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1980년대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자유화 투쟁 진원지였던 폴란드의 그단스크 조선소를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이 역사의 현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유럽연합, EU가 회원국이 된 폴란드에 대해서 그단스크 조선소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과거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그단스크 조선소의 자유 노조, 솔리데러티는 이제 서구에서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상황은 자유 노조에 불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존폐 위기에 선 그단스크 조선소를 이근우 순회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요와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 이미 14세기 유럽 자유 무역 도시의 결성체인 한자 동맹에 가입한 그단스크, 발트해에 접해 있으면서 동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그단스크는 강과 해협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습니다. 지리적 입지가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의 명맥을 이어오게 했습니다.
<인터뷰> 니코스(그단스크 고등학생) : "자유 무역 도시로서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간혹 그단스크가 폴란드 도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유럽인들도 있지만 이 곳은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재가 많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단스크의 현대사에는 처절한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닻과 십자가...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 연대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백발의 노신사와 중년이 된 아들 부부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인터뷰> 피오트프브스키(그단스크 시민) : "아직도 저는 기억합니다. 당시 바웬사가 시민들에게 이 자리에 나올 때 돌을 하나씩 갖고 와 달라, 그래서 자유 민주 항쟁의 탑을 쌓아 나가자고 호소했죠."
영하의 날씨에 그단스크에 첫 눈이 내리던 날, 거대한 기중기의 굉음과 강렬한 용접 불꽃의 열기 앞에서는 때 이른 추위도 맥을 못 춥니다. 한 해 8만 톤 이상의 철강을 절단하고 조립하는 그단스크 조선소는 지금까지 천 척 이상의 초대형 원양 선박을 만들어 왔습니다. 레닌 조선소로 명명됐듯이 구소련의 철저한 계획 경제에 따라 동유럽 공산권에서는 최대의 조선소로 육성됐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거센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있습니다.
지금은 EU의 회원국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추구하고 있는 폴란드. 고속 성장을 뒷받침해주는 재정적 버팀목은 EU로의 예산 지원입니다. 그러나 EU는 혜택을 주는 만큼 회원국들의 자구 노력 또한 요구합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 조정을 단행하라는 것입니다. EU로부터 방만하다는 진단을 받은 그단스크 조선소도 그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역사 발전의 능동적 주체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전위대에서 이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왜소한 객체로 남게 된 그단스크, 지금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에게는 과거의 자부심에 가득 찼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EU의 요구 사항은 생산 시설의 3분의 2를 축소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노동자의 최소한 3분의 1 이상인 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EU는 폴란드 정부에 대해 그단스크 조선소에 지급해 온 보조금 가운데 7천만 달러도 회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단스크 측은 선진 서유럽 국가들의 잣대에 맞춘 EU의 요구는 부당하다면서 결국 문을 닫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합니다.
<인터뷰> 카롤 구지키예비츠(그단스크 조선소 노조 부위원장) : "EU의 요구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단스크 조선소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를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도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EU의 일방적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저임금에 시달려온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단스크를 떠나고 있습니다. 생산 현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인터뷰> 바투세프스키(조선소 노동자) :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의 신념이 무엇이라고 소신껏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뷰> 유제크 구자바(조선소 노동자) : "지금도 우린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협상이 어떻게 이뤄져도 우리는 계속 이 곳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일 뿐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를 운명에 처한 것이 지금 그단스크 조선소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험난한 역사를 뚫고 온 그 생명력 또한 지나칠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지난 8월 그단스크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작업복을 입은 채로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 향했습니다. 모스크바도 꺾지 못한 그단스크를 브뤼셀이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이들의 구호였습니다. 서슬 퍼런 공산권 시절에도 부당한 결정에 저항해 왔는데 비슷한 위협이 이제는 브뤼셀로부터 가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조만이 아니라 그단스크 조선소의 경영진도 EU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입니다.
