본 사람을 제가 만나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시청률이 얼마 안 나왔을 거예요. 나만 본 것 같네요.(웃음)


그 때는 분데스리가 중계 외에는 신문기사 정도가 유럽축구 소식을 접할 유일한 창구였는데 신문기사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 단신만 몇 줄 올라오는 정도였어요. 그런데도 저는 해외축구 소식이 나올 때마다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졌죠. 어느 날 신문을 보면 리네커가 에버튼 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을 했다고 나오면 다른 사람은 관심 없어도 저는 열심히 읽어보고. 오늘 베르캄프 인터밀란에서 아스날로 이적, 게리 리네커 바르셀로나에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단신이 나오면 저는 일일이 외웠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으로 오게 되면 한국에서도 해외축구를 하죠. 그게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KBS 위성을 통해서. 그 때는 이탈리아의 세리에A와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를 주로 보여줬습니다.


-역시 유럽축구에 관련해서는 범접할 자가 없겠군요. 중계를 보다보면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알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정말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시죠?


아까 선수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혼날 정도로 스포츠 선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었거든요. “너는 이 자식아 그거 외울 시간 있으면 공부를 해!” 라고 아버지께서 많이 혼내셨죠. 그 때 제가 아버지한테 말씀 드린게 뭐냐면 그거 제가 외우려고 일부러 외운게 아니고 그냥 외워 진거라 저도 어쩔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건데 그냥 외우는 걸 잘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덧붙여서 중계 전에 준비가 좀 있어야죠. 예를 들어 오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리즈 유나이티드다. 그러면 관중석에 보비 찰튼과 재키 찰튼이 나와 있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보비 찰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선수역고, 재키 찰튼은 리즈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선수인데 둘이 형제인데 둘 다 잉글랜드 국가 대표였고. 그 정도는 예상이 될 수 있죠. 근데 그런 예상이라는 것도 기본 지식 바탕이 있어야 되겠지요? (웃음)


지금 생각해도 제가 신기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예전에 요르단 국왕이 나온 걸 맞춘 적이 있어요. 비화를 공개하자면 제가 그 경기에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얼굴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는 과정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최근 기사를 하나 찾았더니 최근에 스페인에 요르단 국왕이 방문을 한 거 에요. 그래서 우연찮게 그 기사를 보고 다음날 중계를 하는데 스페인 국왕 옆에 요르단 국왕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최근에 저 요르단 국왕이 스페인을 방문하고 있는데 같이 관전을 하고 있네요.” 그런 멘트를 한 적이 있죠.


간혹 한준희를 비판하시는 분들이 ‘쟤는 현지 해설 듣고서는 그대로 번역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사실상 그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현지 코멘터리가 누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고 해도 그걸 듣고서 생각해서 번역하려면 이미 15초 정도 흘러있고 거기에 관련된 화면은 지나가서 제대로 된 ‘뒷북’이 되어버리고 말죠. 사실상 미리 알지 않고서 번역으로 말씀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항간에는 세계의 여자축구 선수까지 모두 다 알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사실인가요?


물론 다 알지는 못하죠. (웃음)
근데 여자축구에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도 그 지역에 있는 팀은 중계를 다 해주거든요. 그런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기도 하고 옛날 여자 월드컵 이런 것도 비디오로 구입해서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옛날 축구 선수를 좀 많이 알아요. 예를 들어 미국에 웃통 벗는 세리머니를 한 브랜디 체스테인이라는 선수가 있는데. 그 시대 선수인 미아햄, 티프니 밀브렛, 줄리 파우디, 조이 포셋, 크리스틴 릴리, 신디 팔로우. 골키퍼가 브리아나 스커리



그래서 가끔 여자 축구 해설하다 보면 재미있게 해요. 여자 선수도 플레이 스타일과 성향이 있기 때문에 제가 가끔 남자 선수들과 비교해서 해설하고 그러거든요.
예를 들어 99년 여자 월드컵 같은 경우 브라질에 시시라는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는 히바우도 보다 왼발 프리킥을 더 잘하는 선수에요. 프리킥의 적중률이 시시보다 높은 남자 선수를 못 봤을 정도로 차면 다 들어가는 정도에요.
노르웨이의 솔베이리 굴브란트센 같은 선수는 볼 다루는 스타일이 베론 하고 비슷하고 저는 미아햄만 나오면 앙리하고 비교를 해요. 여자 치고 빠르면서 발재간도 있고, 팀에 세트 플레이 같은 프리킥도 처리하는 모습이 앙리와 흡사하죠. 그렇게 여자 축구를 하면서 남자 축구와 비교해서 해설을 하면 재미있습니다.


-해설을 시작하기 전에 해외 축구 전문 사이트인 사커라인에서 이름을 날리셨는데 사커라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참 인생의 아이러니라는게 제가 인터넷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인터넷 하고 게임 하는 것보다는 경치 좋은 데로 소풍가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 재미있게도 제가 이름을 얻은 곳이 인터넷이죠.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에 공부를 하느라 머리가 아파서 축구를 더 열심히 봤어요. 그러다가 신문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몇 번 남긴 적이 있는데 글을 남기고 나니까 몇 군데서 메일이 오더라구요. 저는 인터넷 가명 이런 것도 몰라서 실명에다 메일까지 다 넣고 썼는데 큰 신문사에서 통신원 할 생각 없냐고 제의가 오기도 하고 이 곳 저 곳에서 메일이 왔어요. 그 중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계속 메일을 보낸 데가 있는데 그게 지금 사커라인이죠.

처음의 사커라인은 스포츠 플라자라는 사이트였어요. 저한테 연락 왔을 때는 사커라인은 아니었고 스포츠 플라자라는 사이트였는데 그냥 개인 홈페이지 수준이에요. 회원도 그냥 100명, 200명 그랬는데 제가 연락 온데를 비교해 보니까 여기가 제일 불쌍해 보이더라구요.(웃음) 그 때는 시간에 쫓겨 가면서 용돈 몇 푼 버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던 데다 축구 전문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어차피 취미로 제가 본 경기나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이왕 그럴 바 에야 불쌍한데 써주자 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쓰면서 그 홈페이지가 회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건 사실이에요. 회원 100명이던 사이트가 한 달 지나니까 1000명이 되었고 또 한 달이 지나니까 3000명이 되어있더라구요. 그러면서 사커라인을 제일 먼저 만든 그 친구가 본격적인 축구 사이트로 개편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공부를 때려 치고 귀국을 했죠. 그래 한 번 해보자. 재미있을 것 같다. 공부하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사실은 사커라인 때문에 귀국을 했죠.


-공부를 접고 온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요?

당연히 쉽지 않았죠. 오죽 걱정 되셨으면 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오셨어요. 부모님과 큰 충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부모님께 죄송은 하죠. 겉으로는 표현을 크게 안하시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많이 상하셨을 거예요. 지금은 그래도 TV에 얼굴도 나오고 하니까 그 때보다는 마음이 조금 편하실지는 몰라도 지금도 좀 그러실거에요.


-사커라인을 보면 그 방대한 데이터에 한 번 놀라고 매주 어김없이 올라오는 경기 리뷰 기사 때문에 두 번 놀랍니다. 해외 축구 같은 경우 지금도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안정환 경기가 아니면 찾아보기가 힘든데 어떻게 그런 기사가 올라 올 수 있나요?


