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통제, 정부의 노림수는?

입력 2007.03.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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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의 KBS와 일본의 NHK, 영국의 BBC 등을 흔히 공영방송이라고 표현합니다.
정부시책을 선전, 홍보하는 국영방송이나 상업적 동기를 우선시하는 상업방송과 구별하기 위한 용어겠죠.
그런데 이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가 세계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습니다.
오늘 미디어포커스는 과연 누가, 왜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들고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공영방송의 역할과 사명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이 자리에 박전식, 김경래 기자, 그리고 KBS 런던지국 김종명 특파원이 위성 화상으로 함께 했습니다.

먼저 김경래 기자, 방송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정치권력이나 자본은 항상 방송을 통제 하에 두거나 간섭하려 하지 않습니까?

김경래 기자 네, 그렇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KBS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을 텐데요,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87년 6. 10 항쟁 이후 KBS는 정부투자기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제도적으로 공영방송의 틀을 갖추게 됩니다.
1987년을 분기점으로 KBS는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몸부림쳐왔습니다.
지난 1989년 3월 8일 밤 서울역.

시민들의 눈동자가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정지돼 있습니다.
TV 앞에서 시청자들은 말을 잊었습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9년 만에 KBS는 처음으로 광주의 진실에 카메라를 비췄습니다.
전국 시청률 70.5%, 전남에선 무려 95.9%가 KBS가 말하는 불편한, 그러나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진실을 지켜봤습니다.
‘광주는 말한다’ 방송 다음날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공영방송 KBS를 ‘변심한 애인’으로 취급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녹취>박희태 논평: “우리가 믿고 사랑하던 KBS의 품위, 양식 깊이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지 실망치 않을 수 없다.”
정부여당이 믿고 사랑했다는 KBS'는 당시까지 과연 어떤 ’품위와 양식과 깊이‘을 갖고 있었을까?

<녹취> 특별기획 광주사태: “무장난동자들에 의한 무정부 상태하에서도 군은 최소한의 자위권 발동마저 자제했으며 비록 군인이 난동자들에 잡혀 무참히 학살되는 상황에서도...”
‘광주는 말한다’가 방송되기 4년 전인 1985년, 당시 사실상의 국영방송이던 KBS는 단 한 명의 증언도, 한 커트의 계엄군 진압장면도 없이, 80년 광주를 또 한 번 무참하게 유린했었습니다.

<녹취> 패널 인터뷰 변호사: “광주사태를 다시 되씹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녹취> 앵커 멘트: “다시 상처를 드러내서...”

85년과 89년, KBS가 4년의 시차를 두고 다른 광주는 결코 같은 광주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4년, KBS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6.10 항쟁이 일어난 87년 새해 벽두도 KBS 9시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기가 막힌 박종철 군 사망 발표가 있었던 1월 15일에도, 결국 정부가 고문치사를 공식 인정했던 1월 19일에도 이른바 땡전뉴스는 계속됐습니다.

오히려 분노하는 시민들을 꾸짖고, 대통령의 미봉책을 일대의 영단으로 칭송합니다.

<녹취> 박원훈: “일부 세력의 정치적 선동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녹취> 변호사 인터뷰: “대통령 각하의 지시는 일대의 영단입니다”
87년 2월7일, 전국적인 박종철 군 추도집회가 예정되자 KBS의 여론조작과 독재정권 편들기는 더욱 노골화됩니다.

<녹취> 87년 2월 6일 9시뉴스: “종교모임을 반체제적인 정치투쟁 군중집회로 변질 시키려는 의도가 곁들여 있기 때문에...”
<녹취> 87년 2월 7일: “추도를 위한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사람들이 돌과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민주화 쟁취라는 시대적 열망은 무르익어갔지만 KBS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시민 항쟁이 시작된 87년6월10일.


<앵커 멘트>

오늘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헌정 40년 만에 처음 보는 극적인 장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날 9시뉴스는 민정당 후보 지명대회와 노태우 후보를 소개하는데 전체뉴스의 반을 할애합니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가한 전국적 집회는 KBS 뉴스에서 산발적인 과격 시위에 불과했습니다.
뉴스는 변하지 않았지만 뉴스 밖 세상은 격변하고 있었습니다. 시대를 읽을 줄도, 저항도 몰랐던 KBS.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자유 언론, 공정 방송에 목말랐던 국민들은 권력에 부역했던 KBS에게 제도적 독립이라는 선물과 공정 방송이라는 책임을 함께 안겨줍니다.

87년 11월 10일 한공방송공사법이 대폭 개정되고, 정부투자기관 관리법 적용대상에서 KBS가 제외 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공영방송의 기틀이 마련된 것입니다.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정부관여 축소와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법률이라고 개정 이유는 밝히고 있습니다.

KBS는 20년 전 이렇게 국민의 힘으로 공영방송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85년과 89년, KBS가 다룬 두 광주 사이에는 는 이처럼 한국현대사를 바꾼 큰 물줄기와 방송 독립을 향한 열망이 놓여 있었습니다.

<질문> 네, 하지만 제도적 틀이 바뀌었다고 KBS가 하루아침에 권력의 통제나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 났다고 보기는 힘들 지 않을까요?

<답변> 물론 그렇습니다. 사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도 권력으로부터 유무형의 압력이나 간섭이 있었고, KBS도 이를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거나, 자발적으로 협조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공영방송의 제도적, 법적 틀 자체를 깨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 임기 말에 와서 공영방송을 다시 법적으로 정부의 통제 하에 두는, 즉 방송의 독립성을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법안이 느닷없이 만들어졌습니다.
87년 6.10 항쟁의 주역들이 대거 참여한 참여정부가 공영방송의 틀을 전두환 정권 시절로 되돌려 놓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
기획예산처가 기존의 정부투자기관법을 손질해 만든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 대상에 KBS와 EBS를 포함시키려 하자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녹취> 노웅래 의원: “언론의 특수성이 있는 부분은 어느정도 인정이 돼댜 된다고 보는데”
결국 기획예산처 장관이 시행령을 통해 공영방송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물러서면서 법안은 운영위를 통과합니다.

<녹취> 김한길 위원장: “자율성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행령으로 대상기관 한정
하겠다, 맞습니까?”
<녹취> 장병완 기예처 장관: "예"
12월 21일, 국회 법사위에서도 방송의 독립성 침해가 거론되자 장병완 장관은 법안 수정 의사를 밝혔습니다.

