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따기’로 전락한 봉사활동

입력 2007.08.0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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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고등학생들의 봉사활동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봉사활동도 있습니다. 땀과 보람은 없고 점수만 있는 봉사활동을 박경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잘 다듬어진 한강변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습니다.

웰빙 유행과 맞물리면서 매번 천명이 넘게 참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걷기 행사입니다.

삼삼오오 어울린 중고등학생들도 보입니다.

저마다 손에는 노란 비닐봉투를 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 학생 : (누가 오라고했어요?) "학교에서 보내서 왔어요." (노는 토요일이라서 왔어요?) "네" (봉사활동은 무엇을 하는건데요?) "쓰레기 줍는 거요..."

하지만 쓰레기를 줍는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2시간 정도 걷기가 끝나고 30분 정도 경품 추첨 같은 주최측 행사가 진행됩니다.

행사가 끝나자 그동안 무관심했던 중고생들이 무대로 몰려듭니다.

봉사활동 인증서를 받기 위해섭니다.

자녀를 대신해 받으러 온 학부모도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 학부모 : (자제분 봉사활동 받으러 오셨나요?) "네" (자제분은 어디갔어요?) "학원에 갔어요."

길어야 2시간 반 정도 행사였는데 인증서에는 4시간이 적혀있습니다.

두 세번만 참여하면 일년에 채워야 할 봉사시간 10시간을 거의 다 채울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봉사활동 시간.

<인터뷰> 참여 고등학생 : (뭘 느꼈는 지 솔직하게 말해봐요?) "친구들의 우정?"

황당한 봉사활동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중학교 2학년 이 모군은 봉사활동 시간을 채울 곳을 찾다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최근 글짓기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인터뷰> 이○○(중학교 2학년/음성변조) : "봉사활동있다고 해서 갔더니 쓰레기 줍는 게 아니라 글짓기여서 좀..."

원고지 3장을 쓴 이 군은 7시간의 봉사활동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보다 적게 쓴 학생들도 쉽게 5시간을 인정받았습니다.

진학과 내신에 반영되다보니 수요가 크게 늘어난 봉사 활동.

그러나 관리 감독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봉사활동 지침에 따르면 학교는 봉사활동의 내용을 검증하도록 돼있지만 교육당국과 학교측의 무관심 속에 이런 지침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광락(서울시 교육청 장학사) : "활동의 공익성은 학교에 구성된 봉사활동추진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인정합니다. "

<녹취> ○○중학교 교감(음성변조) : "청에서 공문내려오면 사이비가 아니라 정식 협회면 인정해야지 따집니까."

행사규모를 키우거나 값싼 진행 인력이 필요한 업체들의 상술도 이름뿐인 봉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시간 불리기식, 허울뿐인 봉사활동이 계속되면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남을 돕는 보람 대신 요령만 배우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경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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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수 따기’로 전락한 봉사활동
    • 입력 2007-08-07 21:30:49
    뉴스 9
<앵커 멘트> 중고등학생들의 봉사활동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봉사활동도 있습니다. 땀과 보람은 없고 점수만 있는 봉사활동을 박경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잘 다듬어진 한강변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습니다. 웰빙 유행과 맞물리면서 매번 천명이 넘게 참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걷기 행사입니다. 삼삼오오 어울린 중고등학생들도 보입니다. 저마다 손에는 노란 비닐봉투를 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 학생 : (누가 오라고했어요?) "학교에서 보내서 왔어요." (노는 토요일이라서 왔어요?) "네" (봉사활동은 무엇을 하는건데요?) "쓰레기 줍는 거요..." 하지만 쓰레기를 줍는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2시간 정도 걷기가 끝나고 30분 정도 경품 추첨 같은 주최측 행사가 진행됩니다. 행사가 끝나자 그동안 무관심했던 중고생들이 무대로 몰려듭니다. 봉사활동 인증서를 받기 위해섭니다. 자녀를 대신해 받으러 온 학부모도 있습니다. <인터뷰> 참가 학부모 : (자제분 봉사활동 받으러 오셨나요?) "네" (자제분은 어디갔어요?) "학원에 갔어요." 길어야 2시간 반 정도 행사였는데 인증서에는 4시간이 적혀있습니다. 두 세번만 참여하면 일년에 채워야 할 봉사시간 10시간을 거의 다 채울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봉사활동 시간. <인터뷰> 참여 고등학생 : (뭘 느꼈는 지 솔직하게 말해봐요?) "친구들의 우정?" 황당한 봉사활동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중학교 2학년 이 모군은 봉사활동 시간을 채울 곳을 찾다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최근 글짓기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인터뷰> 이○○(중학교 2학년/음성변조) : "봉사활동있다고 해서 갔더니 쓰레기 줍는 게 아니라 글짓기여서 좀..." 원고지 3장을 쓴 이 군은 7시간의 봉사활동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보다 적게 쓴 학생들도 쉽게 5시간을 인정받았습니다. 진학과 내신에 반영되다보니 수요가 크게 늘어난 봉사 활동. 그러나 관리 감독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봉사활동 지침에 따르면 학교는 봉사활동의 내용을 검증하도록 돼있지만 교육당국과 학교측의 무관심 속에 이런 지침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광락(서울시 교육청 장학사) : "활동의 공익성은 학교에 구성된 봉사활동추진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인정합니다. " <녹취> ○○중학교 교감(음성변조) : "청에서 공문내려오면 사이비가 아니라 정식 협회면 인정해야지 따집니까." 행사규모를 키우거나 값싼 진행 인력이 필요한 업체들의 상술도 이름뿐인 봉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시간 불리기식, 허울뿐인 봉사활동이 계속되면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남을 돕는 보람 대신 요령만 배우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경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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