요즘 국내에서도 인터넷으로 축구를 볼 수 있는 사이트들이 몇 군데 있잖아요. 저는 사실 축구는 큰 TV에 맥주 한 잔 하면서 봐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은 예전부터 인터넷으로 축구 보는게 되는 친구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기사를 조작하는게 아니고 예전부터 듣도 보도 못한 사이트에서 축구를 봐왔던 거지요. 또 다른 비결이라면 스페인어를 하는 친구들이 몇 있어요. 외국에 있는 친구들도 몇 명 있기 때문에 외국에 있기 때문에 사커라인이 누릴 수 있는 강점도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 사커라인 필진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면 누구보다도 축구 중계를 많이 봐왔다는 거죠. 가장 단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친구가 이형석이라는 친구인데 이 친구의 축구 지식에는 저희 필진들 모두가 머리를 조아려요. 제가 미국에서 귀국해서 필진들을 만났는데 이 친구가 제 옆에 오더니 ‘형, 97/98 시즌 프리메라리가 어느 경기 87분경에 이런 일이 있었죠?’하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너가 알지 내가 아냐? 다시는 물어보지 마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이 친구는 외국에 나간 적은 없지만 90년대 중반부터 TV에서 해준 해외축구 중계 녹화 테이프가 집에 한 가득 쌓여있을 만큼 매일 학교 갔다 와서 축구만 보고 축구만 하는 친구에요. 저도 가끔 중계를 하면서 예전 경기에 대해서 설명해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친구 같은 경우는 그런 경기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친구죠.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죠낸’ 이라는 단어가 귀여워서 좋다는 한준희 해설위원. 앞으로 10년 후에는 매우, 아주라는 단어에 이어 국어사전에 분명 ‘죠낸’이라는 단어가 등재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그는 축구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커라인 필진들이 축구로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터전이 마련되어 있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제가 욘사마 정도 돼서 동생들을 다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 친구들에게는 ‘죠낸’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자신의 식구들을 챙기는 그의 표정은 지금과는 다르게 사뭇 진지해 보였다.


즐거운 분위기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 중계를 처음 시작할 때의 추억에 대한 궁금증을 질문해보았다.


-첫 중계 때를 기억하고 계시나요? 중계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첫 중계는 정말 잊지 못해요. 제 첫 중계는 천만 다행으로 스포츠 특선이라는 50분 분량의 녹화 방송이었어요. 경기가 그때 당시 박지성과 이영표가 있었던 PSV 아인트호벤 경기였는데 결과를 알고 해설하는 거라 한숨 돌렸죠. 그런데도 첫 방송이라서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최창섭 캐스터가 경기 전에 긴장을 잘 풀어주셔서 실수 없이 해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첫 경기 해설 하고 나서 안 잘릴 수 있었구요.(웃음) 최 국장님이 해설자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이세요. 지난 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님이 해설로 많은 인기를 받으셨잖아요. 거기에는 편하게 해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최 국장님의 힘도 크다고 생각해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2003년에 월드컵 지역예선 볼리비아 대 우루과이경기입니다. 우루과이만 해도 당시 유명한 선수가 레코바 포를란 정도가 있었고 주요 선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볼리비아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몇 명 있던 유명한 선수도 다 은퇴한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제가 스페인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일단 제가 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하고 갔습니다. 근데 그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주관 방송사 측에서 스타팅 멤버를 안 보내준 거예요. 원래는 시작 전에 현지 주관 방송사에서 출전선수 명단을 보내주게 되어있어요. 근데 출전 선수 명단이 없으니 제가 준비한 자료와 출전 선수의 번호도 제대로 매치가 안 되죠. 그래서 스타팅 멤버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선수들의 위치나 동선에 대해서 중요시 하다 보니 거기에 준해서 과감하게 이름을 불러버렸어요. 제가 이쪽에 누구라고 하면 옆에 캐스터 분께서도 적어 놓으셨다가 부르시고. 그렇게 경기 중계를 마치고 났는데 PD께서 나중에 검토를 해보시더니 제가 호명한 선수 이름이 70~80%는 맞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는 제가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해요. 과감하게 이름을 막 불러댔는데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중계를 하면서 이야기보따리를 좍 펼쳐놓으시고 경기가 끝날 때 까지 쉴 새 없이 설명해 주셨는데 요즘은 그게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많이 까지는 아니고 조금 준 것은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중파와 케이블TV는 시청층이 다르기 때문에 공중파에서는 요구 사항이 조금 다릅니다. 케이블TV는 매니아 분들이 많이 찾으시는 반면 공중파는 어린 아이서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려운 얘기는 할 수가 없죠. 그래도 지금도 SKY KBS에 나가면 어느 정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지요.


-비 선수 출신 해설가이기 때문에 누리는 강점도 있지만 반면 힘든 점도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태클을 당해서 누워 있으면 선수 출신 분들이면 아무래도 지금 어디가 어떻게 고통스럽다고 하는 것을 조금 더 정확히 할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까지는 안 되죠. 그렇다고 제가 의학을 전공 한 의사 출신도 아니기 때문에 의사 출신이면 또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물론 부상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묘사 하는 것이 참 어렵기 때문에 부상을 당했을 때가 가장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선수들의 심리 묘사나 이런 쪽도 힘들겠군요?


그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엄청나게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서의 인상도 있기 때문에 선수가 직접 느끼는 감정도 있겠지만 그 선수들을 보면서 느끼는 팬의 감정도 있거든요. 근데 이 입장이 조금 약하다고 하면 저 쪽의 입장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부상에 관한 만큼처럼 엄청나게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도 비선수 출신의 해설자보다는 선수 출신의 해설자가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비선수 출신 해설자들의 숫자가 많아진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해외 축구 준비를 하면 프랑스는 대부분이 지단이고 잉글랜드는 대부분이 베컴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팬 여러분들이 벌써 먼저 알아보고 항의하시죠. 만약 선수 출신의 해설자 분들이 지금 비선수 출신의 해설자가 맡고 있는 몫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전 깨끗이 은퇴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 때가 되면 정말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은 약간의 필요는 있다고 생각을 하죠.


-외국의 예는 어떤가요?


외국에는 이렇다고 봐야죠. 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오히려 캐스터의 범주에 속하죠. 근데 캐스터 자체가 미묘한 부분인데 외국은 1인 해설도 하거든요. 1인 해설을 할 때는 선수출신이 나오느냐 비선수 출신이 나오느냐하면 비선수 출신이 나와요. 그리고 2인 해설을 할 때도 우리나라처럼 캐스터와 해설자의 구분이 명확히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끝나고 자막이 올라올 때도 코멘터리로 두 명의 이름이 올라오죠.


요즘은 한국에도 스타스포츠가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아마 이제는 한국 팬들한테도 알려져 있을 텐데 예를 들어 마틴 타일러, 이언 크로커, 롭 호오도온. 마틴 타일러 - 앤디 그레이가 나오면 그건 이제 두 명의 코멘터리가 되는 건데 1인 중계를 할 때는 마틴 타일러가 나오게 되지요. 이언 크로커-트레버 프란시스, 알런 패리-고든 맥퀸, 롭 호오도온-브라이언 마우드. 여기서 앞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서기철, 전인석, 이재후, 최승돈 같은 분들이죠. 저도 외국 기준으로 봤을 때는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는 아니지만 전자에 해당하는 코멘테이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외국의 경우는 그 코멘테이터 혼자서도 북 치고 장구치고 해설을 다 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숨 가쁘게 달려온 인터뷰는 어느새 2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인터뷰를 하는 쪽이나 당하는 당사자나 지치게 마련이지만 한번 피어난 이야기꽃은 좀처럼 질 줄을 몰랐다. “이제 삼천포에 빠지지 말고 질문에 맞는 답을 드려야겠군요.”라는 말을 들은 지가 꽤 되었지만 하나의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유럽 축구 전문가에게 한국 축구에 대한 조언을 들을 차례였다.


