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후 오늘] 행복 세탁소의 오늘

입력 2007.11.0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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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뉴스 후 오늘, 이번 시간엔 500억 원대의, 황당한 바지 소송에 시달렸던 세탁소 주인을 만나봅니다.

워싱턴 현지에서, 임세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직 새벽달도 지지 않은 어슴 푸레한 새벽녘.

정진남 씨의 행복세탁소는 오늘도 새벽 6시에 맞춰 손님 맞을 채비를 시작합니다.

<인터뷰> 정진남 : "항상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지하철 타고 와서들 맡기고 가고..."

옷더미에 파묻히고, 미싱질 서비스에 늙은 부부의 얼굴에, 더 이상 어두운 그림자는 없습니다.

2005년 5월, 늘 들르던 피어슨 판사가 바지를 맡기면서, 이들 부부의 삶은 소용돌이칩니다.

실수로 판사의 바지를 제때 찾아주지 못한 게 화근이 됐습니다.

<인터뷰> 정진남 : "딜리버리가 딴데로 가지고 갔어요. 1주일 걸렸어요. 갖다 줬더니, 자기 게 아니라고..."

피어슨 판사는 곳곳이 헤지고, 닳은 이 바지값으로 처음엔 1,150 달러, 100만 원 정도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변상 요구액은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소비자보호법 위반 1500달러 곱하기, 위반항목 12개 곱하기, 피해기간 1200일 곱하기, 정진남 씨, 부인, 아들 까지 곱하기 3. 여기에 손해배상 200만 달러까지.

청구금액 6,700만 달러는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1992년 미국에 정착해 쉴 새 없이 일만 하고 살아온 정 씨 부부에게 닥친 최대의 시련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진남 : "처남이 마중나왔거든요. 미국은 누가 마중나오느냐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는데, 처남이 세탁소했어요."

사장님 소리 듣던 한국 생활을 포기하고 ( 쪼그려 앉아서 샌드위치 먹고 ) 맨주먹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세탁소 3개를 이룰 만큼 가슴 벅찬 성공 뒤에 찾아온 시련이기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인터뷰> 송수연(아내) : "내가 제일 먼저 당했으니까...터무니 없이 당하니까..."

2년 간의 지루한 법정 공방.

피어슨 판사는, 정 씨 부부의 트집을 잡기 위해 동네에 수 천 장의 전단지까지 뿌렸습니다.

<인터뷰> 정진남 : "애 무지 먹었어요. 안 가지고 와서 소리 지르고 그러니까 진짜 옷 갖고 온 사람 도망가잖아요."

변호사 비용만도 1억 5천만 원. 결국, 세탁소 세 곳 가운데, 일찌감치 한 곳을 처분해야 했습니다.

피어슨 판사가 바지를 맡기면서 650억 원 대 소송이 시작된 곳입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정진남 씨는 이곳 세탁소 역시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만 했습니다.

소송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 한인 소상인에게도 시빗거리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인터뷰> 애완동물 가게 주인 : "한국보다는 적은 일에 손님들이 와가지고 위협하죠. 소송하겠다고..."

<인터뷰> 생선가게 주인 : "소리 지르는 사람은요. 가끔 가다 와서 자기가 먹어 배탈이 났다는둥..."

지난 6월, 재판부는 정 씨 부부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고, 피어슨 판사에게 정 씨의 변호사 비용을 내라고 판결했습니다.

<인터뷰> 매닝 변호사 : "넌센스입니다. 미국 소송제도를 남용한 아주 엉망의 최악의 경우입니다."

(언젠가는, 미국의 소송제도에 대해 소송을 거는 날이 올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이번 사건을 통해 퍼졌습니다.

<인터뷰> 대런 맥키니(부당법률행위 개혁협회) : "지난 30년간 부당한 법률 행위 최악의 5위안에 들어간다. 미친짓이다."

피어슨 판사는 연방판사 재임용에서까지 탈락한 뒤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마저 기각됐습니다.

<인터뷰> 송수연(아내) : "여기서는 걸면 소송 한번 걸면 가게 다 날라가요. 제가 그랬어요. 이거 다 가져가라. 피어슨 보고 나 더이상 시달리기 싫으니까. 이 가게 네가 가지든가 어떻게 하든가."

