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입력 2005.07.1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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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소수만 생존해 있다.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첨단 시설의 건물. 통제가 지나쳐 보이지만 오염으로부터의 보호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다.

직접 세상으로 나가 공기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잘 정돈된 옷들과 최신식의 놀이 시설, 첨단기술이 건강까지 관리해주고 식단도 여기에 맞춰 철저하게 조절되니 아쉬울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이들은 바깥 세상에서 구원된 선택된 사람들, 이제 복권에만 당첨되면 꿈의 낙원 '아일랜드'로 가는 티켓을 얻을 수도 있으니 이곳에 모인 자들은 분명 행복한 사람들이다.

• 감 독 : 마이클 베이• 주 연 : 이완 맥그리거, 스칼렛 요한슨
• 개봉일 : 2005.07.22• 등 급 : 12세이상 관람가


링컨(이완 맥그리거)와 조단(스칼렛 요한슨)은
이 영화에서 슬픈 '클론'을 연기한다.
할리우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흥행 불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재주꾼 마이클 베이 감독이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2003년 '나쁜 녀석들 2'를 만든 이후 2년만에 연출한 이 영화는 과학적 허구이면서 동시에 인간복제라는 어두운 설정으로 출발한다.

에코 혹은 델타 등의 코드와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름을 가진 이곳의 사람들은 사실 복제인간이다. '당신들은 선택된 사람이다'고 끊임없이 칭찬을 받지만 건물의 뒷쪽에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복제인간'(Clone) 혹은 '상품'(Product)이다.

영화의 배경도 먼 미래가 아닌 2020년대의 가까운 훗날. 일부 부자들은 거액의 돈을 투자해 자신들의 복제품들을 만들었으며 철저한 '품질관리'를 거친 이들은 아이를 낳는 데, 혹은 간 같은 장기의 이식에 사용된다. 결국 '아일랜드'행 당첨은 이들에게는 용도 폐기 혹은 사망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이른바 '상품'들이 복제되는 현장을
목격한 링컨. 존재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자들 중 가장 먼저 '의심'이라는 것을 해 본 사람은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다. 왜 항상 같은 색 옷을 주는지, 왜 먹고 싶은 베이컨을 못먹게 하는지, '생각'이 많은 그는 마침 매일 밤 같은 내용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진실을 알게된 것은 친하게 지내던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의 아일랜드 행이 결정된 날이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벌레의 발견이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결정적인 계기. 벌레의 이동경로를 쫓아가다 건물의 뒤편을 보게된 링컨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조던과 함께 '생명'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속도감있는 액션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가지고 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은 처음 선보이는 자신의 SF영화를 통해 인간 복제를 화두로 꺼내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클론의 부정적인 면은 꽤나 강도가 센 편이다. 영화는 간을 빼내던 중 도망치려던 클론의 모습이나 대리 출산 직후 아이를 안아보기도 전에 어김없이 죽임을 당하는 산모의 얼굴에 클로즈업을 한다. 거대한 양수 주머니를 통해 잉태 혹은 생산되는 클론들, 후반부 클론과 본체는 서로 자신이 인간이라고 외친다.

