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냉전’ 물러설 수 없는 남북전

입력 2009.03.30 (10:55) 수정 2009.03.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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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듯 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남북한 간 축구 맞대결이 4월의 시작과 함께 다시 이뤄진다.
이번에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길목에서다.
현재 한 경기를 더 치른 북한이 3승1무1패(승점 10)로 B조 1위, 한국이 2승2무(승점 8)로 조 2위다.
1954년 스위스 대회 때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처음 한국은 7회 연속 '꿈의 무대'에 오르고자 한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 때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선에 출전해 당시 아시아 역대 최고 성적이었던 8강 신화를 쓴 북한은 44년 만의 본선 진출을 노린다.
남북한 모두에게 이번 경기는 물러설 수 없는 한 판이다.

◇북한을 일부러 피했던 한국 축구

남북한 간 축구 대결의 효시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관심사였던 경평 축구대회다.
경평전은 1929년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경기를 가진 뒤 매년 한 차례씩 서울과 평양에서 열렸다. 1935년 일시 중단되고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 서울에서 재개됐지만 이후 분단이 굳어지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한이 한동안 아시아 무대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북한의 만남도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 때는 당시 아시아 최강으로 평가받던 북한과 대결에 부담을 느낀 한국이 출전을 포기하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한국은 북한의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에 자극을 받아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김호, 김정남, 이회택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주축이 된 양지팀을 1967년 1월 창단했지만 북한과 맞대결도 해보지 못한 채 3년 만에 해체하는 곡절을 겪었다.

◇치열했던 '한 골 승부'

남북한 축구가 처음 국제무대에서 맞부딪친 것은 1976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준결승(한국 0-1 패)에서다.
이후 197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국가대표팀 간 첫 격돌이 이뤄졌다. 양팀은 연장 혈투까지 벌였지만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1980년 9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안컵 준결승(2-1 승)과 198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1-0 승), 1990년 중국 베이징에서 치른 다이너스티컵(1-0 승)에서 거푸 북한을 눌렀다.
1990년 통일축구 때는 1승1패를 나눠 가졌다. 그해 10월 먼저 평양에서 열린 경기에서 1-2로 패한 것이 역대 남북한 간 공식 A매치에서 한국이 기록한 유일한 패배다.
한국은 역대 A매치 전적에서 5승7무1패로 북한에 앞서 있다.
하지만 승패가 엇갈린 여섯 차례 격돌에서 다섯 경기가 한 점 차 승부였을 만큼 객관적 전력을 떠나 한 치 양보 없는 싸움이 계속됐다.
1993년 도하에서 열린 미국 월드컵 예선 경기(한국 3-0 승)가 남북한 대결에서 한 팀 최다골 및 최다골 차가 난 승부였다.
2005년 8월 전주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대회(0-0 무승부)부터는 내리 다섯 경기 연속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허정무호 '이번엔 승리'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나서 지난해에만 북한과 무려 네 차례나 맞붙었다. 결과는 모두 무승부.
지난해 2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전반 염기훈(울산)의 선제골로 앞서가다 후반 정대세(가와사키)에게 동점골을 내줘 1-1로 비겼다.
또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두 차례 격돌에서는 북한의 밀집수비를 뚫지 못하고 각각 0-0으로 비겨 승점을 나눠 가졌다.
운명의 장난처럼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도 같은 조에 속해 지난해 9월 치른 1차전에서는 홍영조(FK로스토프)에게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다 기성용(서울)의 A매치 데뷔골로 균형을 맞췄다.
평양에서 열렸어야 할 월드컵 3차 예선과 최종예선 북한 홈 경기는 북한이 애국가 연주 및 태극기 게양을 거부해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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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 냉전’ 물러설 수 없는 남북전
    • 입력 2009-03-30 10:50:34
    • 수정2009-03-30 15:30:24
    연합뉴스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듯 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남북한 간 축구 맞대결이 4월의 시작과 함께 다시 이뤄진다. 이번에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길목에서다. 현재 한 경기를 더 치른 북한이 3승1무1패(승점 10)로 B조 1위, 한국이 2승2무(승점 8)로 조 2위다. 1954년 스위스 대회 때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처음 한국은 7회 연속 '꿈의 무대'에 오르고자 한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 때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선에 출전해 당시 아시아 역대 최고 성적이었던 8강 신화를 쓴 북한은 44년 만의 본선 진출을 노린다. 남북한 모두에게 이번 경기는 물러설 수 없는 한 판이다. ◇북한을 일부러 피했던 한국 축구 남북한 간 축구 대결의 효시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관심사였던 경평 축구대회다. 경평전은 1929년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첫 경기를 가진 뒤 매년 한 차례씩 서울과 평양에서 열렸다. 1935년 일시 중단되고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 서울에서 재개됐지만 이후 분단이 굳어지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한이 한동안 아시아 무대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북한의 만남도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 때는 당시 아시아 최강으로 평가받던 북한과 대결에 부담을 느낀 한국이 출전을 포기하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한국은 북한의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에 자극을 받아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김호, 김정남, 이회택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주축이 된 양지팀을 1967년 1월 창단했지만 북한과 맞대결도 해보지 못한 채 3년 만에 해체하는 곡절을 겪었다. ◇치열했던 '한 골 승부' 남북한 축구가 처음 국제무대에서 맞부딪친 것은 1976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준결승(한국 0-1 패)에서다. 이후 197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국가대표팀 간 첫 격돌이 이뤄졌다. 양팀은 연장 혈투까지 벌였지만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1980년 9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안컵 준결승(2-1 승)과 198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1-0 승), 1990년 중국 베이징에서 치른 다이너스티컵(1-0 승)에서 거푸 북한을 눌렀다. 1990년 통일축구 때는 1승1패를 나눠 가졌다. 그해 10월 먼저 평양에서 열린 경기에서 1-2로 패한 것이 역대 남북한 간 공식 A매치에서 한국이 기록한 유일한 패배다. 한국은 역대 A매치 전적에서 5승7무1패로 북한에 앞서 있다. 하지만 승패가 엇갈린 여섯 차례 격돌에서 다섯 경기가 한 점 차 승부였을 만큼 객관적 전력을 떠나 한 치 양보 없는 싸움이 계속됐다. 1993년 도하에서 열린 미국 월드컵 예선 경기(한국 3-0 승)가 남북한 대결에서 한 팀 최다골 및 최다골 차가 난 승부였다. 2005년 8월 전주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대회(0-0 무승부)부터는 내리 다섯 경기 연속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허정무호 '이번엔 승리'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나서 지난해에만 북한과 무려 네 차례나 맞붙었다. 결과는 모두 무승부. 지난해 2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전반 염기훈(울산)의 선제골로 앞서가다 후반 정대세(가와사키)에게 동점골을 내줘 1-1로 비겼다. 또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두 차례 격돌에서는 북한의 밀집수비를 뚫지 못하고 각각 0-0으로 비겨 승점을 나눠 가졌다. 운명의 장난처럼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도 같은 조에 속해 지난해 9월 치른 1차전에서는 홍영조(FK로스토프)에게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다 기성용(서울)의 A매치 데뷔골로 균형을 맞췄다. 평양에서 열렸어야 할 월드컵 3차 예선과 최종예선 북한 홈 경기는 북한이 애국가 연주 및 태극기 게양을 거부해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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