-유럽 축구 문화와 우리나라 축구 문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럽 축구 문화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스위스의 FC 툰 같은 경우는 인구 5만 인구에 그 주변에 문화시설이 축구장 밖에 없기 때문에 축구를 하는 날이면 도시 자체가 축제가 됩니다. 그래서 경기장에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만 5천명이 입장을 하는 믿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프로 스포츠도 너무 많고 대부분 도시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많이 있기 때문에 유럽과 같이 지역적 연고 의식이 뿌리내리기가 많이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축구팬의 입장으로써 많이 가슴이 아픈 부분이기도 합니다.


-K리그가 유럽 축구 리그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물론 모든 면에서 다 배워야겠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곧바로 프리미어리그 같은 리그를 벤치마킹 하는건 조금 무리가 있어요.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아직 승강제도 갖춰져 있지 않거든요. 1위를 제외하고는 잘해봤자 메리트도 없고 못해봤자 페널티도 없지 않습니까. AFC 챔피언스 리그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티켓도 우승팀에 한정되어 있고 유럽에는 훨씬 더 다양한 단계의 메리트가 있지요.


예를 들어 꼭 UEFA컵이나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아니라도 리그 상금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실제로 15위를 하는 것보다는 8위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그리고 요새 무승부에 대한 얘기가 화두인데 무승부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전·후기 방식에 따른 짧은 리그 일정 탓이 크겠지요. 한 경기를 이기면 순위가 수직 상승하고 또 한 경기를 지면 그대로 추락하기 때문에 최소한 지지는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대부분의 팀들이 경기에 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번의 리그 일정을 시험해 본 결과 고심 끝에 나온 시스템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이것 역시 문제점을 안고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상 미국의 스포츠와 비슷한 명목으로 ‘가을의 축제’를 즐기려는 경향이 강한데요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는 FA컵을 더 성대하게 치르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선은 시즌 중에 치르되 가을에 4강이나 8강 정도부터 시작해서 아주 성대한 FA컵을 개최하는 것이죠. 현재는 FA컵에도 큰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하위권의 팀이 부진했던 리그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총력을 펼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는데 만일 상금의 규모를 더 늘려서 확실한 메리트를 부여한다면 FA컵의 권위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럼 상금은 어디서 충당하지요?


사실 그런 현실적인 요건 때문에 획기적인 리그 시스템 개선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사실 제가 말씀드린 것도 어떻게 보면 다 공염불이에요. 무언가를 이뤄가기 위해서는 항상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아까 의견을 나누었던 무승부나 여러 이유 때문에 K리그의 재미가 떨어진다고 비판하시는 팬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럽에 비해서 문화 역사 태생적 문제를 제외하고, 경기 내용만 본다고 생각되면 K-리그 역시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 역시 옛날 축구가 재미있다고 하지만 현재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용병의 수준은 상당히 높고 그에 따라서 우리나라 선수들도 많이 성장했거든요. 특히 몇몇의 용병은 특출 난 활약을 보이고 있고 대부분의 용병이 자국 청소년 대표 정도는 거친 선수들이다 보니 선수 면면의 질도 꽤 놓은 편입니다.


물론 비율적인 면에서는 프리미어리그보다 떨어질 수 있겠죠. 재미없는 경기가 나올 확률이 K리그가 더 많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의 하위 팀끼리의 경기보다 K리그가 재미없다. 이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까 AFC챔피언스리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AFC챔피언스리그가 더 흥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것 역시 다른 분들이 많이 주장하시는 보편적인 대답이지만 저 역시 예선을 권역별로 치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현재의 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프로팀이 저쪽 베트남이나 중동의 팀들과도 예선을 치러야 해요. 거리 면에서도 문제가 있지만 집중력 면에서도 문제가 있거든요.


만약 권역별로 예선을 치르게 된다면 형평성면에서야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집중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극동에는 같은 하늘 아래 살지 못할 것 같은 한·중·일의 라이벌이 있고 또 동남아시아쪽의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같은 쪽의 라이벌 의식도 대단하거든요. 중동도 마찬가지구요. 그렇게 라이벌 의식을 잘 활용하여 예선의 집중도를 높이고 마지막 토너먼트로 챔피언을 가리는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는 대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 팬의 입장으로 K-리그가 이렇게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으신다면 어떤 것이 있으십니까?


요즘 K-리그 연맹 홈페이지를 보면 다양한 동영상 자료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시도는 너무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옛날 자료 찾으려면 정말 힘들고 기껏 찾으면 자료가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 같은 경우는 너무 잘 되어있죠. 대표적인 예로 맨체스터 유나이트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1001골이라는 비디오가 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 모음을 모아놓은 영상이지요. 그것도 골이 들어가는 상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골이 들어가기 전에 이어지는 첫 상황. 예를 들어 골키퍼의 골킥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면 거기부터 골 상황까지 아주 자세한 영상이 담겨있습니다. 게다가 헤딩골, 중거리슛, 페널티킥, 자살골, 상대선수의 실수에 의한 골 모음 혹은 스코틀랜드 스트라이커, 웨일즈 선수의 모음 맨체스터 더비, 리버풀전에의 모음 등등의 세세한 카테고리로 수십 개의 비디오가 나오고 있죠. 더불어 시즌 정리 비디오 등의 데이터 자료가 많아서 팬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고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유럽처럼 시즌 비디오도 나오고 각 팀에서도 많은 영상 자료를 발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팬들에게 선수의 훌륭한 영상이나 팀의 멋있는 영상만큼 관심을 증대 시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분위기를 바꿔보죠. 검색사이트에 ‘한준희’라는 이름을 치면 대부분이 ‘샤우팅’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샤우팅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게 되셨나요?


샤우팅의 명칭이 굳어진 것은 첼시대 맨유전 이었습니다. 그전에도 소리를 지른다고 지적해 주시기는 했었는데 샤우팅이라는 별명은 그 때 얻어진 것이죠. 실제로도 제가 하이 테너 이긴 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친구가 제 별명을 목소리가 높이 올라가서 파리넬리라고 불렀던 적도 있지요. (웃음)


맨유와 첼시의 경기에서도 저는 늘 하던 대로 했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별로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명진 아나운서와 같이 중계를 했었는데 그 분도 인식하지 못하고 계셨구요. 근데 다음날 인터넷에 들어 가보니까 난리가 났더라구요. 제가 아무래도 다혈질 기질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도 경기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곤 했었는데요, 일부러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탄의 의미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악~반데사르’ 라고 하면서 선수 이름을 호명한 것도 어느 정도 어필을 했다고 봅니다. 보통 한국식의 해설은 ‘슛~! 아 막았습니다!’ 이건데 그 때는 선수이름을 호명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조금 외국식이었다고 할 수 있죠. 게다가 보통은 캐스터 분들도 ‘루니~’ 라고 하기 보다는 ‘슛~’ 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는데 그 날을 이명진 아나운서의 추임새가 너무 절묘했거든요. 그분이 ‘드록바! 드록바! 드록바!’를 외치시고 제가 ‘악~반 데 사르!’라고 소리를 지르다 보니 그게 팬 여러분께는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가끔 다른 곳에서 인터뷰를 하다보면 샤우팅을 재현해 달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럴 때는 조금 난감하죠. (웃음) 재현한다고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구요.


-인터넷의 영향으로 언론 매체의 다양성에 의해서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 졌습니다. 그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것과 관련된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느 대학에 어느 과를 가시라는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기회가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언론 매체 등에 성장으로 과거처럼 언론고시 시험 보다는 축구 분야에서의 업적이 있다면 이런 쪽을 통해서도 지망이 가능해 졌지요. 대표적인 예로는 사커라인의 필진이 되어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에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네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조사하는 것보다 볼 수 있는 경기를 최대한으로 많이 보는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K-리그 와 유럽 축구 리그등 축구 보는 것에 왕도를 가리지 말고 최대한 많이 보시고 시간 되시면 K-리그 경기장에서 직접 보시면서 좋을 것 같네요.


