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의 가계가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 발행 학술지 '동북사지'의 주장에 대해 한국 학계는 '전혀 근거가 없는 우기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최근 발행된 동북사지 2007년 3호(5-6월호)에는 스창러(史長樂)라는 인물이 '당나라 명종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을 밝혔다'라는 논문을 실었다.
스창러는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실린 당 명종의 책봉조서를 인용해 "왕건은 절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단정했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卿長淮茂族, 漲海雄藩)'과 '종주몽계토지정, 위피군장, 이기자작번지적, 선내혜화(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藩之跡, 宣乃惠和)'라는 부분이 스창러가 근거로 든 구절이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은 "경(卿)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이라"로 해석되는데 '장회의 무족'은 왕건의 가문이 현재 중국 화이허(淮河) 유역에 근거를 둔 무족 출신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라는 것.
국립중앙박물관의 오영선 학예사는 "우리 역사기록에 대한 검토없이 중국인이 한화(漢化)해서 쓴 책봉조서를 두고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왕건의 선계(先系)는 고려사 고려세계(高麗世系)에 전한다. 고려세계에 나타난 왕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경-강충-보육-진의(여)-작제건-용건-왕건 순으로 이어진다.
고려세계 어느 구절에도 왕건 가문이 중국에서 왔다는 구절은 전하지 않는다. 예성강 유역의 호족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훗날 왕륭으로 불리는 용건을 제외하면 성도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보잘 것 없는 집안이다.
명 태종이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 칭했듯이 당시 한화(漢化)는 일종의 미화로 볼 수 있다. 왕건의 조상을 신격화하기 위해 쓴 고려세계에 진희가 당 숙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작제건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을 정도다.
만일 왕건이 정말 중국에서 왔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이후 '동북사지'가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해 온 서길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장도 "중국이 책봉조서를 들어 왕건을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는 억지주장은 이미 중국이 2000년 초반부터 해온 것"이라며 "근거없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최근 발행된 동북사지 2007년 3호(5-6월호)에는 스창러(史長樂)라는 인물이 '당나라 명종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을 밝혔다'라는 논문을 실었다.
스창러는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실린 당 명종의 책봉조서를 인용해 "왕건은 절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단정했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卿長淮茂族, 漲海雄藩)'과 '종주몽계토지정, 위피군장, 이기자작번지적, 선내혜화(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藩之跡, 宣乃惠和)'라는 부분이 스창러가 근거로 든 구절이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은 "경(卿)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이라"로 해석되는데 '장회의 무족'은 왕건의 가문이 현재 중국 화이허(淮河) 유역에 근거를 둔 무족 출신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라는 것.
국립중앙박물관의 오영선 학예사는 "우리 역사기록에 대한 검토없이 중국인이 한화(漢化)해서 쓴 책봉조서를 두고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왕건의 선계(先系)는 고려사 고려세계(高麗世系)에 전한다. 고려세계에 나타난 왕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경-강충-보육-진의(여)-작제건-용건-왕건 순으로 이어진다.
고려세계 어느 구절에도 왕건 가문이 중국에서 왔다는 구절은 전하지 않는다. 예성강 유역의 호족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훗날 왕륭으로 불리는 용건을 제외하면 성도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보잘 것 없는 집안이다.
명 태종이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 칭했듯이 당시 한화(漢化)는 일종의 미화로 볼 수 있다. 왕건의 조상을 신격화하기 위해 쓴 고려세계에 진희가 당 숙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작제건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을 정도다.
만일 왕건이 정말 중국에서 왔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이후 '동북사지'가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해 온 서길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장도 "중국이 책봉조서를 들어 왕건을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는 억지주장은 이미 중국이 2000년 초반부터 해온 것"이라며 "근거없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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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건 한족 후예’ 근거 없는 우기기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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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7-06-05 17:27:59
'왕건의 가계가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중국 지린성 사회과학원 발행 학술지 '동북사지'의 주장에 대해 한국 학계는 '전혀 근거가 없는 우기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최근 발행된 동북사지 2007년 3호(5-6월호)에는 스창러(史長樂)라는 인물이 '당나라 명종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을 밝혔다'라는 논문을 실었다.
스창러는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에 실린 당 명종의 책봉조서를 인용해 "왕건은 절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단정했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卿長淮茂族, 漲海雄藩)'과 '종주몽계토지정, 위피군장, 이기자작번지적, 선내혜화(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藩之跡, 宣乃惠和)'라는 부분이 스창러가 근거로 든 구절이다.
'경장회무족, 창해웅번'은 "경(卿)은 장회(長淮)의 무족(茂族)이며 창해(漲海)의 웅번(雄蕃)이라"로 해석되는데 '장회의 무족'은 왕건의 가문이 현재 중국 화이허(淮河) 유역에 근거를 둔 무족 출신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라는 것.
국립중앙박물관의 오영선 학예사는 "우리 역사기록에 대한 검토없이 중국인이 한화(漢化)해서 쓴 책봉조서를 두고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왕건의 선계(先系)는 고려사 고려세계(高麗世系)에 전한다. 고려세계에 나타난 왕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경-강충-보육-진의(여)-작제건-용건-왕건 순으로 이어진다.
고려세계 어느 구절에도 왕건 가문이 중국에서 왔다는 구절은 전하지 않는다. 예성강 유역의 호족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훗날 왕륭으로 불리는 용건을 제외하면 성도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보잘 것 없는 집안이다.
명 태종이 왕건을 '장회의 무족'이라 칭했듯이 당시 한화(漢化)는 일종의 미화로 볼 수 있다. 왕건의 조상을 신격화하기 위해 쓴 고려세계에 진희가 당 숙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작제건이라는 내용이 들어있을 정도다.
만일 왕건이 정말 중국에서 왔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4년 이후 '동북사지'가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해 온 서길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장도 "중국이 책봉조서를 들어 왕건을 한인의 후예라고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왕건이 한인의 후예라는 억지주장은 이미 중국이 2000년 초반부터 해온 것"이라며 "근거없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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