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호 병장 부모, 아들 옷 만지며 ‘오열’

입력 2007.02.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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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불과 석 달여 앞두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희생당한 고 윤장호(27) 병장의 부모는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자택에서 아들의 옷을 만지며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아버지 윤희철(65)씨는 전날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가슴을 에는 슬픔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이날 오전에는 다시는 오지 않을 먼 하늘나라로 떠난 아들의 빈 자리를 실감한 듯 옷장문을 열고 아들의 옷을 부여 잡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윤씨 부부는 전날 밤 한숨도 못 자 수척한 모습이었으며 풀어보지도 않은 아들이 쓰던 책 박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은 아들이 반평생을 보낸 미국이 주도한 전쟁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들이 희생된 것을 못 내 안타까워하며 미국 정부가 성의있는 태도로 보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딕 체니 부통령의 방문 정보가 미리 새 나가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 아니냐"며 "결국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이 이뤄지고 미국으로 인해 아들이 희생됐으므로 미국 정부에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오늘 오후 국방부 측에서 장례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집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미국 측의 성의있는 보상이 없이 그냥 장례를 치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뒤 "군 당국에서 전날 집을 위로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부에서 아무런 연락이나 사과, 보상 약속 등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윤 병장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자원입대를 결심했을 정도로 국가관이 뚜렷한 아들이었다고 윤씨 부부는 전했다.
윤씨는 "아들이 10년 이상 한국에서 떨어져 살다 보니 조국에 대한 향수와 애정이 생겼고 굳이 그때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데 자원입대해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프간 파견을 자원했다"고 말했다.
윤 병장은 호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형, 결혼 후 LA에 살고 있는 누나와 달리 제대 후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에서 함께 살기로 했던 터여서 윤 병장의 빈자리는 이들에게 더욱 크게 느껴진다.
또 유학 시절 자주 방학때 다른 아이들처럼 자주 한국에 나오지 못하게 말렸던 것이 더욱 맘을 아프게 했다.
윤씨는 "막내 아들과 여생을 마치려고 했는데 이제 어떡하느냐"며 "28년동안 13년밖에 함께 보내지 못한 아들이 한국에 나오는 것을 `유학을 못 간 다른 학생들이 슬퍼한다'며 말렸던 것도 너무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또 윤 병장은 어머니가 5년 전 뇌 출혈로 쓰러졌을 때 `엄마를 살려달라'며 삭발을 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다닐 정도로 효심이 깊은 아들이었다. 아프간에서 받는 월급을 꼬박꼬박 송금해 부모를 기쁘게 했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가면서 공부해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자립심이 강하고 반듯한 청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윤씨의 주변에는 장호를 유학의 성공사례로 보고 자녀를 유학 보낸 이웃도 적지 않다.
지인인 이창훈(54)씨는 "장호의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보고 나도 아들을 유학보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씨 부부는 아들과 마지막이 돼 버린 미국 가족 여행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은 "2003년 12월20일에 아들이 있는 미국에 건너가서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를 여행했었는데 꿈만 같았다. 10일 정도 여행했는데 아들이 운전도 하고 정말 좋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씨는 윤 병장의 형인 장혁씨가 귀국하는 대로 아들의 시신을 인수하기 위해 아프간으로 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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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장호 병장 부모, 아들 옷 만지며 ‘오열’
    • 입력 2007-02-28 14:03:14
    연합뉴스
제대를 불과 석 달여 앞두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희생당한 고 윤장호(27) 병장의 부모는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자택에서 아들의 옷을 만지며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아버지 윤희철(65)씨는 전날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가슴을 에는 슬픔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이날 오전에는 다시는 오지 않을 먼 하늘나라로 떠난 아들의 빈 자리를 실감한 듯 옷장문을 열고 아들의 옷을 부여 잡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윤씨 부부는 전날 밤 한숨도 못 자 수척한 모습이었으며 풀어보지도 않은 아들이 쓰던 책 박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은 아들이 반평생을 보낸 미국이 주도한 전쟁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들이 희생된 것을 못 내 안타까워하며 미국 정부가 성의있는 태도로 보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딕 체니 부통령의 방문 정보가 미리 새 나가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 아니냐"며 "결국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이 이뤄지고 미국으로 인해 아들이 희생됐으므로 미국 정부에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오늘 오후 국방부 측에서 장례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집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미국 측의 성의있는 보상이 없이 그냥 장례를 치를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뒤 "군 당국에서 전날 집을 위로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부에서 아무런 연락이나 사과, 보상 약속 등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윤 병장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자원입대를 결심했을 정도로 국가관이 뚜렷한 아들이었다고 윤씨 부부는 전했다. 윤씨는 "아들이 10년 이상 한국에서 떨어져 살다 보니 조국에 대한 향수와 애정이 생겼고 굳이 그때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데 자원입대해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프간 파견을 자원했다"고 말했다. 윤 병장은 호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형, 결혼 후 LA에 살고 있는 누나와 달리 제대 후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에서 함께 살기로 했던 터여서 윤 병장의 빈자리는 이들에게 더욱 크게 느껴진다. 또 유학 시절 자주 방학때 다른 아이들처럼 자주 한국에 나오지 못하게 말렸던 것이 더욱 맘을 아프게 했다. 윤씨는 "막내 아들과 여생을 마치려고 했는데 이제 어떡하느냐"며 "28년동안 13년밖에 함께 보내지 못한 아들이 한국에 나오는 것을 `유학을 못 간 다른 학생들이 슬퍼한다'며 말렸던 것도 너무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또 윤 병장은 어머니가 5년 전 뇌 출혈로 쓰러졌을 때 `엄마를 살려달라'며 삭발을 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다닐 정도로 효심이 깊은 아들이었다. 아프간에서 받는 월급을 꼬박꼬박 송금해 부모를 기쁘게 했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가면서 공부해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자립심이 강하고 반듯한 청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윤씨의 주변에는 장호를 유학의 성공사례로 보고 자녀를 유학 보낸 이웃도 적지 않다. 지인인 이창훈(54)씨는 "장호의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보고 나도 아들을 유학보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씨 부부는 아들과 마지막이 돼 버린 미국 가족 여행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은 "2003년 12월20일에 아들이 있는 미국에 건너가서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치를 여행했었는데 꿈만 같았다. 10일 정도 여행했는데 아들이 운전도 하고 정말 좋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씨는 윤 병장의 형인 장혁씨가 귀국하는 대로 아들의 시신을 인수하기 위해 아프간으로 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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