<녹취> 장병완: “KBS하고 한국은행을 제외한다면 이 법에서 그것을 명시해도 저희들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장 장관은 법 자체는 바꾸지 않고 운영의 묘를 살리겠다고 말을 다시 바꿉니다.

<녹취> 장병완: “KBS나 한국은행처럼 이런 기관들은 지정 과정에서 정부에서 제외를 해서 운영을 하도록...”

일관되지 않은 답변이 계속됐지만 이후 방송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은 사라지고 법안은 일사천리로 본회의까지 통과합니다.

<녹취> 임채정 의장: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결국 지난달 2일에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에도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 조항은 빠졌습니다.

<녹취> 천영세: “한마디로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추진됐고,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젭니다.”


언론, 시민단체들도 공영방송이 정부 부처 중 하나인 기획예산처의 직접 규제를 받게 된다면, 정치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처장
“현재 여권과 현 정치 권력을 대선 전 과정에 공영 방송 자체 장악하고 컨트롤 할 수 있고 한나라 입장에서 그 정권 들어섰을 때 공영방송을 완하게 틀어질 수 있는 거든요.“

기획예산처는 반발이 거세지자 법 운영과정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녹취> 기획예산처 배국환 본부장: “정치권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제외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의 신중한 검토에 따라 KBS나 EBS는 예산과 인사까지 완벽하게 통제당하는 공기업으로 지정될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결정은 해마다 기획예산처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가 내립니다.
공영방송의 운명이 해마다 기획예산처의 입맛에 따라 엇갈리게 되는 셈입니다.

<녹취> 김승수: “기획예산처란라는 전혀 방송과 관련이 없고 정치적 독립성과 관련 없는 정부 기구가 산하 운영위를 만들어서 그 운영위가 결정한 바대로 KBS, EBS가 공공기관에 속할 것인가 자의적으로 정하고 막연한 기준을 가지고 통제하겠다는 것은 민주화 시대 방송 자유화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시대적 역행..."

설사 기획예산처의 선처로 공영방송이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해도, 기관 통폐합과 기능 재조정, 민영화 등 방송의 생사여탈권은 기획예산처 장관이 쥐게 됩니다.

공공의 재산인 공영 채널을 사적 기업에 팔아넘기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지적까지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녹취> 강형철: "정부가 공영방송 규제할 수 있는 예산가지고 규제할 수 있는 민영화 할 수 있는 계획서까지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 속에 공영방송 넣는다는 것은 공영 방송 존재에 대한 위협이자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획예산처가 공영방송사에 대한 각종 자료 요구 권한을 갖게 되는 것도 큰 문젭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정부가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간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획 예산처는 과거 87년 정부투자관리기본법 적용 대상에서 KBS가 제외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기획예산처 배국환 본부장: “공공기관 운영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공공기관을 망라해서 적용한 법률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외없이 다 들어가는게 맞겠죠.”

하지만 87년 개정법은 정부가 KBS에 던져준 선물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해 낸 민주화의 성과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녹취> 전병헌: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 발의 “KBS의 독립성은 87년 민주화 성과를 통해서 정부 예산 통제 정부 간섭에서 벗어난 것인데 20년 만에 다시 공공기관운영법으로 인해서 정부 통제권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민주화 성과를 부정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질문> 마음만 먹으면 정부가 얼마든지 공영방송의 뉴스나 프로 그램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우리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실제 공영방송 NHK가 정치권에 의해 일상적으로 휘둘리는 일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질문> NHK라면 흔히 영국 BBC와 함께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여겨졌지 않습니까? 그런데 NHK가 정치권의 간섭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의외인데요.

<답변> 그렇습니다. NHK는 ‘실크로드’나 ‘4대 문명’ 등 수순 높은 프로그램을 통해 상업방송과는 차별화된 품격 있는 방송 서비스를 제공해왔습니다.
그러나 시사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민감한 정치현안이나 국제 이슈의 경우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간섭하거나, NHK 스스로 알아서 기는 현상이 종종 목격되고 있습니다.
NHK의 ‘돈 줄’을 쥐고 있는, 즉 예산통제권을 갖고 있는 집권 자민당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26년 설립된 후, 일본에서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보적 위상을 차지해온 NHK.

그러나 최근 들어 특집 프로그램에 대한 잇단 외압 파문과,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독립적 언론기관으로서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녹취> 바우넷 재팬 대표 등 승소회견: “정말로 뒤에 적혀있는 대로 전면 승소라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지난 1월 29일, 도쿄 고등법원은 한 시민단체와 NHK 사이의 5년 반에 걸친 소송에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NHK와 이 시민단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01년 1월, NHK 교육방송은 나흘에 걸쳐 일본의 전쟁책임을 다룬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했습니다.

그 가운데 ‘전시 성폭력을 묻는다’라는 제목의 제2편 일본군 위안부 특집이 원래 방송시간보다 4분 정도 잘린 채 방송됐습니다.

NHK가 이 시민단체의 협조를 받아 여성 국제전범재판 과정을 취재한 뒤 핵심에 해당하는 일본 천황의 전쟁 책임 부분 등을 프로그램에 넣었다가 실제 방송 때는 삭제해 버린 것입니다.

<녹취> 니시노 루미코(전시 여성과 폭력 일본네트워크): " (NHK 측에서) 아주 훌륭한 취재제안서를 보여줬고, 또 전달받았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이라면 우리도 아주 좋다며 적극적으로 취재에 협조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방송된 내용을 보면, 누가 피고이고, 어떻게 심판을 받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NHK의 프로그램 내용 축소, 변경에 대해 세계의 양심들이 항의했다는 소식이 주요 신문에 등장하고,

. 국제전범재판 행사를 주최하고, NHK의 취재에 협조한 바우넷 측이 강력히 항의했지만 NHK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바우넷은 2001년 7월 NHK를 상대로 기대권을 저버렸다며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은 별 진척 없이 몇 년을 끌었지만, 지난 2005년 1월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NHK 프로그램 일부가 정치권의 압력으로 삭제됐다고 아사이 신문이 특종보도한데 이어, 해당 프로그램의 책임프로듀서였던 나가이 CP도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압력이 있었다고 직접 폭로하고 나선 것입니다.