-독일 월드컵을 앞 둔 우리나라가 결과 예측이 수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월드컵에 참여하는 대표팀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매 경기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처럼 시나리오를 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구요. 98년 당시 멕시코에게 이기고 마지막 벨기에 전에서 비겨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했으나 그것이 쉽사리 될 리가 없죠. 이번 월드컵도 그때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어떤 시나리오를 세워 놓고 거기에 따라 가는 것보다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싸해주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상당한 강팀입니다. 우리가 비록 나쁜 조는 아니지만 결국 2위 까지 밖에 못 올라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를 이길 수 있는 팀이 벌써 두 팀이 되기 때문에 쉬운 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죠. 프랑스는 같은 경우는 정신력이 100% 신뢰되지가 않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가면 미리 포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스위스는 경기력측면에서 기본 선이 있는 팀이죠. 즉 크게 무너지지 않을 팀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쿤 감독의 선수 장악력이 상당하고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상승세의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에 스위스를 만난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힘든 싸움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특성이 신바람 민족이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 깨면 더 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2년 때도 폴란드전을 완벽하게 이긴 이후 탄탄대로를 갔고 올해 WBC도 대만과 일본을 처음부터 이기면서 그 이후에 일본과 미국을 거푸 잡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첫 경기부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의 경기 외적인 실수로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토고 같은 경우는 거칠고 감정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우리선수들이 흥분하지 말고 평정심을 갖고 경기를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토고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와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구요.

마지막으로 모두가 팀을 위한 정신이 필요한 것 같고 팀을 위해서 헌신 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한두 명의 선수덕분이 아닌 모든 코칭 스텝과 선수 모두가 팀을 위해서 희생했기 때문이었죠. 그렇기에 우리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상 최초로 4시간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금의 지루함도 느낄 수 없었다. 때때로 구구단을 하듯 사람 이름을 줄줄 외우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탄성을 거듭하기도 벌써 몇 번. 녹음기는 녹음 한도를 초과해 꺼지고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지만 마치 역사 선생님에게 축구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야기를 중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릇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천일야화를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축구팬들에게 드리는 마지막 한 마디로 인터뷰를 마무리 짓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축구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말씀 해주세요.


축구를 즐기는 문화로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영표 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노력하는 선수는 즐기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 이 말이 바로 제가 축구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축구 팬 한 분 한 분이 즐기는 축구 문화를 만드신다면 우리나라 정말로 유럽 부럽지 않을 만큼 좋은 축구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월드컵 중계는 꼭 KBS와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저희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중계로 다가겠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K-리그 명예기자 김정현, 홍재의]