<인터뷰> 안제히르 야보르스키(그단스크 조선소 대표이사) : "EU는 지시만 하려하고 지나치게 관료적입니다. 우리 조선소를 다룰 때도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다룹니다. 우리 경영진은 EU에 의지하기 보다는 생산량을 포함한 현재 틀을 유지하면서 자체적으로 개선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단스크 조선소는 기댈 곳을 점차 잃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 치러진 폴란드 총선, 총리가 된 시민강령당의 투스크는 친 EU 성향의 인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단스크에 손을 댈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껴안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단스크 조선소 출신인 바웬사 전 대통령도 EU와의 대립은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바웬사(前 폴란드 대통령) : "EU 회원국이 된 후 폴란드는 더 이상 낙후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실업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는 실업률도 안정돼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노동자의 편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바웬사(前 폴란드 대통령) : "EU의 그단스크에 대한 구조 조정 압력은 과거 사회주의 개념이 아니라 현재 패러다임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받던 선박 수주는 자연히 감소됐고 이제는 EU 회원국으로서 다른 각도에서 분석돼야 할 것입니다."
EU는 그단스크 조선소가 폐쇄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내년 초까지는 EU 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 동유럽 자유화를 이끌어 온 폴란드의 영광 그단스크 조선소, 새로운 시대의 격랑 속에 그 존재 가치마저 희석될 지, 아니면 또 다른 투쟁으로 나아갈지 그단스크는 지금 생존의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1980년대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자유화 투쟁 진원지였던 폴란드의 그단스크 조선소를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이 역사의 현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유럽연합, EU가 회원국이 된 폴란드에 대해서 그단스크 조선소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과거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그단스크 조선소의 자유 노조, 솔리데러티는 이제 서구에서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상황은 자유 노조에 불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존폐 위기에 선 그단스크 조선소를 이근우 순회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요와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 이미 14세기 유럽 자유 무역 도시의 결성체인 한자 동맹에 가입한 그단스크, 발트해에 접해 있으면서 동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그단스크는 강과 해협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습니다. 지리적 입지가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의 명맥을 이어오게 했습니다.
<인터뷰> 니코스(그단스크 고등학생) : "자유 무역 도시로서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간혹 그단스크가 폴란드 도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유럽인들도 있지만 이 곳은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재가 많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단스크의 현대사에는 처절한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닻과 십자가...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 연대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백발의 노신사와 중년이 된 아들 부부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인터뷰> 피오트프브스키(그단스크 시민) : "아직도 저는 기억합니다. 당시 바웬사가 시민들에게 이 자리에 나올 때 돌을 하나씩 갖고 와 달라, 그래서 자유 민주 항쟁의 탑을 쌓아 나가자고 호소했죠."
영하의 날씨에 그단스크에 첫 눈이 내리던 날, 거대한 기중기의 굉음과 강렬한 용접 불꽃의 열기 앞에서는 때 이른 추위도 맥을 못 춥니다. 한 해 8만 톤 이상의 철강을 절단하고 조립하는 그단스크 조선소는 지금까지 천 척 이상의 초대형 원양 선박을 만들어 왔습니다. 레닌 조선소로 명명됐듯이 구소련의 철저한 계획 경제에 따라 동유럽 공산권에서는 최대의 조선소로 육성됐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거센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있습니다.
지금은 EU의 회원국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추구하고 있는 폴란드. 고속 성장을 뒷받침해주는 재정적 버팀목은 EU로의 예산 지원입니다. 그러나 EU는 혜택을 주는 만큼 회원국들의 자구 노력 또한 요구합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 조정을 단행하라는 것입니다. EU로부터 방만하다는 진단을 받은 그단스크 조선소도 그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역사 발전의 능동적 주체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전위대에서 이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왜소한 객체로 남게 된 그단스크, 지금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에게는 과거의 자부심에 가득 찼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EU의 요구 사항은 생산 시설의 3분의 2를 축소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노동자의 최소한 3분의 1 이상인 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EU는 폴란드 정부에 대해 그단스크 조선소에 지급해 온 보조금 가운데 7천만 달러도 회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단스크 측은 선진 서유럽 국가들의 잣대에 맞춘 EU의 요구는 부당하다면서 결국 문을 닫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합니다.
