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임 현장]20년 만에 찾은 딸·아들

입력 2007.02.28 (09:10) 수정 2007.02.2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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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박찬욱 감독도 방금 사랑하는 아내를 언급했지만 기쁠 때나 슬플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가족이죠? 그만큼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뜻인데요,

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 수 없고, 생이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해 발생하는 실종자 수가 매년 7만 명을 넘는다는데요,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는 고작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홍성철 기자 나왔습니다. 본의 아니게 헤어지게 되었다가 가족들을 다시 만나면 그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겠죠?

<리포트>

네.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르기까지 헤어진 가족들의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는데요. 점을 보면서까지 실종자의 생사를 확인하는가 하면 심지어수년간 찾다가 끝내 사망신고를 냈는데 다시 상봉하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정신지체나 장애자들의 경우는 요양원등에 수용돼서 찾기가 더 쉽지 않다는데요.

인고의 세월 끝에 상봉하게 된 가족들의 애달픈 현장을 취재했습니다.올해 예순 셋인 충북 제천의 최봉수 씨는 20년 전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내는 당시 6살 난 아들과 4살 난 딸을 데리고 나갔는데요,

<인터뷰> 최봉수 (충북 제천): "(애 엄마가) 우리 아들을 6살 먹어서 데리고 나갔어. 그래서 소식이 없었지..내가 '아침 마당' '사람 찾기'를 수요일에는 아침에 그거 나오면 열 일을 재끼고 보는 사람인데.. 자식들이 아빠를 찾나(하고)..."

최 씨에게 남은 것은 사진 한 장 뿐. 각고의 노력 끝에 올 1월 경찰의 도움으로 아이 엄마가 된 딸과 회사원이 된 아들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최봉수 (충북 제천): "아빠한테 아빠, 아빠 무릎 팍도 베고..딸은 재롱을 많이 떨잖아,, 외손자 오니 나한테 잘해.. 귀도 만지고 할아버지 얼굴도 만져보고 별짓을 다해,,그러니 엄청나게 기분이 좋지..."

딸 최모 씨는 보육원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아른거리는데요,

<인터뷰>최미화 (최 씨 딸):"학교에서 막 싸우고 나면 원래 부모 없는 애들이 다 그런 거야...저는 그런 말이 제일 서글펐어요. 다른 사람들은 부모님 있으면 사춘기 때 보듬어주고 부모님 조언도 들었을 텐데 저는 그게 없으니까 서글퍼지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죽기 전에 소원을 풀었다며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봉수 (충북 제천): "소원 풀은 거지. 더 소원 풀 게 없지.. 내가 할 일은 아들 장가를 보내서 이런 손자 하나 안아보고 죽으면 더 이상 원은 없는 "

대전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모 씨는 15년전 헤어진 형과의 상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자인 이 씨는 지난 93년 길을 잃고 이곳으로 오게 됐고,가족들은 4년 넘게 이 씨를 찾으려다 포기하고 한 때 사망신고까지 했습니다.

<인터뷰> 이 씨 형수(음성변조)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 와서 알게 된 거죠.그래서 이제 가보려고 하는 거죠. 앞으로 그거를 살려야죠. 주민등록을.."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박문환 씨는 지난 10일 과천 경마장에 놀러갔다가 실종된 뒤 보름 만에 가까스로 가족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 길동명 (박 씨 최초 발견자): "신고하는 과정에서 참 힘들었어요. 네 번 전화를 했어요. 자기 담당 구역이 아니다 과천 시청에 전화를 해봐라 그래서 과전시청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했더니그런 것 담당하는 사람 없다. 119에 해라..."

실종 기간 박 씨는 열흘 넘게 등산로를 헤매다 탈진했습니다.

<인터뷰> 박문환 :"내가 노숙자처럼 보였나 봐요. (사람들이)그래서 안 도와준 것 같아요."

보름이 십년 같았다는 박 씨의 가족들.

<인터뷰> 전○○ (박씨 어머니): "점도 보고 별짓 다했어요. 죽은 줄 알고 아이고 한숨만 쉬고 죽을 줄 알았어요.진짜 죽은 줄 알고 열흘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물 한 먹음도 못 먹고 단식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니까.."

열흘이 지나면서는 이미 숨졌을 거라며 가족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 (박 씨 여동생): "열흘 지나고 나서는 사망 쪽으로 굳어져서 시체나 뭐 찾아야지.. 이런 마음으로 포기했었죠. 계속 슬퍼하고 오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참 비참하게 살다 갔네 이러면서 원망도 해보고..."

하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실종자 가족이 되면서 느낀 고충도털어놓습니다.

<인터뷰> 박○○ (박 씨 여동생): "막상 당사자 입장이 되니까 하루빨리 실종사고를 막는 전담부서가 생겨서 각 수용소나 관계 경찰서나 공조체제가 이뤄져서 하루빨리 찾을 수 있는 체계가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어려운 점이 많은데요,

<인터뷰> 이건수 (남양주 경찰서): "중요한 게 시스템 문제인데요. 우리가 동사무소나 시청처럼 가족 관련해서 자료를 한눈에 불 수 있는 자료가 되면 좋은 데 저희 시스템은 그런 자료가 되어 있지않습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고요.."