- K리그 연맹 명예기자 코너 [K-리그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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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축구 전문가’ 한준희 KBS 해설위원
    • 입력 2006-08-21 19:41:50
    • 수정2006-09-01 15:27:26
    축구
얼마 전 한국계 미식축구 스타인 하인스 워드가 방한을 했을 당시 그와 그의 어머니의 따뜻한 감동의 스토리에 대한 소식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감동의 기사들 보다 눈을 사로잡는 한 기사가 있었다. NFL의 최종 결승전인 ‘수퍼볼’에 관련한 소식으로 ‘수퍼볼’을 방영할 때의 광고료에 대한 문제였다. 답부터 말한다면 30초 TV 광고료가 무려 25억 원에 달하며 이 비싼 광고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업들은 광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월드컵이 낳는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2 한일 월드컵이 이끌어낸 부가가치 효과는 5조 3000억 원에 달하며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약 12조 3000억 원의 부가가치 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월드컵 특수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가수들은 앞 다투어 월드컵 응원가를 발표하고 있고 각 기업의 CF에는 어김없이 축구 스타나 붉은악마가 등장한다. 이는 시청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방송사도 마찬가지인데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좋은 캐스터와 해설자를 확보하기 위해 월드컵을 한 달여 앞두고 총성 없는 전쟁이 바쁘게 전개되고 있다. 시청률은 곧 광고의 수급과 깊은 관계를 맺기에 좋은 해설자와 캐스터를 확보하는 일은 각 방송사에게 있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성적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보다 어찌 보면 더 중대한 사항일 수도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는 ‘아~4강~4강~!’의 울부짖음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이상철 현(現)울산현대 코치, 해설 내내 아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서슴지 않다가 8강 진출이 확정되자 ‘저기 우리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극진한 아들 사랑을 보여준 차범근 현(現)수원삼성 감독 등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일약 스타 해설위원으로 급부상 했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도 많은 캐스터와 해설가들이 양질의 경기 중계를 전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K리그 명예기자단은 2006 독일 월드컵을 맞아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캐스터와 해설가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대단한 유럽축구 지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와의 경기에서 ‘악~반 데 사르’라는 외침으로 인해 ‘샤우팅의 대가’로 유명세를 치른 한준희 KBS 해설위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유럽 축구 전문가로서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다양한 축구 상식과 그만이 가진 특유의 외침으로 많은 축구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한준희 해설위원을 서울 광장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보았다. 한준희 해설위원을 경기장 안팎에서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은 그 겸손함과 지나칠 정도의 친절한 성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이제 적지 않을 법도 한데 싸인을 받기 위해 접근하는 팬에게 90도에 가까운 깍듯한 인사와 ‘살인 미소’를 매번 날려주는 그의 모습은 ‘친절한 금자씨’의 친절이 무색할 정도다. 인터뷰를 하기 전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는 필자는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인사를 건넨 적이 있는데 이내 돌아오는 ‘감사합니다.’의 연발과 친절한 인사말에 적잖게 당황한 경험이 있다. 이번 만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얼굴에 배어 있는 그의 살인미소와 ‘죄송합니다.’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그의 언행 덕분에 마치 전통혼례를 치르는 신랑과 신부처럼 매번 수직 맞절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전날 이미 3개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다음날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쥴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쉬는 날을 맞아 장시간 인터뷰를 허락한 그의 ‘친절함’에는 더욱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 축구 해설위원 한준희 보다는 ‘축구팬’ 한준희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저는 사실 축구 해설위원 보다는 축구팬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 축구팬 한준희가 축구에 빠져들게 된 경기는 도대체 얼마나 멋진 경기였죠?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경기라고 한 가지를 짚기는 어렵지만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축구 경기 중 가장 오래된 명승부는 바로 말레이시아 전에서 차범근 감독이 세 골을 넣었던 76년 박스컵 입니다. 그 때 4-0 상황에서 박상인 선수가 한 골을 넣어서 4-1이 되었고 그 다음에 차범근 선수가 세 골을 넣어서 4-4로 비겼었죠. 당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상에 축구대회는 챔피언스 리그 같은 건 몰랐고 월드컵하고 박스컵, 킹스컵, 메르데카배 이게 축구의 다라고 생각하던 시절인데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근데 사실은 저는 축구 이외에도 스포츠 모든 종목들을 다 좋아했어요. 이종경, 강만수, 박수교, 신동찬, 박인규, 이문규, 조명수, 박종천......(너무 많아서 생략) 제 성장과 시대별 구분으로 분류하자면 7~8살 때부터 82년 까지는 동네에서 공하나 갖고 길 위에 돌 두 개 올려놓고 골대 만들어서 축구를 주로 했죠. 그리고 82년에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동네에서 야구공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구요. 중학 2~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농구를 했죠. 박수교, 이충희 대 신동찬 김현준. 현대와 삼성의 라이벌전이 일품이었죠. 나중에는 허재의 중앙대가 나왔지만. -다행히 축구로 다시 돌아오셨군요? 물론 축구는 계속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시대별 구분이라 해도 거창한게 아니라 다 제가 동내에서 즐겨했던 스포츠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웃음) -그렇다면 어렸을 때 좋아하던 선수는 차범근 선수였나요? 제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할렐루야에 신현호 선수에요. 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의 주역인 신연호 선수 말고 윙 플레이어 신현호 선수가 있었죠. 그때 당시 그 선수가 보여주었던 폭발적이고 저돌적인 돌파는 어린 제 기억 속에서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물론 제일 좋아하던 팀도 할렐루야죠. 그렇다고 제가 종교인이냐? 그건 절대 아니고 저는 무교입니다.(웃음) 할렐루야 팀은 수퍼리그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프로팀이었어요. 달랑 프로팀이 하나라서 그 때는 이벤트 시합만 하고 그랬었죠. 요즘 상투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사설 국가대표. 그 팀 선수들은 다 국가대표였어요. 그 때는 그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 할렐루야 대 화랑 이었죠. 두 팀 경기하면 반칙 100개씩 나오고, 예전에 대통령 배였나? 두 팀이 붙어서 30초에 한 번씩 경기가 끊어진 적도 있어요. 다음날 신문에서 너무 심했다고 엄청 얻어맞기도 하고. -30초에 한 번은 너무 심했군요. 그렇다면 지금 축구에 반칙 나는건 예전에 비하면 양반이네요? 근데 사실 저는 옛날 축구가 더 재미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국가대표 멤버도 사실은 86년 멤버고. 제가 맨 처음 싸인 받았던 선수가 박윤기 선수. 아시죠? K리그 원년 득점왕이자 1호 골의 주인공. 중학교 수위실에서 싸인 받았어요. 저희 학교 출신이셨거든요. 동북중학교. 제가 전학 갔는데 거기는 중동중이었죠. 어떻게 하다 보니 축구 학교만 돌아다녔네요. 시작이 좋았다. 입심 좋은 해설자답게 여유 있는 유머와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웃음을 곁들인 대화는 마치 친한 동네 형과 대화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유럽 축구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어 유럽 축구에 편중된 대화가 오갈 것이라 예상했으나 어렸을 때부터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고 특히 한국 축구를 좋아했다는 말에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왔다. 예전 국가대표 이야기와 수퍼리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알 수 없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화의 깊이가 점점 깊어져갔다. -한준희씨 하면 유럽축구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습니다. 유럽축구는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나요? 70년대 후반, 80년대 초에 MBC에서 분데스리가를 해줬거든요. -그 때 차범근 선수가 활약할 때 아니었나요? 네. 근데 불행하게도 그 때 차범근 선수를 많이 보진 못했어요. 왜나면 지금하고는 개념이 조금 틀린게 지금은 박지성하고 이영표만 따라다니잖아요. 근데 그때는 차범근 특별중계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분데스리가 중계였어요. 그리고 풀타임 중계가 아니었어요. 제 기억에는. 한 시간 정도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중계였죠. 주로 바이에른 뮌헨 경기를 보여주었어요. 매주 한 경기씩 중계 해주는데 대부분 세주를 하면 두 주는 바이에른 뮌헨이 나오고. 한주는 함부르크SV 중계를 해주는 식이었죠. 그 때는 바이에른 뮌헨의 가장 큰 라이벌이 함부르크SV 이었거든요. 함부르크가 한동안 잠잠하다가 올 시즌에 좋아졌죠? 바이에른 뮌헨에는 루메니게, 브라이트너, 회네스가 유명했고. 지금 루메니게, 회네스가 다 바이에른 뮌헨 임원이잖아요. 함부르크에는 지금 마가트 감독. 마가트가 미드필더고 칼트, 흐르베시가 유명했죠. 흐르베시라고 지금 개념으로 따지면 얀콜러 내지 얀커 인상을 주는 거한 스트라이커가 있어요. 그리고 메머링. 그때 분데스리가를 중계 해주시던 분이 고(故) 주영광 선생님이셨어요. 주영광 선생님이 어떤 분이냐면 함흥철 선생님 아시죠? 할렐루야 감독이셨고 국가대표 감독, 단장까지 하셨던 분. 그 분들이 헝가리한테 0-9로 졌던 54스위스 월드컵 멤버들이시죠. 주영광 선생님이 80년대 초, 당시에도 상당히 고령이셨는데 해설을 굉장히 잘하셨어요. 그 분 해설이 지금까지도 인상에 많이 남습니다. 아무튼 그 때 분데스리가를 본 사람을 제가 만나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시청률이 얼마 안 나왔을 거예요. 나만 본 것 같네요.