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뉴스] 체면 문화에 얼룩진 혼수·예단

입력 2006.09.01 (09:22) 수정 2006.09.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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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보도, 오늘은 그 두 번째 시 간으로 혼수, 예단을 둘러싼 문제점을 짚어볼까 합니다.

과도한 혼수, 예단 문제가 사회문제화 된 지는 오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를 문제 삼아 결혼 성사 직전에 파경을 맞거나 이혼을 하는 부부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최영철기자! 옛날부터 혼수, 예단을 합리적으로 준비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왔지만 좀처럼 시정되지 않는 이유, 어디에 있을까요?

<리포트>

결혼이 당사자만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행사인 만큼 남들의 눈을 의식한 과시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한국만의 체면문화라 는 것인데요. 혼수, 예단, 그 평균 비용은 얼마며 이를 둘러싼 갈등은 무 엇인지 취재해보았습니다. 결혼 4년차 주부 김경옥 씨. 혼수로 인한 시댁과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김경옥(가명, 34) : "(결혼생활) 4년이 저에게는 지옥이었고 지금도 살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저는 진짜 못 살아요."

양가 어머니끼리 학교동창 사이였기에 혼수갈등은 상상도 못했다는 김씨. 결혼 당시 친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예단비 700만원에, 혼수비용 2천만원을들여 정성껏 준비했다는데요.

<인터뷰> "TV 있죠. 에어컨 있죠. 없는 게 뭐 있어요. 신랑이 음악을 좋아해서 오디오는 두 대나 해왔다고요."

하지만 32평 아파트를 장만해 준 시댁에선 신혼 초부터 이를 불만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경옥(가명, 34) : "시부모님이 처음 신혼집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왜 이렇게 썰렁하냐, 물건도 꽉 채우지 않았네. 너무 어이가 없었죠. 진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시댁에서는 급기야 혼수를 적게 해왔으니 생활비는 친정에서 가져다 쓰라며 남편의 월급을 챙기는 수준까지 갔습니다.

<인터뷰>김경옥(가명, 34) :"남편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서 시댁식구들하고 더 많이 어울리고, 시댁 식구들이 외식할 때도 전 끼지도 못해요. 쉽게 말하면 왕따를 시키죠."

우유부단한 성격의 남편은 참으라는 말 밖에 하지 않고 결국 김씨는 정신과 상담까지 받는 상황.

<인터뷰>김경옥(가명, 34) : "나도 남들과 똑같이 대학 나와서 결혼했는데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우리 집안을 뭐로 보고 이러나······."

시댁과 조금이나마 떨어져 살고 싶어 1년 전 서울로 이사왔지만 여전히 시댁식구들이 두려워 친정어머니를 자주 부른다는 김 씨. 그런 딸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도 편할 리 없었습니다.

<인터뷰>김경옥 씨 친정어머니:"(결혼할 때) 빚이라도 내든가, 집이라도 팔아서 혼수를 해줬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되고, 딸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프고 부모로서는 너무 힘들어요."

지난 한 해 결혼한 신혼부부 한 쌍의 평균 결혼비용은 신랑이 9천 6백 여만원, 신부가 3천 3백 여만원으로, 합계 약 1억 3천만원에 달했는데요.

<인터뷰>김우금 (결혼문화연구소 연구원): "(혼수 비용은) 최저 1천만 원부터 최고 10억까지 차이가 납니다. 어떤 주택을 구입하느냐에 따라 혼수 비용의 양극화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혼수 비용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체 결혼비용의 60%가 넘는 주택구입비는 남성들의 큰 부담. 이로 인해 결혼이 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올해 33세의 박민재 씨 역시 결혼을 앞두고 집 장만을 하지 못해 파경을 맞은 경험이 있는데요. 보석전문사진작가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실하게 활동해 왔지만 당시에는 스스 로가 무능하고 초라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인터뷰>박민재(가명, 33) :"정말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보다는 어디에 사는지,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가 더 중요하고 집 평수로 평가받는 게 참 웃기면서도 속상하더라고요."

박씨는 현재 사귀는 여자친구를 위해서도 남들 보란 듯이 집을 장만해 결혼하 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는데요.

<인터뷰>박민재(가명, 33) : "좋게 보면 인생 목표가 생긴 거고, 나쁘게 보면 쓸때없는 고집이고 오기일 수도 있지만 돈 때문에 다시 좋아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고 저 자신이 더 자랑스러울 거 같아서······."

결혼 비용 중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항목을 꼽아보니 예단이 1위, 다음으로 결혼식 비용과 예물 비용이 차지했는데요.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결혼 예단 갈등 탓에 빚을 내서라도 비용을 충당하는 세태.

<인터뷰>윤의경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 "절차나 형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 체면 문화가 아직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것들을 조절하는 것은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매우 힘든 상황이에요."

하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것에만 돈을 쓰겠다는 예비신혼부부들도 늘고 있습니다. 커플링으로 예물을 대신하고 혼수 역시 간소화했다는 허용호 씨 커플은 남는 비용을 집장만에 쓰겠다고 밝혔는데요.

<인터뷰>황은혜(30살 / 예비신부) : "결혼해서 3년 이내에 집을 장만해야 출산 후에도 생활이 편해진다고 해서······."

