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던 시절 추억의 ‘외상 장부’

입력 2009.07.2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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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가난해도 인심만큼은 후했던 6.70년대 그 시절이 그립다는 분들 많습니다.
광화문 뒷골목 한 주점의 낡은 외상장부를 함께 펼쳐볼까요.
유지향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은 서울 광화문의 한 주택가.

이곳에 '사직골 대머리집'이란 간판을 걸고 밥과 술을 팔았던 식당이 있었습니다.

20년 전 개발로 흔적도없이 사라졌지만 당시 뒷골목 식당 안의 사람 냄새를 고스란히 간직한 외상장부가 처음 공개됐습니다.

단골 손님이었던 67의 극작가 조성현씨는 지금도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성현(극작가/'대머리집' 단골손님) : "얼굴이 신용이고, 직장이 보증이 되는 그런 시대였어요."

6, 7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외상장부에는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김중배 대기자 등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빼곡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외상 술값은 백 원에서 3백 원 수준, 자장면 여서 일곱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단골 손님들은 어려웠던 시절 언제든 외상을 달아놓고 친구들과 함께 소주 한잔으로 목을 추겼던 기억들이 새롭습니다.

<인터뷰> 김재평(서울시 사당동) : "사장이 방송사 돌아다니면서 외상값 다 받아다니고 그랬어."

신용카드 대신 외상장부 하나로도 주인과 손님간의 신용이 가능했던 시절.

편리함과 풍요로움이 넘치는 요즘 세상은 결코 줄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던 때였습니다.

KBS 뉴스 유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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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렵던 시절 추억의 ‘외상 장부’
    • 입력 2009-07-28 21:43:37
    뉴스 9
<앵커 멘트> 가난해도 인심만큼은 후했던 6.70년대 그 시절이 그립다는 분들 많습니다. 광화문 뒷골목 한 주점의 낡은 외상장부를 함께 펼쳐볼까요. 유지향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은 서울 광화문의 한 주택가. 이곳에 '사직골 대머리집'이란 간판을 걸고 밥과 술을 팔았던 식당이 있었습니다. 20년 전 개발로 흔적도없이 사라졌지만 당시 뒷골목 식당 안의 사람 냄새를 고스란히 간직한 외상장부가 처음 공개됐습니다. 단골 손님이었던 67의 극작가 조성현씨는 지금도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성현(극작가/'대머리집' 단골손님) : "얼굴이 신용이고, 직장이 보증이 되는 그런 시대였어요." 6, 7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외상장부에는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김중배 대기자 등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빼곡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외상 술값은 백 원에서 3백 원 수준, 자장면 여서 일곱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단골 손님들은 어려웠던 시절 언제든 외상을 달아놓고 친구들과 함께 소주 한잔으로 목을 추겼던 기억들이 새롭습니다. <인터뷰> 김재평(서울시 사당동) : "사장이 방송사 돌아다니면서 외상값 다 받아다니고 그랬어." 신용카드 대신 외상장부 하나로도 주인과 손님간의 신용이 가능했던 시절. 편리함과 풍요로움이 넘치는 요즘 세상은 결코 줄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던 때였습니다. KBS 뉴스 유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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