(웃음) 그 때는 분데스리가 중계 외에는 신문기사 정도가 유럽축구 소식을 접할 유일한 창구였는데 신문기사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 단신만 몇 줄 올라오는 정도였어요. 그런데도 저는 해외축구 소식이 나올 때마다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졌죠. 어느 날 신문을 보면 리네커가 에버튼 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을 했다고 나오면 다른 사람은 관심 없어도 저는 열심히 읽어보고. 오늘 베르캄프 인터밀란에서 아스날로 이적, 게리 리네커 바르셀로나에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단신이 나오면 저는 일일이 외웠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90년대 중후반으로 오게 되면 한국에서도 해외축구를 하죠. 그게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KBS 위성을 통해서. 그 때는 이탈리아의 세리에A와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를 주로 보여줬습니다. -역시 유럽축구에 관련해서는 범접할 자가 없겠군요. 중계를 보다보면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알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정말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시죠? 아까 선수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혼날 정도로 스포츠 선수 이름을 많이 외우고 있었거든요. “너는 이 자식아 그거 외울 시간 있으면 공부를 해!” 라고 아버지께서 많이 혼내셨죠. 그 때 제가 아버지한테 말씀 드린게 뭐냐면 그거 제가 외우려고 일부러 외운게 아니고 그냥 외워 진거라 저도 어쩔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건데 그냥 외우는 걸 잘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덧붙여서 중계 전에 준비가 좀 있어야죠. 예를 들어 오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리즈 유나이티드다. 그러면 관중석에 보비 찰튼과 재키 찰튼이 나와 있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보비 찰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선수역고, 재키 찰튼은 리즈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선수인데 둘이 형제인데 둘 다 잉글랜드 국가 대표였고. 그 정도는 예상이 될 수 있죠. 근데 그런 예상이라는 것도 기본 지식 바탕이 있어야 되겠지요? (웃음) 지금 생각해도 제가 신기한 게 한 가지 있는데 예전에 요르단 국왕이 나온 걸 맞춘 적이 있어요. 비화를 공개하자면 제가 그 경기에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얼굴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는 과정에서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최근 기사를 하나 찾았더니 최근에 스페인에 요르단 국왕이 방문을 한 거 에요. 그래서 우연찮게 그 기사를 보고 다음날 중계를 하는데 스페인 국왕 옆에 요르단 국왕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최근에 저 요르단 국왕이 스페인을 방문하고 있는데 같이 관전을 하고 있네요.” 그런 멘트를 한 적이 있죠. 간혹 한준희를 비판하시는 분들이 ‘쟤는 현지 해설 듣고서는 그대로 번역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사실상 그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현지 코멘터리가 누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고 해도 그걸 듣고서 생각해서 번역하려면 이미 15초 정도 흘러있고 거기에 관련된 화면은 지나가서 제대로 된 ‘뒷북’이 되어버리고 말죠. 사실상 미리 알지 않고서 번역으로 말씀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항간에는 세계의 여자축구 선수까지 모두 다 알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사실인가요? 물론 다 알지는 못하죠. (웃음) 근데 여자축구에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도 그 지역에 있는 팀은 중계를 다 해주거든요. 그런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기도 하고 옛날 여자 월드컵 이런 것도 비디오로 구입해서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옛날 축구 선수를 좀 많이 알아요. 예를 들어 미국에 웃통 벗는 세리머니를 한 브랜디 체스테인이라는 선수가 있는데. 그 시대 선수인 미아햄, 티프니 밀브렛, 줄리 파우디, 조이 포셋, 크리스틴 릴리, 신디 팔로우. 골키퍼가 브리아나 스커리 그래서 가끔 여자 축구 해설하다 보면 재미있게 해요. 여자 선수도 플레이 스타일과 성향이 있기 때문에 제가 가끔 남자 선수들과 비교해서 해설하고 그러거든요. 예를 들어 99년 여자 월드컵 같은 경우 브라질에 시시라는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는 히바우도 보다 왼발 프리킥을 더 잘하는 선수에요. 프리킥의 적중률이 시시보다 높은 남자 선수를 못 봤을 정도로 차면 다 들어가는 정도에요. 노르웨이의 솔베이리 굴브란트센 같은 선수는 볼 다루는 스타일이 베론 하고 비슷하고 저는 미아햄만 나오면 앙리하고 비교를 해요. 여자 치고 빠르면서 발재간도 있고, 팀에 세트 플레이 같은 프리킥도 처리하는 모습이 앙리와 흡사하죠. 그렇게 여자 축구를 하면서 남자 축구와 비교해서 해설을 하면 재미있습니다. -해설을 시작하기 전에 해외 축구 전문 사이트인 사커라인에서 이름을 날리셨는데 사커라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참 인생의 아이러니라는게 제가 인터넷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인터넷 하고 게임 하는 것보다는 경치 좋은 데로 소풍가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 재미있게도 제가 이름을 얻은 곳이 인터넷이죠.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에 공부를 하느라 머리가 아파서 축구를 더 열심히 봤어요. 그러다가 신문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몇 번 남긴 적이 있는데 글을 남기고 나니까 몇 군데서 메일이 오더라구요. 저는 인터넷 가명 이런 것도 몰라서 실명에다 메일까지 다 넣고 썼는데 큰 신문사에서 통신원 할 생각 없냐고 제의가 오기도 하고 이 곳 저 곳에서 메일이 왔어요. 그 중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계속 메일을 보낸 데가 있는데 그게 지금 사커라인이죠. 처음의 사커라인은 스포츠 플라자라는 사이트였어요. 저한테 연락 왔을 때는 사커라인은 아니었고 스포츠 플라자라는 사이트였는데 그냥 개인 홈페이지 수준이에요. 회원도 그냥 100명, 200명 그랬는데 제가 연락 온데를 비교해 보니까 여기가 제일 불쌍해 보이더라구요.(웃음) 그 때는 시간에 쫓겨 가면서 용돈 몇 푼 버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던 데다 축구 전문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어차피 취미로 제가 본 경기나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이왕 그럴 바 에야 불쌍한데 써주자 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쓰면서 그 홈페이지가 회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건 사실이에요. 회원 100명이던 사이트가 한 달 지나니까 1000명이 되었고 또 한 달이 지나니까 3000명이 되어있더라구요. 그러면서 사커라인을 제일 먼저 만든 그 친구가 본격적인 축구 사이트로 개편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공부를 때려 치고 귀국을 했죠. 그래 한 번 해보자. 재미있을 것 같다. 공부하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사실은 사커라인 때문에 귀국을 했죠. -공부를 접고 온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요? 당연히 쉽지 않았죠. 오죽 걱정 되셨으면 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오셨어요. 부모님과 큰 충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부모님께 죄송은 하죠. 겉으로는 표현을 크게 안하시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많이 상하셨을 거예요. 지금은 그래도 TV에 얼굴도 나오고 하니까 그 때보다는 마음이 조금 편하실지는 몰라도 지금도 좀 그러실거에요. -사커라인을 보면 그 방대한 데이터에 한 번 놀라고 매주 어김없이 올라오는 경기 리뷰 기사 때문에 두 번 놀랍니다. 해외 축구 같은 경우 지금도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안정환 경기가 아니면 찾아보기가 힘든데 어떻게 그런 기사가 올라 올 수 있나요? 요즘 국내에서도 인터넷으로 축구를 볼 수 있는 사이트들이 몇 군데 있잖아요. 저는 사실 축구는 큰 TV에 맥주 한 잔 하면서 봐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은 예전부터 인터넷으로 축구 보는게 되는 친구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기사를 조작하는게 아니고 예전부터 듣도 보도 못한 사이트에서 축구를 봐왔던 거지요. 또 다른 비결이라면 스페인어를 하는 친구들이 몇 있어요. 외국에 있는 친구들도 몇 명 있기 때문에 외국에 있기 때문에 사커라인이 누릴 수 있는 강점도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 사커라인 필진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면 누구보다도 축구 중계를 많이 봐왔다는 거죠. 가장 단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친구가 이형석이라는 친구인데 이 친구의 축구 지식에는 저희 필진들 모두가 머리를 조아려요. 제가 미국에서 귀국해서 필진들을 만났는데 이 친구가 제 옆에 오더니 ‘형, 97/98 시즌 프리메라리가 어느 경기 87분경에 이런 일이 있었죠?’하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너가 알지 내가 아냐? 다시는 물어보지 마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이 친구는 외국에 나간 적은 없지만 90년대 중반부터 TV에서 해준 해외축구 중계 녹화 테이프가 집에 한 가득 쌓여있을 만큼 매일 학교 갔다 와서 축구만 보고 축구만 하는 친구에요. 저도 가끔 중계를 하면서 예전 경기에 대해서 설명해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친구 같은 경우는 그런 경기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친구죠.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죠낸’ 이라는 단어가 귀여워서 좋다는 한준희 해설위원. 앞으로 10년 후에는 매우, 아주라는 단어에 이어 국어사전에 분명 ‘죠낸’이라는 단어가 등재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그는 축구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커라인 필진들이 축구로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터전이 마련되어 있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제가 욘사마 정도 돼서 동생들을 다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 친구들에게는 ‘죠낸’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자신의 식구들을 챙기는 그의 표정은 지금과는 다르게 사뭇 진지해 보였다. 즐거운 분위기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 중계를 처음 시작할 때의 추억에 대한 궁금증을 질문해보았다. -첫 중계 때를 기억하고 계시나요? 중계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첫 중계는 정말 잊지 못해요. 제 첫 중계는 천만 다행으로 스포츠 특선이라는 50분 분량의 녹화 방송이었어요. 경기가 그때 당시 박지성과 이영표가 있었던 PSV 아인트호벤 경기였는데 결과를 알고 해설하는 거라 한숨 돌렸죠. 그런데도 첫 방송이라서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최창섭 캐스터가 경기 전에 긴장을 잘 풀어주셔서 실수 없이 해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첫 경기 해설 하고 나서 안 잘릴 수 있었구요.