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 잊지 못해’ 죽음 넘어선 의리

입력 2009.07.1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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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람들의 의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넘어섰다.
지난 11일(한국시간)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천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실족했다가 닷새만인 16일 오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여성산악인 고미영씨의 시신 수습 뒤에는 죽음도 불사한 산사람들의 우정과 의리가 있었다.
고인이 실족한 지점은 해발 6천200m에 있는 `칼날 능선'. 평소 눈사태와 낙석이 많은 위험 지대라 대원들간 로프를 연결하지 않고 하산하다 실족하면서 약 1천m 협곡 아래로 떨어지는 변을 당했다.
사고 직후 원정대는 헬기를 통해 해발 5천300m 인근에 누운 채 발견된 고씨에 대한 구조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헬기에서 내뿜는 하강기류가 눈사태를 유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협곡 사이로 수시로 돌풍이 몰아쳐 현지 헬기 조종사들이 구조에 나서기를 꺼린 것.

결국 구조대가 사고지점까지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7명으로 구성된 구조대 중 셰르파 2명과 고소 포터 한 명 등 현지인 3명을 제외한 한국인 4명은 모두 고인과 인연의 끈을 맺은 사람들이다.
김재수 원정대장은 고인이 지난 2006년 11월 8천m 고봉 중 초오유(8천201m)에 처음 오른 때를 제외하고는 이번 낭가파르밧까지 모두 10개의 히말라야 봉우리를 함께 오르면서 생사를 함께 한 동지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김재수 대장에 대한 고마움을 수시로 전하곤 했다. 김 대장도 산악계 선배이자 정신적 멘토(정신적 스승)로서 고인에게 큰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김 대장은 이번에 사고 직후 통곡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비치면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문철한은 올 초 시작한 8번째 8천m 고봉 등정부터 원정대에 합류한 막내. 그러나 싹싹한 일처리로 고인이 무척 아끼는 후배였다.
고인은 자신의 인터넷 팬카페에 남긴 글에서 "새로 영입한 문철한이가 `예,예' 하면서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나와 김재수 대장은 너무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면서 후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박희용씨는 최근 파키스탄 트랑고타워(6천286m) 등정에 성공한 뒤 귀국을 준비하다 비보를 전해듣고 구조대에 합류했다. 고인이 스포츠클라이밍 부문 국내 1인자로 활동할 당시, 고인에게서 클라이밍 기술을 배우면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치원씨 역시 코오롱스포츠 원정대 소속으로 낭가파르밧을 함께 오른 뒤 내려왔지만 바로 앞에서 일어난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괴로운 심정 때문에 이번 구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처럼 고인과 맺은 인연을 잊지 못해 구조에 나선 이들은 목숨을 걸고 무려 13시간여의 사투 끝에 고인의 시신을 차가운 히말라야의 눈밭에서 고인의 생환을 그토록 기다리던 동료가 있는 베이스캠프 내 안치소로 옮겼다.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끼는 `산사람 동료'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한 이들의 숭고한 모습은 이번 비극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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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미영 잊지 못해’ 죽음 넘어선 의리
    • 입력 2009-07-16 22:28:11
    연합뉴스
산사람들의 의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넘어섰다. 지난 11일(한국시간)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천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실족했다가 닷새만인 16일 오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여성산악인 고미영씨의 시신 수습 뒤에는 죽음도 불사한 산사람들의 우정과 의리가 있었다. 고인이 실족한 지점은 해발 6천200m에 있는 `칼날 능선'. 평소 눈사태와 낙석이 많은 위험 지대라 대원들간 로프를 연결하지 않고 하산하다 실족하면서 약 1천m 협곡 아래로 떨어지는 변을 당했다. 사고 직후 원정대는 헬기를 통해 해발 5천300m 인근에 누운 채 발견된 고씨에 대한 구조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헬기에서 내뿜는 하강기류가 눈사태를 유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협곡 사이로 수시로 돌풍이 몰아쳐 현지 헬기 조종사들이 구조에 나서기를 꺼린 것. 결국 구조대가 사고지점까지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7명으로 구성된 구조대 중 셰르파 2명과 고소 포터 한 명 등 현지인 3명을 제외한 한국인 4명은 모두 고인과 인연의 끈을 맺은 사람들이다. 김재수 원정대장은 고인이 지난 2006년 11월 8천m 고봉 중 초오유(8천201m)에 처음 오른 때를 제외하고는 이번 낭가파르밧까지 모두 10개의 히말라야 봉우리를 함께 오르면서 생사를 함께 한 동지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김재수 대장에 대한 고마움을 수시로 전하곤 했다. 김 대장도 산악계 선배이자 정신적 멘토(정신적 스승)로서 고인에게 큰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김 대장은 이번에 사고 직후 통곡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비치면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문철한은 올 초 시작한 8번째 8천m 고봉 등정부터 원정대에 합류한 막내. 그러나 싹싹한 일처리로 고인이 무척 아끼는 후배였다. 고인은 자신의 인터넷 팬카페에 남긴 글에서 "새로 영입한 문철한이가 `예,예' 하면서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나와 김재수 대장은 너무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면서 후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박희용씨는 최근 파키스탄 트랑고타워(6천286m) 등정에 성공한 뒤 귀국을 준비하다 비보를 전해듣고 구조대에 합류했다. 고인이 스포츠클라이밍 부문 국내 1인자로 활동할 당시, 고인에게서 클라이밍 기술을 배우면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치원씨 역시 코오롱스포츠 원정대 소속으로 낭가파르밧을 함께 오른 뒤 내려왔지만 바로 앞에서 일어난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괴로운 심정 때문에 이번 구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처럼 고인과 맺은 인연을 잊지 못해 구조에 나선 이들은 목숨을 걸고 무려 13시간여의 사투 끝에 고인의 시신을 차가운 히말라야의 눈밭에서 고인의 생환을 그토록 기다리던 동료가 있는 베이스캠프 내 안치소로 옮겼다.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끼는 `산사람 동료'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한 이들의 숭고한 모습은 이번 비극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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