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부른 ‘판정불신’…태권도 변해야 산다

입력 2008.08.23 (22:34) 수정 2008.08.2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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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간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경기가 23일 모두 끝났다.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출전 선수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며 종합대회 '효자종목' 구실을 톡톡히 했다.
여자 67㎏급의 황경선(한국체대)은 부상을 당하고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투혼을 발휘해 세계 정상에 오르는 감동도 전해줬다.
하지만 판정에 대한 불신과 재미없는 경기 등 숙제는 여전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지난 21일 태권도 경기장을 찾아 한 시간여 동안 4경기를 지켜본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아주 박력 있고 깨끗한 경기였다'고 말했다며 만족하는 모습이었지만 일반인의 시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태권도 경기 마지막 날은 23일에는 경기 결과가 뒤늦게 번복되고, 선수가 주심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추태까지 이어졌다.
태권도는 3년 전 싱가포르 IOC 총회에서 가까스로 2012년 런던대회 종목으로 잔류했다.
하지만 2016년 올림픽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내년 10월 코펜하겐 IOC 총회에서 다시 심판받아야 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이번 사태로 태권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심해질 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 폭행을 부른 판정 불신
23일 여자 67㎏이상급 8강 천중(중국)과 경기에서 0-1로 져 탈락했던 새라 스티븐슨(영국)이 비디오 판정 끝에 뒤늦게 2-1로 이긴 것으로 결과가 뒤바뀌어 4강에 오르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장에는 개최국 중국 관중의 야유가 쏟아졌다.
남자 80㎏이상급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쿠바)가 돌려차기로 주심을 가격했다.
아만 칠마노프(카자흐스탄)에 2-3으로 뒤져 있던 마토스는 2라운드 경기 도중 발을 다쳐 응급 치료를 받게 됐다.
경기 도중 선수가 다치면 1분의 치료 시간을 준다. 다시 치료 시간을 요구하면 1분을 더 준다. 아무 요청이 없으면 경기 진행이 어려운 것으로 보고 기권으로 처리한다.
마토스는 1분을 다 쓴 뒤 아무 요청이 없었고, 이에 주심 샤키르 첼바트(스웨덴)는 마토스의 기권패를 선언했다. 마토스는 이에 격분해 코치와 함께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했고, 결과가 바뀌지 않자 주심에게 폭력을 가했다. 땅에 떨어진 심판의 권위와 극에 달한 불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WTF는 끊이질 않는 판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전자호구 시스템의 도입을 추진해왔다.
애초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를 거쳐 베이징올림픽에서 정식 도입하려 했지만 준비가 부족해 이를 미뤘다. 대신 심판의 자질 향상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 여름 전주에서 훈련캠프를 열어 57개국에서 참석한 국제심판 187명 중 54명의 심판을 1차 선발했고,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 말까지 개최된 올림픽 세계예선과 대륙선발전을 거쳐 29명을 확정했다.
지난 달에는 올림픽 심판들을 대상으로 보수 교육까지 실시했다.
하지만 불신은 여전했다. 특히 판정에 대한 외국 선수단과 언론의 시각은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AFP통신은 21일 태권도 경기가 끝난 뒤 '태권도가 불만의 폭풍을 일으켰다'는 제목으로 판정 시비를 전했다.
여자 49㎏급 첫 판에서 패한 캐나다 선수는 "모든 이들이 불공정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승리를) 빼앗겼다"고 억울함을 호소했고, 역시 남자 58㎏급 첫 경기에서 진 케냐 선수는 "판정은 나에게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 공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단장 허브 페레스는 22일 남자 80㎏급에서 동메달을 딴 2000.2004년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자 스티븐 로페스가 8강에서 마우로 사르미엔토(이탈리아)에게 1-2로 패한 뒤 소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놓고 '야후 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이것이 진정한 태권도의 모습이라면 아마도 태권도는 올림픽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또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참가국 코치세미나에서 WTF가 '절대 소청하지 않겠다'는 결의문에 강압적으로 사인하게 했다"면서 "이번에 소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 WTF 고위 관계자가 내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라. 태권도의 미래를 생각하라'고 말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WTF는 이에 대해 "상식 밖의 일"이라고 일축했다.
◇ 재미없는 경기
WTF는 공격적인 경기 운영과 고난도 기술을 유도하기 위해 얼굴(2점)과 몸통 공격(1점)에 차등 점수를 주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려 왔다. 하지만 아직 일반 팬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고 있다.
기량 평준화의 영향도 있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 80㎏이상급에서 문대성이 보여줬던 시원한 KO승은 드물었고, 대부분 점수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경고만 받다가 마이너스 점수로 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네티즌은 공격보다는 받아치기만 하려는 소극적 경기 운영으로 흥미가 떨어진다며 태권도가 마치 제자리 뛰기만 하는 '스카이콩콩' 같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점수 판정도 태권도가 재미없다는 인식에 한 몫 했다.
이번 공격이 과연 성공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기술로 이뤄졌는지 등을 일반인들은 쉽게 알 수 없다.
승부처가 된 결정적 상황에서도 어떻게 득점이 이뤄졌는지 모르다 보니 감동과 기억이 오래 남을 리 없다. 방송 중계 중 전문가인 해설가가 "분명히 공격을 성공했는데요"라고 말하지만 점수판은 그대로인 경우도 빈번하니 일반인들이 득점 상황을 알아 채기는 무리일 수 밖에 없다.