<인터뷰> 카롤 구지키예비츠(그단스크 조선소 노조 부위원장) : "EU의 요구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단스크 조선소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를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도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EU의 일방적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저임금에 시달려온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단스크를 떠나고 있습니다. 생산 현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인터뷰> 바투세프스키(조선소 노동자) :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의 신념이 무엇이라고 소신껏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뷰> 유제크 구자바(조선소 노동자) : "지금도 우린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협상이 어떻게 이뤄져도 우리는 계속 이 곳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일 뿐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를 운명에 처한 것이 지금 그단스크 조선소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험난한 역사를 뚫고 온 그 생명력 또한 지나칠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지난 8월 그단스크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작업복을 입은 채로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 향했습니다. 모스크바도 꺾지 못한 그단스크를 브뤼셀이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이들의 구호였습니다. 서슬 퍼런 공산권 시절에도 부당한 결정에 저항해 왔는데 비슷한 위협이 이제는 브뤼셀로부터 가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조만이 아니라 그단스크 조선소의 경영진도 EU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입니다.
<인터뷰> 안제히르 야보르스키(그단스크 조선소 대표이사) : "EU는 지시만 하려하고 지나치게 관료적입니다. 우리 조선소를 다룰 때도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다룹니다. 우리 경영진은 EU에 의지하기 보다는 생산량을 포함한 현재 틀을 유지하면서 자체적으로 개선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단스크 조선소는 기댈 곳을 점차 잃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 치러진 폴란드 총선, 총리가 된 시민강령당의 투스크는 친 EU 성향의 인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단스크에 손을 댈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껴안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단스크 조선소 출신인 바웬사 전 대통령도 EU와의 대립은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바웬사(前 폴란드 대통령) : "EU 회원국이 된 후 폴란드는 더 이상 낙후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실업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는 실업률도 안정돼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노동자의 편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바웬사(前 폴란드 대통령) : "EU의 그단스크에 대한 구조 조정 압력은 과거 사회주의 개념이 아니라 현재 패러다임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받던 선박 수주는 자연히 감소됐고 이제는 EU 회원국으로서 다른 각도에서 분석돼야 할 것입니다."
EU는 그단스크 조선소가 폐쇄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내년 초까지는 EU 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 동유럽 자유화를 이끌어 온 폴란드의 영광 그단스크 조선소, 새로운 시대의 격랑 속에 그 존재 가치마저 희석될 지, 아니면 또 다른 투쟁으로 나아갈지 그단스크는 지금 생존의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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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존폐 기로에 선 ‘그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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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7-12-02 08:14:27
<앵커 멘트>
1980년대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자유화 투쟁 진원지였던 폴란드의 그단스크 조선소를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이 역사의 현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유럽연합, EU가 회원국이 된 폴란드에 대해서 그단스크 조선소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과거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그단스크 조선소의 자유 노조, 솔리데러티는 이제 서구에서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상황은 자유 노조에 불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존폐 위기에 선 그단스크 조선소를 이근우 순회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요와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 이미 14세기 유럽 자유 무역 도시의 결성체인 한자 동맹에 가입한 그단스크, 발트해에 접해 있으면서 동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그단스크는 강과 해협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습니다. 지리적 입지가 유서 깊은 항구 도시의 명맥을 이어오게 했습니다.
<인터뷰> 니코스(그단스크 고등학생) : "자유 무역 도시로서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간혹 그단스크가 폴란드 도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유럽인들도 있지만 이 곳은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재가 많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단스크의 현대사에는 처절한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닻과 십자가...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 연대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백발의 노신사와 중년이 된 아들 부부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인터뷰> 피오트프브스키(그단스크 시민) : "아직도 저는 기억합니다. 당시 바웬사가 시민들에게 이 자리에 나올 때 돌을 하나씩 갖고 와 달라, 그래서 자유 민주 항쟁의 탑을 쌓아 나가자고 호소했죠."