한 해 발생되는 실종자 수는 7만 여명, 그러나 이 가운데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숫자는 전체의 5%인 3천 5백명 정도에 불과한데요. 실종 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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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타임 현장]20년 만에 찾은 딸·아들
    • 입력 2007-02-28 08:13:41
    • 수정2007-02-28 09: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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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박찬욱 감독도 방금 사랑하는 아내를 언급했지만 기쁠 때나 슬플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가족이죠? 그만큼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뜻인데요, 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 수 없고, 생이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해 발생하는 실종자 수가 매년 7만 명을 넘는다는데요,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는 고작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홍성철 기자 나왔습니다. 본의 아니게 헤어지게 되었다가 가족들을 다시 만나면 그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겠죠? <리포트> 네.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에 이르기까지 헤어진 가족들의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는데요. 점을 보면서까지 실종자의 생사를 확인하는가 하면 심지어수년간 찾다가 끝내 사망신고를 냈는데 다시 상봉하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정신지체나 장애자들의 경우는 요양원등에 수용돼서 찾기가 더 쉽지 않다는데요. 인고의 세월 끝에 상봉하게 된 가족들의 애달픈 현장을 취재했습니다.올해 예순 셋인 충북 제천의 최봉수 씨는 20년 전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내는 당시 6살 난 아들과 4살 난 딸을 데리고 나갔는데요, <인터뷰> 최봉수 (충북 제천): "(애 엄마가) 우리 아들을 6살 먹어서 데리고 나갔어. 그래서 소식이 없었지..내가 '아침 마당' '사람 찾기'를 수요일에는 아침에 그거 나오면 열 일을 재끼고 보는 사람인데.. 자식들이 아빠를 찾나(하고)..." 최 씨에게 남은 것은 사진 한 장 뿐. 각고의 노력 끝에 올 1월 경찰의 도움으로 아이 엄마가 된 딸과 회사원이 된 아들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최봉수 (충북 제천): "아빠한테 아빠, 아빠 무릎 팍도 베고..딸은 재롱을 많이 떨잖아,, 외손자 오니 나한테 잘해.. 귀도 만지고 할아버지 얼굴도 만져보고 별짓을 다해,,그러니 엄청나게 기분이 좋지..." 딸 최모 씨는 보육원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아른거리는데요, <인터뷰>최미화 (최 씨 딸):"학교에서 막 싸우고 나면 원래 부모 없는 애들이 다 그런 거야...저는 그런 말이 제일 서글펐어요. 다른 사람들은 부모님 있으면 사춘기 때 보듬어주고 부모님 조언도 들었을 텐데 저는 그게 없으니까 서글퍼지고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죽기 전에 소원을 풀었다며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최봉수 (충북 제천): "소원 풀은 거지. 더 소원 풀 게 없지.. 내가 할 일은 아들 장가를 보내서 이런 손자 하나 안아보고 죽으면 더 이상 원은 없는 " 대전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모 씨는 15년전 헤어진 형과의 상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자인 이 씨는 지난 93년 길을 잃고 이곳으로 오게 됐고,가족들은 4년 넘게 이 씨를 찾으려다 포기하고 한 때 사망신고까지 했습니다. <인터뷰> 이 씨 형수(음성변조)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 와서 알게 된 거죠.그래서 이제 가보려고 하는 거죠. 앞으로 그거를 살려야죠. 주민등록을.."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박문환 씨는 지난 10일 과천 경마장에 놀러갔다가 실종된 뒤 보름 만에 가까스로 가족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뷰> 길동명 (박 씨 최초 발견자): "신고하는 과정에서 참 힘들었어요. 네 번 전화를 했어요. 자기 담당 구역이 아니다 과천 시청에 전화를 해봐라 그래서 과전시청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했더니그런 것 담당하는 사람 없다. 119에 해라..." 실종 기간 박 씨는 열흘 넘게 등산로를 헤매다 탈진했습니다. <인터뷰> 박문환 :"내가 노숙자처럼 보였나 봐요. (사람들이)그래서 안 도와준 것 같아요." 보름이 십년 같았다는 박 씨의 가족들. <인터뷰> 전○○ (박씨 어머니): "점도 보고 별짓 다했어요. 죽은 줄 알고 아이고 한숨만 쉬고 죽을 줄 알았어요.진짜 죽은 줄 알고 열흘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물 한 먹음도 못 먹고 단식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니까.." 열흘이 지나면서는 이미 숨졌을 거라며 가족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박○○ (박 씨 여동생): "열흘 지나고 나서는 사망 쪽으로 굳어져서 시체나 뭐 찾아야지.. 이런 마음으로 포기했었죠. 계속 슬퍼하고 오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참 비참하게 살다 갔네 이러면서 원망도 해보고..." 하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실종자 가족이 되면서 느낀 고충도털어놓습니다. <인터뷰> 박○○ (박 씨 여동생): "막상 당사자 입장이 되니까 하루빨리 실종사고를 막는 전담부서가 생겨서 각 수용소나 관계 경찰서나 공조체제가 이뤄져서 하루빨리 찾을 수 있는 체계가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어려운 점이 많은데요, <인터뷰> 이건수 (남양주 경찰서): "중요한 게 시스템 문제인데요. 우리가 동사무소나 시청처럼 가족 관련해서 자료를 한눈에 불 수 있는 자료가 되면 좋은 데 저희 시스템은 그런 자료가 되어 있지않습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고요.." 한 해 발생되는 실종자 수는 7만 여명, 그러나 이 가운데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숫자는 전체의 5%인 3천 5백명 정도에 불과한데요. 실종 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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