(웃음) 최 국장님이 해설자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이세요. 지난 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님이 해설로 많은 인기를 받으셨잖아요. 거기에는 편하게 해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최 국장님의 힘도 크다고 생각해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2003년에 월드컵 지역예선 볼리비아 대 우루과이경기입니다. 우루과이만 해도 당시 유명한 선수가 레코바 포를란 정도가 있었고 주요 선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볼리비아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몇 명 있던 유명한 선수도 다 은퇴한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제가 스페인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일단 제가 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하고 갔습니다. 근데 그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주관 방송사 측에서 스타팅 멤버를 안 보내준 거예요. 원래는 시작 전에 현지 주관 방송사에서 출전선수 명단을 보내주게 되어있어요. 근데 출전 선수 명단이 없으니 제가 준비한 자료와 출전 선수의 번호도 제대로 매치가 안 되죠. 그래서 스타팅 멤버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선수들의 위치나 동선에 대해서 중요시 하다 보니 거기에 준해서 과감하게 이름을 불러버렸어요. 제가 이쪽에 누구라고 하면 옆에 캐스터 분께서도 적어 놓으셨다가 부르시고. 그렇게 경기 중계를 마치고 났는데 PD께서 나중에 검토를 해보시더니 제가 호명한 선수 이름이 70~80%는 맞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는 제가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해요. 과감하게 이름을 막 불러댔는데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중계를 하면서 이야기보따리를 좍 펼쳐놓으시고 경기가 끝날 때 까지 쉴 새 없이 설명해 주셨는데 요즘은 그게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많이 까지는 아니고 조금 준 것은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중파와 케이블TV는 시청층이 다르기 때문에 공중파에서는 요구 사항이 조금 다릅니다. 케이블TV는 매니아 분들이 많이 찾으시는 반면 공중파는 어린 아이서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려운 얘기는 할 수가 없죠. 그래도 지금도 SKY KBS에 나가면 어느 정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지요. -비 선수 출신 해설가이기 때문에 누리는 강점도 있지만 반면 힘든 점도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태클을 당해서 누워 있으면 선수 출신 분들이면 아무래도 지금 어디가 어떻게 고통스럽다고 하는 것을 조금 더 정확히 할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까지는 안 되죠. 그렇다고 제가 의학을 전공 한 의사 출신도 아니기 때문에 의사 출신이면 또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물론 부상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묘사 하는 것이 참 어렵기 때문에 부상을 당했을 때가 가장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선수들의 심리 묘사나 이런 쪽도 힘들겠군요? 그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엄청나게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서의 인상도 있기 때문에 선수가 직접 느끼는 감정도 있겠지만 그 선수들을 보면서 느끼는 팬의 감정도 있거든요. 근데 이 입장이 조금 약하다고 하면 저 쪽의 입장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부상에 관한 만큼처럼 엄청나게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도 비선수 출신의 해설자보다는 선수 출신의 해설자가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비선수 출신 해설자들의 숫자가 많아진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해외 축구 준비를 하면 프랑스는 대부분이 지단이고 잉글랜드는 대부분이 베컴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면 팬 여러분들이 벌써 먼저 알아보고 항의하시죠. 만약 선수 출신의 해설자 분들이 지금 비선수 출신의 해설자가 맡고 있는 몫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전 깨끗이 은퇴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 때가 되면 정말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은 약간의 필요는 있다고 생각을 하죠. -외국의 예는 어떤가요? 외국에는 이렇다고 봐야죠. 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오히려 캐스터의 범주에 속하죠. 근데 캐스터 자체가 미묘한 부분인데 외국은 1인 해설도 하거든요. 1인 해설을 할 때는 선수출신이 나오느냐 비선수 출신이 나오느냐하면 비선수 출신이 나와요. 그리고 2인 해설을 할 때도 우리나라처럼 캐스터와 해설자의 구분이 명확히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끝나고 자막이 올라올 때도 코멘터리로 두 명의 이름이 올라오죠. 요즘은 한국에도 스타스포츠가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아마 이제는 한국 팬들한테도 알려져 있을 텐데 예를 들어 마틴 타일러, 이언 크로커, 롭 호오도온. 마틴 타일러 - 앤디 그레이가 나오면 그건 이제 두 명의 코멘터리가 되는 건데 1인 중계를 할 때는 마틴 타일러가 나오게 되지요. 이언 크로커-트레버 프란시스, 알런 패리-고든 맥퀸, 롭 호오도온-브라이언 마우드. 여기서 앞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서기철, 전인석, 이재후, 최승돈 같은 분들이죠. 저도 외국 기준으로 봤을 때는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는 아니지만 전자에 해당하는 코멘테이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외국의 경우는 그 코멘테이터 혼자서도 북 치고 장구치고 해설을 다 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숨 가쁘게 달려온 인터뷰는 어느새 2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인터뷰를 하는 쪽이나 당하는 당사자나 지치게 마련이지만 한번 피어난 이야기꽃은 좀처럼 질 줄을 몰랐다. “이제 삼천포에 빠지지 말고 질문에 맞는 답을 드려야겠군요.”라는 말을 들은 지가 꽤 되었지만 하나의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유럽 축구 전문가에게 한국 축구에 대한 조언을 들을 차례였다. -유럽 축구 문화와 우리나라 축구 문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럽 축구 문화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스위스의 FC 툰 같은 경우는 인구 5만 인구에 그 주변에 문화시설이 축구장 밖에 없기 때문에 축구를 하는 날이면 도시 자체가 축제가 됩니다. 그래서 경기장에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만 5천명이 입장을 하는 믿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프로 스포츠도 너무 많고 대부분 도시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많이 있기 때문에 유럽과 같이 지역적 연고 의식이 뿌리내리기가 많이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축구팬의 입장으로써 많이 가슴이 아픈 부분이기도 합니다. -K리그가 유럽 축구 리그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물론 모든 면에서 다 배워야겠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곧바로 프리미어리그 같은 리그를 벤치마킹 하는건 조금 무리가 있어요.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아직 승강제도 갖춰져 있지 않거든요. 1위를 제외하고는 잘해봤자 메리트도 없고 못해봤자 페널티도 없지 않습니까. AFC 챔피언스 리그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티켓도 우승팀에 한정되어 있고 유럽에는 훨씬 더 다양한 단계의 메리트가 있지요. 예를 들어 꼭 UEFA컵이나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아니라도 리그 상금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실제로 15위를 하는 것보다는 8위를 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그리고 요새 무승부에 대한 얘기가 화두인데 무승부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전·후기 방식에 따른 짧은 리그 일정 탓이 크겠지요. 한 경기를 이기면 순위가 수직 상승하고 또 한 경기를 지면 그대로 추락하기 때문에 최소한 지지는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대부분의 팀들이 경기에 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번의 리그 일정을 시험해 본 결과 고심 끝에 나온 시스템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이것 역시 문제점을 안고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상 미국의 스포츠와 비슷한 명목으로 ‘가을의 축제’를 즐기려는 경향이 강한데요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는 FA컵을 더 성대하게 치르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선은 시즌 중에 치르되 가을에 4강이나 8강 정도부터 시작해서 아주 성대한 FA컵을 개최하는 것이죠. 현재는 FA컵에도 큰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하위권의 팀이 부진했던 리그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총력을 펼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는데 만일 상금의 규모를 더 늘려서 확실한 메리트를 부여한다면 FA컵의 권위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럼 상금은 어디서 충당하지요? 사실 그런 현실적인 요건 때문에 획기적인 리그 시스템 개선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사실 제가 말씀드린 것도 어떻게 보면 다 공염불이에요. 무언가를 이뤄가기 위해서는 항상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아까 의견을 나누었던 무승부나 여러 이유 때문에 K리그의 재미가 떨어진다고 비판하시는 팬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럽에 비해서 문화 역사 태생적 문제를 제외하고, 경기 내용만 본다고 생각되면 K-리그 역시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 역시 옛날 축구가 재미있다고 하지만 현재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용병의 수준은 상당히 높고 그에 따라서 우리나라 선수들도 많이 성장했거든요. 특히 몇몇의 용병은 특출 난 활약을 보이고 있고 대부분의 용병이 자국 청소년 대표 정도는 거친 선수들이다 보니 선수 면면의 질도 꽤 놓은 편입니다. 물론 비율적인 면에서는 프리미어리그보다 떨어질 수 있겠죠. 재미없는 경기가 나올 확률이 K리그가 더 많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의 하위 팀끼리의 경기보다 K리그가 재미없다. 이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까 AFC챔피언스리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AFC챔피언스리그가 더 흥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것 역시 다른 분들이 많이 주장하시는 보편적인 대답이지만 저 역시 예선을 권역별로 치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현재의 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프로팀이 저쪽 베트남이나 중동의 팀들과도 예선을 치러야 해요. 