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희망을 꿈꾸는’ 난민촌의 아이들

입력 2007.06.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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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은 UN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입니다.

전쟁과 천재지변등으로 나라를 잃은 2천만명의 난민중 어린이가 900만명이나 됩니다. 난민촌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김진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소말리아 난민 만 8천명이 수용된 에티오피아 케브리베야 난민촌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9살의 셀레카, 셀레카의 부모는 13년 전 내전의 포화에 휩싸인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10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케브리베야에 왔습니다.

<인터뷰> 셀레카 어머니(36세/소말리아 난민) : "40일 동안 걸어서 왔습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도망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3명의 언니 오빠가 병으로 숨졌고, 이제 태어난 지 보름 지난 동생 등 7명의 형제와 이 움막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유일한 의료센터는 환자로 넘쳐나고, 성년의 징표로 어린 소녀의 강제 할례 의식이 행해지는 난민촌,

이런데도 16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에 소말리아 난민의 수는 더욱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샤 아덴(소말리아 난민) :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남자들은 모두 죽었어요.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콩고와 수단 난민 2만여명이 수용된 우간다 창괄리 난민촌입니다.

풀밭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10살 글로리, 투치족이었던 글로리 아버지는 갑작스런 후투족의 습격으로 동생 가족들이 몰살당하자, 지난해 11월 고향 콩고를 떠나 바로 어제 이곳 창괄리 난민촌에 왔습니다.

<인터뷰> 방가 아네스트(글로리 아버지) : "어느 나라가 우리의 안식처가 되겠나. 그러나 일단 먹어야 한다.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난민이다"

새벽부터 배급을 기다리는 난민들, 2주에 한 번씩 이뤄지는 유엔난민기구의 배급량은 턱없이 모자랍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고대하는 난민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2천만명.

우간다 창괄리 난민촌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난민 가운데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어린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 난민만 900만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셀레카(9세/소말리아 난민) :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무슨 과목의 선생님이요)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 글로리(10세/콩고 난민) : "축구를 좋아하고 달리는 것을 좋아해요"

제대로 먹지도, 치료 받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아프리카 난민촌 어린이들, 그래도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희망을 꿈꾸면서 내일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진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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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층취재] ‘희망을 꿈꾸는’ 난민촌의 아이들
    • 입력 2007-06-20 21:18:04
    뉴스 9
<앵커 멘트> 오늘은 UN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입니다. 전쟁과 천재지변등으로 나라를 잃은 2천만명의 난민중 어린이가 900만명이나 됩니다. 난민촌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김진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소말리아 난민 만 8천명이 수용된 에티오피아 케브리베야 난민촌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9살의 셀레카, 셀레카의 부모는 13년 전 내전의 포화에 휩싸인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10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케브리베야에 왔습니다. <인터뷰> 셀레카 어머니(36세/소말리아 난민) : "40일 동안 걸어서 왔습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도망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3명의 언니 오빠가 병으로 숨졌고, 이제 태어난 지 보름 지난 동생 등 7명의 형제와 이 움막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유일한 의료센터는 환자로 넘쳐나고, 성년의 징표로 어린 소녀의 강제 할례 의식이 행해지는 난민촌, 이런데도 16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에 소말리아 난민의 수는 더욱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샤 아덴(소말리아 난민) :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남자들은 모두 죽었어요.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콩고와 수단 난민 2만여명이 수용된 우간다 창괄리 난민촌입니다. 풀밭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10살 글로리, 투치족이었던 글로리 아버지는 갑작스런 후투족의 습격으로 동생 가족들이 몰살당하자, 지난해 11월 고향 콩고를 떠나 바로 어제 이곳 창괄리 난민촌에 왔습니다. <인터뷰> 방가 아네스트(글로리 아버지) : "어느 나라가 우리의 안식처가 되겠나. 그러나 일단 먹어야 한다.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난민이다" 새벽부터 배급을 기다리는 난민들, 2주에 한 번씩 이뤄지는 유엔난민기구의 배급량은 턱없이 모자랍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고대하는 난민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2천만명. 우간다 창괄리 난민촌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난민 가운데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어린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 난민만 900만명에 이릅니다. <인터뷰> 셀레카(9세/소말리아 난민) :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무슨 과목의 선생님이요) 영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 글로리(10세/콩고 난민) : "축구를 좋아하고 달리는 것을 좋아해요" 제대로 먹지도, 치료 받지도, 배우지도 못하는 아프리카 난민촌 어린이들, 그래도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희망을 꿈꾸면서 내일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진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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