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주 “경질 아픔 잊고 도약 준비”

입력 2009.03.07 (08:29) 수정 2009.03.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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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풀렸습니다."
지난 5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황현주 전 감독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춘삼월 따뜻한 햇살에 사르르 봄눈이 녹듯, 한동안 얼어붙었던 황 전 감독과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관계도 겨울의 끝자락이던 2월 말 평온을 되찾았다.
흥국생명은 황 전 감독의 요구대로 계약 만료일인 6월까지 급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흥국생명 산하 세화여고배구단을 맡아달라는 구단의 제안에 "절대 안 간다"던 황 전 감독도 "생각해보겠다"며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황 전 감독은 2009년 새해맞이를 이틀 앞둔 12월30일, 갑작스럽게 '잘렸다'.
승부에만 집착한 나머지 구단의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부상 선수 기용을 둘러싸고 구단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아한 여자 팀에서 '독한 배구'를 했다는 평도 있었다.
정규 시즌에서 팀을 1위로 이끌었던 황 전 감독은 2005-2006년 시즌에 이어 두 번이나 같은 팀으로부터 '팽' 당했다. 웬만한 프로스포츠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난데없이 선장이 바뀐 흥국생명은 1월4일 GS칼텍스와 경기에서 2-3으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3월6일까지 6승8패로 밀렸다. 그 기간 풀세트에서 다섯 번이나 졌고 7승2패로 1위였던 순위는 3위로 주저앉았다.
흥국생명에 쏟아진 팬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지더라도 선수들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던 구단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황 전 감독을 대신해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은 이승현 감독은 '학생 배구'에서 오랫동안 몸담아왔지만 프로는 처음이어서 현 성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배구팬들을 매료시킨 '분홍색 거미'군단은 위력을 잃은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황 전 감독을 찾았다. "지방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여고, 남고 연습장에 가 열심히 배구 공부 중"이라던 그는 마음만은 여전히 흥국생명과 함께 있었다.
간단한 여자부 판세 설명과 함께 예로 든 데이터가 복사기에서 막 뽑아낸 종이처럼 따끈따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팬들 처지에서는 흥국생명이 풀세트 경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고 좋은 게임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마지막 집중력에서 흔들리는 게 보여요. 새로 오신 감독님도 열심히 지도하실 텐데, 반드시 끊어줘야 할 고비를 못 넘다보니 어려운 경기를 하는 것 같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1점마다 유독 흐름이 요동치는 배구의 특성상 분위기를 타야 할 때 반드시 치고 나가야 하나 지금 흥국생명은 그런 면이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구체적인 분석이 이어졌다. "리베로 조상희와 외국인 선수 카리나, 센터 전민정이 부진하다. 김혜진은 제 몫을 해주는데 민정이가 주춤하면서 센터진이 약해졌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이승현 감독 역시 센터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레프트 공격수 카리나를 센터로 돌린 포메이션의 변화를 막 꾀한 터였다. 사람은 다르나 게임을 보는 눈은 비슷했다.
충수염 수술로 시즌 중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카리나가 어려운 볼을 처리해주지 못한 것도 침체를 겪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황 전 감독은 "후반으로 갈수록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큰 것 같다. 이는 흥국생명 뿐 아니라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데라크루즈(GS칼텍스)나 밀라(도로공사)의 점유율이 어떨 때는 40%나 될 때도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에이스라면 점유율 25%면 충분하다. 여기에 센터진이 15%를 해주면 팀 전체 기량이 올라갈 수 있다. 외국인 선수에게 크게 의존하지만 이들은 어려운 볼만 때려주면 된다. 그래야 국내 선수들도 성장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승부사의 목소리가 잠시 높아졌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딱 1년을 빼고 함께 지냈던 흥국생명 선수단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플레이오프 싸움은 이미 끝났고 GS칼텍스와 선두 싸움은 끝까지 갈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분위기를 다잡는다면 해볼 만 합니다"라고 내다봤다.
'야인'으로 돌아간 황 전 감독은 요즘 배구장에도 종종 나타난다. 게임도 보고 여러 감독님의 생각을 공부 중이라고 했다. 감독을 맡아달라며 구체적인 제안을 해 온 남녀 구단은 없지만 그때를 준비하려고 다시 기지개를 켰다.
