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섬마을 사람들 ‘느리게 사는 여유’

입력 2008.07.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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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빨리빨리를 외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느리게 살기란 좀처럼 쉽지만은 않은데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슬로우 시티로 선정된 남해안의 작은섬, 증도 사람들의 삶을 조성훈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한반도 서남해안 끝자락에 자리한 인구 2천여 명의 조그만 섬 마을, 증도.

한 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 드넓은 소금밭이 펼쳐집니다.

햇볕의 양과 바람의 세기를 살피는 소금 농부에게 기다림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입니다.

<인터뷰> 박형진(소금 장인) : "소금은 사람의 노력과 함께 하늘에서 햇볕과 바람을 주어야 만들어지는 기다림의 식품입니다."

바닷물을 가둔지 꼭 25일, 바람과 햇살, 그리고 사람의 노동이 함께 빚어낸 잘 익은 소금이 새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한두시간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일반 정제염과는 달리, 오랜 기다림 끝에 얻어진 소금은 그만큼 오래되고 깊은 옛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염전에서 밴 느림의 철학은 섬 마을 사람들의 삶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두 해전부터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는 불편하고 더디지만, 서두르지 않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이기숙(농부) : "빨리한다고 공산물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그대로 해서 서서히 농사가 되고 곡물이 커야, 완전히 맛도 있고 그러는 것이지..."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느림의 습성은 때로는 시원찮은 결과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삶의 여유로까지 이어집니다.

<인터뷰> 이병윤(어부) : "엄청 잡아야 된다 이런 마음은 절대 없어요, 너무 바쁘게만 살지 맙시다. 자 우린 고기잡으러 갑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또 옛 것을 되살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 섬 마을 사람들의 느림의 삶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습니다.

지난해 말,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국제 슬로우 시티 협회로부터 느리게 사는 마을, 슬로우 시티로 선정됐습니다.

빼어난 절경이나 별다른 관광명소도 없고, 많은 게 불편하기만 한 조그만 섬마을을 찾는 도시인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장지희·박우경(관광객) : "도시생활하면 아무래도 옆을 못보잖아요, 앞만보고 바쁘게 생활하다 이곳에서 옆도 처다보고 또 천천히 걷다보면 좀 여유로워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느린 것은 불편하고, 뒤처지는 것이란 생각속에, 빠른 것만이 성공의 미덕이라 여기며, 속도의 경쟁속으로 내몰린 사람들...

섬 마을의 느리고 더딘 시간은 불편함이 아닌 기다림을,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삶과 행복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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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와 사람] 섬마을 사람들 ‘느리게 사는 여유’
    • 입력 2008-07-19 21:15:33
    뉴스 9
<앵커 멘트> 빨리빨리를 외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느리게 살기란 좀처럼 쉽지만은 않은데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슬로우 시티로 선정된 남해안의 작은섬, 증도 사람들의 삶을 조성훈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한반도 서남해안 끝자락에 자리한 인구 2천여 명의 조그만 섬 마을, 증도. 한 낮의 뜨거운 햇살 속에 드넓은 소금밭이 펼쳐집니다. 햇볕의 양과 바람의 세기를 살피는 소금 농부에게 기다림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입니다. <인터뷰> 박형진(소금 장인) : "소금은 사람의 노력과 함께 하늘에서 햇볕과 바람을 주어야 만들어지는 기다림의 식품입니다." 바닷물을 가둔지 꼭 25일, 바람과 햇살, 그리고 사람의 노동이 함께 빚어낸 잘 익은 소금이 새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한두시간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일반 정제염과는 달리, 오랜 기다림 끝에 얻어진 소금은 그만큼 오래되고 깊은 옛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염전에서 밴 느림의 철학은 섬 마을 사람들의 삶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두 해전부터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는 불편하고 더디지만, 서두르지 않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뷰> 이기숙(농부) : "빨리한다고 공산물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그대로 해서 서서히 농사가 되고 곡물이 커야, 완전히 맛도 있고 그러는 것이지..."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느림의 습성은 때로는 시원찮은 결과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삶의 여유로까지 이어집니다. <인터뷰> 이병윤(어부) : "엄청 잡아야 된다 이런 마음은 절대 없어요, 너무 바쁘게만 살지 맙시다. 자 우린 고기잡으러 갑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또 옛 것을 되살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 섬 마을 사람들의 느림의 삶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습니다. 지난해 말,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국제 슬로우 시티 협회로부터 느리게 사는 마을, 슬로우 시티로 선정됐습니다. 빼어난 절경이나 별다른 관광명소도 없고, 많은 게 불편하기만 한 조그만 섬마을을 찾는 도시인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장지희·박우경(관광객) : "도시생활하면 아무래도 옆을 못보잖아요, 앞만보고 바쁘게 생활하다 이곳에서 옆도 처다보고 또 천천히 걷다보면 좀 여유로워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느린 것은 불편하고, 뒤처지는 것이란 생각속에, 빠른 것만이 성공의 미덕이라 여기며, 속도의 경쟁속으로 내몰린 사람들... 섬 마을의 느리고 더딘 시간은 불편함이 아닌 기다림을,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삶과 행복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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