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주고 떠난 ‘우동 할머니’

입력 2007.08.15 (22:23) 수정 2007.08.1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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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동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데 이어 시신까지 대학에 기증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고인의 숭고한 삶과 죽음을 황현택 기자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故 김복순 할머니.

고인의 마지막 뜻은 시신을 해부용으로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우동과 꼬치를 팔아 마련한 서울 장위동 집을 이미 대학에 내놨습니다.

억척스럽게 모은 알토란 같은 전 재산이었습니다.

<인터뷰> 故 김복순 할머니: "용산에서 서울역까지 걸어다녔어요. 새벽 2시에 자서 4시에 일어났어요. 2시간 잤죠. 그렇게 1년 6개월을 생활했습니다."

오갈 데 없던 어린 아이 3명을 거둬 어엿하게 키운 김 할머니.

할머니의 정신은 세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됐습니다.

<인터뷰> 신명희(둘째딸/의정부시): "(남편도) 지금은 회사 택시를 해서 많이는 벌지 못하지만 언젠가 잘 살 날이 있지 않겠냐. 돈을 많이 벌면 내가 먹고 살 만큼 만 빼놓고는 기증을 하고 싶다."

학교 측은 할머니의 뜻이 담긴 장학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김운호(경희대 대외협력처장): "돈의 절대액보다는 돈의 가치, 그 뜻이 너무 숭고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계속 이 분을 기리고..."

땅에 떨어짐으로써 더 많은 열매를 남긴 밀알같은 할머니의 삶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인터뷰> 故 김복순 할머니: "쾌감이 오는 거예요. 쾌감이... 내가 도와준 사람이 잘 되면 내가 기분이 더 좋고..."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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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것 주고 떠난 ‘우동 할머니’
    • 입력 2007-08-15 21:29:50
    • 수정2007-08-15 22: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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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동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데 이어 시신까지 대학에 기증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고인의 숭고한 삶과 죽음을 황현택 기자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故 김복순 할머니. 고인의 마지막 뜻은 시신을 해부용으로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우동과 꼬치를 팔아 마련한 서울 장위동 집을 이미 대학에 내놨습니다. 억척스럽게 모은 알토란 같은 전 재산이었습니다. <인터뷰> 故 김복순 할머니: "용산에서 서울역까지 걸어다녔어요. 새벽 2시에 자서 4시에 일어났어요. 2시간 잤죠. 그렇게 1년 6개월을 생활했습니다." 오갈 데 없던 어린 아이 3명을 거둬 어엿하게 키운 김 할머니. 할머니의 정신은 세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됐습니다. <인터뷰> 신명희(둘째딸/의정부시): "(남편도) 지금은 회사 택시를 해서 많이는 벌지 못하지만 언젠가 잘 살 날이 있지 않겠냐. 돈을 많이 벌면 내가 먹고 살 만큼 만 빼놓고는 기증을 하고 싶다." 학교 측은 할머니의 뜻이 담긴 장학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김운호(경희대 대외협력처장): "돈의 절대액보다는 돈의 가치, 그 뜻이 너무 숭고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계속 이 분을 기리고..." 땅에 떨어짐으로써 더 많은 열매를 남긴 밀알같은 할머니의 삶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인터뷰> 故 김복순 할머니: "쾌감이 오는 거예요. 쾌감이... 내가 도와준 사람이 잘 되면 내가 기분이 더 좋고..."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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