자신의 배구 색깔을 묻자 황 전 감독은 "이기는 게 첫 번째라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해 온 '화려한 공격'을 팬 앞에 유감없이 보여주는 게 두 번째"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낙마로 끝을 보지 못한 힘있는 배구, 그 화려함의 완성을 위해 황 전 감독은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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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주 “경질 아픔 잊고 도약 준비”
    • 입력 2009-03-07 08:29:19
    • 수정2009-03-07 08:49:13
    연합뉴스
"잘 풀렸습니다." 지난 5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황현주 전 감독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춘삼월 따뜻한 햇살에 사르르 봄눈이 녹듯, 한동안 얼어붙었던 황 전 감독과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관계도 겨울의 끝자락이던 2월 말 평온을 되찾았다. 흥국생명은 황 전 감독의 요구대로 계약 만료일인 6월까지 급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흥국생명 산하 세화여고배구단을 맡아달라는 구단의 제안에 "절대 안 간다"던 황 전 감독도 "생각해보겠다"며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황 전 감독은 2009년 새해맞이를 이틀 앞둔 12월30일, 갑작스럽게 '잘렸다'. 승부에만 집착한 나머지 구단의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부상 선수 기용을 둘러싸고 구단과 갈등을 일으켰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아한 여자 팀에서 '독한 배구'를 했다는 평도 있었다. 정규 시즌에서 팀을 1위로 이끌었던 황 전 감독은 2005-2006년 시즌에 이어 두 번이나 같은 팀으로부터 '팽' 당했다. 웬만한 프로스포츠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난데없이 선장이 바뀐 흥국생명은 1월4일 GS칼텍스와 경기에서 2-3으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3월6일까지 6승8패로 밀렸다. 그 기간 풀세트에서 다섯 번이나 졌고 7승2패로 1위였던 순위는 3위로 주저앉았다. 흥국생명에 쏟아진 팬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지더라도 선수들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던 구단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황 전 감독을 대신해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은 이승현 감독은 '학생 배구'에서 오랫동안 몸담아왔지만 프로는 처음이어서 현 성적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배구팬들을 매료시킨 '분홍색 거미'군단은 위력을 잃은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황 전 감독을 찾았다. "지방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여고, 남고 연습장에 가 열심히 배구 공부 중"이라던 그는 마음만은 여전히 흥국생명과 함께 있었다. 간단한 여자부 판세 설명과 함께 예로 든 데이터가 복사기에서 막 뽑아낸 종이처럼 따끈따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팬들 처지에서는 흥국생명이 풀세트 경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고 좋은 게임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마지막 집중력에서 흔들리는 게 보여요. 새로 오신 감독님도 열심히 지도하실 텐데, 반드시 끊어줘야 할 고비를 못 넘다보니 어려운 경기를 하는 것 같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1점마다 유독 흐름이 요동치는 배구의 특성상 분위기를 타야 할 때 반드시 치고 나가야 하나 지금 흥국생명은 그런 면이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구체적인 분석이 이어졌다. "리베로 조상희와 외국인 선수 카리나, 센터 전민정이 부진하다. 김혜진은 제 몫을 해주는데 민정이가 주춤하면서 센터진이 약해졌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이승현 감독 역시 센터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레프트 공격수 카리나를 센터로 돌린 포메이션의 변화를 막 꾀한 터였다. 사람은 다르나 게임을 보는 눈은 비슷했다. 충수염 수술로 시즌 중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카리나가 어려운 볼을 처리해주지 못한 것도 침체를 겪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황 전 감독은 "후반으로 갈수록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큰 것 같다. 이는 흥국생명 뿐 아니라 다른 팀도 마찬가지다. 데라크루즈(GS칼텍스)나 밀라(도로공사)의 점유율이 어떨 때는 40%나 될 때도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에이스라면 점유율 25%면 충분하다. 여기에 센터진이 15%를 해주면 팀 전체 기량이 올라갈 수 있다. 외국인 선수에게 크게 의존하지만 이들은 어려운 볼만 때려주면 된다. 그래야 국내 선수들도 성장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승부사의 목소리가 잠시 높아졌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딱 1년을 빼고 함께 지냈던 흥국생명 선수단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플레이오프 싸움은 이미 끝났고 GS칼텍스와 선두 싸움은 끝까지 갈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분위기를 다잡는다면 해볼 만 합니다"라고 내다봤다. '야인'으로 돌아간 황 전 감독은 요즘 배구장에도 종종 나타난다. 게임도 보고 여러 감독님의 생각을 공부 중이라고 했다. 감독을 맡아달라며 구체적인 제안을 해 온 남녀 구단은 없지만 그때를 준비하려고 다시 기지개를 켰다. 자신의 배구 색깔을 묻자 황 전 감독은 "이기는 게 첫 번째라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해 온 '화려한 공격'을 팬 앞에 유감없이 보여주는 게 두 번째"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낙마로 끝을 보지 못한 힘있는 배구, 그 화려함의 완성을 위해 황 전 감독은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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