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휴일도 모르고 일하던 남편과 아버지, 꼬박꼬박 적금을 부으며 열심히 살던 20대 청년, 사고 희생자들의 사연, 하나하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번 사고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2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김지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사고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지용철 씨, 사경을 헤매다 13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빈소에는 하루종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쉬는 날도 없이 일 밖에 몰랐다던 남편, 일곱 살 아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녹취> 故 김영진씨 유가족 : "믿어지지가 않아요. 숨이 멈추는 줄 알았어요.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했거든요. (전화하면) 잘 자냐고, 밥 다 먹었냐고 그렇게 물어보고 잘 재우라고... "
동고동락했던 현장 동료들은 유족들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합니다.
<녹취> 사고 현장 동료 : "제수씨. 죄송합니다."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2명도 참변을 당했습니다.
동갑내기 고향 친구인 레휘중 씨와 웬총또안 씨, 지난 2007년, 현지 소개업체에 천여만 원을 내고 입국해 의정부 경전철 공사 하도급 업체에 취직했습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 번 돈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내던 이들은, 가족들이 그리워도 전화 한 번 마음놓고 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웬피난(故 웬총또안 씨 조카) : "많이 고생하고 한 달에 120만 원 벌어서 80만 원을 베트남으로 보내요. 한국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돈을 모아 가족 품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던 이들은 결국 머나먼 이국 땅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KBS 뉴스 김지영입니다.
휴일도 모르고 일하던 남편과 아버지, 꼬박꼬박 적금을 부으며 열심히 살던 20대 청년, 사고 희생자들의 사연, 하나하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번 사고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2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김지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사고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지용철 씨, 사경을 헤매다 13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빈소에는 하루종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쉬는 날도 없이 일 밖에 몰랐다던 남편, 일곱 살 아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녹취> 故 김영진씨 유가족 : "믿어지지가 않아요. 숨이 멈추는 줄 알았어요.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했거든요. (전화하면) 잘 자냐고, 밥 다 먹었냐고 그렇게 물어보고 잘 재우라고... "
동고동락했던 현장 동료들은 유족들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합니다.
<녹취> 사고 현장 동료 : "제수씨. 죄송합니다."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2명도 참변을 당했습니다.
동갑내기 고향 친구인 레휘중 씨와 웬총또안 씨, 지난 2007년, 현지 소개업체에 천여만 원을 내고 입국해 의정부 경전철 공사 하도급 업체에 취직했습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 번 돈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내던 이들은, 가족들이 그리워도 전화 한 번 마음놓고 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웬피난(故 웬총또안 씨 조카) : "많이 고생하고 한 달에 120만 원 벌어서 80만 원을 베트남으로 보내요. 한국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돈을 모아 가족 품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던 이들은 결국 머나먼 이국 땅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KBS 뉴스 김지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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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전철 공사장 사고 희생자 ‘애끓는 사연들’
-
- 입력 2009-07-27 20:05:19
![](/newsimage2/200907/20090727/1817307.jpg)
<앵커 멘트>
휴일도 모르고 일하던 남편과 아버지, 꼬박꼬박 적금을 부으며 열심히 살던 20대 청년, 사고 희생자들의 사연, 하나하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번 사고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2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김지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사고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지용철 씨, 사경을 헤매다 13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빈소에는 하루종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쉬는 날도 없이 일 밖에 몰랐다던 남편, 일곱 살 아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녹취> 故 김영진씨 유가족 : "믿어지지가 않아요. 숨이 멈추는 줄 알았어요. 한 달에 한번 볼까 말까 했거든요. (전화하면) 잘 자냐고, 밥 다 먹었냐고 그렇게 물어보고 잘 재우라고... "
동고동락했던 현장 동료들은 유족들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합니다.
<녹취> 사고 현장 동료 : "제수씨. 죄송합니다."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2명도 참변을 당했습니다.
동갑내기 고향 친구인 레휘중 씨와 웬총또안 씨, 지난 2007년, 현지 소개업체에 천여만 원을 내고 입국해 의정부 경전철 공사 하도급 업체에 취직했습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 번 돈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내던 이들은, 가족들이 그리워도 전화 한 번 마음놓고 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웬피난(故 웬총또안 씨 조카) : "많이 고생하고 한 달에 120만 원 벌어서 80만 원을 베트남으로 보내요. 한국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돈을 모아 가족 품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던 이들은 결국 머나먼 이국 땅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KBS 뉴스 김지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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