영하의 날씨에 그단스크에 첫 눈이 내리던 날, 거대한 기중기의 굉음과 강렬한 용접 불꽃의 열기 앞에서는 때 이른 추위도 맥을 못 춥니다. 한 해 8만 톤 이상의 철강을 절단하고 조립하는 그단스크 조선소는 지금까지 천 척 이상의 초대형 원양 선박을 만들어 왔습니다. 레닌 조선소로 명명됐듯이 구소련의 철저한 계획 경제에 따라 동유럽 공산권에서는 최대의 조선소로 육성됐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거센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있습니다.
지금은 EU의 회원국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추구하고 있는 폴란드. 고속 성장을 뒷받침해주는 재정적 버팀목은 EU로의 예산 지원입니다. 그러나 EU는 혜택을 주는 만큼 회원국들의 자구 노력 또한 요구합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 조정을 단행하라는 것입니다. EU로부터 방만하다는 진단을 받은 그단스크 조선소도 그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역사 발전의 능동적 주체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전위대에서 이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왜소한 객체로 남게 된 그단스크, 지금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에게는 과거의 자부심에 가득 찼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EU의 요구 사항은 생산 시설의 3분의 2를 축소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노동자의 최소한 3분의 1 이상인 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EU는 폴란드 정부에 대해 그단스크 조선소에 지급해 온 보조금 가운데 7천만 달러도 회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단스크 측은 선진 서유럽 국가들의 잣대에 맞춘 EU의 요구는 부당하다면서 결국 문을 닫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합니다.
<인터뷰> 카롤 구지키예비츠(그단스크 조선소 노조 부위원장) : "EU의 요구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단스크 조선소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를 생각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도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EU의 일방적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저임금에 시달려온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단스크를 떠나고 있습니다. 생산 현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인터뷰> 바투세프스키(조선소 노동자) :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의 신념이 무엇이라고 소신껏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뷰> 유제크 구자바(조선소 노동자) : "지금도 우린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협상이 어떻게 이뤄져도 우리는 계속 이 곳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일 뿐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를 운명에 처한 것이 지금 그단스크 조선소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험난한 역사를 뚫고 온 그 생명력 또한 지나칠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지난 8월 그단스크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작업복을 입은 채로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 향했습니다. 모스크바도 꺾지 못한 그단스크를 브뤼셀이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이들의 구호였습니다. 서슬 퍼런 공산권 시절에도 부당한 결정에 저항해 왔는데 비슷한 위협이 이제는 브뤼셀로부터 가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조만이 아니라 그단스크 조선소의 경영진도 EU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입니다.
<인터뷰> 안제히르 야보르스키(그단스크 조선소 대표이사) : "EU는 지시만 하려하고 지나치게 관료적입니다. 우리 조선소를 다룰 때도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다룹니다. 우리 경영진은 EU에 의지하기 보다는 생산량을 포함한 현재 틀을 유지하면서 자체적으로 개선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단스크 조선소는 기댈 곳을 점차 잃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 치러진 폴란드 총선, 총리가 된 시민강령당의 투스크는 친 EU 성향의 인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단스크에 손을 댈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껴안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단스크 조선소 출신인 바웬사 전 대통령도 EU와의 대립은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바웬사(前 폴란드 대통령) : "EU 회원국이 된 후 폴란드는 더 이상 낙후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실업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는 실업률도 안정돼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노동자의 편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바웬사(前 폴란드 대통령) : "EU의 그단스크에 대한 구조 조정 압력은 과거 사회주의 개념이 아니라 현재 패러다임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받던 선박 수주는 자연히 감소됐고 이제는 EU 회원국으로서 다른 각도에서 분석돼야 할 것입니다."
EU는 그단스크 조선소가 폐쇄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내년 초까지는 EU 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 동유럽 자유화를 이끌어 온 폴란드의 영광 그단스크 조선소, 새로운 시대의 격랑 속에 그 존재 가치마저 희석될 지, 아니면 또 다른 투쟁으로 나아갈지 그단스크는 지금 생존의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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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기자 lk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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