항소심 판결까지 앞으로 2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약 없는 싸움에, 정 씨 부부는 오늘도 행복 세탁소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불꽃을 끈질기게 되살리고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임세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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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후 오늘] 행복 세탁소의 오늘
    • 입력 2007-11-06 20:17:52
    뉴스타임
<앵커 멘트> 뉴스 후 오늘, 이번 시간엔 500억 원대의, 황당한 바지 소송에 시달렸던 세탁소 주인을 만나봅니다. 워싱턴 현지에서, 임세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직 새벽달도 지지 않은 어슴 푸레한 새벽녘. 정진남 씨의 행복세탁소는 오늘도 새벽 6시에 맞춰 손님 맞을 채비를 시작합니다. <인터뷰> 정진남 : "항상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지하철 타고 와서들 맡기고 가고..." 옷더미에 파묻히고, 미싱질 서비스에 늙은 부부의 얼굴에, 더 이상 어두운 그림자는 없습니다. 2005년 5월, 늘 들르던 피어슨 판사가 바지를 맡기면서, 이들 부부의 삶은 소용돌이칩니다. 실수로 판사의 바지를 제때 찾아주지 못한 게 화근이 됐습니다. <인터뷰> 정진남 : "딜리버리가 딴데로 가지고 갔어요. 1주일 걸렸어요. 갖다 줬더니, 자기 게 아니라고..." 피어슨 판사는 곳곳이 헤지고, 닳은 이 바지값으로 처음엔 1,150 달러, 100만 원 정도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변상 요구액은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소비자보호법 위반 1500달러 곱하기, 위반항목 12개 곱하기, 피해기간 1200일 곱하기, 정진남 씨, 부인, 아들 까지 곱하기 3. 여기에 손해배상 200만 달러까지. 청구금액 6,700만 달러는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1992년 미국에 정착해 쉴 새 없이 일만 하고 살아온 정 씨 부부에게 닥친 최대의 시련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진남 : "처남이 마중나왔거든요. 미국은 누가 마중나오느냐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는데, 처남이 세탁소했어요." 사장님 소리 듣던 한국 생활을 포기하고 ( 쪼그려 앉아서 샌드위치 먹고 ) 맨주먹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세탁소 3개를 이룰 만큼 가슴 벅찬 성공 뒤에 찾아온 시련이기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인터뷰> 송수연(아내) : "내가 제일 먼저 당했으니까...터무니 없이 당하니까..." 2년 간의 지루한 법정 공방. 피어슨 판사는, 정 씨 부부의 트집을 잡기 위해 동네에 수 천 장의 전단지까지 뿌렸습니다. <인터뷰> 정진남 : "애 무지 먹었어요. 안 가지고 와서 소리 지르고 그러니까 진짜 옷 갖고 온 사람 도망가잖아요." 변호사 비용만도 1억 5천만 원. 결국, 세탁소 세 곳 가운데, 일찌감치 한 곳을 처분해야 했습니다. 피어슨 판사가 바지를 맡기면서 650억 원 대 소송이 시작된 곳입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정진남 씨는 이곳 세탁소 역시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만 했습니다. 소송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 한인 소상인에게도 시빗거리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인터뷰> 애완동물 가게 주인 : "한국보다는 적은 일에 손님들이 와가지고 위협하죠. 소송하겠다고..." <인터뷰> 생선가게 주인 : "소리 지르는 사람은요. 가끔 가다 와서 자기가 먹어 배탈이 났다는둥..." 지난 6월, 재판부는 정 씨 부부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고, 피어슨 판사에게 정 씨의 변호사 비용을 내라고 판결했습니다. <인터뷰> 매닝 변호사 : "넌센스입니다. 미국 소송제도를 남용한 아주 엉망의 최악의 경우입니다." (언젠가는, 미국의 소송제도에 대해 소송을 거는 날이 올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이번 사건을 통해 퍼졌습니다. <인터뷰> 대런 맥키니(부당법률행위 개혁협회) : "지난 30년간 부당한 법률 행위 최악의 5위안에 들어간다. 미친짓이다." 피어슨 판사는 연방판사 재임용에서까지 탈락한 뒤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마저 기각됐습니다. <인터뷰> 송수연(아내) : "여기서는 걸면 소송 한번 걸면 가게 다 날라가요. 제가 그랬어요. 이거 다 가져가라. 피어슨 보고 나 더이상 시달리기 싫으니까. 이 가게 네가 가지든가 어떻게 하든가." 항소심 판결까지 앞으로 2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약 없는 싸움에, 정 씨 부부는 오늘도 행복 세탁소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불꽃을 끈질기게 되살리고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임세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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