<녹취> 나가이 사토루(NHK 위안부 특집프로그램 책임체): "진실을 말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결단하게 됐습니다. (간부들이 말하기를) 당초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라는 식으로 (정치인들로부터)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2005.1.13 NHK 뉴스: "그 뒤 이 간부는 전 종군위안부 증언 등을 자르라고 제작 현장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삭제 파문이 커지자 의혹을 처음 보도한 아사히신문과 NHK.자민당 측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언론들은 NHK가 집권 자민당 정권 앞에 너무 약하며, 권력과 유착돼 온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논평했습니다.

결국 지난 1월 법원은 NHK가 자민당 실세들의 의중을 헤아려 위안부 특집방송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축소 방송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민단체에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NHK가 접촉 후 프로그램 축소 압력을 느낀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거론된 인물들은 아베 현 총리를 비롯해 나카가와, 시모무라, 후루야, 히라사와 등 자민당 내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의 중추 멤버들입니다.


<녹취> 핫토리 다카아키( 일본 릿쿄대 미디어사회학과 교수): "NHK는 정치가가 불렀는지 불려갔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회사 사정을 정치권에) 설명하는 것이 통상적인 업무였습니다. 따라서 박기자 말씀대로 검열에 가까운 일을 통상업무라는 식으로 NHK는 지금까지도 주장해왔고, 그런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질문> 네, 박 기자! 이 위안부 방송 외압 파문 말고도, NHK가 최근 들어 부쩍 자민당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죠?

<답변> 네, 몇 가지 예가 있는데요.
한 달 전쯤에 미국의 한 일본계 하원 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미국 의회에 제출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의 피해 할머니들은 물론 네덜란드 할머니까지도 청문회에 나와 일본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해서 세계 여러 나라 언론매체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이 소식에 대해 철저하리만치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녹취> 06년 2월 1일 KBS 9시 뉴스 앵커 멘트: "미 하원의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난하고 일본 총리의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습니다. 지난 1월 31일, 일본계인 마이크 혼다 의원의 주도로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일본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이 제출됐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미국 등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고, 후지TV 등 일본 내 몇몇 언론도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사실상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미디어포커스 확인 결과, NHK는 결의안이 제출된 이후 지난 한 달여 동안 관련 뉴스를 거의 다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취> 니시노 루미코(전시 여성과 폭력 일본네트워크 공동대표): "재판과정에서 알게 된 것인데요, NHK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3대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안부 문제, 또 하나는 천황의 전쟁책임, 세 번째가 여성의 페미니즘. 말 그대로 이 세 가지가 응축돼 있었던 겁니다."
반면에 NHK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거의 매일 다루다시피하고 있습니다.
납치 문제는 아베 신조 의원을 일본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자민당 내 핵심 이슈입니다.
자민당 정부는 NHK 하시모토 회장을 총무성으로 불러 납치문제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뤄줄 것을 지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총무성이 국고 지원을 받는 NHK 국제방송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것은 방송법상의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녹취> 가타야마 토라노스케(참의원 자민당 간사장/전 총무성장관): "명령이 가능하니 명령 형식으로 해 왔습니다. 저도 대신 자리에 있을 때 3번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야당과 언론계 등에서는 언론의 독립성 말살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녹취> 오자와 이치로(일본 민주당 당수): "일방적으로 정부 선전을 권력으로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국영방송을 만드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녹취> 야마코시 준(NHK 노조위원장): "지금은 ‘명령 방송’이라는 방송법 규정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이 직접적으로 방송에 개입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한 것은 배제해야 합니다."

NHK가 자민당 정권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이유는 바로 예산 문제 때문입니다.

NHK는 매년 초 자체 편성한 예산안을 내각 총무성 장관에게 제출하고 있습니다.

즉, 자체 예산안이 NHK 경영위원회를 거쳐 내각 총무성에 제출되면, 의회 심의에 앞서 총무성의 까다롭게 심사를 받고, 그후 자민당이 절대 다수인 국회로 넘겨져 최종 확정되는 절차를 거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NHK는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무성 고위 관리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개별접촉을 시도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요구가 NHK로 전달되는, 주고받기 식 구조가 굳어졌습니다.

<녹취> 하세베 야스오(도쿄대 법학부 교수): "NHK 경영을 하는 간부들은 자연히 국회의 중요 정치가에게 예산 내용을 설명하러 가게 됩니다. 그런 일을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밖에서 보년 NHK가 정치가, 특히 여당 정치가에 대해 아부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위안부 특집 방송 삭제 압력도 NHK의 예산안 심사를 불과 보름여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발생했습니다.

<녹취> 야마코시 준(NHK 노동조합 위원장): "아무래도 해마다 국회에서 예산을 통과시키는 일이 목적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집권 여당, 즉 지금의 자민당인데요, 이들의 의견을 아무래도 많이 들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질문> 세계적 공영방송이라는 NHK도 돈 줄을 쥐고 있는 정치권력에게는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요,

이번에는 공영방송의 교과서이자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영국 BBC의 상황은 어떤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BBC는 지난 2004년 이라크 전 관련 보도가 오보 논란에 휩싸이고, 정부의 진상보고서인 이른바 허튼 보고서가 BBC 보도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이사장과 사장이 동시에 퇴진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사정이 궁금해지는데요, 런던 김종명 특파원 연결합니다.

김 특파원, 당시 퇴진한 그렉 다이크 전 사장 후임으로 지난 3년 간 BBC의 위기를 수습해온 마크 톰슨 현 BBC 사장을 한국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만나
특별대담을 가졌죠? (그렇습니다)

톰슨 사장의 위기 극복 과정과 그가 바라보는 BBC와 영국 정부의 관계를 정리해주시죠.

<답변> 영국의 BBC, 늘 권력의 핵심을 파고들고 있죠,
말씀하신 이라크 전 보도문제만 하더라도, 지난주, BBC는 정부 무기사찰전문가였던
켈리 박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는 다큐물을 방영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과장했다'는 길리건 기자의 보도가 오보로 규정되면서 이사장과 사장이 퇴진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이를 통해 영국 정부의 왜곡 실상이 드러나고 블레어 총리가 당시 사장과 뉴스팀장에게 압력을 가했다 거부당한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지금도 영국민들은 ‘정부보다는 BBC가 더 믿을만하다’며 ‘강한 BBC‘를 지지하고 있고, BBC 사장은 자신감이 가득해있습니다.