부심 4명 중 3명 이상이 득점으로 인정해야만 점수가 올라간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저 점수판의 숫자가 변해야 득점 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한태권도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이번 대회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동안 '재미없는 태권도'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퇴출에 대한 걱정과 함께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이끌기 위한 룰 개정 등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는 태권도인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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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행 부른 ‘판정불신’…태권도 변해야 산다
    • 입력 2008-08-23 22:34:06
    • 수정2008-08-24 00:13:25
    연합뉴스
나흘 간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경기가 23일 모두 끝났다.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출전 선수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며 종합대회 '효자종목' 구실을 톡톡히 했다. 여자 67㎏급의 황경선(한국체대)은 부상을 당하고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투혼을 발휘해 세계 정상에 오르는 감동도 전해줬다. 하지만 판정에 대한 불신과 재미없는 경기 등 숙제는 여전했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지난 21일 태권도 경기장을 찾아 한 시간여 동안 4경기를 지켜본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아주 박력 있고 깨끗한 경기였다'고 말했다며 만족하는 모습이었지만 일반인의 시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태권도 경기 마지막 날은 23일에는 경기 결과가 뒤늦게 번복되고, 선수가 주심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추태까지 이어졌다. 태권도는 3년 전 싱가포르 IOC 총회에서 가까스로 2012년 런던대회 종목으로 잔류했다. 하지만 2016년 올림픽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내년 10월 코펜하겐 IOC 총회에서 다시 심판받아야 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이번 사태로 태권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심해질 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 폭행을 부른 판정 불신 23일 여자 67㎏이상급 8강 천중(중국)과 경기에서 0-1로 져 탈락했던 새라 스티븐슨(영국)이 비디오 판정 끝에 뒤늦게 2-1로 이긴 것으로 결과가 뒤바뀌어 4강에 오르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장에는 개최국 중국 관중의 야유가 쏟아졌다. 남자 80㎏이상급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쿠바)가 돌려차기로 주심을 가격했다. 아만 칠마노프(카자흐스탄)에 2-3으로 뒤져 있던 마토스는 2라운드 경기 도중 발을 다쳐 응급 치료를 받게 됐다. 경기 도중 선수가 다치면 1분의 치료 시간을 준다. 다시 치료 시간을 요구하면 1분을 더 준다. 아무 요청이 없으면 경기 진행이 어려운 것으로 보고 기권으로 처리한다. 마토스는 1분을 다 쓴 뒤 아무 요청이 없었고, 이에 주심 샤키르 첼바트(스웨덴)는 마토스의 기권패를 선언했다. 마토스는 이에 격분해 코치와 함께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했고, 결과가 바뀌지 않자 주심에게 폭력을 가했다. 땅에 떨어진 심판의 권위와 극에 달한 불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WTF는 끊이질 않는 판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전자호구 시스템의 도입을 추진해왔다. 애초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를 거쳐 베이징올림픽에서 정식 도입하려 했지만 준비가 부족해 이를 미뤘다. 대신 심판의 자질 향상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 여름 전주에서 훈련캠프를 열어 57개국에서 참석한 국제심판 187명 중 54명의 심판을 1차 선발했고,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 말까지 개최된 올림픽 세계예선과 대륙선발전을 거쳐 29명을 확정했다. 지난 달에는 올림픽 심판들을 대상으로 보수 교육까지 실시했다. 하지만 불신은 여전했다. 특히 판정에 대한 외국 선수단과 언론의 시각은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AFP통신은 21일 태권도 경기가 끝난 뒤 '태권도가 불만의 폭풍을 일으켰다'는 제목으로 판정 시비를 전했다. 여자 49㎏급 첫 판에서 패한 캐나다 선수는 "모든 이들이 불공정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승리를) 빼앗겼다"고 억울함을 호소했고, 역시 남자 58㎏급 첫 경기에서 진 케냐 선수는 "판정은 나에게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 공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단장 허브 페레스는 22일 남자 80㎏급에서 동메달을 딴 2000.2004년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자 스티븐 로페스가 8강에서 마우로 사르미엔토(이탈리아)에게 1-2로 패한 뒤 소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놓고 '야후 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이것이 진정한 태권도의 모습이라면 아마도 태권도는 올림픽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또 "지난 6월 부산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참가국 코치세미나에서 WTF가 '절대 소청하지 않겠다'는 결의문에 강압적으로 사인하게 했다"면서 "이번에 소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 WTF 고위 관계자가 내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라. 태권도의 미래를 생각하라'고 말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WTF는 이에 대해 "상식 밖의 일"이라고 일축했다. ◇ 재미없는 경기 WTF는 공격적인 경기 운영과 고난도 기술을 유도하기 위해 얼굴(2점)과 몸통 공격(1점)에 차등 점수를 주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려 왔다. 하지만 아직 일반 팬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고 있다. 기량 평준화의 영향도 있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 남자 80㎏이상급에서 문대성이 보여줬던 시원한 KO승은 드물었고, 대부분 점수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경고만 받다가 마이너스 점수로 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네티즌은 공격보다는 받아치기만 하려는 소극적 경기 운영으로 흥미가 떨어진다며 태권도가 마치 제자리 뛰기만 하는 '스카이콩콩' 같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점수 판정도 태권도가 재미없다는 인식에 한 몫 했다. 이번 공격이 과연 성공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기술로 이뤄졌는지 등을 일반인들은 쉽게 알 수 없다. 승부처가 된 결정적 상황에서도 어떻게 득점이 이뤄졌는지 모르다 보니 감동과 기억이 오래 남을 리 없다. 방송 중계 중 전문가인 해설가가 "분명히 공격을 성공했는데요"라고 말하지만 점수판은 그대로인 경우도 빈번하니 일반인들이 득점 상황을 알아 채기는 무리일 수 밖에 없다. 부심 4명 중 3명 이상이 득점으로 인정해야만 점수가 올라간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저 점수판의 숫자가 변해야 득점 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한태권도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이번 대회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동안 '재미없는 태권도'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퇴출에 대한 걱정과 함께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이끌기 위한 룰 개정 등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는 태권도인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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