<인터뷰>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 "(모든 여성들이) 혼수 비용으로 1천만 원만 쓰겠다고 해서 한결같이 1천만 원만 썼다면 혼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결혼적령기에 있는 여성, 그리고 친정 부모들의 사고방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하고 정성이 담겼던 혼수, 예단의 전통적인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 금전적인 가치가 우선시되는 세태에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결혼 당사자간의 중심잡기가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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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9-01 08:34:10
    • 수정2006-09-01 09: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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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보도, 오늘은 그 두 번째 시 간으로 혼수, 예단을 둘러싼 문제점을 짚어볼까 합니다. 과도한 혼수, 예단 문제가 사회문제화 된 지는 오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를 문제 삼아 결혼 성사 직전에 파경을 맞거나 이혼을 하는 부부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최영철기자! 옛날부터 혼수, 예단을 합리적으로 준비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왔지만 좀처럼 시정되지 않는 이유, 어디에 있을까요? <리포트> 결혼이 당사자만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행사인 만큼 남들의 눈을 의식한 과시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한국만의 체면문화라 는 것인데요. 혼수, 예단, 그 평균 비용은 얼마며 이를 둘러싼 갈등은 무 엇인지 취재해보았습니다. 결혼 4년차 주부 김경옥 씨. 혼수로 인한 시댁과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김경옥(가명, 34) : "(결혼생활) 4년이 저에게는 지옥이었고 지금도 살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저는 진짜 못 살아요." 양가 어머니끼리 학교동창 사이였기에 혼수갈등은 상상도 못했다는 김씨. 결혼 당시 친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예단비 700만원에, 혼수비용 2천만원을들여 정성껏 준비했다는데요. <인터뷰> "TV 있죠. 에어컨 있죠. 없는 게 뭐 있어요. 신랑이 음악을 좋아해서 오디오는 두 대나 해왔다고요." 하지만 32평 아파트를 장만해 준 시댁에선 신혼 초부터 이를 불만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경옥(가명, 34) : "시부모님이 처음 신혼집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왜 이렇게 썰렁하냐, 물건도 꽉 채우지 않았네. 너무 어이가 없었죠. 진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시댁에서는 급기야 혼수를 적게 해왔으니 생활비는 친정에서 가져다 쓰라며 남편의 월급을 챙기는 수준까지 갔습니다. <인터뷰>김경옥(가명, 34) :"남편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서 시댁식구들하고 더 많이 어울리고, 시댁 식구들이 외식할 때도 전 끼지도 못해요. 쉽게 말하면 왕따를 시키죠." 우유부단한 성격의 남편은 참으라는 말 밖에 하지 않고 결국 김씨는 정신과 상담까지 받는 상황. <인터뷰>김경옥(가명, 34) : "나도 남들과 똑같이 대학 나와서 결혼했는데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우리 집안을 뭐로 보고 이러나······." 시댁과 조금이나마 떨어져 살고 싶어 1년 전 서울로 이사왔지만 여전히 시댁식구들이 두려워 친정어머니를 자주 부른다는 김 씨. 그런 딸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도 편할 리 없었습니다. <인터뷰>김경옥 씨 친정어머니:"(결혼할 때) 빚이라도 내든가, 집이라도 팔아서 혼수를 해줬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되고, 딸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프고 부모로서는 너무 힘들어요." 지난 한 해 결혼한 신혼부부 한 쌍의 평균 결혼비용은 신랑이 9천 6백 여만원, 신부가 3천 3백 여만원으로, 합계 약 1억 3천만원에 달했는데요. <인터뷰>김우금 (결혼문화연구소 연구원): "(혼수 비용은) 최저 1천만 원부터 최고 10억까지 차이가 납니다. 어떤 주택을 구입하느냐에 따라 혼수 비용의 양극화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혼수 비용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체 결혼비용의 60%가 넘는 주택구입비는 남성들의 큰 부담. 이로 인해 결혼이 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올해 33세의 박민재 씨 역시 결혼을 앞두고 집 장만을 하지 못해 파경을 맞은 경험이 있는데요. 보석전문사진작가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실하게 활동해 왔지만 당시에는 스스 로가 무능하고 초라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인터뷰>박민재(가명, 33) :"정말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보다는 어디에 사는지,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가 더 중요하고 집 평수로 평가받는 게 참 웃기면서도 속상하더라고요." 박씨는 현재 사귀는 여자친구를 위해서도 남들 보란 듯이 집을 장만해 결혼하 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는데요. <인터뷰>박민재(가명, 33) : "좋게 보면 인생 목표가 생긴 거고, 나쁘게 보면 쓸때없는 고집이고 오기일 수도 있지만 돈 때문에 다시 좋아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고 저 자신이 더 자랑스러울 거 같아서······." 결혼 비용 중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항목을 꼽아보니 예단이 1위, 다음으로 결혼식 비용과 예물 비용이 차지했는데요.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결혼 예단 갈등 탓에 빚을 내서라도 비용을 충당하는 세태. <인터뷰>윤의경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 "절차나 형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 체면 문화가 아직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것들을 조절하는 것은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매우 힘든 상황이에요." 하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것에만 돈을 쓰겠다는 예비신혼부부들도 늘고 있습니다. 커플링으로 예물을 대신하고 혼수 역시 간소화했다는 허용호 씨 커플은 남는 비용을 집장만에 쓰겠다고 밝혔는데요. <인터뷰>황은혜(30살 / 예비신부) : "결혼해서 3년 이내에 집을 장만해야 출산 후에도 생활이 편해진다고 해서······." <인터뷰>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 "(모든 여성들이) 혼수 비용으로 1천만 원만 쓰겠다고 해서 한결같이 1천만 원만 썼다면 혼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결혼적령기에 있는 여성, 그리고 친정 부모들의 사고방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하고 정성이 담겼던 혼수, 예단의 전통적인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 금전적인 가치가 우선시되는 세태에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결혼 당사자간의 중심잡기가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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