<녹취> 마크 톰슨 BBC 사장: "이라크 전쟁 관련 보도를 조사한 ‘허튼 보고서’로 인해 BBC는 엄청난 위기를 겪었지만 우리는 결코 BBC의 의무나 가치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런 위기 후에 우리는 BBC 저널리즘을 엄격하게 재조명해보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했으며 그런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부 개혁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여전히 정부로부터 독립된 입장을 취할 것이며, 보도의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란 점을 확실하게 각오했습니다.

<질문> 정부나 정치인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다는 BBC의 그 같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답변> 말씀하신 그런 정치권력이나 이해관계 집단과의 일정한 거리 두기가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원리라는 오랜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이곳에서도 10년에 한번씩 BBC의 미래체제에 대한 국가적 논쟁이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 일각에선 의회법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적용될 새로운 체제도 의회법이 아닌 여왕의 칙허장 유지로 결론났습니다. 다른 어떤 수단보다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 때문입니다.

올해부터 적용된 이 칙허장은 그동안 BBC의 운영과 감독을 맡아온 이사회를 폐지하고 BBC 트러스트라는
기구를 신설했습니다.

공영방송에 요구되는 고도의 투명성을 강화하기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BBC 운영에 직접 개입하거나 방송통신위원회, 오프콤을 통한 직접규제는 피했습니다.

톰슨 사장의 설명을 함께 들어보시죠.

<녹취> 마크 톰슨 BBC 사장: "1920년대 BBC가 출범한 이래 BBC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BBC 만이나 아니라 의회와 영국국민들이 원했고, 역대 정부도 BBC의 독립을 확고히 하기를 원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BBC의 운영기반이 되는 새로운 왕실 칙허장은 BBC가 완전하게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설된 ‘BBC 트러스트’ 같은 기구 등을 통해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왔습니다. (BBC 트러스트의) 주된 임무중 하나는 BBC가 정부로부터 완벽한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질문> 한국에서는 지금 기획예산처가 KBS와 EBS 같은 공영방송을 공공기관운영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방송 프로그램까지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는데요, 영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않을까요?

<답변> 그렇습니다.

정부,혹은 정부기관이 직접 규제행위에 가담하면 공영방송의 근본가치,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고합니다.
따라서 감사원을 통한 재정운영 조사도 독립기구인 BBC 트러스트의 위임을 받는 형태로 이뤄집니다. 대신 외부회계사를 감사로 임명하고, 트러스트에서예산 운영에 보다 개입하고, BBC는 또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위한 내부개혁을 추진중입니다.

수신료가 기반인 공영방송인만큼 투명성과 효율성을 보다 높이되 정부의 직접 개입은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톰슨사장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이런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녹취> 마크 톰슨 BBC 사장 : "정부가 (공영방송의) 예산을 최종 결정하겠다는 발상의 위험성은, 정부가 뉴스와 시사보도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할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정부는 뉴스와 시사제작물이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제작비를 줄이고, 대신 오락물에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영방송)예산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계의 공영방송들이 서로 배우고, 도움을 준다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KBS가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튼튼함을 유지하고, 신념을 쌓아가기를 바랍니다."


톰슨 사장은 언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도 함께 밝혔습니다. 런던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질문> 네, 김 특파원 수고했습니다.


<질문>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살펴봤는데,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까?

<답변> 물론입니다. 앞서 방송을 통제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욕망이 공영방송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사례를 봤는데, 사실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 재정적인 위기 상황입니다.
자본권력의 지배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재정적 어려움은 광고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고, 이는 광고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즉, 공영성이 훼손되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단가 상승에 따른 프로그램 제작비 급증.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진행 중인 막대한 디지털 전환비용.
이런 재정수요의 빠른 증가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재원은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디지털 영국 건설이라는 국가적 아젠다를 BBC가 주도하고 있지만, KBS의 경우는 재정의 한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 확보를 위해 상업방송들과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다 보면, 공영방송이 추구해야 할 다양한 가치들을 점점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 김승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비싼 돈 들여서 외국에 나가서 시사프로그램 만들고 만들 필요 뭐 있어, 미국 거 팔고, 영국 들이고 헐리우드에서 좋은 프로 만들어서 틀어주면 싼 값에 사서 비싸게 광고 20~30개 달라붙는데. 진정으로 국민들이 효율성 잣대로 이것을 하
고 싶다면 그 효율성은 오로지 돈벌이에 불과한 것이죠. 돈벌이를 방송국 보고 하라면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KBS.EBS일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공영방송이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면, 그 핵심 관건인 재원의 안정적 확보를 원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녹취> 강형철(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국민들이 묻는 거죠. 공영방송 돈 얼마 쓰고 있느냐 이만큼 쓰고 있습니다. 잘 쓰는 것이냐 잘 쓰고 있습니다. 다른 방송에서 이만큼 들였지만 우린 이만큼 들여서 만들었고 다른 방송 안 만들지만 돈이 들어서라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공영방송이 자유로워지려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예산 상으로 스스로 책임지려면, 국민들 대상으로 자신들 행위를 낱낱이 보고하고 설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국가권력이 법적, 제도적 구속력을 가지고 공영방송을 다시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언론학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인터뷰> 한림대 신문방송학과 유재천 교수: “KBS의 경영이 방만하다. 투명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다. 비판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은 KBS 책임이긴 하지만 그 빌미로 공영방송에 간섭하려는 발상했다는 자체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시정하도록 노력해야지 법으로 간섭하려고 하는 건 잘못된 것이죠.”

