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반항아’ 도리스 레싱의 삶과 문학

입력 2007.10.1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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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 출신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88)은 "20세기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현대 영국 문학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짐바브웨에서 성장기를 보낸 레싱은 젊은 시절 공산당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왔다. 또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 다시는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전도되면서는 이혼의 아픔까지 경험했던 작가다.
그런 이채로운 경험들은 작가로 하여금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 '시대의 반항아' 역할을 자처해오도록 만들었다. 기성의 가치, 제도, 체제, 이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레싱이 평생 견지해온 일관된 태도였다.
레싱이 천착해온 주제는 그녀가 성장한 아프리카.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인종 간 불화, 착취, 문명 간 충돌과 갈등, 제국과 자본주의의 모순 등을 목격해야 했던 레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척박한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자기 부모의 삶을 근간으로 한 첫 작품 '풀잎은 노래한다'(1949)가 바로 그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자연, 그 과정에서 황폐해가는 백인들의 심리적, 도덕적 공황 상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레싱은 특히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개인의 다양한 욕망의 충돌과 갈등을 그려낸 '황금노트북'(1962)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이자 현대 페미니즘 문학의 정전으로 꼽힌다.
혁명이나 전쟁,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인종, 계급, 성, 제도적인 문제를 성찰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들의 자아를 괴롭히는 가치관의 혼돈, 여기에서 비롯되는 정서적 무력감의 실체를 밝히고자 했다.
스웨덴 한림원도 11일 레싱의 수상 사실을 발표하며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린 서사 시인"이라며 특히 '황금 노트북'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유제분 부산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여성의 일상이 바로 소설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표작은 1988년 발표한 '다섯째 아이'. 해외에서는 이미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전통적 의미의 가정을 추구해나가는 두 부부의 가정이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괴멸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며 인간의 근원과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페미니즘도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도 아니었다. 수없이 변화하는 주제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이 곧 사회적 해방 또는 정의와 연결된다는 신념"이었다.
BBC 방송의 단골 손님이기도 한 레싱은 2001년 영국 에든버러 북 페스티벌 강연에서 "남성들은 너무 겁에 질려 저항할 수 없게 됐다"며 "페미니즘 운동이 고용, 임금평등, 법 개정 등에서 큰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남성들의 굴욕감을 주는 데 쏟고 있다"며 무분별한 페미니즘 운동에 일침을 가했던 것도 그 같은 맥락에서다.
레싱은 여든이 넘어서도 창작 활동의 끊을 놓지 않은 타고난 작가로 꼽힌다. 두 권의 자서전 '내 피부 아래'와 '그림자 속을 걷다'는 자서전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82세였던 2002년 소설 '가장 달콤한 꿈'을 출간하기도 했다.
영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서머싯 몸 상(1956)을 비롯해 메디치 상(1976), 유럽 문학상(1982),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상(2001) 등을 수상했으며 그 같은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1991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왔다
유 교수는 "레싱이 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늦게 수상한 감이 없잖아 있다"며 "사실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 문예사조를 아우르고 있는 대단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런던 스케치'를 국내 번역해 소개한 서숙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도 "레싱은 세계문학의 거목과 같은 작가며 강력한 작가"라며 "백인으로 식민지에 살며 지켜본 인종차별, 식민주의자들과 원주민들의 관계를 지켜보며 느낀 인간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작품에 잘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용인대 영어과 강의교수인 정소영씨도 "처음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소설에서 사실주의적 작품에 천착했던 작가"라며 "특히 '골든노트북'에는 인간의 무력함과 세계의 폭력성 등이 잘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분명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로 꼽혀왔다. 현재 국내 소개된 작품으로는 '마사 퀘스트', '황금 노트북', '다섯째 아이', '풀잎은 노래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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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의 반항아’ 도리스 레싱의 삶과 문학
    • 입력 2007-10-11 22:33:15
    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 출신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88)은 "20세기 영어로 소설을 쓰도록 선택받은 몇 안되는 가장 흥미진진한 지성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현대 영국 문학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짐바브웨에서 성장기를 보낸 레싱은 젊은 시절 공산당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왔다. 또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 다시는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전도되면서는 이혼의 아픔까지 경험했던 작가다. 그런 이채로운 경험들은 작가로 하여금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 '시대의 반항아' 역할을 자처해오도록 만들었다. 기성의 가치, 제도, 체제, 이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레싱이 평생 견지해온 일관된 태도였다. 레싱이 천착해온 주제는 그녀가 성장한 아프리카.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인종 간 불화, 착취, 문명 간 충돌과 갈등, 제국과 자본주의의 모순 등을 목격해야 했던 레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척박한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자기 부모의 삶을 근간으로 한 첫 작품 '풀잎은 노래한다'(1949)가 바로 그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자연, 그 과정에서 황폐해가는 백인들의 심리적, 도덕적 공황 상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레싱은 특히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적 인물로 꼽힌다. 개인의 다양한 욕망의 충돌과 갈등을 그려낸 '황금노트북'(1962)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이자 현대 페미니즘 문학의 정전으로 꼽힌다. 혁명이나 전쟁,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인종, 계급, 성, 제도적인 문제를 성찰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들의 자아를 괴롭히는 가치관의 혼돈, 여기에서 비롯되는 정서적 무력감의 실체를 밝히고자 했다. 스웨덴 한림원도 11일 레싱의 수상 사실을 발표하며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린 서사 시인"이라며 특히 '황금 노트북'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유제분 부산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여성의 일상이 바로 소설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표작은 1988년 발표한 '다섯째 아이'. 해외에서는 이미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전통적 의미의 가정을 추구해나가는 두 부부의 가정이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괴멸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며 인간의 근원과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페미니즘도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도 아니었다. 수없이 변화하는 주제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이 곧 사회적 해방 또는 정의와 연결된다는 신념"이었다. BBC 방송의 단골 손님이기도 한 레싱은 2001년 영국 에든버러 북 페스티벌 강연에서 "남성들은 너무 겁에 질려 저항할 수 없게 됐다"며 "페미니즘 운동이 고용, 임금평등, 법 개정 등에서 큰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남성들의 굴욕감을 주는 데 쏟고 있다"며 무분별한 페미니즘 운동에 일침을 가했던 것도 그 같은 맥락에서다. 레싱은 여든이 넘어서도 창작 활동의 끊을 놓지 않은 타고난 작가로 꼽힌다. 두 권의 자서전 '내 피부 아래'와 '그림자 속을 걷다'는 자서전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82세였던 2002년 소설 '가장 달콤한 꿈'을 출간하기도 했다. 영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서머싯 몸 상(1956)을 비롯해 메디치 상(1976), 유럽 문학상(1982), 아스투리아스 왕세자 상(2001) 등을 수상했으며 그 같은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1991년부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왔다 유 교수는 "레싱이 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늦게 수상한 감이 없잖아 있다"며 "사실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 문예사조를 아우르고 있는 대단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런던 스케치'를 국내 번역해 소개한 서숙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도 "레싱은 세계문학의 거목과 같은 작가며 강력한 작가"라며 "백인으로 식민지에 살며 지켜본 인종차별, 식민주의자들과 원주민들의 관계를 지켜보며 느낀 인간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작품에 잘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용인대 영어과 강의교수인 정소영씨도 "처음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소설에서 사실주의적 작품에 천착했던 작가"라며 "특히 '골든노트북'에는 인간의 무력함과 세계의 폭력성 등이 잘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분명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가로 꼽혀왔다. 현재 국내 소개된 작품으로는 '마사 퀘스트', '황금 노트북', '다섯째 아이', '풀잎은 노래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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