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고위 공직자의 ‘그릇’

입력 2009.04.23 (07:07) 수정 2009.04.2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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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삼 해설위원]

고위 공직을 맡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여러모로 자리에 적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넘쳐도 문제고 모자라면 더 큰 문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을 ‘깜’이 된다거나 안 된다고 합니다.
구치소로 가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그의 그릇을 엿봅니다. 그는 대통령의 친구라는 인연으로 발탁돼 청와대의 살림을 맡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대통령 가족의 돈 심부름을 했고 거액의 국고를 빼돌렸다니 기가 막힙니다. 말 그대로 부도덕한 ‘집사’였지 고위 공직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또 놀랍니다. 그가 빼낸 돈은 대통령의 특수 활동비로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횡령이 가능한 자리에 그가 있었습니다.
관심은 정씨가 빼낸 12억 5천만 원이 노 전 대통령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쏠립니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퇴임 후에 주려고 모아뒀을 뿐 보고하지 않았다는데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검찰 수사는 이 부분을 밝히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실망스러운 것은 노 전 대통령 측의 태돕니다. 받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고 하는가 하면 ‘중요한 것은 증거’라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부인과 아들이 잇달아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런 마당에 보도진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고 산책도 못해 집이 감옥이라고 불평합니다. 그의 말처럼 구차하고 듣기에도 민망합니다.
국민은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최소한의 품위와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합니다. 가장 명쾌한 처신은 하루빨리 진실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우선 검찰의 서면 질의서에 성실하게 응하길 기대합니다. 증거 공방을 하며 검찰 수사와 숨바꼭질하는 듯한 태도는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사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심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망신입니다.
권력 주변엔 갑자기 힘이 세진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물러날 때를 대비한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랬다가 몰락한 인사들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어느 정권이건 새겨들어야할 대목입니다.
이 사건이 흐지부지 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릇’이 모자란, 이른바 ‘깜’이 안 되는 사람이 갖는 권세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검찰은 냉정하게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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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해설] 고위 공직자의 ‘그릇’
    • 입력 2009-04-23 06:23:33
    • 수정2009-04-23 07:14:01
    뉴스광장 1부
[이준삼 해설위원] 고위 공직을 맡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여러모로 자리에 적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넘쳐도 문제고 모자라면 더 큰 문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을 ‘깜’이 된다거나 안 된다고 합니다. 구치소로 가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그의 그릇을 엿봅니다. 그는 대통령의 친구라는 인연으로 발탁돼 청와대의 살림을 맡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대통령 가족의 돈 심부름을 했고 거액의 국고를 빼돌렸다니 기가 막힙니다. 말 그대로 부도덕한 ‘집사’였지 고위 공직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또 놀랍니다. 그가 빼낸 돈은 대통령의 특수 활동비로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횡령이 가능한 자리에 그가 있었습니다. 관심은 정씨가 빼낸 12억 5천만 원이 노 전 대통령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쏠립니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퇴임 후에 주려고 모아뒀을 뿐 보고하지 않았다는데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검찰 수사는 이 부분을 밝히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실망스러운 것은 노 전 대통령 측의 태돕니다. 받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고 하는가 하면 ‘중요한 것은 증거’라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부인과 아들이 잇달아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런 마당에 보도진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고 산책도 못해 집이 감옥이라고 불평합니다. 그의 말처럼 구차하고 듣기에도 민망합니다. 국민은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최소한의 품위와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합니다. 가장 명쾌한 처신은 하루빨리 진실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우선 검찰의 서면 질의서에 성실하게 응하길 기대합니다. 증거 공방을 하며 검찰 수사와 숨바꼭질하는 듯한 태도는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사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심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망신입니다. 권력 주변엔 갑자기 힘이 세진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수록 물러날 때를 대비한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랬다가 몰락한 인사들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어느 정권이건 새겨들어야할 대목입니다. 이 사건이 흐지부지 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릇’이 모자란, 이른바 ‘깜’이 안 되는 사람이 갖는 권세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검찰은 냉정하게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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