공공기관운영법 시행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KBS와 EBS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 공영방송의 틀을 왜 20년 전으로 되돌려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올해는 이 땅에 방송이 시작된 지 8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물론 방송 80년의 역사는 온전하게 자랑할 것도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선전기관으로 시작해, 오랜 기간 독재 권력의 나팔수로 부역했던 치욕의 역사가 더 깁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공영방송이라는 제도를 이끌어냈습니다.
정치권력의 통제나 자본의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여론을 전달해달라는, 정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지켜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무슨 의도로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가려 할까요?
특집 미디어포커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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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영방송 통제, 정부의 노림수는?
    • 입력 2007-03-04 09:57:01
    미디어 포커스
<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의 KBS와 일본의 NHK, 영국의 BBC 등을 흔히 공영방송이라고 표현합니다. 정부시책을 선전, 홍보하는 국영방송이나 상업적 동기를 우선시하는 상업방송과 구별하기 위한 용어겠죠. 그런데 이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가 세계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습니다. 오늘 미디어포커스는 과연 누가, 왜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들고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공영방송의 역할과 사명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이 자리에 박전식, 김경래 기자, 그리고 KBS 런던지국 김종명 특파원이 위성 화상으로 함께 했습니다. 먼저 김경래 기자, 방송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정치권력이나 자본은 항상 방송을 통제 하에 두거나 간섭하려 하지 않습니까? 김경래 기자 네, 그렇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KBS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을 텐데요,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87년 6. 10 항쟁 이후 KBS는 정부투자기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제도적으로 공영방송의 틀을 갖추게 됩니다. 1987년을 분기점으로 KBS는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몸부림쳐왔습니다. 지난 1989년 3월 8일 밤 서울역. 시민들의 눈동자가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정지돼 있습니다. TV 앞에서 시청자들은 말을 잊었습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9년 만에 KBS는 처음으로 광주의 진실에 카메라를 비췄습니다. 전국 시청률 70.5%, 전남에선 무려 95.9%가 KBS가 말하는 불편한, 그러나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진실을 지켜봤습니다. ‘광주는 말한다’ 방송 다음날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공영방송 KBS를 ‘변심한 애인’으로 취급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녹취>박희태 논평: “우리가 믿고 사랑하던 KBS의 품위, 양식 깊이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지 실망치 않을 수 없다.” 정부여당이 믿고 사랑했다는 KBS'는 당시까지 과연 어떤 ’품위와 양식과 깊이‘을 갖고 있었을까? <녹취> 특별기획 광주사태: “무장난동자들에 의한 무정부 상태하에서도 군은 최소한의 자위권 발동마저 자제했으며 비록 군인이 난동자들에 잡혀 무참히 학살되는 상황에서도...” ‘광주는 말한다’가 방송되기 4년 전인 1985년, 당시 사실상의 국영방송이던 KBS는 단 한 명의 증언도, 한 커트의 계엄군 진압장면도 없이, 80년 광주를 또 한 번 무참하게 유린했었습니다. <녹취> 패널 인터뷰 변호사: “광주사태를 다시 되씹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녹취> 앵커 멘트: “다시 상처를 드러내서...” 85년과 89년, KBS가 4년의 시차를 두고 다른 광주는 결코 같은 광주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4년, KBS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6.10 항쟁이 일어난 87년 새해 벽두도 KBS 9시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탁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기가 막힌 박종철 군 사망 발표가 있었던 1월 15일에도, 결국 정부가 고문치사를 공식 인정했던 1월 19일에도 이른바 땡전뉴스는 계속됐습니다. 오히려 분노하는 시민들을 꾸짖고, 대통령의 미봉책을 일대의 영단으로 칭송합니다. <녹취> 박원훈: “일부 세력의 정치적 선동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녹취> 변호사 인터뷰: “대통령 각하의 지시는 일대의 영단입니다” 87년 2월7일, 전국적인 박종철 군 추도집회가 예정되자 KBS의 여론조작과 독재정권 편들기는 더욱 노골화됩니다. <녹취> 87년 2월 6일 9시뉴스: “종교모임을 반체제적인 정치투쟁 군중집회로 변질 시키려는 의도가 곁들여 있기 때문에...” <녹취> 87년 2월 7일: “추도를 위한 집회에 참석하겠다는 사람들이 돌과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민주화 쟁취라는 시대적 열망은 무르익어갔지만 KBS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인 시민 항쟁이 시작된 87년6월10일. <앵커 멘트> 오늘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헌정 40년 만에 처음 보는 극적인 장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날 9시뉴스는 민정당 후보 지명대회와 노태우 후보를 소개하는데 전체뉴스의 반을 할애합니다. 수십만 명의 시민이 참가한 전국적 집회는 KBS 뉴스에서 산발적인 과격 시위에 불과했습니다. 뉴스는 변하지 않았지만 뉴스 밖 세상은 격변하고 있었습니다. 시대를 읽을 줄도, 저항도 몰랐던 KBS. 하지만 6월 항쟁 이후, 자유 언론, 공정 방송에 목말랐던 국민들은 권력에 부역했던 KBS에게 제도적 독립이라는 선물과 공정 방송이라는 책임을 함께 안겨줍니다. 87년 11월 10일 한공방송공사법이 대폭 개정되고, 정부투자기관 관리법 적용대상에서 KBS가 제외 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공영방송의 기틀이 마련된 것입니다.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정부관여 축소와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법률이라고 개정 이유는 밝히고 있습니다. KBS는 20년 전 이렇게 국민의 힘으로 공영방송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85년과 89년, KBS가 다룬 두 광주 사이에는 는 이처럼 한국현대사를 바꾼 큰 물줄기와 방송 독립을 향한 열망이 놓여 있었습니다. <질문> 네, 하지만 제도적 틀이 바뀌었다고 KBS가 하루아침에 권력의 통제나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 났다고 보기는 힘들 지 않을까요? <답변> 물론 그렇습니다. 사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도 권력으로부터 유무형의 압력이나 간섭이 있었고, KBS도 이를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거나, 자발적으로 협조한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공영방송의 제도적, 법적 틀 자체를 깨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 임기 말에 와서 공영방송을 다시 법적으로 정부의 통제 하에 두는, 즉 방송의 독립성을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법안이 느닷없이 만들어졌습니다. 87년 6.10 항쟁의 주역들이 대거 참여한 참여정부가 공영방송의 틀을 전두환 정권 시절로 되돌려 놓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 기획예산처가 기존의 정부투자기관법을 손질해 만든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 대상에 KBS와 EBS를 포함시키려 하자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녹취> 노웅래 의원: “언론의 특수성이 있는 부분은 어느정도 인정이 돼댜 된다고 보는데” 결국 기획예산처 장관이 시행령을 통해 공영방송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물러서면서 법안은 운영위를 통과합니다. <녹취> 김한길 위원장: “자율성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행령으로 대상기관 한정 하겠다, 맞습니까?” <녹취> 장병완 기예처 장관: "예" 12월 21일, 국회 법사위에서도 방송의 독립성 침해가 거론되자 장병완 장관은 법안 수정 의사를 밝혔습니다. <녹취> 장병완: “KBS하고 한국은행을 제외한다면 이 법에서 그것을 명시해도 저희들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장 장관은 법 자체는 바꾸지 않고 운영의 묘를 살리겠다고 말을 다시 바꿉니다. <녹취> 장병완: “KBS나 한국은행처럼 이런 기관들은 지정 과정에서 정부에서 제외를 해서 운영을 하도록...” 