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살인’ 인혁당 사건 전말은?

입력 2007.01.23 (22:24) 수정 2007.01.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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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인혁당 사건은 고문에 의한 조작으로 확인됐지만 치욕적인 사법 살인으로 불려 왔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이재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한일 회담과 대일 굴욕외교 반대시위가 거셌던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이 터집니다.

북괴의 지령을 받고 국가 변란을 획책한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했다는 것이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입니다.

<자료화면> (대한뉴스 / 64년 8월) : "중앙정보부는 북한 괴뢰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의 지하조직으로 국가를 변란하려 든 인민혁명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습니다."

10년이 지난 1974년 4월, 다시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알려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인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인혁당 재건위'를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고 북한의 남한 내 지하 조직이라고 규정합니다.

긴급조치 4호, 국가보안법,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백80여 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됩니다.

<인터뷰> 이철 (민청학련 관련 사형선고) : "나중에 중앙정보부에 가서 조사를 받고 고문을 받고 하는 도중에 그 도표가 또한번 바뀌었어요. 우리의 더 흉측한 배후 소위 인민혁명당이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 때가서 처음 알았어요"

이듬해인 1975년 4월 8일 도예종, 서도원씨 등 인혁당 관련자 8명은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불과 18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 8명에 대한 사형이 기습적으로 집행됐습니다.

당시 국제법학자 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KBS 뉴스 이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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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 살인’ 인혁당 사건 전말은?
    • 입력 2007-01-23 20:59:20
    • 수정2007-01-23 22: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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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인혁당 사건은 고문에 의한 조작으로 확인됐지만 치욕적인 사법 살인으로 불려 왔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이재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한일 회담과 대일 굴욕외교 반대시위가 거셌던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이 터집니다. 북괴의 지령을 받고 국가 변란을 획책한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했다는 것이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입니다. <자료화면> (대한뉴스 / 64년 8월) : "중앙정보부는 북한 괴뢰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의 지하조직으로 국가를 변란하려 든 인민혁명당 사건의 전모를 발표했습니다." 10년이 지난 1974년 4월, 다시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알려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인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인혁당 재건위'를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고 북한의 남한 내 지하 조직이라고 규정합니다. 긴급조치 4호, 국가보안법,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 혐의 등으로 백80여 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됩니다. <인터뷰> 이철 (민청학련 관련 사형선고) : "나중에 중앙정보부에 가서 조사를 받고 고문을 받고 하는 도중에 그 도표가 또한번 바뀌었어요. 우리의 더 흉측한 배후 소위 인민혁명당이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 때가서 처음 알았어요" 이듬해인 1975년 4월 8일 도예종, 서도원씨 등 인혁당 관련자 8명은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사형이 확정됩니다. 그리고 불과 18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 8명에 대한 사형이 기습적으로 집행됐습니다. 당시 국제법학자 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KBS 뉴스 이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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