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추태 열전 ‘동반 파국 우려’

입력 2007.10.04 (16:59) 수정 2007.10.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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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가 어지럽다.
정정당당한 플레이로 가을의 결실을 수확해야 할 프로축구 그라운드가 거친 항의와 욕설, 침 뱉기, 이물질 투척, 웃통 벗어던지기 등 온갖 추태로 얼룩지고 있다.
지난 달 22일 한가위 연휴 첫 날 수도권 빅 매치로 펼쳐진 인천-수원전에서 시작된 '추태 시리즈'는 9월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전북-우라와(일본)전, 지난 3일 FA컵 4강 전남-인천전까지 거의 한 주 간격으로 이어졌다.
인천-수원전에서 인천 임중용과 수원 에두가 어깨싸움을 벌이다 옥신각신한 뒤 서로 침을 뱉았고 에두가 임중용에게 침을 뱉는 장면은 경기장 대형 전광판으로 거듭 상영됐다. 자극을 받은 관중이 이물질을 던져 그라운드는 난장판이 됐다.
또 인천 전재호는 퇴장당하면서 중계 카메라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연맹의 처벌은 오히려 관대했다. 고작 두 경기 출전 정지와 500만-1천만원의 벌금이 전부였다.
전북-우라와전에선 중동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분위기가 과열됐고 김재영이 주심에게 손가락 욕을 하다 종료 직후 퇴장당했다.
다시 판정 문제가 불거진 전남-인천전에선 인천 방승환이 퇴장당하자 웃통을 벗어던진 채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거칠게 항의해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문가들은 오랜 불신이 이어져온 심판 판정, 리그 운영 주체인 프로축구연맹의 솜방망이 징계, 구단들의 도를 넘어선 승리욕, 자제력을 잃은 선수와 일부 서포터 등 여러 방향으로 그라운드 난맥상의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더 분명히 해둬야 할 대목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간 자칫 '다 같이 망하는'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동업자 정신으로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선수-지도자-심판-구단-팬 어느 쪽도 원치않는 동반 파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편들기 판정을 의심하는 이유

몇몇 구단은 현재 K-리그에 편들기 판정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이는 심판진에 대한 오랜 불신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현재 K-리그 심판진은 34명(주심 16, 부심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새로 휘슬을 불거나 깃발을 잡는 포청천은 5명. 매년 이 정도 숫자가 교체된다. 10년차 이상 경력을 가진 심판은 5명 정도다.
심판들은 독일 분데스리가와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연수도 받고 올해 새로 도입된 헤드세트 장비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등 나름대로 공정한 판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게 연맹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일부 구단 관계자들은 공공연하게 "연맹 심판진이 특정한 두 팀을 밀어준다는 인상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연맹은 '있을 수 없는 억측'이라며 편파 판정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비디오 리플레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특정 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린 '증거'도 확보하고 있다고 열을 올린다.
최근 일련의 사태로 심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한 마디로 휘슬을 불기도 겁이 나고, 그라운드에 나서기조차 두렵다고 한다.
연맹은 앞으로 남은 정규리그 3라운드와 플레이오프, 챔피언 결정전에 외국인 심판을 투입할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심판 투입 여부도 보안에 부쳐져 있다.

◇막연한 기대에 목매다는 연맹

프로축구연맹 김원동 사무총장은 한숨만 푹푹 내쉰다.
이렇게들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리그를 운영할 수 있겠느냐며 볼멘 소리를 냈다.
프로연맹은 한국 축구의 '수준'을 얘기한다. 심판의 오심은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축구 수준, 리그의 수준이 유럽 빅 리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판정만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란 변명이다.
솜방망이 징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 리그처럼 자주 징계를 내리는 리그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대답이다.
그럼에도 각종 축구 게시판에는 연맹이란 명칭 앞에 번번이 '무능'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간혹 충격 요법을 써서라도 리그 체질을 바꿀 시도를 해볼 수도 있건만 '준공무원 조직'처럼 몸을 사리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빗나간 승리욕이 부른 화