일관되지 않은 답변이 계속됐지만 이후 방송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은 사라지고 법안은 일사천리로 본회의까지 통과합니다. <녹취> 임채정 의장: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결국 지난달 2일에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에도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 조항은 빠졌습니다. <녹취> 천영세: “한마디로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추진됐고,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젭니다.” 언론, 시민단체들도 공영방송이 정부 부처 중 하나인 기획예산처의 직접 규제를 받게 된다면, 정치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처장 “현재 여권과 현 정치 권력을 대선 전 과정에 공영 방송 자체 장악하고 컨트롤 할 수 있고 한나라 입장에서 그 정권 들어섰을 때 공영방송을 완하게 틀어질 수 있는 거든요.“ 기획예산처는 반발이 거세지자 법 운영과정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녹취> 기획예산처 배국환 본부장: “정치권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제외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의 신중한 검토에 따라 KBS나 EBS는 예산과 인사까지 완벽하게 통제당하는 공기업으로 지정될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결정은 해마다 기획예산처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가 내립니다. 공영방송의 운명이 해마다 기획예산처의 입맛에 따라 엇갈리게 되는 셈입니다. <녹취> 김승수: “기획예산처란라는 전혀 방송과 관련이 없고 정치적 독립성과 관련 없는 정부 기구가 산하 운영위를 만들어서 그 운영위가 결정한 바대로 KBS, EBS가 공공기관에 속할 것인가 자의적으로 정하고 막연한 기준을 가지고 통제하겠다는 것은 민주화 시대 방송 자유화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시대적 역행..." 설사 기획예산처의 선처로 공영방송이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해도, 기관 통폐합과 기능 재조정, 민영화 등 방송의 생사여탈권은 기획예산처 장관이 쥐게 됩니다. 공공의 재산인 공영 채널을 사적 기업에 팔아넘기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지적까지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녹취> 강형철: "정부가 공영방송 규제할 수 있는 예산가지고 규제할 수 있는 민영화 할 수 있는 계획서까지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 속에 공영방송 넣는다는 것은 공영 방송 존재에 대한 위협이자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획예산처가 공영방송사에 대한 각종 자료 요구 권한을 갖게 되는 것도 큰 문젭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정부가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간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획 예산처는 과거 87년 정부투자관리기본법 적용 대상에서 KBS가 제외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기획예산처 배국환 본부장: “공공기관 운영법은 기본적으로 모든 공공기관을 망라해서 적용한 법률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외없이 다 들어가는게 맞겠죠.” 하지만 87년 개정법은 정부가 KBS에 던져준 선물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해 낸 민주화의 성과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녹취> 전병헌: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 발의 “KBS의 독립성은 87년 민주화 성과를 통해서 정부 예산 통제 정부 간섭에서 벗어난 것인데 20년 만에 다시 공공기관운영법으로 인해서 정부 통제권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민주화 성과를 부정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질문> 마음만 먹으면 정부가 얼마든지 공영방송의 뉴스나 프로 그램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 우리에게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악몽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실제 공영방송 NHK가 정치권에 의해 일상적으로 휘둘리는 일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질문> NHK라면 흔히 영국 BBC와 함께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여겨졌지 않습니까? 그런데 NHK가 정치권의 간섭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의외인데요. <답변> 그렇습니다. NHK는 ‘실크로드’나 ‘4대 문명’ 등 수순 높은 프로그램을 통해 상업방송과는 차별화된 품격 있는 방송 서비스를 제공해왔습니다. 그러나 시사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민감한 정치현안이나 국제 이슈의 경우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간섭하거나, NHK 스스로 알아서 기는 현상이 종종 목격되고 있습니다. NHK의 ‘돈 줄’을 쥐고 있는, 즉 예산통제권을 갖고 있는 집권 자민당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26년 설립된 후, 일본에서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보적 위상을 차지해온 NHK. 그러나 최근 들어 특집 프로그램에 대한 잇단 외압 파문과,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독립적 언론기관으로서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녹취> 바우넷 재팬 대표 등 승소회견: “정말로 뒤에 적혀있는 대로 전면 승소라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지난 1월 29일, 도쿄 고등법원은 한 시민단체와 NHK 사이의 5년 반에 걸친 소송에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NHK와 이 시민단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01년 1월, NHK 교육방송은 나흘에 걸쳐 일본의 전쟁책임을 다룬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했습니다. 그 가운데 ‘전시 성폭력을 묻는다’라는 제목의 제2편 일본군 위안부 특집이 원래 방송시간보다 4분 정도 잘린 채 방송됐습니다. NHK가 이 시민단체의 협조를 받아 여성 국제전범재판 과정을 취재한 뒤 핵심에 해당하는 일본 천황의 전쟁 책임 부분 등을 프로그램에 넣었다가 실제 방송 때는 삭제해 버린 것입니다. <녹취> 니시노 루미코(전시 여성과 폭력 일본네트워크): " (NHK 측에서) 아주 훌륭한 취재제안서를 보여줬고, 또 전달받았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이라면 우리도 아주 좋다며 적극적으로 취재에 협조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방송된 내용을 보면, 누가 피고이고, 어떻게 심판을 받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NHK의 프로그램 내용 축소, 변경에 대해 세계의 양심들이 항의했다는 소식이 주요 신문에 등장하고, . 국제전범재판 행사를 주최하고, NHK의 취재에 협조한 바우넷 측이 강력히 항의했지만 NHK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바우넷은 2001년 7월 NHK를 상대로 기대권을 저버렸다며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은 별 진척 없이 몇 년을 끌었지만, 지난 2005년 1월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NHK 프로그램 일부가 정치권의 압력으로 삭제됐다고 아사이 신문이 특종보도한데 이어, 해당 프로그램의 책임프로듀서였던 나가이 CP도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압력이 있었다고 직접 폭로하고 나선 것입니다. <녹취> 나가이 사토루(NHK 위안부 특집프로그램 책임체): "진실을 말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결단하게 됐습니다. (간부들이 말하기를) 당초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라는 식으로 (정치인들로부터)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2005.1.13 NHK 뉴스: "그 뒤 이 간부는 전 종군위안부 증언 등을 자르라고 제작 현장에 지시했다고 합니다." 삭제 파문이 커지자 의혹을 처음 보도한 아사히신문과 NHK.자민당 측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언론들은 NHK가 집권 자민당 정권 앞에 너무 약하며, 권력과 유착돼 온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논평했습니다. 