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들의 발이 된 청각장애인

입력 2008.04.19 (13:41) 수정 2008.04.1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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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귀가 안 들릴 뿐이지만 그분들(시각장애인)은 앞이 하나도 안 보이니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돕는 것이죠."
청각장애 3급인 안종선(55.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 용역업체 안성산업 대표) 씨는 올해로 4년째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있다.
안 씨는 지난 2005년 불의의 사고로 양쪽 청력을 잃고 작년 말 30여 년간 근무한 도로공사에서 퇴직했다.
"사고가 난 뒤 병원에 갔더니 오른쪽 귀 신경에 이상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 열흘 정도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나머지 한쪽 귀까지 안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보청기 없이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든 처지가 됐다. 보청기를 껴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도 많았다.
어느 날 시름에 빠져 있던 그의 눈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봉사활동을 할 이들을 원한다는 내용의 신문 광고가 들어왔다.
이전에도 직장 동료와 함께 종종 봉사 활동을 다녔던 안 씨는 '이거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후로 한 달에 2-3번씩 시각장애인들의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을 통해 외출을 원하는 시각장애인의 위치와 원하는 시간대 등을 연락받아요. 그러면 그 시각에 맞춰 시각장애인을 데리러 가서 목적지까지 차로 데려다 주는 거죠."
볼일을 본 장애인이 귀가를 원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할 때도 어김없이 안 씨는 이들을 안전하게 이동시켜 준다.
한번은 시각장애인을 데리러 가는데 초행길인데다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고 보청기를 꼈어도 전화로는 설명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결국 1시간 넘게 헤매는 바람에 기다리고 있던 시각장애인에게 미안해서 몸둘 바를 몰랐던 일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도서관 한 관계자는 "급하게 도움을 요청할 때도 근무 도중에 회사가 있는 진안에서 한달음에 달려올 정도로 지극정성을 기울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 씨의 봉사 활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작년부터 직원 15명과 함께 진안의 한 요양원에 매달 1번씩 들러 생일 잔치를 열어주고 목욕 봉사를 하고 있다. 남 몰래 매년 인근 동사무소를 찾아가 쌀 4 가마니씩 놓고 온 것도 벌써 수년째다.
이런 안 씨에게 가장 큰 힘이 돼 준 것은 항상 그를 격려해 주는 부인 설경순(50) 씨와 자녀들.
사무실에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딸 연수(24) 씨는 아버지가 요양원에 찾아가 봉사를 할 때마다 동행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낸다.
서울에서 연기자 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 해광(22) 씨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귀를 다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입대했는데 훈련소를 가면서 '아버지보다 힘든 사람도 많으니 용기를 내세요. 제대하면 아버지의 힘이 되어드릴께요'라고 말하더군요. 기특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났어요"
"봉사 활동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진다"는 안 씨는 "여유가 생기면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더 어려운 사람도 돕고 싶다. 나중에 요양원을 차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 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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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각 장애인들의 발이 된 청각장애인
    • 입력 2008-04-19 08:09:40
    • 수정2008-04-19 13:42:40
    연합뉴스
"저는 귀가 안 들릴 뿐이지만 그분들(시각장애인)은 앞이 하나도 안 보이니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러니까 그냥 돕는 것이죠." 청각장애 3급인 안종선(55.한국도로공사 안전순찰 용역업체 안성산업 대표) 씨는 올해로 4년째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있다. 안 씨는 지난 2005년 불의의 사고로 양쪽 청력을 잃고 작년 말 30여 년간 근무한 도로공사에서 퇴직했다. "사고가 난 뒤 병원에 갔더니 오른쪽 귀 신경에 이상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 열흘 정도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나머지 한쪽 귀까지 안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보청기 없이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든 처지가 됐다. 보청기를 껴도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도 많았다. 어느 날 시름에 빠져 있던 그의 눈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봉사활동을 할 이들을 원한다는 내용의 신문 광고가 들어왔다. 이전에도 직장 동료와 함께 종종 봉사 활동을 다녔던 안 씨는 '이거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후로 한 달에 2-3번씩 시각장애인들의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을 통해 외출을 원하는 시각장애인의 위치와 원하는 시간대 등을 연락받아요. 그러면 그 시각에 맞춰 시각장애인을 데리러 가서 목적지까지 차로 데려다 주는 거죠." 볼일을 본 장애인이 귀가를 원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할 때도 어김없이 안 씨는 이들을 안전하게 이동시켜 준다. 한번은 시각장애인을 데리러 가는데 초행길인데다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고 보청기를 꼈어도 전화로는 설명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결국 1시간 넘게 헤매는 바람에 기다리고 있던 시각장애인에게 미안해서 몸둘 바를 몰랐던 일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도서관 한 관계자는 "급하게 도움을 요청할 때도 근무 도중에 회사가 있는 진안에서 한달음에 달려올 정도로 지극정성을 기울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 씨의 봉사 활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작년부터 직원 15명과 함께 진안의 한 요양원에 매달 1번씩 들러 생일 잔치를 열어주고 목욕 봉사를 하고 있다. 남 몰래 매년 인근 동사무소를 찾아가 쌀 4 가마니씩 놓고 온 것도 벌써 수년째다. 이런 안 씨에게 가장 큰 힘이 돼 준 것은 항상 그를 격려해 주는 부인 설경순(50) 씨와 자녀들. 사무실에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딸 연수(24) 씨는 아버지가 요양원에 찾아가 봉사를 할 때마다 동행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낸다. 서울에서 연기자 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 해광(22) 씨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귀를 다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입대했는데 훈련소를 가면서 '아버지보다 힘든 사람도 많으니 용기를 내세요. 제대하면 아버지의 힘이 되어드릴께요'라고 말하더군요. 기특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났어요" "봉사 활동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진다"는 안 씨는 "여유가 생기면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더 어려운 사람도 돕고 싶다. 나중에 요양원을 차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 꿈"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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