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한족 후예’ 근거 없는 우기기에 불과”

입력 2007.06.0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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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가계가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 발행 학술지 '동북사지'의 주장에 대해 한국 학계는 '전혀 근거가 없는 우기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최근 발행된 동북사지 2007년 3호(5-6월호)에는 스창러(史長樂)라는 인물이 '당나라 명종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을 밝혔다'라는 논문을 실었다.
스창러는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실린 당 명종의 책봉조서를 인용해 "왕건은 절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단정했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卿長淮茂族, 漲海雄藩)'과 '종주몽계토지정, 위피군장, 이기자작번지적, 선내혜화(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藩之跡, 宣乃惠和)'라는 부분이 스창러가 근거로 든 구절이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은 "경(卿)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이라"로 해석되는데 '장회의 무족'은 왕건의 가문이 현재 중국 화이허(淮河) 유역에 근거를 둔 무족 출신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라는 것.
국립중앙박물관의 오영선 학예사는 "우리 역사기록에 대한 검토없이 중국인이 한화(漢化)해서 쓴 책봉조서를 두고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왕건의 선계(先系)는 고려사 고려세계(高麗世系)에 전한다. 고려세계에 나타난 왕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경-강충-보육-진의(여)-작제건-용건-왕건 순으로 이어진다.
고려세계 어느 구절에도 왕건 가문이 중국에서 왔다는 구절은 전하지 않는다. 예성강 유역의 호족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훗날 왕륭으로 불리는 용건을 제외하면 성도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보잘 것 없는 집안이다.
명 태종이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 칭했듯이 당시 한화(漢化)는 일종의 미화로 볼 수 있다. 왕건의 조상을 신격화하기 위해 쓴 고려세계에 진희가 당 숙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작제건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을 정도다.
만일 왕건이 정말 중국에서 왔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이후 '동북사지'가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해 온 서길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장도 "중국이 책봉조서를 들어 왕건을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는 억지주장은 이미 중국이 2000년 초반부터 해온 것"이라며 "근거없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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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건 한족 후예’ 근거 없는 우기기에 불과”
    • 입력 2007-06-05 17:27:59
    연합뉴스
'왕건의 가계가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 발행 학술지 '동북사지'의 주장에 대해 한국 학계는 '전혀 근거가 없는 우기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최근 발행된 동북사지 2007년 3호(5-6월호)에는 스창러(史長樂)라는 인물이 '당나라 명종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을 밝혔다'라는 논문을 실었다. 스창러는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실린 당 명종의 책봉조서를 인용해 "왕건은 절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단정했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卿長淮茂族, 漲海雄藩)'과 '종주몽계토지정, 위피군장, 이기자작번지적, 선내혜화(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藩之跡, 宣乃惠和)'라는 부분이 스창러가 근거로 든 구절이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은 "경(卿)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이라"로 해석되는데 '장회의 무족'은 왕건의 가문이 현재 중국 화이허(淮河) 유역에 근거를 둔 무족 출신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라는 것. 국립중앙박물관의 오영선 학예사는 "우리 역사기록에 대한 검토없이 중국인이 한화(漢化)해서 쓴 책봉조서를 두고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왕건의 선계(先系)는 고려사 고려세계(高麗世系)에 전한다. 고려세계에 나타난 왕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경-강충-보육-진의(여)-작제건-용건-왕건 순으로 이어진다. 고려세계 어느 구절에도 왕건 가문이 중국에서 왔다는 구절은 전하지 않는다. 예성강 유역의 호족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훗날 왕륭으로 불리는 용건을 제외하면 성도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보잘 것 없는 집안이다. 명 태종이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 칭했듯이 당시 한화(漢化)는 일종의 미화로 볼 수 있다. 왕건의 조상을 신격화하기 위해 쓴 고려세계에 진희가 당 숙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작제건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을 정도다. 만일 왕건이 정말 중국에서 왔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이후 '동북사지'가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해 온 서길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장도 "중국이 책봉조서를 들어 왕건을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는 억지주장은 이미 중국이 2000년 초반부터 해온 것"이라며 "근거없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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