결국 지난 1월 법원은 NHK가 자민당 실세들의 의중을 헤아려 위안부 특집방송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축소 방송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민단체에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NHK가 접촉 후 프로그램 축소 압력을 느낀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거론된 인물들은 아베 현 총리를 비롯해 나카가와, 시모무라, 후루야, 히라사와 등 자민당 내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의 중추 멤버들입니다. <녹취> 핫토리 다카아키( 일본 릿쿄대 미디어사회학과 교수): "NHK는 정치가가 불렀는지 불려갔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회사 사정을 정치권에) 설명하는 것이 통상적인 업무였습니다. 따라서 박기자 말씀대로 검열에 가까운 일을 통상업무라는 식으로 NHK는 지금까지도 주장해왔고, 그런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질문> 네, 박 기자! 이 위안부 방송 외압 파문 말고도, NHK가 최근 들어 부쩍 자민당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죠? <답변> 네, 몇 가지 예가 있는데요. 한 달 전쯤에 미국의 한 일본계 하원 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미국 의회에 제출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의 피해 할머니들은 물론 네덜란드 할머니까지도 청문회에 나와 일본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해서 세계 여러 나라 언론매체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이 소식에 대해 철저하리만치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녹취> 06년 2월 1일 KBS 9시 뉴스 앵커 멘트: "미 하원의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난하고 일본 총리의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습니다. 지난 1월 31일, 일본계인 마이크 혼다 의원의 주도로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일본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이 제출됐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미국 등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고, 후지TV 등 일본 내 몇몇 언론도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사실상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미디어포커스 확인 결과, NHK는 결의안이 제출된 이후 지난 한 달여 동안 관련 뉴스를 거의 다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취> 니시노 루미코(전시 여성과 폭력 일본네트워크 공동대표): "재판과정에서 알게 된 것인데요, NHK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3대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안부 문제, 또 하나는 천황의 전쟁책임, 세 번째가 여성의 페미니즘. 말 그대로 이 세 가지가 응축돼 있었던 겁니다." 반면에 NHK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거의 매일 다루다시피하고 있습니다. 납치 문제는 아베 신조 의원을 일본 총리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자민당 내 핵심 이슈입니다. 자민당 정부는 NHK 하시모토 회장을 총무성으로 불러 납치문제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뤄줄 것을 지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총무성이 국고 지원을 받는 NHK 국제방송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것은 방송법상의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녹취> 가타야마 토라노스케(참의원 자민당 간사장/전 총무성장관): "명령이 가능하니 명령 형식으로 해 왔습니다. 저도 대신 자리에 있을 때 3번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야당과 언론계 등에서는 언론의 독립성 말살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녹취> 오자와 이치로(일본 민주당 당수): "일방적으로 정부 선전을 권력으로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국영방송을 만드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녹취> 야마코시 준(NHK 노조위원장): "지금은 ‘명령 방송’이라는 방송법 규정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이 직접적으로 방송에 개입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한 것은 배제해야 합니다." NHK가 자민당 정권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이유는 바로 예산 문제 때문입니다. NHK는 매년 초 자체 편성한 예산안을 내각 총무성 장관에게 제출하고 있습니다. 즉, 자체 예산안이 NHK 경영위원회를 거쳐 내각 총무성에 제출되면, 의회 심의에 앞서 총무성의 까다롭게 심사를 받고, 그후 자민당이 절대 다수인 국회로 넘겨져 최종 확정되는 절차를 거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NHK는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무성 고위 관리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개별접촉을 시도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요구가 NHK로 전달되는, 주고받기 식 구조가 굳어졌습니다. <녹취> 하세베 야스오(도쿄대 법학부 교수): "NHK 경영을 하는 간부들은 자연히 국회의 중요 정치가에게 예산 내용을 설명하러 가게 됩니다. 그런 일을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밖에서 보년 NHK가 정치가, 특히 여당 정치가에 대해 아부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위안부 특집 방송 삭제 압력도 NHK의 예산안 심사를 불과 보름여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발생했습니다. <녹취> 야마코시 준(NHK 노동조합 위원장): "아무래도 해마다 국회에서 예산을 통과시키는 일이 목적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집권 여당, 즉 지금의 자민당인데요, 이들의 의견을 아무래도 많이 들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질문> 세계적 공영방송이라는 NHK도 돈 줄을 쥐고 있는 정치권력에게는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요, 이번에는 공영방송의 교과서이자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영국 BBC의 상황은 어떤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BBC는 지난 2004년 이라크 전 관련 보도가 오보 논란에 휩싸이고, 정부의 진상보고서인 이른바 허튼 보고서가 BBC 보도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이사장과 사장이 동시에 퇴진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사정이 궁금해지는데요, 런던 김종명 특파원 연결합니다. 김 특파원, 당시 퇴진한 그렉 다이크 전 사장 후임으로 지난 3년 간 BBC의 위기를 수습해온 마크 톰슨 현 BBC 사장을 한국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만나 특별대담을 가졌죠? (그렇습니다) 톰슨 사장의 위기 극복 과정과 그가 바라보는 BBC와 영국 정부의 관계를 정리해주시죠. <답변> 영국의 BBC, 늘 권력의 핵심을 파고들고 있죠, 말씀하신 이라크 전 보도문제만 하더라도, 지난주, BBC는 정부 무기사찰전문가였던 켈리 박사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는 다큐물을 방영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과장했다'는 길리건 기자의 보도가 오보로 규정되면서 이사장과 사장이 퇴진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이를 통해 영국 정부의 왜곡 실상이 드러나고 블레어 총리가 당시 사장과 뉴스팀장에게 압력을 가했다 거부당한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지금도 영국민들은 ‘정부보다는 BBC가 더 믿을만하다’며 ‘강한 BBC‘를 지지하고 있고, BBC 사장은 자신감이 가득해있습니다. <녹취> 마크 톰슨 BBC 사장: "이라크 전쟁 관련 보도를 조사한 ‘허튼 보고서’로 인해 BBC는 엄청난 위기를 겪었지만 우리는 결코 BBC의 의무나 가치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런 위기 후에 우리는 BBC 저널리즘을 엄격하게 재조명해보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했으며 그런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부 개혁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여전히 정부로부터 독립된 입장을 취할 것이며, 보도의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란 점을 확실하게 각오했습니다. <질문> 정부나 정치인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다는 BBC의 그 같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답변> 말씀하신 그런 정치권력이나 이해관계 집단과의 일정한 거리 두기가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원리라는 오랜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이곳에서도 10년에 한번씩 BBC의 미래체제에 대한 국가적 논쟁이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 일각에선 의회법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적용될 새로운 체제도 의회법이 아닌 여왕의 칙허장 유지로 결론났습니다. 