요즘 구단들의 승리욕을 보면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의견도 있다.
구단 스태프가 자제력을 상실한 선수와 지도자를 통제하기는 커녕 부추기는 사례도 없지 않다.
K-리그는 크게 기업구단과 시민구단으로 나뉜다. 또 독립채산제를 유지하는 법인도 있고, 기업의 한 부서로 축구단을 운영하는 클럽도 있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대목은 요즘엔 구단 수뇌부도 무조건 승리 지상주의만 외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구단 스태프는 성적 외에 마케팅 능력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프로팀 감독을 파리 목숨이라곤 하지만 최근 외국인 사령탑 외에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계약 만료 이전에 경질된 사례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구단들은 여전히 성적에만 연연하고 있다. K-리그 페어플레이상의 단골 손님은 군팀인 광주 상무다.
진정한 프로라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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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라운드 추태 열전 ‘동반 파국 우려’
    • 입력 2007-10-04 16:50:53
    • 수정2007-10-05 08:17:50
    연합뉴스
그라운드가 어지럽다. 정정당당한 플레이로 가을의 결실을 수확해야 할 프로축구 그라운드가 거친 항의와 욕설, 침 뱉기, 이물질 투척, 웃통 벗어던지기 등 온갖 추태로 얼룩지고 있다. 지난 달 22일 한가위 연휴 첫 날 수도권 빅 매치로 펼쳐진 인천-수원전에서 시작된 '추태 시리즈'는 9월26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전북-우라와(일본)전, 지난 3일 FA컵 4강 전남-인천전까지 거의 한 주 간격으로 이어졌다. 인천-수원전에서 인천 임중용과 수원 에두가 어깨싸움을 벌이다 옥신각신한 뒤 서로 침을 뱉았고 에두가 임중용에게 침을 뱉는 장면은 경기장 대형 전광판으로 거듭 상영됐다. 자극을 받은 관중이 이물질을 던져 그라운드는 난장판이 됐다. 또 인천 전재호는 퇴장당하면서 중계 카메라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연맹의 처벌은 오히려 관대했다. 고작 두 경기 출전 정지와 500만-1천만원의 벌금이 전부였다. 전북-우라와전에선 중동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분위기가 과열됐고 김재영이 주심에게 손가락 욕을 하다 종료 직후 퇴장당했다. 다시 판정 문제가 불거진 전남-인천전에선 인천 방승환이 퇴장당하자 웃통을 벗어던진 채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거칠게 항의해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문가들은 오랜 불신이 이어져온 심판 판정, 리그 운영 주체인 프로축구연맹의 솜방망이 징계, 구단들의 도를 넘어선 승리욕, 자제력을 잃은 선수와 일부 서포터 등 여러 방향으로 그라운드 난맥상의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더 분명히 해둬야 할 대목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간 자칫 '다 같이 망하는'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동업자 정신으로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선수-지도자-심판-구단-팬 어느 쪽도 원치않는 동반 파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편들기 판정을 의심하는 이유 몇몇 구단은 현재 K-리그에 편들기 판정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이는 심판진에 대한 오랜 불신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현재 K-리그 심판진은 34명(주심 16, 부심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새로 휘슬을 불거나 깃발을 잡는 포청천은 5명. 매년 이 정도 숫자가 교체된다. 10년차 이상 경력을 가진 심판은 5명 정도다. 심판들은 독일 분데스리가와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연수도 받고 올해 새로 도입된 헤드세트 장비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등 나름대로 공정한 판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게 연맹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일부 구단 관계자들은 공공연하게 "연맹 심판진이 특정한 두 팀을 밀어준다는 인상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연맹은 '있을 수 없는 억측'이라며 편파 판정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비디오 리플레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특정 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린 '증거'도 확보하고 있다고 열을 올린다. 최근 일련의 사태로 심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한 마디로 휘슬을 불기도 겁이 나고, 그라운드에 나서기조차 두렵다고 한다. 연맹은 앞으로 남은 정규리그 3라운드와 플레이오프, 챔피언 결정전에 외국인 심판을 투입할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심판 투입 여부도 보안에 부쳐져 있다. ◇막연한 기대에 목매다는 연맹 프로축구연맹 김원동 사무총장은 한숨만 푹푹 내쉰다. 이렇게들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리그를 운영할 수 있겠느냐며 볼멘 소리를 냈다. 프로연맹은 한국 축구의 '수준'을 얘기한다. 심판의 오심은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축구 수준, 리그의 수준이 유럽 빅 리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판정만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란 변명이다. 솜방망이 징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 리그처럼 자주 징계를 내리는 리그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대답이다. 그럼에도 각종 축구 게시판에는 연맹이란 명칭 앞에 번번이 '무능'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간혹 충격 요법을 써서라도 리그 체질을 바꿀 시도를 해볼 수도 있건만 '준공무원 조직'처럼 몸을 사리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빗나간 승리욕이 부른 화 요즘 구단들의 승리욕을 보면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의견도 있다. 구단 스태프가 자제력을 상실한 선수와 지도자를 통제하기는 커녕 부추기는 사례도 없지 않다. K-리그는 크게 기업구단과 시민구단으로 나뉜다. 또 독립채산제를 유지하는 법인도 있고, 기업의 한 부서로 축구단을 운영하는 클럽도 있다. 예전과 많이 달라진 대목은 요즘엔 구단 수뇌부도 무조건 승리 지상주의만 외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구단 스태프는 성적 외에 마케팅 능력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프로팀 감독을 파리 목숨이라곤 하지만 최근 외국인 사령탑 외에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계약 만료 이전에 경질된 사례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구단들은 여전히 성적에만 연연하고 있다. K-리그 페어플레이상의 단골 손님은 군팀인 광주 상무다. 진정한 프로라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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