감독은 전작들과 달리 초반 30분을 지루할 만큼 클론들의 생활에 투자하며 의제를 설정,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걸음 벗어나고 있다. 이는 중반 이후 줄곧 액션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르는 이 영화에 최소한의 화두를 던져주지만 결과적으로는 줄거리에 대한 흡인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에게도 오랫동안 무거운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현지에서 열린 공개 시사회에서 제작진은 깊은 철학적 질문이나 과학적 당위성을 애써 회피하며 오락성을 강조했지만, "신이 뭐예요?"라는 링컨의 질문에 "음…. 정말 간절히 뭔가를 원할 때 있잖아? 그때 너를 무시하는 사람이 바로 신이야"라고 답해주는 스티브 부세미의 답 속에서 마이클 베이의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과 도덕성을 배제한 상태에서 과학이 갈 수 있는 현대 의학의 미래를 미연에 폭로하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로 올라론 링컨과 조단(왼쪽).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는 세력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6번째 날", 마이클 키튼의 "멀티플리시티", 최근 "스타워즈"에 나오는 수천 명의 클론 군단까지, 유전자 조작과 클로닝에 대한 공상과학물은 알게 모르게 많은 영화의 소재가 돼왔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것이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라는 것과 의학의 용도로 사용될 스페어 부품의 제조기로서 클론을 본다는, 그다지 불가능하지도, 우리가 읽고 있는 신문 기사와 영화가 만나는, 머잖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폐암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돈만 내면 몇 개월 만에 복제인간을 통해 건강한 폐를 키워 기증받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는가? 아니면 인간 존엄성을 고려하여 거부하겠는가? 멀지 않은 미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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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일랜드
    • 입력 2005-07-18 09:59:58
    영화
미래사회.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소수만 생존해 있다.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첨단 시설의 건물. 통제가 지나쳐 보이지만 오염으로부터의 보호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다. 직접 세상으로 나가 공기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잘 정돈된 옷들과 최신식의 놀이 시설, 첨단기술이 건강까지 관리해주고 식단도 여기에 맞춰 철저하게 조절되니 아쉬울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이들은 바깥 세상에서 구원된 선택된 사람들, 이제 복권에만 당첨되면 꿈의 낙원 '아일랜드'로 가는 티켓을 얻을 수도 있으니 이곳에 모인 자들은 분명 행복한 사람들이다.
• 감 독 : 마이클 베이• 주 연 : 이완 맥그리거, 스칼렛 요한슨
• 개봉일 : 2005.07.22• 등 급 : 12세이상 관람가
링컨(이완 맥그리거)와 조단(스칼렛 요한슨)은
이 영화에서 슬픈 '클론'을 연기한다.
할리우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흥행 불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재주꾼 마이클 베이 감독이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2003년 '나쁜 녀석들 2'를 만든 이후 2년만에 연출한 이 영화는 과학적 허구이면서 동시에 인간복제라는 어두운 설정으로 출발한다. 에코 혹은 델타 등의 코드와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름을 가진 이곳의 사람들은 사실 복제인간이다. '당신들은 선택된 사람이다'고 끊임없이 칭찬을 받지만 건물의 뒷쪽에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복제인간'(Clone) 혹은 '상품'(Product)이다. 영화의 배경도 먼 미래가 아닌 2020년대의 가까운 훗날. 일부 부자들은 거액의 돈을 투자해 자신들의 복제품들을 만들었으며 철저한 '품질관리'를 거친 이들은 아이를 낳는 데, 혹은 간 같은 장기의 이식에 사용된다. 결국 '아일랜드'행 당첨은 이들에게는 용도 폐기 혹은 사망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이른바 '상품'들이 복제되는 현장을
목격한 링컨. 존재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자들 중 가장 먼저 '의심'이라는 것을 해 본 사람은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다. 왜 항상 같은 색 옷을 주는지, 왜 먹고 싶은 베이컨을 못먹게 하는지, '생각'이 많은 그는 마침 매일 밤 같은 내용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진실을 알게된 것은 친하게 지내던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의 아일랜드 행이 결정된 날이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벌레의 발견이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결정적인 계기. 벌레의 이동경로를 쫓아가다 건물의 뒤편을 보게된 링컨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조던과 함께 '생명'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속도감있는 액션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가지고 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은 처음 선보이는 자신의 SF영화를 통해 인간 복제를 화두로 꺼내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클론의 부정적인 면은 꽤나 강도가 센 편이다. 영화는 간을 빼내던 중 도망치려던 클론의 모습이나 대리 출산 직후 아이를 안아보기도 전에 어김없이 죽임을 당하는 산모의 얼굴에 클로즈업을 한다. 거대한 양수 주머니를 통해 잉태 혹은 생산되는 클론들, 후반부 클론과 본체는 서로 자신이 인간이라고 외친다. 감독은 전작들과 달리 초반 30분을 지루할 만큼 클론들의 생활에 투자하며 의제를 설정,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걸음 벗어나고 있다. 이는 중반 이후 줄곧 액션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르는 이 영화에 최소한의 화두를 던져주지만 결과적으로는 줄거리에 대한 흡인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에게도 오랫동안 무거운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현지에서 열린 공개 시사회에서 제작진은 깊은 철학적 질문이나 과학적 당위성을 애써 회피하며 오락성을 강조했지만, "신이 뭐예요?"라는 링컨의 질문에 "음…. 정말 간절히 뭔가를 원할 때 있잖아? 그때 너를 무시하는 사람이 바로 신이야"라고 답해주는 스티브 부세미의 답 속에서 마이클 베이의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과 도덕성을 배제한 상태에서 과학이 갈 수 있는 현대 의학의 미래를 미연에 폭로하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로 올라론 링컨과 조단(왼쪽).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는 세력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6번째 날", 마이클 키튼의 "멀티플리시티", 최근 "스타워즈"에 나오는 수천 명의 클론 군단까지, 유전자 조작과 클로닝에 대한 공상과학물은 알게 모르게 많은 영화의 소재가 돼왔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것이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라는 것과 의학의 용도로 사용될 스페어 부품의 제조기로서 클론을 본다는, 그다지 불가능하지도, 우리가 읽고 있는 신문 기사와 영화가 만나는, 머잖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폐암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돈만 내면 몇 개월 만에 복제인간을 통해 건강한 폐를 키워 기증받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는가? 아니면 인간 존엄성을 고려하여 거부하겠는가? 멀지 않은 미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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