거리 면에서도 문제가 있지만 집중력 면에서도 문제가 있거든요. 만약 권역별로 예선을 치르게 된다면 형평성면에서야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집중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극동에는 같은 하늘 아래 살지 못할 것 같은 한·중·일의 라이벌이 있고 또 동남아시아쪽의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같은 쪽의 라이벌 의식도 대단하거든요. 중동도 마찬가지구요. 그렇게 라이벌 의식을 잘 활용하여 예선의 집중도를 높이고 마지막 토너먼트로 챔피언을 가리는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는 대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 팬의 입장으로 K-리그가 이렇게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으신다면 어떤 것이 있으십니까? 요즘 K-리그 연맹 홈페이지를 보면 다양한 동영상 자료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시도는 너무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옛날 자료 찾으려면 정말 힘들고 기껏 찾으면 자료가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 같은 경우는 너무 잘 되어있죠. 대표적인 예로 맨체스터 유나이트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1001골이라는 비디오가 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 모음을 모아놓은 영상이지요. 그것도 골이 들어가는 상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골이 들어가기 전에 이어지는 첫 상황. 예를 들어 골키퍼의 골킥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면 거기부터 골 상황까지 아주 자세한 영상이 담겨있습니다. 게다가 헤딩골, 중거리슛, 페널티킥, 자살골, 상대선수의 실수에 의한 골 모음 혹은 스코틀랜드 스트라이커, 웨일즈 선수의 모음 맨체스터 더비, 리버풀전에의 모음 등등의 세세한 카테고리로 수십 개의 비디오가 나오고 있죠. 더불어 시즌 정리 비디오 등의 데이터 자료가 많아서 팬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고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유럽처럼 시즌 비디오도 나오고 각 팀에서도 많은 영상 자료를 발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팬들에게 선수의 훌륭한 영상이나 팀의 멋있는 영상만큼 관심을 증대 시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분위기를 바꿔보죠. 검색사이트에 ‘한준희’라는 이름을 치면 대부분이 ‘샤우팅’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샤우팅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게 되셨나요? 샤우팅의 명칭이 굳어진 것은 첼시대 맨유전 이었습니다. 그전에도 소리를 지른다고 지적해 주시기는 했었는데 샤우팅이라는 별명은 그 때 얻어진 것이죠. 실제로도 제가 하이 테너 이긴 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친구가 제 별명을 목소리가 높이 올라가서 파리넬리라고 불렀던 적도 있지요. (웃음) 맨유와 첼시의 경기에서도 저는 늘 하던 대로 했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별로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명진 아나운서와 같이 중계를 했었는데 그 분도 인식하지 못하고 계셨구요. 근데 다음날 인터넷에 들어 가보니까 난리가 났더라구요. 제가 아무래도 다혈질 기질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도 경기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곤 했었는데요, 일부러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탄의 의미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악~반데사르’ 라고 하면서 선수 이름을 호명한 것도 어느 정도 어필을 했다고 봅니다. 보통 한국식의 해설은 ‘슛~! 아 막았습니다!’ 이건데 그 때는 선수이름을 호명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조금 외국식이었다고 할 수 있죠. 게다가 보통은 캐스터 분들도 ‘루니~’ 라고 하기 보다는 ‘슛~’ 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는데 그 날을 이명진 아나운서의 추임새가 너무 절묘했거든요. 그분이 ‘드록바! 드록바! 드록바!’를 외치시고 제가 ‘악~반 데 사르!’라고 소리를 지르다 보니 그게 팬 여러분께는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가끔 다른 곳에서 인터뷰를 하다보면 샤우팅을 재현해 달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럴 때는 조금 난감하죠. (웃음) 재현한다고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구요. -인터넷의 영향으로 언론 매체의 다양성에 의해서 축구와 관련된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 졌습니다. 그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것과 관련된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어느 대학에 어느 과를 가시라는 구체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기회가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언론 매체 등에 성장으로 과거처럼 언론고시 시험 보다는 축구 분야에서의 업적이 있다면 이런 쪽을 통해서도 지망이 가능해 졌지요. 대표적인 예로는 사커라인의 필진이 되어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에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네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조사하는 것보다 볼 수 있는 경기를 최대한으로 많이 보는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K-리그 와 유럽 축구 리그등 축구 보는 것에 왕도를 가리지 말고 최대한 많이 보시고 시간 되시면 K-리그 경기장에서 직접 보시면서 좋을 것 같네요. -독일 월드컵을 앞 둔 우리나라가 결과 예측이 수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월드컵에 참여하는 대표팀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매 경기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처럼 시나리오를 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구요. 98년 당시 멕시코에게 이기고 마지막 벨기에 전에서 비겨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했으나 그것이 쉽사리 될 리가 없죠. 이번 월드컵도 그때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어떤 시나리오를 세워 놓고 거기에 따라 가는 것보다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싸해주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상당한 강팀입니다. 우리가 비록 나쁜 조는 아니지만 결국 2위 까지 밖에 못 올라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를 이길 수 있는 팀이 벌써 두 팀이 되기 때문에 쉬운 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죠. 프랑스는 같은 경우는 정신력이 100% 신뢰되지가 않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가면 미리 포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스위스는 경기력측면에서 기본 선이 있는 팀이죠. 즉 크게 무너지지 않을 팀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쿤 감독의 선수 장악력이 상당하고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상승세의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에 스위스를 만난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힘든 싸움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특성이 신바람 민족이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 깨면 더 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2년 때도 폴란드전을 완벽하게 이긴 이후 탄탄대로를 갔고 올해 WBC도 대만과 일본을 처음부터 이기면서 그 이후에 일본과 미국을 거푸 잡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첫 경기부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의 경기 외적인 실수로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토고 같은 경우는 거칠고 감정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우리선수들이 흥분하지 말고 평정심을 갖고 경기를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토고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와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구요. 마지막으로 모두가 팀을 위한 정신이 필요한 것 같고 팀을 위해서 헌신 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한두 명의 선수덕분이 아닌 모든 코칭 스텝과 선수 모두가 팀을 위해서 희생했기 때문이었죠. 그렇기에 우리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상 최초로 4시간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금의 지루함도 느낄 수 없었다. 때때로 구구단을 하듯 사람 이름을 줄줄 외우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탄성을 거듭하기도 벌써 몇 번. 녹음기는 녹음 한도를 초과해 꺼지고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지만 마치 역사 선생님에게 축구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야기를 중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릇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천일야화를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축구팬들에게 드리는 마지막 한 마디로 인터뷰를 마무리 짓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축구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말씀 해주세요. 축구를 즐기는 문화로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영표 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노력하는 선수는 즐기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 이 말이 바로 제가 축구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축구 팬 한 분 한 분이 즐기는 축구 문화를 만드신다면 우리나라 정말로 유럽 부럽지 않을 만큼 좋은 축구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월드컵 중계는 꼭 KBS와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저희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중계로 다가겠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K-리그 명예기자 김정현, 홍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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