다른 어떤 수단보다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 때문입니다. 올해부터 적용된 이 칙허장은 그동안 BBC의 운영과 감독을 맡아온 이사회를 폐지하고 BBC 트러스트라는 기구를 신설했습니다. 공영방송에 요구되는 고도의 투명성을 강화하기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BBC 운영에 직접 개입하거나 방송통신위원회, 오프콤을 통한 직접규제는 피했습니다. 톰슨 사장의 설명을 함께 들어보시죠. <녹취> 마크 톰슨 BBC 사장: "1920년대 BBC가 출범한 이래 BBC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BBC 만이나 아니라 의회와 영국국민들이 원했고, 역대 정부도 BBC의 독립을 확고히 하기를 원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BBC의 운영기반이 되는 새로운 왕실 칙허장은 BBC가 완전하게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설된 ‘BBC 트러스트’ 같은 기구 등을 통해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왔습니다. (BBC 트러스트의) 주된 임무중 하나는 BBC가 정부로부터 완벽한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질문> 한국에서는 지금 기획예산처가 KBS와 EBS 같은 공영방송을 공공기관운영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방송 프로그램까지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는데요, 영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않을까요? <답변> 그렇습니다. 정부,혹은 정부기관이 직접 규제행위에 가담하면 공영방송의 근본가치,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고합니다. 따라서 감사원을 통한 재정운영 조사도 독립기구인 BBC 트러스트의 위임을 받는 형태로 이뤄집니다. 대신 외부회계사를 감사로 임명하고, 트러스트에서예산 운영에 보다 개입하고, BBC는 또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기위한 내부개혁을 추진중입니다. 수신료가 기반인 공영방송인만큼 투명성과 효율성을 보다 높이되 정부의 직접 개입은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톰슨사장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이런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녹취> 마크 톰슨 BBC 사장 : "정부가 (공영방송의) 예산을 최종 결정하겠다는 발상의 위험성은, 정부가 뉴스와 시사보도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할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정부는 뉴스와 시사제작물이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제작비를 줄이고, 대신 오락물에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영방송)예산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계의 공영방송들이 서로 배우고, 도움을 준다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KBS가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튼튼함을 유지하고, 신념을 쌓아가기를 바랍니다." 톰슨 사장은 언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도 함께 밝혔습니다. 런던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질문> 네, 김 특파원 수고했습니다. <질문>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살펴봤는데,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까? <답변> 물론입니다. 앞서 방송을 통제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욕망이 공영방송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사례를 봤는데, 사실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 재정적인 위기 상황입니다. 자본권력의 지배력이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재정적 어려움은 광고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만들고, 이는 광고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즉, 공영성이 훼손되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단가 상승에 따른 프로그램 제작비 급증.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진행 중인 막대한 디지털 전환비용. 이런 재정수요의 빠른 증가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재원은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디지털 영국 건설이라는 국가적 아젠다를 BBC가 주도하고 있지만, KBS의 경우는 재정의 한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 확보를 위해 상업방송들과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다 보면, 공영방송이 추구해야 할 다양한 가치들을 점점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 김승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비싼 돈 들여서 외국에 나가서 시사프로그램 만들고 만들 필요 뭐 있어, 미국 거 팔고, 영국 들이고 헐리우드에서 좋은 프로 만들어서 틀어주면 싼 값에 사서 비싸게 광고 20~30개 달라붙는데. 진정으로 국민들이 효율성 잣대로 이것을 하 고 싶다면 그 효율성은 오로지 돈벌이에 불과한 것이죠. 돈벌이를 방송국 보고 하라면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KBS.EBS일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공영방송이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면, 그 핵심 관건인 재원의 안정적 확보를 원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녹취> 강형철(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국민들이 묻는 거죠. 공영방송 돈 얼마 쓰고 있느냐 이만큼 쓰고 있습니다. 잘 쓰는 것이냐 잘 쓰고 있습니다. 다른 방송에서 이만큼 들였지만 우린 이만큼 들여서 만들었고 다른 방송 안 만들지만 돈이 들어서라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공영방송이 자유로워지려면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예산 상으로 스스로 책임지려면, 국민들 대상으로 자신들 행위를 낱낱이 보고하고 설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둬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국가권력이 법적, 제도적 구속력을 가지고 공영방송을 다시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언론학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인터뷰> 한림대 신문방송학과 유재천 교수: “KBS의 경영이 방만하다. 투명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다. 비판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은 KBS 책임이긴 하지만 그 빌미로 공영방송에 간섭하려는 발상했다는 자체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시정하도록 노력해야지 법으로 간섭하려고 하는 건 잘못된 것이죠.” 공공기관운영법 시행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KBS와 EBS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 공영방송의 틀을 왜 20년 전으로 되돌려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앵커 멘트> 올해는 이 땅에 방송이 시작된 지 8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물론 방송 80년의 역사는 온전하게 자랑할 것도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선전기관으로 시작해, 오랜 기간 독재 권력의 나팔수로 부역했던 치욕의 역사가 더 깁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공영방송이라는 제도를 이끌어냈습니다. 정치권력의 통제나 자본의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여론을 전달해달라는, 정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지켜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무슨 의도로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가려 할까요? 특집 미디어포커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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